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46화 (146/335)

14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6)

2007년 새해가 밝았다. 냉전을 끝내고 아리아와 결혼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에 힘쓰는 정호준과 달리 세상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2007년 1월. 모기지론(mortgage loan)을 체납한 연체인구가 100만을 찍으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연체 인구가 100만을 기록한 건 ‘모기지론을 안 갚을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월가의 모기지론 맹신자들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월가의 모기지론 맹신자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으로는 인지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한 반면 본래 모기지론에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똑똑한 이들은 사태가 알아봤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모기지론이 얼마나 부실하고 해이하게 운영 중인지를.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이게 대체 뭐야.’

한 사람에게 대출 2개라는 기본적인 방식은 지키지만 한 사람이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보유하고 있는 게 수 채에 달했다. 돈 욕심에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담보대출을 여럿 가진 것.

‘지금에야 이자를 감당할 수 있겠지만, 올해 2분기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로 변하면 갚아야 할 금액이 커질 텐데, 대체 채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

서브프라임이고 신용 등급이 높고 구분할 것 없이 모기지론은 고객을 꼬드기기 위해 미끼로 2년 값싼 고정금리를 매겼다. 값싼 금리를 믿고 모기지론을 활용해 집을 구매하도록 말이다. 모기지론 대출은 2년 뒤 값싼 고정금리를 해제하고 변동금리로 전환해 이자율을 은행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2007년 2분기는 고정금리를 주기로 약속했던 기한 2년을 채우는 대출들이 수두룩했다.

모기지론을 조사한 트레이더들이 찾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증권) 상품들의 LTV(Loan to Value: 담보인정비율)가 100%를 넘어 110%로 잡혀 있는 게 많았다.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값이 오르니 은행의 이득을 위해 아예 담보 비율 자체를 본래의 가치보다 높게 잡은 것이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고금리로 전환될 때와 마찬가지로 만약 주택가격이 폭락한다면 채무불이행을 높이게 만들 조건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특히 그랬다. 신용도가 낮은 이에게 대출을 해 준다는 리스크가 있는 만큼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은 우량모기지 대출보다 주택가격의 변화에 민감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월가나 미국 시민들이나 모두 돈 욕심에 미쳐 날뛰었던 거구나.’

감이 경고하는 사안을 무시하지 않은 냉철하고 똑똑한 이들은 돈이 내뿜는 욕망에 취해 미국인 모두가 날뛰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개 트레이더들이 감당하기에 진실은 스케일은 너무 거대했고 가혹했다.

‘보고해도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급급했고 인정하는 순간 막대한 손실을 걱정해야 할 테니 말이다. 파국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그 파국이 피할 수 없는 거라면 파국에서 고개를 돌리는 게 인간이란 존재였다

대형은행이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들 또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평범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모인 집단에 불과했으니까.

깨달은 자들은 깨달은 대로 곧 있을 파국을 두려워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들이 적을 둔 일터(증권사, 은행, 신용평가사, 보험사)가 다가올 위기로부터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 * *

정호준이 예측한 그대로 흘러가는 현실을 지켜보며 두 찰스들은 자존심 때문에 정략을 취소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얼마나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든 간에 21세기는 미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난 이와 적대해서 좋을 게 없는 세상이란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주니어, 우리 쪽 인맥을 총동원해라.”

“뭐라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연방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마지막까지 정호준을 의심했으나 1월에 연체 인구가 100만을 찍을 거란 예측대로 들어맞자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이 유발한 위기와 그 규모를 어느 정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결코 정부의 개입 없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위기이리라.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쓰이는 말이다.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냐에 따라 또 한 번의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

특히 위기가 올 것을 알고 준비를 마친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대국적인 위기는 급격한 확장을 이룩해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나 다름없었다.

“찰튼 녀석의 입김을 크게 받는 골드만식스에는 큰 지원이 행해져서는 안 돼. 지원을 막을 수 없다면 규모나 지원 시기를 놓고 딜을 해 봐야지.”

남들이 하나둘 무너져 내릴 때 자금을 동원해 적은 자본으로 알짜배기들을 빼먹고 정부와 합의를 잘 마치면 부채 탕감을 대가로 은행들을 인수할 수 있다. 골드만식스가 정신을 빨리 차릴수록 그만큼 찰스 로슬러가 가져갈 몫이 줄어들기에 달가울 리 없었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느 정도나 피해를 볼 것 같나?”

“다운타운뱅크는 큰 피해 없을 겁니다. 다운타운뱅크를 우선적으로 정리했으니까요. 다만 메릴리치나 AOG는 피해가 있긴 할 것 같습니다.”

