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3)
7월 말 베어스팅스가 모기지론 관련 펀드 2개를 청산했다는 사실을 밝힌 지 며칠 지나지 않아 8월이 되었고, 8월 초 모기지 투자와 관련해 업계 10위권에 해당하는 ‘아메리칸 홈 모기지 매니지먼트(AHMM)’사가 델라웨어주 웰밍턴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AHMM, 모기지 대출 중단과 직원 6,000명을 정리할 것을 밝히다!]
뉴센추리 에셋의 파산 이후 가장 큰 기업의 파산이었다. 뉴센추리 에셋 파산 이후 지금껏 모기지론과 관련한 회사들이 자잘하게 파산을 이어 가거나 거대은행에서 관련 펀드를 청산했지만, 그럼에도 10위권 규모 회사의 파산은 없었다.
그런데 ‘AHMM’의 파산은 10위권 규모의 파산 이상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AHMM’은 서브 프라임 등급 모기지론이 주력이 아닌 알트 –A등급 모기지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었기 때문.
미국의 모기지론은 신용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는 전체 모기지론 대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프라임 등급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다. 프라임 등급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갖추고 신용적으로 문제 될 만한 과거가 전무한 깨끗하고 신뢰도 높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등급이다. 대출을 받는 대상에게 문제 될 소지가 없는 만큼 모기지론 이자는 낮게 측정됐다.
‘물론 프라임 등급의 기준조차 한국의 대출보다 허들이 낮은 것 같지만.’
두 번째는 알트 –A등급으로 프라임 등급을 주기에는 뭔가 결점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등급이었다. 프라임 등급을 받기엔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서브프라임 등급에 속할 만큼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처리하기 애매한 집단군. 대출의 리스크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아 프라임보다 조건이 박하긴 하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받는 이들만큼 형편없는 조건을 제시받지는 않았다.
마지막은 서브프라임 등급으로 신용점수가 620점 이하인 이들이 이 등급에 해당되었다. 제대로 돈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같은 경우 집을 담보로 대출해 줬다. 부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프라임 모기지보다 대출금리가 2~4% 정도 높았다. 다른 대출과 달리 집을 담보로 잡은 대출이었음에도 말이다.
미국의 대형은행을 포함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계자들은 대출 당시 집값의 거의 100% 수준의 돈을 내주었다. 부동산 값이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으니 원금을 떼 먹힐 일은 없다 생각하며 해 준 대출이었다.
‘지독해도 너무 지독한 놈들이야. 은행이라는 것들은.’
정호준이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서브프라임 등급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형은행이나 모기지론 업체들은 그들이 끝까지 제대로 돈을 갚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라 추측했다.
그도 그럴 게 끝까지 돈을 잘 갚을 수 있을 능력이 있는 이들이 어떻게 서브프라임 등급에 이름을 올렸겠는가? 대출해 준 시점으로부터 채무불이행이 이어져 담보 환수에 들어가기까지 본래 대출보다 2~4% 많은 이자와 대출해 준 시점부터 담보 환수할 때까지 올라간 집값의 차액을 수익으로 생각하고 설계한 상품이리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던져 주고 등골을 빼먹은 거지.’
형편이 궁한 이들에 ‘내 집 마련’이라는 매혹적인 미끼를 걸고 본래보다 2~4% 이상 높은 금리로 대출을 해 줘 거머리처럼 없는 사람들의(서브프라임 등급) 등골을 쭉쭉 빨아먹은 거다.
말라비틀어진 오징어에서 액끼스가 많이 나온다는 말 있잖은가. 대형은행들과 모기지론 관련 회사들이 한 짓이 딱 그랬다.
그들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게 있다면 대출을 해 주는 쪽도 받는 쪽 구분할 것 없이 돈 욕심에 미쳐 날뛰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거다. 2007년 모기지 전체 대출 중 서브프라임 등급의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겼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오를 대로 오른 집값 때문에 집을 사려는 프라임 등급 구매자는 본래 유입되는 인원보다도 더 적어졌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돈을 조달하기 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상품 삼아 만든 금융상품들이 목을 조른 것.
