16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67)
JHJ Capital이 CDS 계약으로 벌어들인 수익률은 750%. 1년 7개월 이상의 시간을 투자한 것도 그렇지만 정호준의 수익률 자체만 놓고 보면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망하고 간판을 내린 회사부터 아직 간판을 유지 중인 회사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월가에서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한 회사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수익률에서 ‘률’이라는 글자 하나 뺀 수익만 따지만 JHJ Capital은 월가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무방할 정도로 거대한 수익을 기록했다.
[JHJ Capital의 대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월가의 다른 금융사로부터 전해 들은 건지, 우리 직원 중 누군가가 퍼트렸는지, 그도 아니면 소설을 쓰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소송당하지 않도록 추측이 가득한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 기사의 주를 이루었다.
막대한 수익을 올린 JHJ Capital의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과 질투라는 감정을 품었지만 대한민국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질투하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바로 2008년 2월 25일 취임식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직무 수행을 시작한 김명호 대통령이었다.
국정원을 통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전해 들은 김명호는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대체! 이놈은 뭐가 그렇게 잘나서 이런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버는 거지?!’
김명호는 기업들이 모든 파이를 집어삼킨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 생각해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린 거지, 다른 정치인들처럼 대한민국의 통수권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통령직이 주는 명예를 탐내 대통령이 된 게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대통령직이 주는 권력과 명예를 노리고 대통령을 꿈꿨다면, 김명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재산을 이룩할 수단으로 봤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자신이 재벌가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신이 있는 위치를 바꾸어 주었다. 취임 후 재벌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가지며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달라고 권하며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즐겼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올려다봐야 했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올려다본다. 관계가 역전된 상황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대통령이 됐다고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국가 예산은 100조가 넘었지만 서울시장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서울시장이었을 때보다 더 예산을 계획대로 집행하기 어려웠다.
김명호의 당선으로 이제는 야당이 된 진보 계열 정당이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냥 뭐만 하면 반대를 부르짖는구먼.’
성격 같아서는 그냥 내리 찍어누르고 강행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또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언론이 걸렸다.
“제기랄.”
정호준은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는데 자신은 야당에게 발목 잡혀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김명호가 정호준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정호준이 큰돈을 벌고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기업인으로서는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화가 났다.
‘아니야. 나도 미국인으로 귀화했다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거다.’
물론 김명호가 분노한다고 정호준이 아쉬울 건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 * *
유럽은행로부터 CDS를 매각금을 계좌로 입금받은 정호준은 다음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좌에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정호준은 다음 행보를 지시하기 위해 조나단을 사무실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예, 빨리 오셨네요. 밥 먹었어요?”
“오너가 부르는데 누가 늦게 오겠습니까? 저는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습니다.”
많이 친해졌기에 답지 않은 농담도 뱉었다.
조나단의 농담에 피식 웃은 정호준은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조나단의 이름을 불렀다.
“조나단을 부른 건 우리 JHJ가 이후 어떤 행보를 밟을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예요.”
“예, 귀담아듣겠습니다. 말씀하시죠 오너.”
조나단은 정호준의 말을 듣고는 수첩을 하나 꺼내들었다.
“지금부터 우리 JHJ Capital과 SSL Capital의 인력을 총 세 팀으로 나눠 주세요.”
“어떤 기준으로 나누면 될까요?”
조나단의 질문에 정호준은 곧바로 대답했다.
“첫째는 부동산 경매 업무를 볼 팀입니다.”
“부동산 경매요?”
“파산을 신청한 회사들이 가진 부동산들이 하나둘 경매에 나올 거잖아요? 그 부동산들을 사들일 생각입니다.”
정호준의 말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모든 부동산을 다 사들이라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어느 지역의 부동산을 원하십니까?”
“맨해튼, LA, 센프란시스코, 시카고, 플로리다의 건물들입니다. 최대한 싼값에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경매가 오래 지연되도록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겁니다. 위기는 급속도로 확산할 테니까요.”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주의사항, 잊지 않고 꼭 언급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조나단을 보며 정호준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두 번째로 금괴, 은괴, 동괴, 철괴 같은 실물 자산 구입을 맡아서 처리할 팀입니다. 베어스프링스가 JB에 넘어가긴 했지만 어느 정도 위기가 진정되는 것처럼 보이죠? 이건 태풍 오기 전에 있는 고요함입니다. 결국 폭탄은 터질 거고, 정부와 연준은 달러를 찍어 낼 겁니다.”
“그래서 실물 자산을 구입하는 거군요?”
조나단은 정호준의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드러내지 않았다. 자넷처럼 창업부터 함께한 건 아니지만, 조나단은 초창기에 합류한 멤버라 정호준의 성공신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 조나단은 정호준이 브루클린 다리를 판다고 해도 믿을 남자였다.
