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52화 (152/335)

15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2)

안첼로티 감독이 리빌딩에는 좋지 않은 감독이란 말이 있는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리버풀에게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중앙 풀백라인을 제외하면 리버풀의 주전급들은 모두 전성기가 이제 막 왔거나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안첼로티를 선임하고 게스 베일과 티에고 실바, 독일의 제튼 보아텡의 영입을 지시하고 윙벡으로 영입한 베일을 왼쪽 윙어로 포지션 변화를 시키도록 지시한 정호준은 다시 시카고로 날아와 학교에 다녔다.

기말고사를 마친 당일 정호준은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휴학계 신청하러 왔습니다.”

앞으로 1~3년이 분수령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공부에 신경 쓰기보단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정호준이 함께한다고 뭐가 획기적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정호준은 비전과 방향만 제시할 뿐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 건 조나단이나 마이클 스팬서을 포함한 트레이더들의 몫이었으니까.

다만 정호준이 현장에 있다면 일을 진행하다 보면 한 번씩 생겨나는 갈림길에서 빠르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

종종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그럴 때 자리에 없어 연결하는 데 시간을 소모할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도 휴학계를 낼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데 휴학계를 내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학과장과 학장까지 찾아와 정호준의 휴학계 제출을 막았다.

“학교 측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네.”

정호준이 가진 자산이 상당하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만큼 학교 측에서 정호준이 휴학계를 내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호준은 그들의 무엇을 염려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휴학이 자퇴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는 거지.’

대학 간판을 건 이가 사회로 나가 큰 성공을 거두고 성공한 졸업생이 많을수록 대학의 간판 가치는 높아진다. 성공한 축구선수 정지성이나 대통령의 모교와 같은 느낌으로 이해하면 쉬었다.

정호준의 경우 간판을 걸기도 전에 성공한 상태에서 입학해 선후가 다르긴 했지만 정호준의 존재로 인해 시카고 대학의 가치가 오르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또한 대학이라는 곳은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변모한 지 오래였다.

최근 월가에서 급부상한 투자회사의 CEO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카고 대학교의 가치는 수단계 오른 셈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학교의 가치를 높여 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학교를 쉬겠다는데 학장이나 학과장 입장에서 그게 달가울 리 없다.

“휴학이 안 된다면 자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의 2년은 시카고의 학사 간판보다 중요할 것 같거든요. 아마 평생을 좌지우지할 2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이 달가워하던 말던 정호준과는 관계가 없었기에 정호준은 그들이 가장 염려하는 바를 입에 담으며 휴학계를 내주길 강요했다. 휴학계를 내주지 않으면 자퇴를 하겠다는데 그런 정호준을 두고 관계자들이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얌전히 휴학계를 내주는 선에서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기말고사를 마치고 휴학계를 걸어 시간이 조금 널널해진 정호준의 상황과 다르게 세상은 점점 더 우울하게만 흘러갔다.

[베어스팅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관련 펀드 2개 청산!]

줄곧 파산 이야기를 이어 가며 7월 말에는 월가의 큰손 중 하나인 베어스팅스가 서브 프라임 관련 부서를 정리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부동산의 경기가 결코 좋지 않음을 보여 주었지만.

“일시적일 뿐, 곧 개선될 문제입니다. 손실은 5%에서 그칠 겁니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건 이들은 문제 될 게 없다며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돈을 받았는지, 실제로 그리 생각하는지는 개개인의 생각이라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TV에 나와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건 불안이 증폭되어 부동산 매수세가 감소로 돌아서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한 조치였다.

물론 그런다고 이미 한번 뇌리에 박힌 의혹인 사라질 리 만무했다.

돈을 벌기 위해 모른 척했을 뿐, 부동산 상승세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쯤은 평범한 미국인들이라 모를 리 없었다.

그저 ‘나만 아니면 돼’, ‘벌다가 거품이 터지기 전에 정리해야지’란 생각으로 이 미친 행위에 동참한 거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욕심이라는 게 한번 들기 시작하면 쉽사리 끊어 내지 못한다는 걸.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욕심은 ‘아직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와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며 청산을 막았다.

그리고 거품이 언제 꺼질지는 세상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을 몰랐을 뿐이다. 2006년 중반기부터 매달 채무불이행자가 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대다수의 국민과 월가 관계자들은 그 징조를 외면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청산 자체가 쉽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7월 말. 여기저기서 집값이 붕괴될 징조를 보이고 있는데 집을 사려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7월 말 정호준은 JHJ Capital의 트레이더 중 몇몇을 따로 불러 하나의 팀을 구성했다.

무슨 팀이냐고?

“한국의 코스피 지수와 일본의 니케이 지수에 옵션 투자를 계획 중입니다. 여러분은 두 팀으로 나뉘어서 제 지시에 맞춰 풋옵션을 매입하면 됩니다.”

바로 지수와 관련한 풋옵션을 담당할 TF팀이었다. 사실 팀이라고 하기도 뭔가 조금 규모가 부족했다. 기껏해야 4명을 따로 부른 선에 불과했으니까.

