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61)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의 폰지사기 규모, 6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추정!]
처음에는 50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말했던 피해 규모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커졌다. 정호준은 매일 새롭게 갱신되는 피해 규모나 파산 소식, 주식 시장의 하락세 등을 파악하며 시간을 보냈다.
폭락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모든 주식이 폭락한 건 아니었다. 엔플이나 구골처럼 급이 다르나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느라 바빠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 상품에 돈을 투자하지 않은 IT 대형주들은 오르락내리락을 이어 가며 하락은 하되 비교적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2월과 3월에는 잠깐 반등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럴까?’
정호준은 메이도프의 폰지사기 혐의가 일찍 밝혀졌기에, 그가 알고 있던 주가의 흐름에 분명한 변동이 생기리라 추측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CDS를 정리할 생각이 없으십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CDS의 가치가 높아져 은행들이 안달이 났기에, 마이클 스팬서 역시 버티다 버티다 등쌀에 못 이겨 정호준에게 토스했고, 그 때문에 JHJ Capital에 근무 중인 직원들은 회사가 또 한 번 도약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변 관계자들이 하루살이처럼 오늘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살아가는 것과 달리, JHJ Capital에 소속된 직원들은 모두 어깨를 펴고 다니며 JHJ Capital에 근무하는 것에 자부심을 품었다.
물론 개중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이 존재하긴 했다. JHJ Capital을 포함해 몇몇 회사를 제외하곤, 월가와 미국 전체가 곡소리를 낼 때도 그들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으니까. 남의 나라도 아니고 본인들의 나라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인이라고 애국심이나 소속감이 없는 건 아니니, 마음이 불편한 걸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티가 나게 다닌 건 아니니까. 죄책감을 품었다고 일을 대충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대표님, 영화 투자 정산 내역서와 투자를 요청한 작품들의 시놉시스입니다.”
“아, 고마워요. 밥은 먹었죠?”
“예, 먹었습니다.”
‘Prepare For Glory, Sparta!!’와 브래드 버트 감독의 작품 투자에 관한 수익이 계좌로 입금되었고,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은 투자와 수익이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정호준에게 건네주곤 다시 자신의 일을 보기 위해 대표실을 나섰다.
“스파르타는 1억 4,400만 달러, 버트 감독은 2억 달러라.”
정확한 수익은 144,482,399달러와 197,596,423달러였다.
“제작사와 배급사를 그냥 확 사 버릴까?”
정호준이 전 세계의 영화관을 모두 사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영화관이 빼먹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배급사나 제작사로 빠져나가는 수익금이 아까웠다.
‘돈도 많으면서 내가 왜 이럴까? 진짜 욕심쟁이 다 됐네.’
많게는 억 단위, 적게는 수천만 달러를 가져가 버리니 그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만약 정호준이 제작사나 배급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냥 직원들 월급을 챙겨 주고 성과를 낸 감독에게 런닝게런티를 챙겨 주는 선에서 끝내면 되잖나? 좀 더 챙기면 성공한 것을 치하하며 성과금을 지급하는 것 정도? 뗄 거 다 떼도 억 달러 이상의 수익은 더 남을 것이다.
‘일단 매물이 있나 찾아봐야겠네.’
욕심쟁이 다 됐다며 스스로를 성찰하면서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제작사나 배급사 중에는 파생 상품에 투자한 곳이 분명 있을 거라 믿으며 알아보긴 해야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에서 세웠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후 정호준은 정산 내역서와 함께 건네준 투자 요청들을 하나둘 훑어보기 시작했고, 기함을 터트리게 되었다.
“왜 이렇게 대물들이 많지? 내년이 영화로 돈 벌 해인가?”
‘베트 나이트(Bat Knight)’나 ‘사파리 존스’ 같은 시리즈물들은 투자 참여가 불가능했지만 시리즈물이 아니어도 시놉시스에 따르면 2008년에는 대작들이 많이 존재했다. ‘소림 팬더’를 시작으로 ‘행콕(HangCock)’, ‘마마미아’, ‘007 퀀텀 솔러스(Quantum Solace)’, ‘윌리(Will-E)’, 역대급 시리즈 세계관의 시작인 ‘아이언슈트’까지, 최소 억 단위의 돈을 벌어다 줄 영화들이었다.
투자할 시놉시스를 전부 한편에 모아 둔 정호준은 정리를 마친 뒤 직원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투자 요청받은 시놉시스들을 전부 훑어봤습니다. 좋은 작품들이 많더군요.”
“그렇습니까?”
정호준은 따로 빼놓은 시놉시스들은 직원에게 건넸다.
“지금 건네드린 시놉시스를 보낸 영화들에 전부 투자할 겁니다. 투자가 얼마만큼 진행됐는지 알아보고, 남은 금액은 우리가 모두 채워 주겠다고 전해 주세요.”
“이렇게 많은 영화에 투자금을 전부 채워 주시겠다고요?”
정호준의 말을 들은 직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정호준이 건넨 시놉시스는 모두 합쳐 6개. 전액을 투자하면 분명 수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 투입되는 거다. 수억 달러가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니, 직원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감당 못 할 규모도 아니잖아요?”