“달러를 많이 찍어 내니 당연히 그 가치가 하락할 겁니다. 저는 앞으로 3년 정도 실물 자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합니다. 가장 저점이라 생각되는 지금 빠르게 움직여서 사들여야 합니다. 물론 사들이는 물량 조절은 확실히 해서 최대한 많은 양을 싼값에 확보해야겠죠?”
“실물 자산들을 실을 컨테이너와 컨테이너를 보관할 물류창고를 수배하고, 트피오플에 연락해서 보안을 확실하게 유지하겠습니다.”
조나단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이나 셋을 깨우치는 그런 천재는 아니었지만 하나는 똑바로 해내는 남자였다. 진행 방법이 조나단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세 번째는 엔플, 구골, 아마조네, 세미크로소프트의 대주주 명단을 알아봐 주십시오. 세 번째 팀은 일의 특성상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명단을 알아본 뒤에 대주주에게 접근할 생각이니 제법 무게감 있는 이가 필요합니다.”
“급하게 알아봐야 할 일입니까?”
“아직 폭락은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천천히 해도 됩니다. 당장 가장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팀은 아무래도 두 번째 팀이겠죠.”
“그럼, 두 번째 팀의 기틀을 잡고 제가 직접 알아보고 협상하겠습니다.”
조나단은 가족이 된 아리아를 제외하면 자넷과 함께 정호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였다. 그렇기에 본인이 하겠다는데 굳이 태클을 걸 이유는 없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긴 한데…….”
다만 너무 많은 일거리를 남겨주는 것 같아 정호준은 말꼬리를 흐렸다.
“조나단에게 부담이 너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일이 많을 텐데, 번거롭지 않겠어요?”
“불경기에 잘리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열심히 일해야죠.”
정호준의 부담을 줄여주는 조나단의 농담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할게요.”
비서로서 정호준의 옆에서 정호준이 지시한 것을 모두 들은 아리아는 조나단이 나가고 단둘이 남자마자 걱정이 담긴 질문을 내뱉었다.
“주식 시장은 회복세에 들어간 것 같은데, 지금 주식을 매입하려고요?”
“조나단에게도 이야기했다시피, 지금의 회복세는 연준 때문에 생긴 일시적 현상일 뿐이에요. 위기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니, 결국 주식 시장은 폭락을 이어 갈 겁니다.”
베어스프링스가 JB에게 인수된 지 이틀 후인 3월 18일, 3.5%, 3%로 금리를 낮춘 지 얼마나 됐다고 연준 산하기관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 기금 금리를 2.25%로 또 한 번 낮추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금리를 무려 절반으로 낮춰진 셈. 연준은 금리를 낮춤으로써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고 달러에 하방 압력을 가해 유가를 상승을 기대했다.
연준의 개입은 금리를 낮추는 것 이외에도 더 있었다.
연방 주택 금융 위원회(Federal Housing Finance Board)는 지역 연방 주택 융자 은행(Federal Home Loan Banks)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로 1,000억 달러를 추가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승인했다.
대출은 연방 정부의 후원기업인 ‘Fannies’와 ‘Freddie Macs’가 보증하게 만들었다.
연준의장과 미국 재무장관은 이 한 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위기를 과소평가한 게 되었다.
위기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월가와 미국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얼마나 날뛰었는지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낙관이었다.
“회복세에 올라탄 것처럼 보이지만 4월부터 다시 폭락장이 시작될 거예요. 4월부터 조짐을 보일 폭락장은 내게, 아니 우리에게 기회가 돼 줄 겁니다.”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지 않고 대주주를 알아보는 게 그래서였군요.”
최대한 싼값에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해야 상황에서 자금을 투입해 주식 시장을 통해 주식을 사들이는 건 폭락장을 진정시킬 소재를 정호준이 직접 마련해 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선 안 된다. 그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폭락장은 되도록 오래 유지되어야 했다.
폭락에 폭락을 이어 가 더는 손해를 견딜 수 없어 주식을 정리하려는 대주주들에게 조용히 접근해 주식을 매입한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주식을 매입하는 건 폭락의 막바지면 충분했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도록 영향력을 키울 겁니다.”
야망의 불태우는 정호준을 보며 아리아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3월 말부터 주식시장의 폭락이 가시화되었고 연준은 기간 경매 시설에 자금을 추가로 투입했다. 4월 7일 500억 달러, 한화 60조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했으며, 4월 21일에 5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매일같이 유독한 은행의 부채를 사들였다.
하지만 연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의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을 한발 뒤에서 지켜보며 진입각을 살피고 있던 정호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의 정체는 바로 러시아 정부 관계자와 ‘스비르 은행’의 관계자로 스비르 은행이 발행한 15억 달러에 달하는 CDS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