찰스 로슬러의 입김이 닿는 은행과 보험사들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과 관련된 금융상품들이 창출해 낸 과실들을 가장 많이 취한 터라 아무래도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모기지론과 관련된 상품들을 넘긴다고 넘겼어도 정도란 게 존재하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찰스 로슬러의 입김이 닿는 은행 중 유일하게 다운타운뱅크를 제외하면 살아남은 게 없었고 그나마 정부의 지원으로 명줄을 이어 간 다운타운뱅크도 미국 4대 은행 중 말석의 자리로 밀려났던 정호준의 1회차를 고려하면 주력이라 봐도 무방할 다운타운뱅크에 큰 피해가 없고 파산하는 법인이 없는 것만으로도 크게 선방하는 거였다.

“정부의 지원을 따내면 그것도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일입니다.”

부채가 많을 동종업계의 회사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리만에 어느 정도 몰아준 뒤 중국에 매각한 건 지금에 와서도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정호준의 말대로 릭 오리하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릭 오리하와도 관계를 터 두자.”

“예, 따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리긴 하나 흑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 정호준의 말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정호준이 했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 일단 다음 대통령이 공화당에서 나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권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와중에 서브 프라임이 터진다면 공화당이 어떻게 정권을 사수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서브 프라임으로 거대한 손실을 입게 되는 게 현재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잘잘못을 가린다면 월가가 이만큼 날뛸 수 있도록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지한 힐링턴 전 대통령의 잘못이라 보는 게 맞다.

글래스 스티걸법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1회차 정호준이 지켜봤던 것처럼 미국 금융 업계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 사실이 평범한 국민들에게 전달될 일은 없다. 월가로부터 돈을 잔뜩 먹은 언론들이 기사를 내지 않을 거고, 대통령 임기 때 발생한 게 문제였다.

‘정치 논리지.’

당장 문제를 해결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누구 잘못인지를 먼저 가리려는 걸 국민이 달갑게 여기겠는가? 당장 오늘 죽을 것 같은데?

“아리아가 릭 오리하와 안면을 텄다고 하니, 아리아를 통해 친분을 쌓아 보겠습니다.”

어쨌건 부친인 찰스 로슬러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찰스 로슬러 주니어는 딸에게 따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 * *

모기지론 체납으로 미국이 시끄럽다면 한국은 정호준과 친분이 있는 강현태가 벌인 사건 때문에 시끄러워졌다.

강현태는 2007년 1월 12일 금요일 오후 5시에 기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다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회의원으로서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무탈하게 정치를 이어 가고 있고, 다단계, 주가조작 등을 몇 차례 막아 내며 국민들에게 자기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킨 강현태는 초선의원임에도 다른 초선의원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허했다.

그런 강현태의 부름이었기에 기자들은 급한 일을 모두 미뤄 둔 채 앞다투어 참석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건, 주가를 조작하는 정황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주가조작이 가지는 무게감을 알고 말씀하시는 거라 믿어도 되겠습니까?”

강현태는 분명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며 올바른 일을 했지만 정의가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을 수는 있는 법. 자신이 주식을 투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가조작을 밝혀 수익 창출은커녕 큰 손해를 봤던 기자는 적대적인 뉘앙스로 질문을 던졌다.

“물론입니다. ‘주가조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치기 소년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확인할 것을 다 확인한 뒤 여러분을 이렇게 모신 겁니다.”

“주가조작이라고 의심하는 종목을 여쭤봐도 되겠습니다.”

“종목의 이름은 ‘로보’로 코스닥에 상장된 기계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작은 기업입니다. 이미 한국거래소에서는 11월쯤 로보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조회공시를 여러 번 요구했지만, 강제력이 없다 보니 로보사는 주가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없다고만 답하는 걸로 끝났습니다.”

강현태는 바깥에서 공장을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공장이 허름한 것을 가지고 손가락질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본래 주가가 1,100원 하던 회사가 지금은 6,000원을 상회했는데, 구체적인 호재 발표도 없습니다. 저는 기자님들께서 금융감독위와 검찰이 움직일 수 있게, 이 사실을 널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강현태의 발언을 받아 적기 바빴다.

“제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주가조작’의 배후에는 지금 회계 조작 등으로 말이 많은 JS 그룹의 조수도 회장이 끼어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엄한 돈을 잃지 않도록 기자님들께서 힘 좀 써 주십시오.”

금요일 오후에 부른 것 또한 강현태의 의도 중 하나였다.

‘저들에게 주식을 청산하고 도망칠 틈(시간)을 주지 않는다.’

강현태는 세력들이 발버둥을 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주식 시장이 닫힌 뒤인 금요일 오후에 기자회견을 잡았다. 개미들이 하나둘 관심을 갖기 시작한 주식인 만큼 주말이면 충분히 개인투자자들에게 이야기가 퍼질 거다.

내버려 두었으면 주가가 50,000원을 돌파했을 희대의 주가조작 사건 중 하나가 그렇게 이익 실현을 하기도 전에 덜미를 잡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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