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4)
풋옵션과 콜옵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풋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반대로 콜옵션은 특정 기초자산을 특정한 시기에 미리 옵션을 사 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고 말이다. 풋은 판매, 콜은 구매라고 이해하면 쉬웠다.
예를 들어 어떤 농작물을 현재 시세대로 1만 원에 살 수 있는 콜옵션을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콜옵션으로 구매한 작물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다른 걸 심어 물량 자체가 적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 등의 재해로 인해 수확량이 본래보다 적어졌다.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농작물의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작년에 1만 원에 팔렸던 작물이 2만 원에 판매되고 있을 때, 콜옵션을 구매한 사람은 작물을 1만 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니 1만 원만큼 이득을 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반대로 풋옵션을 구매했다면 1만 5천 원이 된 작물은 1만 원에 팔아야 하니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거고 말이다.
이게 바로 콜과 풋옵션의 기본적인 원리다.
풋옵션과 콜옵션은 지수, 금, 은, 유가, 곡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다만 간단하게 예시를 들어 설명하긴 했지만 WTI 원유 선물을 구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을 맺는 형태였기에 지수 콜옵션, 풋옵션 다른 계산 방식을 필요로 해 계산하는 데 조금 복잡함이 있었다.
선물계약이니 당연히 계약을 체결할 때 증거금조로 거금이 묶였다. 증거금을 좀 더 내고 레버리지를 일으킬까도 잠깐 고민했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진짜 IMF 때처럼 한국이 무너지고 일본도 무너질 것 같아 꾹 참았다.
정호준이 풋옵션을 청산하며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원금을 제외하고 약 5조 원. 일본 시장에서는 약 22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다만 이 돈들이 온전히 정호준의 돈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세금 정산이 남아 있었기 때문. 대한민국은 선물로 벌어들인 수익에 따로 세금을 매기지 않기에 JHJ Capital로 5조 원 수익이 그대로 계좌에 입금됐지만. 일본은 조금 달랐다.
일본은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이 선물 수익을 냈을 때 이익의 15.315%를 세금으로 내도록 세법으로 정해 놨다. 15.315%에 해당하는 약 3조 3,693억 원에 달하는 돈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내야 할 세금을 모두 낸 뒤 JHJ Capital의 법인 계좌에는 18조 6,307억 원이 남았다.
원금을 포함해 사흘 만에 24조라는 거금을 창출해 낸 JHJ Capital의 행보는 당연히 세상에 널리 퍼졌다.
* * *
정호준은 한국에서는 5조 원, 일본에서도 2조 2천억 엔이라는 큰 금액을 선물 수익으로 얻어 갔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온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제외하면 조라는 단위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당연히 두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다.
한국과 일본 구분할 것 없이 JHJ Capital의 행보는 신문 앞장 일면에 대서특필 되었고, 뉴스란 뉴스에는 모두 나와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JHJ Capital’, 한국에서 5조 원(5천만 엔)의 선물 수익을 내다.]
[‘JHJ Capital’, 일본에서 22조 원(2조 2천억 엔)의 선물 수익을 내다.]
가장 순화적으로 기사를 적은 곳은 팩트 그대로만 가져다 썼지만 우익성향 좌익 성향 가릴 것 없이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들은 약탈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고 한국의 경우 나라가 위기 상황에 놓였는데 나라의 자산을 따 갔다며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취급을 하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이번 사태로 한국, 일본 가릴 것 없이 두 나라 모두에서 정호준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다는 거다. 물론 극단적으로 적개심을 갖는 이는 과격분자 외에는 없었지만 말이다.
자국에 큰 손해를 끼친 이를 미워하는 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잖은가? 게다가 한국과 일본 모두 전체주의가 발달한 나라였기에 정호준은 이 사실이 새롭거나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 일본 금융계랑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조센징에게 두 번이나 당하다니, 대체 언제까지 조센징이 날뛰게 놔둘 거냐?
⌎ 제트컴 사태로 한 번, 그리고 닛케이 폭락 때 또 한 번, 저놈은 대체 우리 일본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저렇게 날뛰는 거냐?!
⌎ re: 제 딴에는 원한이 없지야 않겠지. 우리 일본이 문명개화 시켜 주고 인프라 깔아 주며 발전시켜 준 걸 한국인들은 식민 지배했다며 염치없이 맨날 덤벼들잖아. 은혜도 모르고. 대만을 좀 본받으면 좋았을 텐데.
⌎ re: 그렇게 보기엔 한국에서도 큰돈을 벌었던데?
2007년 현재 GDP 세계 랭킹 2위인 일본이지만 그런 일본에게도 2조 2천억 엔은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넷우익들은 하나 같이 정호준을 욕했다. 넷우익이 앞장서서 욕했고 중간중간 평범한 시민들이 그 생각에 동조했다.
반면 한국 넷티즌들은 의견이 조금 다양하게 나뉘었다.