아메리칸 홈 모기지 매니지먼트(AHMM)사의 파산은 흔들리고 있는 게 서브프라임 등급에게 해 준 대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예였다. 그래서 더더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브프라임 등급과 알트 –A등급을 합치면 전체 대출 중 30%에 육박하니 정말 안 망한 게 신기할 지경이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아니었다면 망해도 두 번은 망했을 거다.’
미국에서 살면서 한 번씩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수출품은 달러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메리칸 홈 모기지 매니지먼트의 파산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되감기처럼 되풀이하는 전문가들이 하나둘 입장변화를 표명했다.
- 연방정부에서 빠르게 나서 줘야 합니다.
뉴센추리 에셋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알트-A까지 번져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보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들은 빠르게 연방 정부의 개입을 외쳤다.
‘글쎄, 그것도 쉽지 않지. 레임덕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도 있는 거니까.’
임기 초여도 수습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뉴먼 대통령은 이미 임기 막바지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약할 때 수면 위로 올라온 폭탄을 어떻게 깔끔하게 해결하겠는가? 정치 공세를 견뎌 내는 것조차 쉽지 않으리라.
그런데 모기지론으로 피해를 보는 건 미국만이 아니었다. 국제 통화를 유통하는 국가에 세계 1위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미국에는 수많은 국가의 은행들이 지점을 내고 있었고 월가에 투자회사를 만들어 자금을 투자했다.
큰돈을 벌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잖나. 딱 그 꼴이었다. 문제는 돈을 벌 때는 좋았지만 손실을 볼 때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거였다.
[HSB 모기지 손실 107억 달러!]
세계 3위 은행 HSB(The Hongkong and Shanghai Bank)는 미국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118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회수 못 할 위기에 놓였다.
[CAN Asset 1억 4,000만 달러 손실 추정!]
[GNM 산하 모기지 금융기관 서브프라임 모기지 디폴트로 약 16억 달러 손실 추정!]
파생상품 등에 보장을 해 주던 보험사들이나 돈 된다는 말을 듣고 끼어든 미국의 제조기업들도 커다란 손실이 예측되었다. 월가와 친했던 언론들은 나서서 추정 손실들을 예측해 기사를 올렸다.
[AOG 6억 달러 손실 추정!]
[크레던스 스위스 10억 달러 손실 추정!]
본래 23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던 AOG는 다른 보험사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련 보험들을 떠넘겨 손실액을 줄였다. AOG나 다운타운그룹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과 관련 파생상품들을 주변으로 떠넘긴 만큼 다른 곳의 손해는 정호준의 전생보다 더 커졌다.
‘다른 곳이 얼마나 손실을 보던 그건 나랑 관계없는 일이니까.’
AHMM(아메리칸 홈 모기지 매니지먼트)가 파산을 신고한 뒤 며칠 지나지 않은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최대은행 BNP파리는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을 이유로 자사가 운영 중인 3개 자산유동화증권(ABS)펀드에 대한 자산가치 평가 및 환매를 일시 중단했다.
상환을 중단한 3개 펀드는 ‘BNP파리의 ABS유라보’, ‘파베스트 다이나믹 ABS’, ‘BNP파리의 ABS에오니’였다. 펀드의 규모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 27억 5천만 유로에 달한다.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로 인해 세계가 흔들리는 셈이었다.
* * *
“지시하신 대로 풋옵션 구매 모두 마쳤습니다.”
정호준의 지시를 받고 한국과 일본으로 간 트레이더들은 정호준이 지시한 대로 JHJ Capital이 개설한 각국 법인으로 풋옵션을 구매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은 기념해 8월 15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한국으로 향한 이들은 8월 16일과 8월 17일에 7천만 달러와 3천만 달러로 풋옵션을 매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향한 두 사람은 8월 15일, 16일, 17일에 1억 7천만 달러씩 총 5억 1천만 달러의 풋옵션을 사들였다.