달러가 기축통화로 공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전 세계 경제가 미국 경제와 연관성을 지녔지만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미국이 기침하면, 일본은 감기에 걸리고,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라는 말이 괜히 우스갯소리로 나돌겠는가? 미국 경기가 안 좋은 이때는 한국과 일본에도 풋옵션 투자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한국 쪽은 1억 달러, 일본 쪽은 5억 달러를 투입할 생각입니다.”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아직도 200억 달러는 더 남았으나 굳이 큰 단위의 돈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단위가 너무 크면 아예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적정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호준이 한국 자금을 털어먹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나 중국이 정호준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들에게 화풀이하지 않도록 돈이 되는 일이면 본인의 원래 나라도 털어먹는다는 이미지를 가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

매국노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정호준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중국인들의 과한 애국심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모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무리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내가 큰돈을 번 사실을 알고 나면 이후에는 경제와 관련해서는 최소한 내 말에 귀를 기울일 거다.’

타국이 얼마를 잃었건 자국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 뇌리에 오래 남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은 직접 경험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한다는 말마따나 크게 돈을 한번 잃고 나면 그때부터는 정호준을 욕하고 비난해도 경고를 새겨듣게 될 거다.

“어느 쪽을 맡는다고 해도 보너스는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될 테니 욕심부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8월 초 정호준에게 부름을 받은 4명의 트레이더는 둘로 나뉘어 한국과 일본으로 향했다.

* * *

TF팀을 한국과 일본으로 보낸 정호준은 아리아와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유니버셜 히치 사무실로 향했다.

식사 중이었는지 미국인답게 손에 피자를 쥐고 있던 위즈니악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호준과 일련의 무리를 보며 기름기 가득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CEO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거 아냐?”

“가이드라인 잡아 주고 엔플이 코드를 제공하도록 했으면 제가 할 일은 다 했죠 뭐. 기술적으로 제가 뭘 아나요? 그리고 공부하랴 일하랴 연애하랴 이래저래 바빴어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분위기를 띄우는 위즈니악 덕분에 정호준이 조금은 편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너도 좀 먹을래? 여기 피자 정말 맛있다니까!”

“매번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이번에는 먹죠. 하나 잘라 줘 봐요.”

찰지게 잘라서 건네주는 피자를 손으로 받은 정호준은 피자를 한입 베어 문 뒤 말했다.

“그나저나 결혼식에 와 줘서 고마웠어요 위즈.”

결혼식 이후에 회사에 찾아온 적이 없는지라 정호준은 얼굴 본 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보게 돼서 좀 그랬지만, 그래도 호준 네 결혼식인데 내가 어떻게 안 갈까?”

“화해할 생각은 없나 보네요. 협업하는 사이가 된 김에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만나 봐야 싸우기만 할 텐데, 그냥 이렇게 서로 아는 척 안 하고 사는 게 더 좋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분명해 보이는데 그에 대해 더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었던 정호준은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유니톡(유니히치톡)’의 사용자 수는 잘 늘고 있어요?”

회사 이름 그대로 톡을 붙이기는 조금 길었기에 유니버셜을 짧게 줄여 ‘유니히치톡’으로 프로그램명을 등록했다.

“일단 출시한 지 얼마 안 돼서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회원 수는 빠르게 늘고 있어.”

발표가 늦어졌는데 출시일이 그대로일 리는 없다. 아이폰 출시일은 발표일처럼 뒤로 밀렸다. 그나마 엔플 관계자가 노력하긴 했는지 본래 출시일인 6월 29일에서 한 달 이상 뒤로 밀리지는 않았다.

애플폰은 2007년 7월 16일 월요일에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를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으니 이렇다 할 평가는 내리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PC와 연동되게 만들자는 네 아이디어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실리콘밸리에 한해서지만 벌써 몇몇 회사에서는 우리 유니톡을 사무실에서도 사용 중입니다.”

“애플폰의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등록된 것도 참 신의 한 수 같습니다.”

함께 피자를 주워 먹고 있던 지분을 가진 잭 매그너나 개리 마틴, 리오 밀러 등 또한 정호준의 선구안을 칭찬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요. 근데, 그렇게 띄워 준다고 성과금을 챙겨 주진 않아요.”

“그건 좀 아쉽네요.”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못 들은 척 흘린 채 정호준은 일의 진행 정도를 물었다.

“유니톡의 일본어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버전은 준비 잘 마쳤나요?”

미국에서 출시된 애플폰은 이윽고 유럽으로 넘어가 그곳에서도 크게 흥행하게 될 것이다. 애플폰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정호준은 미리미리 준비를 다 해 두었다. 정확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시를 해 두었다.

엔플과의 협상을 통해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탑재를 마쳤는데, 굳이 생길지 모를 경쟁자들에게 괜한 여지를 줄 필요 없잖은가?

“일본어는 아직입니다. 대표님이 정해 주신 대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독일어, 프랑스, 이탈리아어, 일본어 순으로 진행 중이라서요.”

독일어까지는 수정을 마쳤지만 프랑스부터는 아직 진행 중이란 말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북미 시장에서조차 보급이 덜 됐으니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서두르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입니까요. 중요한 건 버그가 최대한 나오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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