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60화 (160/335)

16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60)

월가에는 수십, 아니 백을 아득히 상회하는 투자사가 존재한다. 투자사들은 은행, 헤지펀드, 펀드 등 다양한 간판을 사용했다. 백을 넘기는 투자사 중에는 월가에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자산을 운용 중인 곳도 있고, 헤지펀드나 대형 은행 산하의 펀드처럼 거대한 자산 규모를 갖춘 회사도 존재했다.

금융업계가 아닌 생산업계에서 기업을 운영 중인 이들조차 투자팀이나 아예 따로 투자사까지 차려서 MBS와 CDO 등에 투자하는데, 월가에서 적을 둔 투자사들이 모기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들에 투자를 안 했을 리 없다.

아무리 투자회사가 다루는 자금 규모가 작더라도 규모는 둘째 문제다. 마이클 스팬서처럼 MBS, CDO의 반대 포지션인 CDS를 매입하며 모기지론이 망한다는 것에 베팅한 게 아닌 이상,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돈이 된다고 소문난 모기지 상품들에 투자하지 않은 건 직무태만이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베팅했다면야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지만.’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주식의 격언은 달리 주식시장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자산을 굴리는 데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자산의 얼마는 주식에, 그리고 또 얼마는 펀드와 부동산에’처럼 말이다.

돈이 된다고 한곳에 올인하지 않고 현명하게 자산을 나눠 격언을 따랐다면 손해는 보더라도 모든 것은 잃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이번에는 피해야 할 폭탄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거지.’

가장 큰 폭탄은 MBS, CDO에 직접 투자했거나 부동산 파생상품에 돈을 투자하는 펀드였지만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도 만만찮은 폭탄이었다. 조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점점 폰지사기 규모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 폰지사기 규모 5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추정!]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으라는 격언에 따라 자산을 분산시켰는데, 그게 파생상품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펀드, 메이도프가 운영하는 투자사인 자산가들이 다수 존재했다.

‘한동안 유대계가 힘을 못 쓰게 되겠네. 상황이 여러모로 나와 장인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네.’

미국이란 나라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하는 나라다. 큰 틀로 보면 백인, 흑인, 황인, 남미 라틴계로 나뉘고, 그중에서도 백인이 주류 인종에 속했지만 그 백인 또한 아일랜드계, 유대계, 영국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등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인종의 용광로, 민족의 용광로, 문화 용광로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나라랄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만큼, 같은 민족 중 잘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더 잘 나갈 수 있도록 커뮤니티 차원에서 밀어주었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학연의 확장판이라 봐도 무방했다.

어쨌든 그렇게 커뮤니티의 지원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몸집을 불리며 상류층에 진출한 이는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층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에 목소리를 낸다. 민족이 미국 내 암암리에 존재하는 차별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정계와 재계를 모두 합쳐 얼마나 많은 인사가 상류층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에 따라 주류 민족 여부가 판가름 난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여러 민족 중 유대계는 단연코 미국의 주류 민족 중 하나로 꼽혔다. 수면 밑의 일이라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금융업계 쪽에서 유대인 커뮤니티가 끼치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메이도프에게 싹이 보이니 우리가 밀어줍시다.”

미국에서 주류 민족 중 하나로 꼽히나, 다른 민족에 비해 인구가 적은 유대계 커뮤니티는 다른 커뮤니티보다 더 끈끈하기로 유명했다. 2차 대전 이전에는 다른 민족과 달리 제 나라가 없다는 게 그들을 끈끈하게 이어 주던 요인이 되었고, 미국의 원조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뒤에도 유대인 커뮤니티의 끈끈함은 계속 이어졌다.

‘새롭게 건국한 이스라엘이 나라로써 명맥을 이어 가려면 미국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정부에 입김을 불어 넣을 정도로 존재감과 영향력이 강력한 유대인 커뮤니티는 이스라엘 건국에 미국이 힘을 보태 주도록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다. 유대인 커뮤니티의 로비에 미국은 실제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도와주고 무기 등을 지원해 주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진행 중이라는 데 있었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땅의 원주인인 팔레스타인까지 사방이 적이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국가들과 이집트는 모두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무슬림도 깊이 들어가면 시아파, 수니파 등 여러 종파로 나뉘고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더 심하게 서로를 적대하며 총질까지 해 댔지만.

그럼에도 아예 다른 신을 섬기는 이교도보단 같은 ‘알라’를 섬기는 다른 종파가 낫지 않은가?

여하튼 어렵게 어렵게 건국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미국의 도움과 관심이 필수적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간 조상들이 독립성금을 냈던 것처럼 돈을 지원해 주는 건 물론이고, 미국의 관심이 떠나지 않도록 유대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했다.

그와 함께 싹수가 보이는 이를 커뮤니티 차원에서 미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 갔다. 유대계 미국인이 하나라도 더 많이 성공하는 것. 그것만이 미국의 지원을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거라 계산을 마쳤기 때문이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 또한 그 대상 중 하나였다.

인간의 커리어는 그 사람의 신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곤 한다. 성공한 벤처 사업가에 이어 자율 규제 증권 산업 조직인 NASD(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이사회의 일원으로 의장직까지 역임한 메이도프가 사기를 칠 거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나?

전혀 예상치 못한 만큼 피해는 막심했다.

유대인 커뮤니티는 그를 돕기 위해 초창기부터 자본을 투자했고, 이후에도 약속한 수익금이 꾸준하게 입금이 되자 커뮤니티는 추가로 자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커뮤니티가 메이도프로부터 돈을 입금받은 것을 확인한 이들은 메이도프의 투자사에 돈을 맡겼다.

