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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45화 (145/335)

14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5)

상대가 나에게 줄 것을 알고 있든 아니든 간에 선물이라는 건 받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다. 뇌물을 주고 부탁하는 문화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특히 선물 받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 받게 된 선물은 선물받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호준이 이렇게 프러포즈를 해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호준과 아리아는 데면데면한 친구 관계와 비교가 불허할 정도의 신뢰를 쌓았지만 정호준이 혼전계약서를 들이민 탓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말마따나 신뢰를 잃어버리면 신뢰를 잃기 전으로는 돌아가기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최대한 빨리 풀어도 모자랄 판에 푸는 게 아닌 냉랭한 관계를 1달 이상 이어 갔다. 상황은 어느덧 신뢰가 깨진 것을 넘어 자존심과 감정을 건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그렇다고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먼저 숙이고 넘어갈 순 없잖아?’

미안하다고 말은 하나 행동이 전혀 수반되지 않은 정호준의 사과를 사과로 인식하고 그냥 넘어가기엔 로슬러가의 영애로써의 자존심 아니 로슬러가의 영애 이전에 한 명의 여자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결혼을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결혼은 정호준은 물론이고 그녀의 조부와 부친 또한 정호준의 능력을 인정해 필요로 묶인 정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대로 남보다 못한 쇼윈도 부부로 살게 되겠다는 상상을 했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드문 게 정략결혼인 만큼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대를 갖지도 않았던 만큼 프러포즈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 행동이 신뢰를 깼다는 걸 나도 모르지 않아요. 이번처럼 내가 먼저 신뢰를 깨는 행동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리아가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

동서양 구분할 것 없이 여자들은 남자보다 무드를 많이 타는 편이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 수십의 촛불이 일렁이며 주변의 장미꽃잎을 밝히는 광경은 분위기를 업시키기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지를 껴 주며 한 번만 봐 달라고 달콤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호준의 사죄(속삭임)는 차갑게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두드리기 충분했다.

반지를 끼워 주며 용서를 빌었던 정호준은 또 한 번 품속에서 큰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와 주변으로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아름다운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정호준은 목걸이를 꺼내 아리아의 목에 걸어 주었다.

“예쁘죠? 아리아에게 프러포즈하려고 8개월 전부터 주문 제작한 것들이에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아리아는 정호준이 끼워 준 반지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고, 정호준은 그런 아리아를 보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혼전계약서를 들이밀어 신뢰를 깬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략결혼 대상자들답지 않게 우리 좋았잖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불행으로 점철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함께 있는 시간이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면 대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참는 것도 어느 정도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미리부터 걱정해서 아리아의 신뢰를 깼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한데, 우리가 싸우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은 선택을 내릴 거예요. 나는 겁쟁이거든요. 그러니 아리아가 한 번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말한다. 깨진 그릇을 원래대로 붙일 수 없다고. 원래대로 다시 붙일 수 없다면 아예 새롭게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다. 본래보다 더 멋지고 탄탄하게 말이다.

“관계를 뒤흔드는 행동을 용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아리아는 새침한 투로 인심 쓰듯 말했고, 그런 아리아의 반응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고마워요. 내가 잘할게요.”

정호준은 아리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이후 미리 준비해 둔 와인을 꺼내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부부싸움 후 각방을 쓰는 부부처럼 1개월 넘게 못 했던 므흣한 운동을 오랜만에 즐기며 그렇게 잘 풀었다.

* * *

비 온 뒤 땅이 굳듯 아리아와 정호준의 관계는 크게 싸운 뒤에 조금은 더 끈끈해졌다. 학업성적 챙기려 회사에 나와 보고를 받으랴, 구단과 관련된 보고를 전해 들으랴, 연애하랴. 몸이 세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리아, 조나단 좀 불러 줄래요?”

“알겠어요.”

정호준의 지시에 아리아는 조나단의 비서에게 연락했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조나단이 정호준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정호준은 사무실로 들어온 조나단에게 안부를 물은 뒤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에 투자하신다니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미국 부동산이 망한다는 데 베팅하셨잖습니까?”

자넷과 함께 JHJ Capital 창업공신 루카스 조나단은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정호준의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말을 너무 줄였네요. 미국 부동산에 투자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디를 염두에 두신 겁니까?”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부동산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호주 부동산은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을 통해서 하면 되는데, 캐나다 쪽에는 우리 법인이 없죠. 법인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어서 조나단을 부른 겁니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호주나 뉴질랜드의 부동산에는 아직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정호준은 호주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고해 미국 부동산 거품이 걷힌,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시점이면 충분하다 판단했다.

