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1)
0607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줄리오 세지르를 흔들어 놨던 리버풀 보드진은 정호준이 지시한 대로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기 무섭게 다시 한번 줄리오 세지르 골키퍼에게 접근했다.
줄리오 세지르는 0506시즌 인테르로 이적했지만 비 EU권 선수가 팀에서 뛰는 것에 제한을 둔 세리에 리그의 규정 탓에 인테르에 이적하자마자 다시 임대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임대간 팀에서 줄리오 세지르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여러모로 섭섭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던 줄리오 세지르에게 여름 이적시장 리버풀이 던진 이적 제의는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칼초폴리 스캔들로 인해 유벤투스와 AC밀란이 몰락해 0506시즌 인테르가 세리에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인테르보다 몇 수 위의 명성을 지닌 팀이었다.
게다가 줄리오 세지르가 직접 경기에 뛰어 우승을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게다가 제시한 주급도 리버풀 쪽이 훨씬 통이 컸다.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자신을 알아주고 돈도 더 주는 빅클럽의 제의를 뿌리칠 선수는 세상에 없다.
“리버풀로 가고 싶습니다.”
줄리오 세지르는 클럽에 이적을 요청했다. 하지만 인터밀란 보드진은 세지르의 이적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드진들은 앞으로 최소 5년 이상 인터밀란의 골대를 맡길 생각으로 세지르를 데려온 거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0607시즌 인터밀란으로 복귀 후 큰 활약을 펼치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던 줄리오 세지르는 인테르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기대만 못 한 활약을 보였고 활약이 저조하니 당연히 부동의 주전을 차지했던 1회차 때와 달리 주전 경쟁을 계속 이어 가게 되었다.
기대치에 못 미치는 활약은 ‘NFS’로 여겼던 줄리오 세지르 매각을 인테르 보드진들이 재고하게 만들었다.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리버풀은 보드진은 겨울 이적시장에서 줄리오 세지르와 관련해 인테르에 오퍼를 넣었고 오퍼와 동시에 인테르 보드진들이 눈치채도록 은밀하지 않게 세지르를 만났다.
리버풀 보드진들은 인테르에게 보여 준 거다.
우리는 계속 선수를 흔들 수 있음을.
리버풀의 이러한 행동은 ‘좀 더 뜸 들이다가 공짜로 선수를 내보내고 싶습니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결국 인테르는 800만 파운드에 줄리오 세지르를 매각했다.
* * *
경쟁이란 행위는 경쟁을 해야 하는 당사자나 기업들의 피를 말리지만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일단 기업의 경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제품의 질을 신경 쓰게 되고 판매 가격 또한 큰 이익을 보게 가격을 높이 측정하기보다 적당한 이익을 보는 선에서 그치도록 저렴하게 판매한다. 가격 또한 품질과 함께 제품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아닌 개인에게도 경쟁은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해 낸다. 공부든 예술이든 운동이든 간에 관계없이 경쟁은 보다 더 나아지도록 자기 개발에 힘쓰게 만들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을 항상 노력하게 만들었다.
경쟁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는 프로선수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부동의 주전이었던 레이나에게 줄리오 세지르라는 경쟁자의 출현은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세지르가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한 터라 챔피언스리그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FA컵, EFL컵, 리그에는 출전이 가능했고 큰 활약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자의 활약에 레이나 또한 긴장하며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 덕에 자잘한 실수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자잘한 실수만 사라진 게 아니라 어려운 것들을 막아 내는 선방 능력 또한 일취월장했다.
- 인자기 슛!! 막았습니다. 레이나 이걸 막아 냅니다!!
레이나 골키퍼는 신들린 선방으로 몇 차례나 슈팅을 막아 냈고, 전반 45분에는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프리킥을 방향만 바꾼 인자기의 절묘한 슈팅을 막아 냈다. 폼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본래라면 먹혔어야 할 골을 선방해 낸 것.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거칠게 진행되었다. 선수들의 신경전은 기본이고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줄곧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결승전다웠다.
- 제라드, 중거리 슛!!!! 다다 골키퍼 선방합니다. 어어!
제라드의 발에서 시작된 중거리 슛이 워낙 강력한 터라 막아는 내도 인터밀란의 골키퍼 다다는 공을 키핑하지 못했다. 튕겨 내는 게 고작이었고, 튕겨 나간 세컨볼에 빠르게 다가가는 이가 있었다.
- 오언, 오언! 세컨볼을 따냈습니다. 아름다운 원터치, 슈유윳!
빠르게 공으로 접근해 공을 한번 터치한 오언은 곧장 슈팅을 때렸다. 제라드의 중거리 슈팅을 막아 내느라 밸런스를 잃어버렸던 다다는 이어지는 오언의 슈팅을 막지 못했다. 힘겹게 몸을 날려 봤지만 오언의 찬 공은 다다의 손에 닿지 않았다.
- 골!! 골입니다!! 오언! 자신이 왜 발롱도르를 수상했었는지, 클래스를 보여 주는 골입니다. 후반 76분 리버풀이 드디어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오언의 선제골로 주고받기를 이어 가며 수평을 이루던 구도에서 리버풀이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그 우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AC밀란은 질 수 없다는 듯 리버풀의 골문을 두드렸고 결국 골문이 열리고 말았다.
- 카카의 스루패스! 완벽하게 인자기의 발밑에 당도합니다.
후반 82분 인자기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중앙 풀백들은 인자기를 놓치고 말았고 인자기의 발밑에 카카의 완벽한 스루패스가 당도했다.
인자기는 프로선수치고 피지컬이나 기술적으로 특별함이 전혀 없는 선수다. 다른 게 다 시원찮음에도 세리에라는 거대 리그에 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골 냄새를 맡는 능력과 라인을 부수는 전방 플레이, 그리고 결정력이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 골, 골입니다!!
