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6)
마이클 스팬서와 CDS 계약을 체결한 은행 관계자들은 갑을 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마이클 스팬서에게 접근했다. 매일 그에게 전화를 거는 건 물론이고, 직접 그를 찾아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 CDS를 정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찾아온다고 대답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호준으로부터 CDS를 정리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마이클 스팬서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어투로 매각 제의를 거절했으니까.
“그러지 말고 생각 좀 해 주시죠. 은행이 망하면 못 받을 돈입니다.”
다만, 그런다고 은행들의 연락이나 발길이 끊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걸린 돈이 얼만데 거절당했다고 바로 포기하겠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돈을 물어주게 생긴 중국계 은행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가장 뻔질나게 찾아왔다.
찾아오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문제는 그렇게 매일같이 매각 제의를 해 오는 이들 중에는 상식적이지 못한 제안을 던지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CDS를 당장 정리할 생각도 없지만, 어떻게 이런 가격으로 정리를 권하는 겁니까?”
현재 상황과 상식에서 어긋나는 제안을 던졌는지, 자폐 스펙트럼을 앓아 표정의 변화가 적던 마이클 스팬서의 표정이 변할 정도였다.
“2배가 적습니까? 그렇다면 3배까지 쳐 줄 요량은 있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추측하다시피, 마이클 스팬서에게 어이없는 제안을 던지는 무리는 바로 그 나라였다.
“거절하겠습니다.”
* * *
“부르셨습니까?”
늦은 밤 저녁 정호준은 브리안 경호팀장을 따로 불렀다.
“예, 밤늦게 불러서 미안합니다. 지시할 게 하나 생겨서요.”
정호준의 사과에도 브리안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용건을 물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마이클 스팬서를 앞세운 거 잘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정호준의 질문에 브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준과 24시간 함께하는 만큼 그 역시 정호준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경호팀을 붙여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이클 스팬서와 그의 가족들에게 경호팀을 A급으로 3팀 붙여 주시죠. 위협 대상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요원들입니다.”
러시아는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망가졌던 경기가 세계의 경기 호황에 발맞춰 회복세에 접어든 상황이었고, 중국의 경우 아직 국력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패권을 공고히 한 미국의 영토에서, 그것도 뉴욕주의 중심인 맨해튼에서 외교적으로 큰 문제를 발생시킬 납치극을 시도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다. 워낙 상식밖에 일을 저지르는 두 나라이지 않은가?
만약에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괜히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대비를 해 두는 게 맞았다.
“위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 * *
브리안에게 지시를 내린 후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마이클 스팬서와 스팬서의 가족들에게 경호팀이 붙었다.
“JHJ Capital의 정호준 대표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스팬서 씨의 안전과 스팬서 씨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번거로운 게 싫었던 마이클 스팬서는 정호준에게 연락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물었으나, 중국과 러시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이지 않냐며 미리 대비해 둬서 나쁠 게 없다고 피력하는 정호준에 의해 오히려 설득당하고 말았다.
조금 불편한 게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보다 낫지 않냐는 정호준의 말은, 허점이 전무한 논리였다.
그런 이유로 마이클 스팬서는 경호팀의 경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경호팀을 바리바리 대동하게 된 마이클 스팬서의 상황은 월가와 뉴욕주에서 거주 중인 미국 상류층들에게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마이클 스팬서가 주목받는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가 월가에 존재했으니, 마이클 스팬서가 운영하는 펀드의 주인 제이미 한스였다.
제이미 한스는 고객의 돈과 자신의 돈을 제멋대로 안전한(?) 모기지론의 부도에 걸어 버린 것에 분노해서 소송을 걸었었다. 1회차 때부터 2회차인 현재도 한스는 소송을 걸었다.
마이클 스팬서는 1회차 때 고객과 상사의 고소까지 버텨 가며 결과를 낸 거다. 막대한 수익이라는 결과물을 냈으니 소송은 당연히 취하됐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한 고생과 상한 관계가 회복될 리는 없었다.
그리고 정호준이 개입한 현재는 마이클 스팬서에게 건 소송 취하 및 다시는 이 문제를 놓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마이클 스팬서가 사들인 CDS와 CDS 계약을 체결한 뒤로 달마다 낸 프리미엄 비용을 물어주었다.
마이클 스팬서의 거취 또한 JHJ Capital의 투자를 받아 개인 사무실을 내는 형태로 바꾸었고 말이다.
잃어버린, 그리고 앞으로도 잃어버릴 예정인 돈을 물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제이미 한스와 투자자들은 정호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계약의 조건대로 소송은 취하되었고, 마이클 스팬서는 CDS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투자사의 탈을 쓰며 독립했다.
‘돈을 쓰레기통에 처박는구나. 초심자의 행운치고 오래가긴 했지.’
멍청한 짓을 하는 과거 직원과 JHJ Capital을 비웃으며 그렇게 끝났어야 했는데, 마이클 스팬서의 생각이 옳았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마이클 스팬서가 말했던 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흔들렸고, 알트-A등급을 대상으로 하는 모기지론까지 흔들리며 디폴트 사태가 벌어졌다.
