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64)
미국인들에게 모노라인이라 불리는 채권보증회사는 채권 발행자가 부도가 났을 때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의 지급을 보증해 주는 기관이다. 신용과 신뢰는 물론이고, 막대한 자본도 필요한 업종이다.
업계 1위인 ‘MBIAC’은 1973년 지방 채권 보유를 다양화하기 위해 지방 채권 보험 협회를 구성했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1987년에 상장에 성공했고 ‘MBIAC’에게 밀려 업계 2를 유지 중이던 ‘AMBAC’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1971년에 설립되어 성장을 이어 갔다.
2008년에 문을 닫는 리만 브라더스만큼 깊은 역사를 가진 건 아니지만 ‘MBIAC’도 ‘AMBAC’도 강산이 변해도 몇 번 변할 세월 동안 사세를 확장하며 월가를 주름잡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만 아니었더라도 흔들림 없이 계속 사세를 이어 갔을 것이다. 두 회사는 2022년에도 그 이름들이 들려오는 회사들이었다.
[‘AMBAC’은 20억 달러에 달하는 신규 자본 조달 계획 발표!]
2008년 1월 18일 ‘AMBAC’은 20억 달러의 신규 자본 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당장 부채를 탕감할 자금이 없음을 드러내는 꼴이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Fitch’는 ‘AMBAC’의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낮췄다. 신용으로 먹고사는 금융 기관에게 있어 신용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실로 심대한 타격이었다.
모노라인 업계에서 2위를 유지 중인 ‘AMBAC’과 달리, 썩어도 준치라고 채권보증회사 1위에 랭크인 한 ‘MBIAC’은 1월은 물론이고 그 다음 달인 2월까지도 트리플 A 등급을 유지했다.
‘돈을 가져다 바르고 인맥을 동원한 거야?’
그러나 정호준을 포함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디폴트에서 끝나는 게 아닌 미국에게 위기를 가져다줄 거라고 인식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MBIAC’의 신용 등급이 내려가지 않은 것과 ‘AMBAC’의 신용 등급이 한 단계만 내려간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활용할 수 있는 인맥을 모두 동원하고 로비까지 펼쳐서 막은 것이리라.
말이 되지 않는 일을 그 뒤에도 일어났다.
2008년 3월, 15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한 ‘AMBAC’의 행보에 ‘Moody's’와 ‘S&P’는 ‘AMBAC’의 신용 등급을 AAA로 변경시켰다.
‘강물을 길러와도 모자랄 판에 오아시스에서 물을 퍼다 날랐다고 신용 등급을 유지한다?’
‘MBIAC’과 ‘AMBAC’는 리만 브라더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짊어지게 될 곳들이다. 돈이란 건 언제나 상대적인 법이다. 15억 달러가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막대한 부채를 생각하면 신용 등급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 *
2월이 지나고 3월이 찾아오면서 모노라인 업계에서 수면 위로 부각되었던 부채가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한 ‘AMBAC’의 행보가 다시금 언론사나 대중들의 눈을 가린 것.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론사의 경우는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위기는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질 뿐이란 걸 증명하듯, 위기라는 폭탄은 돌고 돌아 다시 은행들에게로 찾아들었다.
2월 말부터 이야기가 나온 위기는 모기지론 파생 상품에서 비롯된 마진콜이 야기시킨 위기였다.
‘마진콜’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다. 마진콜이란 채권이나 선물을 거래하다 보면 사용하는 개념이다. 정호준이 선물 거래를 했을 때처럼 선물이나 채권 계약은 계약 이행을 보증하고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고객으로부터 예치증거금을 받는다. 일일 정산되는 선물 가격 하락이나 담보 가치 하락으로 투자원금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일정 부분까지만 이를 인정하고, 증거금이 그 비율 아래로 떨어질 시 고객한테 개시증거금 수준으로 추가 담보를 요구한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증거금으로는 손실을 막을 수 없으니 추가로 돈을 더 내라는 의미의 ‘한정선’을 업계에서는 ‘마진콜’이라 불렀다.
선물 계약을 담당하는 보통의 거래소는 파생 상품의 레버리지 배수를 지나치게 높이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증거금의 100% 손실이 아니라 절반 정도 손실이 났을 때 ‘마진콜’이 나오도록 설정한다. 또 개인적으로 따로 설정하지 않는 한 추가 담보를 요구하기보다 그냥 마진콜이 나오는 순간 자동으로 청산해 버리는 안전장치를 만들어 놨다.
벌면 대박이지만 잃으면 쪽박을 넘어 인생이 망가지는 레버리지의 리스크를 조금이나마 줄여 보기 위한 제도였다.
파생 상품과 모기지론 채권에 투자했던 포지션을 청산해 돈을 주거나 그도 아니면 추가로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은행은 모기지론 디폴트 때문에 돈이 없었다.
‘미련하게 모기지론을 붙잡고 있지는 않을 테니, 담보를 잡기보다는 포지션 청산 쪽으로 가닥을 잡겠지.’
당장 쥐고 있는 채권이 워낙 많으니 대외적으로는 희망적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지만, 은행들은 모두 모기지론과 연관된 파생 상품들에 큰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잇따른 마진콜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열악했던 자금 상황이 더 열악해졌고, 이 때문에 다시금 은행들의 위기설이 수면 위로 노출되었다.
