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44화 (144/335)

14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4)

꾸준하게 상승하는 로보의 주가를 보며 강현태는 정호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개인적으로 저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란 말을 안 좋아하는데, 이번만큼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있을 겁니다.

“그 말은?”

- 예, 이번에는 서민들이 피해를 입긴 할 거란 말입니다. 소의 범위를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조수도 회장의 다단계에 묶여 있는 자금들이 손해를 보겠죠.

10월과 11월은 세력들과 조수도 회장의 비자금으로 주가를 부양시켰다면 12월과 1월에는 조수도 회장의 다단계에 묶인 JS 그룹 회원들의 자금이나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끌어들인 주변 친지들의 자금이 쏟아지게 될 거다.

왜 처음부터 회원들의 자금을 동원하지 않았냐고? 이유는 단순했다. 조수도 회장이 회원들의 자금을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라 생각하긴 했으나 그 말이 회원들의 돈이 조수도 회장의 돈이란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원 돈 = 내 돈’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기에 자금을 동원하려면 최소한의 이유는 필요했다.

자금을 동원해야 할 최소한의 이유를 10월과 11월. 이 두 달 동안 만들어 낸 거다. 로보의 주가가 100% 상승한 걸, 돈을 번 것을 보여 주며 아직 다 올라간 게 아니라고. 지금 들어가야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회원들을 꼬드긴 것.

“그러니 의원님께서는 1월 중순쯤 언론과 검찰을 동원해서 로보의 정체를 밝히면 됩니다.”

1월 초는 12월부터 동원된 JS 그릅 회원들의 자금과 그 이전부터 주가를 주무른 세력들의 자금으로 매수와 매도가 반복되며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시선에 띄게 될 시점이다.

개인투자자들(개미)에게 로보는 뭔가 큰 호재를 앞두고 미리 정보를 받은 이들이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오른 것처럼 보일 거고,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하나둘 끼어들며 또 한 번의 광란을 만들어 내리라.

정호준이 생각한 D-Day는 개인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며 그들의 자금이 몰리기 시작하기 직전인 1월 중순이었다.

“무서운 놈.”

엔터 작전 때처럼 정호준이 미리 알려 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이 상황이 강현태는 무섭게 느껴졌다. 한 번은 우연이 따라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두 번은 어떤 말로도 깎아내릴 수 없다.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듯한 정호준이 두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해줬으면 됐겠지.’

사람을 써 로보의 공장과 그 내부를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확보한 지 오래였고 정호준은 그 증거를 강현태에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그 말인즉슨 강현태는 정호준이 잘 차려 놓은 밥상 위에 숟가락만 얹는 게 다였다.

일은 자기가 다하고 남이 떠먹는 꼴이었으나 정호준은 개의치 않았다. 돈이라면 많이 벌고 있잖은가?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장희팔 때와 달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만큼 그에 준하는 위험 또한 감수하는 거였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뭐 A급 경호원을 파견해서 지켜 주긴 할 거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사람을 시켜 습격하는 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크게 걱정하진 않지만, 현실이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더 영화 같은 세상이니만큼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트리오플에 소속된 경호원 중에는 대한민국 특전사 출신 또한 존재했다. 주가조작에 참여한 음지세력이나 조수도 회장이 분풀이 삼아 청부업자를 보내더라도 그들을 붙여 주면 강현태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을 거다.

* * *

0607시즌 리버풀은 PSV 에인트호번, 프랑스 보르도,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C조에 배정되었다. 갈라타사라이 말고는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적 있을 팀들이었으나 사실 PSV 에인트호번을 빼면 정호준이 개입하기 전의 리버풀과 비교해도 최소 두 수 이상 아래인 팀들이었다.

그나마 리버풀에게 어려운 상대라고 지목된 PSV 에인트호번은 9월 13일에 본인들의 홈에서 2:0으로 리버풀에게 패배했다. 보르도나 갈라타사라이는 PSV보다 더 참혹한 패배를 경험했다.