그들이 선물을 매입할 때까지만 해도 일본 금융 업계 종사자들은 이번에야말로 JHJ Capital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겠다 여겼지만 그들이 옵션을 사들이기 무섭게 미국에서는 비보만 계속 들려왔다.
제조업과 함께 금융 쪽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당연히 미국 금융업계에도 한 발 걸쳐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돈 넣고 돈 번다는 평가를 받았던 모기지론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도 당연히 깊숙하게 연관이 되어 있었다.
[신케이 은행 마츠다 부회장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6,000만 달러의 손실 발표!]
버블경제 당시에 말 그대로 펑 터져 버려 1998년에 자산의 일부가 국유화되다 2000년대에 외국계 자본이 주식을 매입했던 신케이 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손실이 6,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나카무라 홀딩스 모기지 관련 대출로 4억 달러 손실.]
일본 최대 증권사인 나카무라 홀딩스는 미국 금융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더 큰 손실을 입었다. 4억 달러라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금융인은 없었다.
계속해서 비보들이 들려왔고 이윽고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파장이 일본에 닿았다.
“이거 왜 이래!!”
“일본은행은 대체 뭘 하는 거야!!”
8월 15일, ‘16,659.07’포인트로 오픈했던 닛케이지수는 하락을 거듭하더니 장이 마감되었을 때는 183.46포인트 하락한 ‘16,475.61’가 되었다. 하루 만에 2.19%에 달하는 닛케이지수가 허공으로 산화했다.
일본의 비극은 다음날인 16일과 17일에도 이어졌다.
16일 ‘16,296.40’로 장을 연 일본 시장은 하락세를 이어 가 147.91포인트(1.99%) 하락한 ‘16,148.49’에 장을 마감했다.
17일은 더 최악이었다. 시작할 때 ‘16,035.38’포인트였던 닛케이 지수는 무려 761.7포인트 하락한 ‘15,273.68’에 머무른 뒤에야 장이 닫혔다.
하루 만에 5.42%에 달하는 닛케이 지수가 빠진 것.
사흘 연속으로 닛케이지수가 빠지며 모두 합쳐 9.6%에 달하는 닛케이 지수가 산화된 것을 지켜본 일본 증권가는 공포에 빠졌다.
일본 시장이 급격한 마이너스를 경험하고 있는데 한국이라고 사정이 좋을 리 없었다.
8월 15일이 공휴일이라 장이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은 16일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서…… 서킷브레이커 발동합니다!”
“사이드카 발동합니다!”
코스피 코스닥 구분할 것 없이 급락하는 상황에 장의 혼란을 막아 보고자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그럼에도 하락장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브레이커가 끝나자마자 계속 매도가 이어지고 코스피와 코스닥의 하락이 이어졌다.
8월 16일 장이 시작될 때 ‘1,754.19’였던 코스피 지수는 62.21포인트 급락한 ‘1,691.98’까지 떨어졌다. 무려 6.93%에 달하는 코스피가 하루 만에 증발한 것. 15일 16일 나눠 맞은 일본과 달리 16일에 몰아 맞은 한국의 피해가 훨씬 컸다.
이어지는 8월 17일에도 한국의 피해는 막심했다. 시작할 때 ‘1,702.66’포인트로 오픈했던 코스피 지수는 64.59포인트 빠진 1,638.07에 장을 마감했다. 17일 빠진 64.59포인트는 약 3.19%에 해당했다.
고공행진을 거듭 이어 갔던 코스피는 단 이틀 만에 10.12%가 빠졌다. 일본의 9.6%보다 더 많이 산화되었다.
정호준이 풋옵션 행사로 큰돈을 벌 때 한국과 일본 증시는 나락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