벤처 사업가로도 성공을 거두고 NASD의 의장직을 역임한 커리어 이후에도 투자사를 성공적으로 굴려 나가는 그의 모습에 유대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유대인들에게 거물로 자리매김했고, 많은 존경을 받았다.

메이도프에게 존경을 표하는 건 달리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메이도프의 투자사는 SDAQ에서 가장 큰 시장 조성자였으며, 1회차 때의 이야기지만 2008년에는 S&P 500에서 6번째로 큰 시장 조성자였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자선사업도 종종 벌여 월가의 투자자들로부터도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았다.

거기에 더해, 메이도프는 사회적 약자와 병자들을 위해 큰돈을 기부하며 자선사업을 벌였다. 그런 행보를 이어 가니, 미국 사회에서 메이도프는 명사나 다름없었다.

‘월가와 마찬가지로, 남의 돈을 갖고 잔치를 한 셈이지.’

미국으로 이민 온 뒤에 메이도프의 기부 소식을 뉴스로 종종 전해 들을 때마다 얼마나 우습던지.

물론 그렇다고 그 사실을 대중들에게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저 장인과 정호준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메이도프의 투자사에 투자한 게 있으면 돈을 빼라고 충고할 뿐.

이유는 황우식의 줄기세포를 밝히지 않았던 것과 똑같았다. 대형 은행이 그런 수익률을 보일 수 없다며 의심을 보내도 메이도프를 편들어 줄 정도로 그 위상과 영향력이 막대한데, 한낱 신규 회사가 그를 사기꾼으로 몰면 어떻게 되겠는가?

‘괜히 역풍이나 맞지.’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계 이민자라는 꼬리표가 존재하는데, 오지랖을 부리며 나섰다가 돌을 맞을 이유는 없잖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오지 않았는가?

메이도프의 폰지사기는 유대인들이 돈을 잃는 것을 넘어 커뮤니티의 신뢰를 깎아 먹는 대사건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제대로 떨어진 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2007년 2분기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만 17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은행들이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구제금융을 받아 살아남은 은행들은 파산한 은행들의 인프라를 흡수해 규모를 확장할 거고.

유대인 커뮤니티나 유대계 자본들은 은행들을 흡수하는 데 큰 경쟁자로 부상했을 거다.

‘그나저나 메이도프의 폰지사기 혐의가 일찍 드러나서 폭탄이 좀 더 일찍 터질 수도 있겠는데?’

본래라면 은행들이 만들어 낸 파생 상품이란 똥을 은행이나 투자사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실이 완전하게 밝혀진 뒤에 터졌을 문제가 먼저 터졌다.

하루종일 메이도프와 관련한 사안을 다루는 뉴스를 시청하며 정호준은 생각을 정리했다.

* * *

11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모기지론과 관련된 파생 상품에 투자하던 SIV를 정리해야 했다.

언론에 발표된 적자만 한화로 수십조 원. ‘미국이 망하는 게 아닐까’와 같은 걱정이 수면 위로 올라올 정도로 역대급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번에 밝혀진 메이도프의 폰지사기는 불타는 집에 불을 끼얹는 거나 다름없었다. 메이도프의 투자사에 투자한 원금으로 어떻게든 적자를 메꿔보려 했던 헤지펀드나 투자사들의 시도를 원천 봉쇄하는 꼴이랄까?

모기지 시장 붕괴로 야기되는 시장의 악화를 버틸 체력 자체를 앗아 갔다.

12월에 들어서며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2007년 10월까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던 미국 주식들이 하나같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11월부터 반등과 하락을 반복하며 흔들리던 주식들이 일제히 하락선을 그렸다.

‘구골까지 폭락에 동참했구나.’

주당 85달러에 IPO를 시작해 730달러까지 상승했던 구골이란 거인이 다른 주식들처럼 반등을 마치고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폭락을 시작한 건 스마트폰이라는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을 출시한 엔플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좋으면 주식 시장에 돈이 몰리고 경기가 안 좋으면 주식 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자본의 법칙이니 크게 이상할 건 없지만, 투자사들이 주식에 투자했던 돈으로 적자를 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기에 주가는 더 빠르게 내려갔다.

구골 주식이야 이미 예전에 모두 정리한 터라 정호준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엔플은 조금 달랐다. JHJ Capital이 엔플의 대주주였으니 엔플의 폭락은 곧 손실을 의미했다.

엔플이 폭락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정호준은 구골 주식을 정리했던 것과 달리 엔플 주식은 정리하지 않았다.

‘유니톡 때문에 엔플은 정리할 수 없지.’

“우리는 끝까지 엔플 주식을 쥐고 있을 거고, 그때 약속했던 대로 잡스 당신에 대한 지지를 이어 갈 테니, 폭락 때문에 우리가 주식을 던질 걸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신뢰를 지켜야죠.”

평소였다면 정호준이 주식을 정리하는 행동을 보인 것을 잡스가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직접 연락하며 고개를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잡스의 요청에 정호준은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지금이 엔플 주식을 쓸어 담을 기회인데 당연히 쥐고 있어야지.’

정호준은 주가가 더 폭락했을 때 다른 대주주들을 찾아갈 계획을 세워 두었다. 현재 엔플은 구골과 마찬가지로 배당을 전혀 하지 않지만, 잡스의 사망 후 쿡이 CEO가 되면서 배당을 시작한다.

‘아직은 기다려야지.’

2008년 들어서며 잠깐 다시 반등했다가 폭락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넘치는 현금을 손에 쥐고 있던 정호준이었지만, 12월 현재는 줍줍을 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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