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7)
자리에 모인 기자 중에는 평소 JS 그룹에 뇌물을 받아먹은 언론사부터 따로 받아먹은 개인이 존재했다. 원래 받아먹었으면 받아먹은 만큼은 도와주는 게 세상의 이치인 만큼 본래라면 강현태에게 태클을 걸어 최대한 논지를 흐리고 주장을 어그러트렸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렇게 자료를 명확하게 제시하는데?’
강현태가 나눠 준 자료에는 11월부터 1월까지의 종가가 적혀 있었고, 종가들을 기준으로 그린 하나의 그래프가 제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기존의 주가조작 사례에서 자료를 가져오며 주가가 연속해서 상한가를 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존의 주가조작과 현재 상황이 똑같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를 가져다 똑같이 그래프까지 그려 놨다.
말이란 누가 뱉었냐에 따라 그 말의 무게와 신뢰성이 달라진다. 초선이라지만 주가조작과 다단계를 잡아내 국민에게 이름을 알린 강현태는 충분한 신뢰성과 무게감을 지닌 인물이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외에도 찌라시 회사나 잡지사에도 연락을 돌렸습니다.”
본인들이 기사를 내지 않아도 종국에는 어딘가로부터 기사가 날 거란 말에 돈을 받아먹은 이들은 자신들이 도와주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 오늘 저녁부터 뉴스와 기사에 ‘로보’와 관련해서 주가조작 기사가 나갈 겁니다.
지금껏 받아먹은 게 많은지라 문자는 하나 남겨 주었지만, 문자를 전송한 뒤부터 걸려 오는 연락은 모두 무시했다. 이른바 빠른 손절이었다.
이러한 행동을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는 게 세상 어느 누구도 가라앉는 배와 명을 함께 하지 않잖은가? 배가 침수되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탈출하려 발버둥 치는 게 당연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문자로 정보를 알려 줘서 최소한의 정보는 제공했지 않나? 문자를 보낸 기자들은 이 정도면 의리는 지킨 거라 합리화하며 핸드폰의 설정을 무음으로 바꾸었다.
* * *
슬슬 수익을 실현하려는 찰나에 갑작스레 전해진 비보에 조수도는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런 사람 있잖나.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거는. 조수도가 딱 그랬다.
삑삑!!
문제는 문자를 보낸 기자 중 그 누구도 조수도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거였다.
전화를 건 기록이 십 단위를 넘어갔음에도 누구 하나 전화를 받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침대에 핸드폰을 던지며 외쳤다.
팟!!
“X발!! 돈 받아 처먹어 놓고 딸랑 문자가 한 통이 전부라고?!”
전화를 받지 않아 일단 주식부터 정리하고 보자는 생각에 미리 고용해 둔 트레이더를 불렀다. 함께 움직인 세력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일단 중요한 건 자신의 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장을 마감해서 정리가 어렵습니다.”
주식거래창을 띄웠지만 급작스러운 비보에 주식을 처분하려 해도 이미 장은 마감된 뒤였다.
“씨발 어떻게든 해 보라고!!”
“죄…… 죄송합니다.”
목에 칼까지 들이대며 협박을 했으나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장된 주식을 장이 마감됐는데 팔 수 있을 리 없다.
“애들 준비시켜!!”
벌벌 떨면서도 안 된다, 죄송하다를 반복하는 트레이더들의 모습에 조수도는 행동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덩치들을 다수 동원해 문자를 보낸 기자 중 가장 탈이 없을, 만만한 기자를 퇴근 시간에 맞춰 찾아갔다.
그렇게 덩치들을 데리고 몰려간 뒤에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거다.
- 속보입니다!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 ‘로보’가 주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 중앙지검은 영장을 심사를 요청하는 한편…….
로보가 주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현존하는 모든 채널에서 긴급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강현태 이 개자식!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내 일을 방해하는 거야!”
주가조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큰 피해를 끼치는 법으로 금지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는 듯 그저 강현태를 욕했다.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최소한 그 새끼랑 그 새끼 가족은 데려간다.”
비상금이라 부를 마지막 보루를 제외하면 모든 자금을 쏟아부은 주가조작이었다. 주가조작이 들통난 이상 월요일 장이 열린다고 자금 회수가 가능할 리 없다.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조수도는 뒤가 없는 사람처럼 원한을 가득 담아 외쳤다.
분노가 가득 실린 외침이었으나 그의 부하들은 그의 분노에 동조하지 않았다.
“당신은 미쳤어! 국회의원을 건드리겠다고? 난 빠지겠어!!”
잘나갈 때야 온갖 사람이 달라붙어 아첨을 떨고 충성심을 어필하며 떡고물을 받아먹지만 망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조수도 회장이 끝물이라는 걸 확인한 남성은 자신이 빠지겠다고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본래였다면 제재를 가하고 무릎을 꿇렸을 거다. 그러나 조수도 회장은 눈앞에서 배신한 남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나도 기철이 형님 편입니다!”
“이제, 어디에 취직해야 하나?”
데려온 부하들이 하나둘 남자 쪽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배운 게 없는 무식한 깡패 소리를 듣지만, 그 말이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돈과 권력을 가졌을 때도 국회의원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데, 그런 미친 짓을 함께한다? 돈을 다 잃고 감옥에 갈 일만 남은 사람의 자살행위에 어울려 주고 싶지 않았다.