‘JHJ는 대체 얼마나 큰 수익을 내는 거지?’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인간이다.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막대한 돈이 타인의 주머니에 꽂힐 예정임을 인지하니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다.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더러운 배신자 놈.”
제이미 한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의대생 레지던트에 불과하던 놈을 숫자 읽는 재주를 보고 키워 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쳤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부하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며 죽어라 악을 쓰던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JHJ Capital이 마이클 스팬서를 꼬셔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간 것처럼 상황을 합리화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면모가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제이미 한스의 펀드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원망할 곳이 마이클 스팬서와 JHJ Capital뿐인 제이미 한스와 달리 펀드에 자금을 투자했던 투자자들에게는 원망할 대상이 하나 더 있다는 점 정도였다.
바로 ‘제이미 한스’였다.
“당신이 우리를 선동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큰돈을 벌었을 거야.”
“대체 CDS를 왜 JHJ Capital에 매각한 거죠? 따로 돈이라도 받아먹었습니까?”
“내 자금이 3배 이상 불어날 수 있었을 기회를 네가 다 망쳤어!!”
제이미 한스가 그랬던 것처럼 투자자들의 머릿속에서 자금을 빼지 못하도록 자금 환수를 금지해 버리고 CDS 프리미엄 비용을 계속 지불하는 마이클 스팬서의 조치에 분노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날뛰며 소송을 걸었던 사실이나, CDS를 구입할 테니 소송 취하해 달라는 제안서에 사인했던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판단하고 기억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발맞춰 그들은 기억을 왜곡했다. 제이미 한스가 그런 식으로 조장한 것처럼 말이다.
소송의 나라답게 일은 항의 메일을 보내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CDS로 자신들이 큰 이득을 볼 수 있던 것을 제이미 한스가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소송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제이미 한스에게 벌어진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하 직원은 이 사태를 예견하고 리스크를 짊어지긴 하나 돈을 벌 수 있는 수의 궁리해 냈는데, 최고 책임자라는 이는 부하 직원에게 소송을 걸며 투자를 방해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제이미 한스의 능력이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이 펼쳐졌다.
“제이미 한스의 압력 때문에 마이클 스팬서가 JHJ Capital과 손을 잡고 CDS를 쥔 채 독립한 거다.”
위와 같은 말은 발 없는 말이 되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시간을 들여 소문의 진위를 확인한 투자자들은 하나둘 자금을 뺐다.
사람들이 펀드에 돈을 맡기는 이유는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자신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서인데, 미래를 보는 안목은 둘째치고 펀드 총책임자라는 인간이 돈 벌 기회를 발로 찬 꼴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본래라면 마이클 스팬서가 큰돈을 벌어 주고 사직서를 내는 것으로 정리되었을 일이 정호준의 개입으로 조 단위 돈을 운영하던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 * *
마이클 스팬서가 분주해지고 제이미 한스에게 불행이 덮치든 말든, 정호준은 자신의 할 일을 하느라 바빴다.
‘유니톡은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네.’
매일 같이 유니톡의 가입자 수를 확인하고 마이클 스팬서와 그 가족의 안위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확인하고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밴쿠버 투자도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네.’
중심가와 서부 지역을 중점적으로 건물과 펜트하우스 등을 사들이고 있다는 보고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정호준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여긴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매번 자네에게 오라 가라 할 수 없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왔네.”
정호준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찰스들이 JHJ Capital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지고, 리만 브라더스 파산은 언제쯤 이뤄질 것 같나?”
찰스들은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몸집을 불릴 계획은 준비 중이지만 이 사태를 예견한 정호준의 의견 또한 듣고 싶어 시카고를 방문했다. 겸사겸사 딸(손녀)의 얼굴도 보고 말이다.
“일단 서브프라임이 야기한 위기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거라 봅니다. 다만, 리만 브라더스는 사실 잘 모르겠네요. 언제 파산을 입에 담을지.”
본래라면 2007년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망하는 곳이다. 더 정확히는 2008년 6월 대한민국의 산업은행이 M&A 입찰에 참가해 가격을 조율하며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다가 9월 10일 M&A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리만 브라더스 경영진들은 9월 14일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었다.
9월 10일에 파산을 신청했던 1회차 때와 달리 이번 생애는 모기지론이 위기로 내몰리기 전에 중국의 중앙은행 하부조직에 인수되었다. 당장 내일 파산을 선고할지 2008년 중에 파산을 선고할지, 2009년이 넘도록 안고 갈지는 정호준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다.
언제 파산을 신청할지는 이제 미지수가 되었다는 말이다.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면 2008년 하계 올림픽 중에 파산을 선고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확한 건 아닙니다. 그냥 추측입니다.”
중국은 언론 통제가 가능한 나라다. 하지만 최소한 국민들의 시선을 가릴 소재는 필요했다. 정호준이 판단하기에 중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은 국민의 시선을 가리기 참 좋은 소재였다. 바른말을 할 지식인들을 족치고 올림픽이라는 축제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며 리만 브라더스를 파산시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뿐이었다.
“저도 사위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정호준의 생각을 전해 들은 찰스 주니어가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찰스 로슬러에게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