⌎ 진짜, 저놈 돈 버는 재주는 알아줘야겠다. 쟤가 한국에만 있었어도 금융 후진국이라 평가받는 위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 re: 모르지, 위엣 놈들이 못 크게 찍어 눌렀을 수도 있어. 우리나라는 리스크 지는 거랑 튀는 놈들 싫어하잖아. 그리고 미국 국적이 주는 파워와 한국 국적이 주는 파워도 다르고. 최소한 받아야 할 것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잖아.
정호준의 능력에 감탄하며 아쉬워하는 부류를 시작으로.
⌎ 미국 부동산 위기가 심각하다던데, 금융위기로 번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리고 이런 시기에 꼭 한국을 털어먹어야 했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 출신이면서? 쟤가 이완용이랑 나라가 어려울 때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랑 뭐가 다르냐?
정호준을 매국노로 몰아가는 부류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 나 쟤가 만든 펀드에 돈 넣었었는데, 돈 떼먹힐 일은 없겠네.
⌎ re: 너 쟤가 만든 펀드에 돈 넣었구나, 부럽다. 나도 넣었어야 하는데. 진짜 인생에 세 번 온다던 기회를 한 번 날린 기분이다.
그저 냉정하게 정호준이 돈을 떼먹을 일이 없겠다고 기뻐하는 이와 정호준이 개설한 펀드에 돈을 넣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부류도 존재했다.
⌎ 내 돈을 불려 달라고 펀드에 돈을 넣긴 했지만, 그게 우리나라 돈을 털어 달라 그런 건 아닌데.
펀드에 돈을 넣은 사람 중에서도 반응이 조금 갈렸는데, 돈을 떼먹을 일이 없다고 좋아하는 이가 있는 반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굳건한 아시아 국가답게 자신이 투자한 돈이 자국의 돈을 털어먹는 실탄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답게 돈은 잃은 한국과 일본에서 실로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정호준의 JHJ Capital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 * *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정호준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월가의 귀에 들어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돈 냄새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월가잖은가?
짧은 시간에 2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커다란 성공을 거둔 JHJ Capital의 소식은 월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정확히는 월가의 금융인들이 일부러 퍼트렸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위기가 발생한 게 월가의 방종 때문이라는 말이 온라인상에 나돌았고, 오프라인에서도 국민들이 월가를 보는 시선이 극도로 나빠졌다. 그러한 기류를 눈치채고 있던 월가 관계자들은 국민들의 시선과 생각을 바꿀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JHJ Capital의 활약은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얻게 된 갑작스러운 유명세는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 가까스로 중견급 정도로만 평가받던 JHJ Captial을 대형급과 비슷한 반열에 놓게 만들었다.
JHJ Capital의 명성 상승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크나큰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이었으나 세상일이란 게 항상 그렇듯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저희 JHJ Capital은 개인 투자를 받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JHJ Capital은 개인 투자를 받지 않습니다.”
JHJ Capital은 정호준의 개인 법인이다. JHJ Capital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사람은 알고 있어 한 번씩 돈을 굴려 달라는 문의가 오곤 했었지만 이제는 전화기가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연락이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요? 누구지, 연락받은 게 없는데. 무례하네요. 바쁘다고 전해 주시죠.”
“그게, 아무래도 만나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앨든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십니다.”
“일단 들어오라고 하시죠.”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 했다. 불안해지는 심정을 마음속 한구석에 접어 둔 채 정호준은 그린스펀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결혼식 때 한 번 봤었죠? 나 앨든 그린스펀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결혼식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를 빛내다뇨, 건강에 나쁘니까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아요.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 늙어 가는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눈앞의 노인은 달러를 찍어 내는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직을 맡았던 이였다. 2006년 1월 31일에 그 자리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자리에서 내려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좀 더 지났을 뿐이다.
그린스펀은 다른 비서들이 그렇듯 정호준의 뒤편 서 있던 아리아를 보며 덕담을 건네기도 하며 차를 마셨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사담이 어느 정도 오가고 난 뒤 정호준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은퇴했다지만 그린스펀쯤 되는 인간이 놀러 왔을 리는 없잖은가?
“버리 베넌키 현 연준의장의 부탁을 받고 왔네. 내 개인적인 부탁이기도 하고.”
“부탁이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때문에 월가와 정부, 연준이 얼마나 골치를 썩고 있는지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네. 공포가 확산된 탓에 모기지가 붕괴하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네. 자네가 좀 나서 주면 안 되겠나?”
그린스펀의 부탁에 정호준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내용을 정리했다.
“언론에 나가 모기지론이 염려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말해 달라는 거군요.”
“맞네, 어려운 부탁인 걸 모르지 않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위험하네. 미국을 위해서 나서 줬으면 좋겠어.”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월가의 대형은행이나 보험사들을 위해서겠죠. 지금 이대로라면 손실을 다른 곳에 떠넘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니. 죄송하지만 그 제안 거절하겠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 그게 지금껏 배운 정의니까요. 책임져야 할 이들을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빼내겠다고 신용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하죠.”
전직 현직 연준의장들의 요청이었지만 또다시 부탁할 생각을 갖지 않게 반대급부조차 듣지 않으며 강력한 거절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