마진콜 때문에 자금난에 빠진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베어스프링스’와 Kalayit Group 산하의 ‘Kalayit Capital’이었다.
칼레잇 캐피탈의 뒷배인 칼레잇 그룹은 2022년까지 명맥을 이어 가며 2021년 공식적으로 집계된 회사 자산만 212억 5천만 달러에 달했고, 회사가 굴리는 돈은 3,76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사모펀드였다.
‘베어스프링스’와 ‘칼레잇 캐피탈’은 자금 경색에 빠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뒷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존재했다.
“베어스프링스에게 뒷배가 없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겠네.”
베어스프링스는 규모 자체는 2008년 당시 칼레잇 그룹과 비슷하거나 더 컸다. 뒷배라는 것이 필요 없는, 아니 본인들이 뒷배라는 포지션을 차지하는 게 맞을 정도의 거대한 은행이었다.
‘괜히 월가 5대 투자은행이라 불린 게 아니지.’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칼레잇 그룹 산하의 펀드가 저지른 실수와 5대 투자은행이 저지른 실수가 같을 리 없었다. 규모가 크고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실수가 가져오는 파급력 또한 막대했다.
베어스프링스는 돈이 된다는 이유로 절제 없이 모기지론 파생 상품에 자산을 모두 쏟아부었고,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된다는 주식 시장의 격언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왔다.
베어스프링스와 같이 마진콜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한 금융 회사들은 자신들이 싸 놓은 거대한 똥을 치우기 위해 노력을 이어 갔다.
2008년 3월 14일에 개최된 컨퍼런스 또한 베어스프링스의 발버둥의 일환이었다.
* * *
2007년 3분기부터 위기설이 제기된 후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파악한 뒤부터 연준 또한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연방준비제도 산하 조직이자 미국이란 거대한 국가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조직 연방 공개 시장 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가 먼저 나서서 금리를 낮췄다.
[연준 기준 금리를 3.5%로 인하할 것을 발표!]
2008년 1월 22일 연방 기금 금리를 3.5%대로 낮추고, 그래도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일주일 후 0.5% 더 차감해 3.0%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미국의 잇따른 금리 인상에 똑같이, 아니 미국보다 더 많이 금리를 인상한 한국은 부동산 매매 건수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금리를 인상하면 감당해야 할 이자가 많아지기에, 매물은 많은데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전세금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는 이가 아닌 이상 은행에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마련하고 대출에 따른 이자를 내는 것보다 월세를 내는 게 더 저렴해졌기에, 없어서 못 들어갈 정도로 인기 있던 전세 대신 월세를 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2022년 한국은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탓에 부동산 매매율이 폭락했다. 2022년 한국과 반대되는 포지션인 금리 대폭 인하로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주택 판매율을 높이고자 했다.
연준이 취한 수는 평상시처럼 상황이 나쁘지 않을 때야 괜찮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연준의 의도한 대로 경제가 굴러가지는 않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디폴트 상태를 모두 인식한 현재 상황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그저 그런 수에 불과했다.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상승할 기미는커녕 하락을 계속 이어 갔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가 낸 통계에 따르면 2월 매출은 전년 대비 24% 감소한 503만 건에 불과했고, 부동산 가격 또한 전년 대비 8.3% 하락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디폴트로 주택이 압류된 탓에 압류는 전년 대비 60%나 증가했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금리를 인하하는 정도의 조치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연준 TAF(기간 경매 시설) 프로그램에 500억 달러 투입.]
연준은 TAF 프로그램에 1,000억 달러까지 투입할 계획을 세웠고, 2008년 3월 8일 우선적으로 500억 달러를 투입했다.
‘TAF’는 Term Auction Facility의 약자로 단기 자금 조달 시장의 높은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연방 준비은행이 관리하는 임시 프로그램이었다. 연준은 재정 상태가 양호하고, TAF 대출 기간을 준수할 거라 예측되는 예금 기관에 28일 혹은 84일간의 담보 대출을 놓고 경매를 했다.
어렵게 설명했지만 은행들이 자금이 부족해 단기 대출을 받는, 은행들의 은행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연준, 2,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대출 발표!]
2008년 3월 11일, 2,000억 달러, 한화 200조에 달하는 국가 예산급 규모의 국채를 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놓고 적어 놓지는 않았으나 월가에서 활동 중인 채권 딜러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제책이었다.
‘월가에서 살려 달라고 얼마나 로비를 해 댄 걸까?’
채권 딜러들을 챙기기 이전에 대중을 챙기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결국 일시적으로 부채를 떠맡아 시간을 벌겠다는 건데, 연준은 아직도 모기지론을 포기하지 않았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 좋았지만 썩은 동아줄을 계속 붙잡고 있으려는 월가의 행보에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호준이 읽고 있는 신문의 내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연준 이사장 그린스펀, 3월 14일 컨퍼런스 참여!]
베어스프링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그 회의에 연준 관계자가 참석한다는 기사를 보며 정호준은 3월 14일에 있을 컨퍼런스 참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