인자기는 1 대 1 찬스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시켰고 AC밀란에 희망의 끈을 이어 주었다. 골을 먹힌 리버풀이 다시 맹공을 퍼붓기는 했으나 별 소득 없이 그렇게 후반전이 끝이 났다.
* * *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인간은 시간이 지난, 의미 없는 일들은 쉽게 잊어버리곤 했지만, 인상 깊었던 기억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AC밀란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AC밀란 선수들은 알게 모르게 0405시즌 승부차기에서 패했던 기억이 뇌리에 떠올랐다. 연장 전반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이 난 뒤에는 어렴풋했던 기억이 마치 어제인 것처럼 생생해지기 시작했다.
안첼로티가 뭐라고 격려하든 그 격려는 그들의 귀에 박히지 않았다. 한번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이 지워지는 일은 없었다.
연장 후반 AC밀란 선수들은 불안함과 조급함에 경기를 급하게 운영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조급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실수가 나와도 풀 컨디션이라면 커버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미 육체적으로 피로가 극에 달할 연장 후반이었다.
- 마이튼 태클! 공을 빼앗아 냅니다.
측면을 파고드는 파발리의 돌파를 깔끔한 태클로 막아 낸 마이튼은 윙인 프랭클린 리베리를 향해 길게 롱패스를 날렸다.
- 공을 탈취하자마자 마이튼 롱패스를 날립니다! 리베리가 잡았습니다!
원터치로 공을 받아 낸 리베리는 전력을 다해 뛰며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빠르게 파고들었다. 헛다리를 짚으며 안으로 돌파할 것 같은 리엑션을 보이던 리베리가 이윽고 공을 발로 찼다.
- 낮게 깔아 주는 패스! 토레스! 토레스가 받습니다!! 원터치 슛!!! 들어갑니다! 마이튼을 기점으로 리베리의 멋진 패스와 토레스의 멋진 마무리. AC밀란 이번에도 리버풀의 벽을 넘지 못합니다. 리버풀 이대로 AC밀란과 천적 관계를 굳히는 걸까요?!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팀이 우승을 했다는 건 그만큼 프리미어리그가 우수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VVIP실에 걸린 TV를 통해 들려오는 영국 해설은 신이 나서 리버풀을 띄웠다.
이제 끝났다는 식으로 중계하는 해설 탓에 함께 축구를 관람하고 있던 아리아가 정호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요 호준.”
“고마워요, 그런데 아직 축하받기는 좀 이른 거 같아요. 원래 스포츠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잖아요.”
정호준의 말마따나 AC밀란은 어떻게든 골을 넣어 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동점골이 들어 가는 일은 없었다.
- 리버풀 강적 AC밀란을 상대로 0405시즌에 이어 0607시즌에도 빅이어를 들어 올립니다.
회귀 전과 똑같은 스코어인 2 대 1로 결승전이 끝이 났으나 승자는 AC밀란에서 리버풀로 바뀌게 되었다.
- 이로써 잉글랜드 최초 챔피언스리그 6회 우승을 기록해 냈습니다! AC밀란과 동률입니다!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에서 9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레알마드리드에 이어 AC밀란과 함께 2번째로 많은 우승을 경험한 팀이 되었다.
* * *
칼치오 폴리 사건으로 2부로 강등된 터라 자국 리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음에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한 대가는 크게 다가왔다.
[안첼로티, AC밀란과 합의 계약 만료!]
본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해 재계약을 진행했을 안첼로티는 결승전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는 이유로 AC밀란과 계약을 만료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럽 축구 팬들을 놀라게 한 오피셜은 또 있었다.
[리버풀 베네테즈 감독과 계약 만료를 선언!]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나 라피엘 베네테즈는 정호준이 제시한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 베네테즈와의 동행이 썩 나쁘지 않았던 리버풀 보드진들은 정호준을 찾아와 베네테즈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으나 정호준은 거절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베네테즈가 앞으로 있을 전술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 동행을 멈춘 거지 무능한 감독이어서 해임하는 게 아니었기에 정호준은 자신의 인선을 강행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축구팬들은 그냥 놀라는 선에서 그쳤을 거다. 이후 리버풀과 AC밀란이 발표한 공식 오피셜 때문에 유럽 축구팬들의 이목은 두 클럽으로 집중되게 되었다.
[AC밀란, 챔피언스리그 우승 청부사 리파엘 베네테즈와 3년 계약을 맺다!]
3년 동안 챔피언스리그에서 2번을 우승시켰다. 이는 우승 청부사로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커리어였다. 그렇기에 AC밀란의 오피셜은 크게 놀랍지 않았다.
[리버풀, AC밀란의 안첼로티와 3년 계약!]
반면 리버풀이 발표한 오피셜은 팬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2번이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감독을 보내고 준우승에 그친 감독을 맞바꾼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 상황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0405시즌 베네테즈가 빅이어를 들어 올린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다. 그의 능력을 알 수 있게 해 준 부분이고. 하지만 0607시즌은 베네테즈만의 능력이라 보기 어렵다. 나와 우리 보드진들이 공을 들여 만든 스쿼드는, 베네테즈 감독이 아닌 다른 명장이었어도 우승컵을 하나 이상 들어 올리게 해 주었을 스쿼드다.”
팬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정호준은 짧게나마 기자회견을 가졌고 영국에서 벌어진 회견을 이탈리아에서 듣게 된 베네테즈는 정호준을 비난했다.
“분에 넘치는 큰돈을 벌었을 뿐인,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어린 구단주다. 오늘 그가 내린 이 선택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반드시 증명하겠다.”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 축구팬들의 즐길 거리는 그렇게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