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50)
‘S&P500’ 지수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피어스(S&P)가 작성하는 주가지수로 주로 S&P지수로 불렸으며 다우존스 지수·나스닥 지수와 함께 뉴욕증시의 3대 주가지수로 꼽혔다. S&P지수는 3대 지수 중 가장 많이 활용된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경제를 나타내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S&P지수는 2007년 4월 2일에 추가로 3포인트 상승했다. 4월 2일 부동산 시장이 악화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세상에 발표됐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이 또한 신용평가사와 은행, 보험사들이 함께 작당한 증거라 봐도 되겠지.’
2007년 4월 2일 지난 3월 12일 파산을 선언했던 미국 모기지 업체 업계 2위 뉴센추리 에셋(New Century Asset)이 실제로 델라웨어 윌링턴 소재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뉴센추리 에셋은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전체 인원의 50% 이상인 3,200명을 즉시 감원하고 모기지 사업부문 계열회사인 캐링턴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1억 3,900만달러에 매각하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로건 스탠리. 골드만식스 등이 요구한 84억 달러 규모의 환매 요청 또한 당연히 지불되지 않았다. 본래라면 돈을 떼먹히는 집단 중에는 다운타운뱅크의 지주회사인 다운타운그룹 또한 한 발 걸쳐 있었을 거다.
“호준이 아니었으면 정말 크게 손실을 봤겠네요.”
정호준과 함께하며 부동산 쪽에 관심을 집중한 아리아 로슬러는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아는 겨우 이 정도에서 끝날 거라 생각해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부터 한숨 쉬면 곤란해요.”
정호준의 냉소적인 반응에 아리아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준은 대체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해질 거라 보는 건가요?”
“2007년 3분기부터 월가는, 아니 미국인들은 은행이 또 파산하는 곳이 없나 걱정하며 공포에 떨게 될 겁니다. 그러한 분위기는 2008년, 그리고 2009년 2분기까지 이어지겠죠. 연기금, 부동산 가치, 퇴직금, 예금, 채권 등 미국에서 가치를 두는 온갖 종류의 자산들이 증발할 겁니다. 나는 증발할 자산의 규모가 ‘조’ 달러 단위에 이를 거라 생각해요.”
백인이고 온갖 관리를 받아 그렇지 않아도 새하얬던 아리아의 피부는 병에 걸린 사람마냥 창백하게 변했다. 아무리 아리아가 로슬러 가문의 상속자라지만 ‘조’ 달러는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부친이나 조부가 다시 로슬러 재단의 이사장이 되어도 쉽사리 입에 올리기 힘들 단위였다.
“괜찮아요?!”
아리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인지한 정호준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아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로슬러가에서 태어나 자라 왔기에 돈이 갖는 힘을 알고 있는 아리아에게는 정호준이 막연하게 그저 숫자로 생각하는 돈이 주는 의미가 달랐다. 그렇기에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주치의 불러올 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갑작스런 스트레스로 인한 빈혈일 뿐 큰 문제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정호준의 호들갑에 아리아는 링거를 맞게 되었다.
* * *
뉴센추리 에셋의 파산신청은 달마다 연체자가 늘어 가며 나빠지기만 하던 모기지론(Mortgage loan)의 상황이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튼튼한 신용을 가진 이들을 상대에게만 대출해 주는 모기지론도 부동산 분위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데, 신용이 낮은 이들에게 대출해 주기 위해 만든 구조가 부실하고 리스크에 취약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오죽하겠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모기지론을 기초자산 삼아 만든 온갖 금융상품들은 하나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것이 흔들리는데 가치가 똑같거나 오르면 그게 이상한 거다.
물론 세상에 예외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 예외를 적용당한 이로부터 연락이 당도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보험 대상이 망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험 가치가 변동이 없을 수가 있죠? 전부 다 사기꾼입니다!!”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의 가치가 변동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마이클 스팬서는 정호준에게 전화를 걸어 분을 토로했다. 자신과 생각이 같아 정호준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굳게 믿었고 그 때문에 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스팬서 씨! 진정, 진정해요.”
마이클 스팬서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지른 외침임에도 귀가 멍멍했다.
“어떻게 진정할 수 있습니까? 저들이 시스템 자체를 부인하는데.”
월가의 금융인으로 살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시스템이 주는 법칙을 믿었기에 생긴 배신감이었다.
“스팬서 씨는 아직도 시스템을 믿나요? 그렇다면 순진하신 거라고밖에 말 못 하겠네요. 시스템도 사람이 만든 겁니다. 당연히 항상 똑같이 작용할 리 없죠. 파멸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시스템은 쭉 저들의 편일 겁니다. 어쩌면 파멸을 겪는 와중에도 시스템은 저들의 편일 겁니다.”
자본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미국은 특히 그러리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정호준의 행태에 마이클 스팬서는 뚝 쏘아붙였다.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왜 이렇게 차분하십니까? 남의 자산이 아닌 당신의 자산입니다. 사실 내가 아니라 정대표님이 화를 내야 맞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냉정하던 분이 왜 이렇게 감정적이에요? 그만 진정하세요. 스팬서 씨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 봐야 파멸이 당도하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걸. 그들의 잔치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는 CDS를 쥐고 있는 우리의 잔치가 시작될 겁니다.”