0607시즌 개막 이후 리버풀은 FA컵,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카라바오컵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팬들이 설레발을 쳤던 건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팬들이 보기에 올해 리버풀은 정말 일을 내도 제대로 낼 거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주축 선수가 둘이나 아웃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맨유전이 끝나고 검사 결과가 공식 오피셜로 뜸과 동시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 마이크 오언 3주 아웃.

- 알론소 2개월 아웃

오언의 부상은 3주 아웃으로 판명이 났지만, 복귀는 1개월 후라 보는 게 맞았다. 알론소의 공백이 2개월 동안 이어진다는 게 조금 뼈아팠으나 리버풀의 일정은 11월 13일에 개최되는 아스날전 빼고는 빡빡하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돼.’

FA컵, 카라바오컵 대전 상대들은 2부, 3부 팀들이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주축 선수가 부상당한 10월 22일 맨유전 이전에 벌어 둔 승점이 있었다.

리버풀의 성적은 3승 0무 0패.

남은 세 차례의 경기 동안 3연패를 꼬라박지 않는 이상 리버풀의 16강은 거의 확정이었다.

리버풀 팬들과 베네테즈 감독, 리버풀 보드진, 프리미어리그 관계자들까지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리그였다. 프리미어리그 팀은 모두 최소한의 한 방은 갖춘 팀들이기 때문이다.

“베네테즈 감독, FA컵이나 카라바오컵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어떻겠소?”

리버풀 보드진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FA컵이나 카라바오컵의 포기를 권했다.

“선수단 운영은 어디까지나 제 권한입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과 재계약하지 않은 정호준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란 듯이 보여 주고 싶었기에 베네테즈는 오기를 부렸다.

‘증명해 주지.’

리파엘 베네테즈는 최소 더블을 기록한 뒤 재계약을 요청하는 정호준의 제안을 뿌리치고 정호준을 언급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만하면 감독으로서 성공한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은 복수가 되리라.

더블을 기록하면 리버풀이 아니어도 오라고 불러 주는 곳은 수두룩할 것이다. 그렇게 베네테즈가 바랐던 대로 흘러갔다면 좋았으렸만 세상일은 언제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무승부를 노렸던 아스날전은 2 대 1 패배로 끝이 났고, 아스날전 이전에 치렀던 경기 중 한 경기를 무승부로 마쳤고, 아스널에게 패배해 승점이 동률이 된 뒤 다음 라운드에서 미들즈브로에게 1 대 0 패배를 당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선두를 빼앗겼다.

* * *

혼전계약서로 인해 생긴 정호준과 아리아 간의 냉각기류는 11월이 돼서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냉전이 1개월 넘게 이어진 것.

다만 지금까지도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정호준의 탓이 컸다.

아리아의 눈치를 보며 풀어 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숙이고 들어가 아양을 떨며 능청스럽게 관계 개선을 시도하진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행동으로는 조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란 생각으로 그 이상을 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바짝 엎드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뢰를 깬 게 자신임을 알았지만 나이가 어려져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가진 게 많아져서 그런지 괜한 자존심에 바짝 엎드리며 용서를 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쭉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아. 크리스마스에 하려던 걸 일찍 당겨야겠네.’

정호준은 크리스마스에 맞춰 프로포즈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의 결혼이 정략이라는 장르를 띤 결혼이니만큼 프로포즈 없이 식장에서 반지를 주고받는 선에서 끝내도 문제 될 게 없었으나 아리아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고 탈 없이 잘 살았으면 했기에 서운하지 않도록 프로포즈를 준비했었다.

‘혼전계약서를 들이밀어 놓고 서운하지 않게’라는 말은 참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을 테지만. 어쩔 수 없지.’

정호준에게 다행스럽게도 예전부터 미리 준비해 둔 예물이 있어 계획의 변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물을 언제, 어디서 준비했냐고?

‘누르빈스카야 광산을 매각할 때부터 준비했지.’