“정확히 어느 지역에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밴쿠버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밴쿠버는 매년 호주의 시드니, 미국의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중국의 홍콩과 상하이, 광저우, 일본의 도쿄, 한국의 서울, 스위스의 취리히, 자국의 토론토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땅값 비싼 곳 중 하나로 꼽혔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밴쿠버와 토론토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서로의 도시가 캐나다를 대표한다며 자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밴쿠버는 거주자 몇 안 되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밴쿠버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2003년 7월 2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제115차 IOC 총회에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뒤부터였다. 번외로 밴쿠버와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경쟁을 벌인 게 바로 한국의 평창이었다.

‘내 업무랑 올림픽 때문에 알게 됐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뒤로 관심을 받게 되었고 경기장을 신설하고 선수촌을 짓는 등 건설로 자금이 몰리기 시작하며 밴쿠버란 도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라는 도시는 여름에 덥거나 습하지 않고, 겨울에 춥지도 않다. 그렇다고 상하수도 시설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거나 교통에 문제가 생길 만큼 눈이 쌓이는 일도 없다. 비가 자주 내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비도 구슬비나 이슬비처럼 온 듯 만 듯한 비인 경우가 많았기에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프라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그야말로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밴쿠버가 주목을 받으면서 그 사실이 알려졌고 돈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투자하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땅값이 급상승한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중국인들 때문이었다. 단 다른 때와 달리 중국인으로 묶긴 했으나 이 중국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홍콩인이 존재했다.

영국이 중국에게 홍콩을 반환하기로 협정을 맺은 날, 그리고 홍콩이 실제로 반환된 날. 홍콩에서는 2차례의 큰 탈출 러시가 일어났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홍콩 탈출 ‘1세대’, ‘2세대’라고 분류했다.

홍콩 탈출에는 3세대도 존재했는데, 바로 탈출 1세대 2세대로부터 밴쿠버가 살기 좋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홍콩의 상류층(금융인)들이 자신들은 홍콩에서 일하고 가족들을 캐나다(밴쿠버)로 이민을 보낸 것. 이게 바로 3세대였다.

2000년대 들어서며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며 중국이란 나라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이념이 존재하는 나라다. 선부론에 의거해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은 하나둘 생겨났으나 자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의 모순점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사유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부호나 공산당 관계자들은 해외로 돈을 빼돌렸다.

그렇게 빼돌리는 자산은 처음에는 홍콩이나 마카오로 향했고, 그 후에는 전 세계 각지로 향했다. 밴쿠버는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처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 살기 좋은데, 북미대륙 중에서 아시아와 가깝다. 중국에 미련을 가진 이들, 혹은 중국에 사업체를 둔 이들에게 밴쿠버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2006년이면 분명 어느 정도 가격이 오른 시점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무릎 위에서 구매한 정도는 되겠지.’

오늘보다 내일 더 땅값이 비쌀 밴쿠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라는 말이 잘 어울릴 투자이리라.

“자금은 어느 정도나 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그건 고민 좀 해 봐야겠네요. 일단 우리 자금 얼마나 있죠?”

정호준이 WTI 원유 선물을 통해 중국과 싱가포르, 일본 전범 기업, 미국 회사 일부를 털어먹고 쌓은 자산은 710억 달러. 그중 245억 달러를 CDS 선물계약으로 사용했다. CDS계약 체결 후 남은 돈은 약 465억 달러 정도 되리라.

‘광산 매각금도 들어왔으니 돈은 많겠네.’

2006년 6월, 폴류샤에서 광산 매각금 60억 달러가 추가로 입금되었고, 일로샤에서도 200억 달러가 입금되었다. 20억 달러를 곧바로 푸틴의 스위스 계좌로 입금하긴 했지만 말이다.

“정확한 건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700억 달러 정도 될 겁니다.”

분명 245억 달러를 사용했는데 240억 달러가 생겼다.

“CDS 상품 요금도 내야 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으니, 200억 달러를 투입하는 거로 하죠. 되도록 밴쿠버 서부, 남부, 북부, 중부 투자에 주력해 주세요.”

밴쿠버에 어학연수 다녀온 부하 직원들에게 얼핏 들은 거지만 정호준은 밴쿠버 동부 지역이 가장 가난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기에 동부는 과감하게 선택지에서 지웠다.

‘근데 그놈 말이 맞겠지?’

자신이 전해 들었던 정보가 잘못된 게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웠지만 어쩌겠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게 당연한 것을.

“알겠습니다. 그럼 200억 달러로 법인을 설립하고 부동산 투자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조나단은 정호준에게 일거리를 가득 받아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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