2분기에 들어서며 고정금리가 하나둘 변동금리로 변하고 있다. 변동금리로 전환되면서 가까스로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던 이들 다수가 채무를 갚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에는 4월 현재보다 더 채무불이행률이 치솟으리라.
월가 사람들에게 시스템을 잠시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 힘은 있어도 앞으로 발생한 현상 자체를 막을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월가를 넘어 국가 단위로 넘어가도 이는 마찬가지이리라. 똥을 싼 건 미국, 더 정확하게는 월가인데, 미국의 달러 패권 때문에 월가가 싼 똥은 세상이 함께 치워야 할 거다.
남들이 월가가 싼 똥을 치우느라 힘겨울 때 정호준은 월가와 미국, 그리고 중국의 돈으로 잔치를 할 생각이지만 말이다.
“너무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세요, 어차피 결말이 달라질 일은 없잖아요?”
정호준은 마이클 스팬서를 달래며 최대한 그를 편하게 해 주었다.
‘이대로 그냥 보내기 아까운 사람이지. 잘 어르고 달래서 내 밑에서 자산을 운용하게만 해도 알아서 돈을 벌어다 줄 사람이다.’
마이클 스팬서는 가장 먼저 부동산에 낀 거품과 부실을 발견한 사람이지만 그 이전에도 한화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달러를 자금을 굴리며 꾸준하게 수익을 내는 능력 있는 이였다.
자신의 돈을 가지고 위험한 곳에 투자했다고 압박하고 고소장을 접수한 사람들에게 신물이 나고 금융제도에 또 한 번 신물이 나 큰 수익을 낸 뒤 잠깐 월가에서 떠났지만.
‘차라리 개가 똥을 끊는다고, 결국 돌아오잖아.’
실패로 월가를 떠난 것도 아니고 거대한 명성을 이룩한 성공한 투자자가 월가가 주는 마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차피 다시 복귀할 거 서브 프라임 사태를 함께한 것을 계기 삼아 자신의 밑에 데려다가 굴리고 싶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지만 이를 기회로 보고 있는 정호준은 그저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 어떻게 하면 자신의 것(영토)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거품이 빠지며 드러나는 부실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미국 월가와 달리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피어 올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유럽 축구계였다.
종종 일정이 뒤로 밀려 6월로 밀리기도 하지만 5월은 4대 리그라 불리는 거대 리그 포함 유럽에서 진행 중인 대다수의 리그가 막을 내리는 달이다. 5월쯤 되면 대개 누가 우승할지 윤곽이 뚜렷해지는 타이밍이었다.
치열하기로 소문난 프리미어리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트가 크게 미끄러지지 않는 이상 맨유의 우승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리버풀의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1회차 때보다 승점은 더 챙겼지만 첼시가 미끄러지지 않는 이상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위 경쟁을 하며 한참 승승장구하던 리버풀이 3위까지 미끄러진 이유는 간단했다.
주축 선수의 부상으로 승점을 많이 까먹은 베네테즈 감독이 우승 경쟁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FA컵, EFL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자.’
반드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더블이나 미니 트레블을 해낸다면 온갖 명문구단에서 러브콜이 밀려들 거란 계산을 마친 베네테즈는 리그보다는 토너먼트 대회들에 집중했다.
전반기에 벌어 둔 승점이 워낙 많아서 리그에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할 4위 경쟁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베네테즈의 계획과 달리 토너먼트라는 건 언제든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공이 둥글다는 축구의 격언이 그야말로 가장 잘 들어맞는 때랄까?
[리버풀 FA컵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2:1로 패하다.]
[리버풀 첼시를 상대로 연장전 혈투 끝에 3:2 펠레 스코어로 패배하다.]
미래에 중요할 때 힘을 못 쓰는 감독이라는 평가가 딱 어울릴 정도로 FA컵과 EFL컵에서 마지막 한 발자국, 혹은 두 발자국을 걸을 뒷심이 부족했다.
‘남은 건 챔스뿐이다.’
정호준이 기억하던 1회차 때보다 더 수월하게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고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5월 23일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과 맞붙게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2회 우승한 것만으로도 빅클럽의 러브콜을 받기 충분하다.’
세상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인 빅이어를 들고 싶어하는 클럽이 쌔고 쌨고, 2회쯤 우승했으면 챔피언스리그 우승 청부사라 불려도 무방할 커리어였다. 이대로 콩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베네테즈는 챔피언스리그에 사활을 걸었다.
“구단주가 챔피언스리그 우승하면 보너스를 수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적료로 큰돈을 사용했음에도 회귀 전처럼 아무런 결과물도 얻어 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던 정호준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심어 줄 사안을 감독을 통해 전달했다.
“나는 이대로 우승컵을 하나도 들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 우승컵을 위해, 보너스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라.”
그나마 다행인 게 리버풀은 컨디션 조절을 통해 부상자 없이 풀 스쿼드로 AC밀란을 상대하게 되었다. 5월 23일 정호준은 아리아와 함께 결승전이 개최될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에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