정호준이 폴류스에 매각한 누르빈스카야 광산은 일로샤에 매각한 부투오빈스카야 광산보다 매장량이 2,000만 캐럿 이상 뒤처지지만 누르빈스카야 광산은 덩어리가 큰 다이아몬드가 자주 채굴된다.

다이아몬드는 알맹이가 클수록 보통의 것과 비교해 수십, 수백 배의 가치를 지녔고 누르빈스카야 광산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채굴된 곳이다. 정확한 수치까지는 기억하지 못했으나 누르빈스카야 광산에서 덩어리가 큰 것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얼핏 들었던 정호준은 폴류스에 광산을 매각할 때 한 가지 부탁한 게 있었다.

“훗날의 와이프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싶은데, 큼지막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면, 제게 그걸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실 수 있습니까?”

정호준은 알맹이가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구입할 권리’를 요구했다.

“제 여자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는데, 러시아 사내가 그걸 거절할 것 같은가? 알이 큰 것을 발견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주겠네.”

광산을 좋은 값에 넘겨받은 폴류스의 입장에서야 정호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정호준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폴류스는 약속을 잘 지켜 주었다.

100캐럿이 넘는 것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덩어리가 큰 것들은 종종 발견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들을 정호준은 폴류스를 통해 구매했다. 정호준이 폴류스의 배려하에 매입한 다이아몬드 광석은 74.82캐럿과 93.74캐럿. 전례에 물가상승률 등을 더한 가격으로 매입했다.

폴류스에서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후 ‘스위셔’란 스위스의 유명 쥬얼리 회사에 가공을 맡겼다. 월가의 인맥을 통해 JHJ Capital의 이름으로 의뢰를 요청한 거라 명성 높은 장인이 가공 및 제작을 맡아 주었다.

목걸이는 다이아몬드 외에도 다른 보석들을 장식해 화려하게 제작되었고, 목걸이와 달리 반지는 다른 것들을 첨가하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로 심플하게 제작되었다. 언제든 여성의 손가락 사이즈에 맞춰 수정할 수 있게 말이다.

‘의뢰를 맡긴 뒤로 6개월이나 기다려야 했지.’

다이아몬드 가공이라는 게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기다림의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가 1시간 30분 정도 늦게 퇴근하도록 잔업을 맡긴 뒤 퇴근한 정호준은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놔둔 거실까지 붉은 장미꽃을 예쁘게 깐 뒤 그 옆으로 붉은 초들을 오와 열을 맞춰 예쁘게 세워 두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시간은 더럽게도 잡아먹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정호준의 핸드폰으로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 대표님, 도착까지 5분 남았습니다.

정호준은 아리아를 경호하는 경호원 중 한 명에게 상황 보고를 부탁했고, 경호원은 흔쾌히 정호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도착까지 5분 남았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정호준은 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테라스에 켜 둔 형광등 때문에 거실을 잠식한 어둠의 짙기는 얕았다. 그런 어둠을 수십 개의 촛불이 밝혔다.

- 엘리베이터 앞입니다.

피아노 의자를 빼서 앉은 정호준은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철컥!

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리차드 막스의 ‘Now&Forever’의 전주를 쳤다. 전주가 끝나고 반주를 하며 정호준을 노래했다.

Whenever I'm weary(내가 지칠 때마다)

From the battles that rage in my head(머릿속에 가득 찬 고뇌 때문에)

You make sense of madness(당신은 그 고뇌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When my sanity hangs by a thread(나의 이성이 한 가닥 실에 매달려 위태로울 때)

I lose my way, but still you(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여전히 너는)

Seem to understand(이해해 주었어요.)

Now and forever(오늘도 그리고 내일도(영원히))

I will be your man(당신의 남자가 될래요.)

가사의 뜻을 생각하면 그들의 상황과 안 맞는 부분이 꽤 있지만 정호준은 ‘Now&Forever’를 모두 부른 뒤 정장 속에서 반지를 꺼내 아리아의 왼손에 끼워 주었다.

“내 행동이 신뢰를 깼다는 걸 나도 모르지 않아요. 이번처럼 내가 먼저 신뢰를 깨는 행동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리아가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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