능청스럽게 반문하는 정호준의 물음에, 직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의사는 곧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파산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하는 월가 관계자들의 바람과 달리, 한 번씩 안 좋은 소식이 당도하곤 했다.
누군가에는 절박하고 누군가에게는 여유로운 하루가 계속되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12월 중순이 코앞으로 다가올 정도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정호준과 박기태는 주에 한 번 이상 통화를 이어 가는 편이다. 하지만 12월 들어서며 전화가 뚝 끊겼다. 정호준이 먼저 걸 수도 있었지만 박기태가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박기태를 배려해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윽고 시험이 다 끝난 박기태가 먼저 연락을 줬고, 박기태와 통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이야기는 어느덧 정치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호준이 너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아? 오늘 대선 투표 시작했잖아.”
“아, 그게 오늘이었어? 일에 집중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네.”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대선 투표를 마친 친우 박기태의 전화 통화가 걸려온 뒤에야 정호준은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있음을 인지했다. 정호준은 선거가 치러진 것을 박기태 때문에 뒤늦게야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박기태의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려주었다.
“김명호 전 서울시장이 승리할 거야.”
“응? 다들 무소속으로 나온 이희택 후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 표가 갈라질 거라 말하는데?”
이희택은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대법원의 대법관으로 근무했고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뒤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에는 보수당의 총재까지 해 먹었으며 보수당의 후보로서 무려 두 차례나 대선에 입후보했다. 이희택 후보는 ‘대통령을 빼고 모든 것을 다 해 본 남자’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였다.
‘본인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엘리트 의식이 너무 강해서 논란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15대 대선 때 그의 상대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인 동교동의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아니 그 이전에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 터져 버린 IMF 외환 위기만 아니었더라도 동교동의 그분을 상대로도 승리했을 수도 있다. 당선인과의 득표율 차는 겨우 1.53%로 390,557의 표 차이밖에 안 났으니 말이다.
15대 대선은 20대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역대 대선 중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선거였다.
“여당에 희망 사항일 뿐이야. 이번 대선에 나온 진보 쪽 후보가 너무 미약해. 보수표를 이희택 후보와 김명호 서울시장이 나눠 먹더라도, 중도층의 표심은 경제를 잘 알 거라고 생각되는 김명호 전 서울시장에게로 향할 거야. 그리고 진보 쪽도 단일화에 실패하긴 마찬가지여서 달라질 일은 없을걸?”
잠깐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은 정호준은 이어서 이희택 후보가 안 되는 이유 또한 설명했다.
“이희택 후보가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2번이나 대선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패배했어. 칠전팔기 오뚜기처럼 도전하는 게 대단하긴 한데, 이미 참신하지 않잖아? 대선 후보에게는 참신함도 필요해. 보수표가 갈려도 이희택 후보 쪽으로 가는 표보단 김명호 전 서울시장에게 가는 표가 훨씬 많을 거야.”
2번이나 낙선했으면 그만할 법도 한데, 이희택은 또다시 도전을 외쳤다. 하지만 2번이나 당을 대표해서 후보로 등판했다 떨어진 이를 보수당에서 다시 밀어줄 리 없었다. 보수당에 인물이 없다면 고려라도 해 보겠으나 그것도 아니잖은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미래를 보고 온 정호준은 확신을 갖고 이야기했고, 확신 가득한 정호준의 말에 박기태는 이해했다는 듯한 소리를 냈다.
“너는 한국에 살고 신방과에 다니는 놈이 어떻게 나보다 더 분석이 어설퍼? 그래서 밥 벌어 먹고살겠어?”
“시끄러!”
비교 대상을 괴물 같은 본인으로 한정한 정호준의 핀잔에 박기태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작게 역정을 내었다.
“그나저나 방학했어? 방학했으면 미국으로 놀러 오지 않을래? 방학 때마다 미국으로 나온 것도 어학연수 기록으로 남을 텐데, 취직할 때도 그편이 유리하지 않겠어?”
박기태를 보고 싶다는 자신의 사심을 취직과 어학연수라는 대의 속에 숨겼다. 하지만 정말 놀기만 하고자 부르는 건 아니다. 그가 일하는 동안 박기태는 어학연수 학원에 다니면 그만이지 않은가?
“네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니잖아?”
엔터 광풍과 바이오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박남정에게 30억의 수익을 안겨 줬다. 그중 절반이 박기태 명의의 돈이라고 들은 바 있으니 박기태가 학비나 생활비 같은 것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박남정도 천만을 달성한 천만 감독은 아니어도 첫 작품과 차기작 모두 흥행을 이어 가며 수익을 내는 감독으로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잖은가? 박남정이 친구 보증을 서다가 잘못되지 않은 한 여유가 없을 이유가 없는 집구석이었다.
정호준이 죽기 전까지 박남정이 누군가의 보증을 서는 일은 없었으니 보증을 설 거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꼭 돈이 아니라도 경험 삼아 해 볼 수 있는 일이잖아?”
“경험이 필요하면 내가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에 꽂아 줄 수도 있어.”
“됐어, 뭘 그렇게까지 해. 일단 생각해 볼게. 아버지랑 이야기도 해 봐야지.”
틀린 말은 아닌지라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의 통화는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