‘죽을 거면 혼자 죽지, 왜 같이 죽으려는 거야?’
다른 정당의 의원을 습격했다고 국회의원들이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하면 1차원적이어도 너무 1차원적인 어리석은 생각이잖나. ‘그 나물에 그 밥’,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정당을 위해 맨날 싸우는 모습을 보여 줘도 국회의원의 권위를 해치는 이를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그 정도 생각은 못 배운 그들도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혼자가 된 조수도 회장은 배신감과 모멸감, 그리고 허망함을 느꼈다.
* * *
부하들에게 버림받았음에도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강현태를 향한 복수심을 버리지 않았다. 잃을 게 없는 이는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은 지금의 조수도를 수식하기 알맞은 말이었다.
‘날 망하게 만든 놈이 떵떵거리면서 사는 꼴을 어떻게 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린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는 가족들에게 남길 마지막 보루인 금괴를 주겠다며 사람을 구했고 검찰과 경찰 종사자들에게 뿌린 뇌물을 적어 놓은 장부가 있다며 협박해 강현태의 차량 번호를 알아냈다.
정보 숙지를 완료한 조수도는 일요일 저녁에 노숙자들과 함께 강현태가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강현태를 기다렸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차에서 내리는 강현태를 습격했다.
“개자식아! 나를 나락으로 내밀어 놓고, 너는 잘살 줄 알았냐?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 어차피 돈 없이 감옥에서 썩을 거 오늘 너 죽이고 네 가족들도 죽인다.”
조수도는 의기양양하게 외쳤으나 그것도 잠시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차에서 함께 내리는 경호원들이 조수도와 노숙자들을 막아 세웠다.
“의원님, 잠깐 물러나 계시죠.”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야? 돈 받고 싶으면 빨리 덮쳐!!”
조수도의 외침에 노숙자 넷이 날붙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지만.
퍽! 퍽! 퍽!
영양상태조차 좋지 못한 아마추어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을 상대로 버텨 낼 리 만무했다. 휘두르는 칼을 끝까지 보며 피한 경호원들은 곧장 손을 타격해 칼을 놓치게 만들었고, 이윽고 복부에 일격을 가했다.
조수도가 고용한 노숙자 넷은 30초도 채 되지 않아 전부 바닥을 기었다.
노숙자들을 제압한 경호원들은 이윽고 뒷걸음치며 도망치려는 조수도 회장까지 빠르게 제압했다.
“거기 경찰이죠.”
강현태의 연락을 받은 경찰은 10분도 안 돼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서에서 건질 게 없나 항상 잠복 중이던 기자들에 의해 조수도가 강현태를 습격한 일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긴급 속보입니다.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던 조모 씨가 오늘 오후 7시 33분경, 앙심을 품고 무소속 출신의 강현태 의원을 습격했습니다. 일당은…….
조수도의 습격을 다룬 뒤 강현태의 인터뷰가 뒤이어 나왔다.
“앙심을 품은 피의자가 제 가족을 죽이겠다며 협박을 했지만, 주가조작을 제보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의를 바로 세움으로써 국민께서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사전에 예방했다는 걸로 만족합니다.”
국회의원 습격 사건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고, 습격을 받은 당사자인 강현태는 순식간에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김명호 서울시장이 드라마를 통해 갖게 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강현태에게도 크나큰 관심과 지지가 모였다.
그러한 관심 중에는 정치권의 어필도 있었다.
인물이 마땅치 않은 데다 보수의 개가 선거에 나와도 당선될 거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돌 정도로 보수에게 유리한 상황이 달갑지 않았던 민주통합당에게 강현태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저희 당의 지원을 받아 봉황 의자를 노려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당 대표가 직접 만남을 청해 개인적인 자리에서 민주진영 입당을 권했지만. 강현태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봉황 의자에 앉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정호준에게 천천히 스텝을 밟아 갈 필요가 있음을 들은 데다가 괜히 불리한 대선에 이름을 올릴 필요는 없다는 계산이 깔린 거절이었다.
* * *
대선 후보 입당을 거절한 강현태는 정호준이 깔아 놓은 레일을 걷기 위해 2008년 치러질 18대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무렵, 미국 정재계의 중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정호준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2007년 3월 24일 토요일. 그간 결혼 준비에 힘쓴 아리아 로슬러와 정호준의 결혼식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웰마트를 소유한 웰튼가문을 시작으로 체크 가문과 누구나 들어 봄직한 초콜렛 브랜드 사업을 수십 년째 이어 가는 카론 가문, 곡물시장을 지배하는 카갈가, 로슬러가, 로건가, 허슬러가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치 쪽 또한 명문가들이 한가득 참석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참석한 면면 중에는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될 트럼프나 또한 존재했다.
‘동양인을 사위로 삼다니 로슬러도 다된 모양이네.’
‘찰튼 로슬러가 승기를 잡았다더니 급했나 보지?’
‘단기간에 급격한 부를 쌓았다는 것치고는 평범한데?’
‘피로연 때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군.’
속으로 정호준과 로슬러를 깎아내리거나 혹은 높이 평가해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 하거나, 생각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 누구도 제 생각을 밖으로 알리진 않았다.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축하 인사를 건네며 하나둘 결혼식장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