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2)
Rio Games가 처음 투자금을 받을 때 800만 달러라는 금액을 투자금으로 끌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호준이 1,500만 달러나 되는 거금(?)을 투자한 건 높은 금액을 부름으로써 지분 48%를 받는 것에 대한 태클이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1,500만 달러라는 금액 때문에 정호준이 가져가겠다는 48% 지분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준이 돈을 더 베팅한 데는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버그가 좀 적게 출시됐으면 좋겠네.’
레전드 리그는 2020년대에도 버그가 종종 발생해 한화로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중소기업 인디게임’이란 비아냥 섞인 비난을 받곤 했는데, 게임을 출시한 첫해 발생된 버그량은 2020년대에 발생한 버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류도 많고 횟수도 빈번했다.
훗날 창업자인 브레드 벡과 지크 메릴과 개발자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파커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하는 건 겸손함을 드러내는 발언이 아닌 진심 가득 담긴 발언이었다.
레전드 리그를 좋아했던 한 명의 유저로서 Rio Games가 사람을 좀 더 고용해 시즌 1이 좀 더 완벽한 상태로 출시되길 바랐다.
“수익 모델과 관련해서도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호준은 개발진들이 고민한 뒤 구성했었던 결과물을 그대로 일러 주었다. 게임 챔피언을 구매하는 방법을 게임 돈과 캐시로 살 수 있게 복합 적용하는 것과 챔피언에 스킨을 입히는 형태를 말이다.
“실제로 한국의 유명 채팅 프로그램이나 유명 블로그는 아바타와 블로그를 꾸미는 상품을 파는 걸로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다면, 자신의 챔피언을 꾸미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만으로도 수익성은 충분할 겁니다.”
정호준의 말에 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호준은 그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그러니! 게임의 재미와 퀄리티가 중요합니다. 이점은 믿고 맡겨도 되겠죠?”
수익성과 관련해서 걱정이 많았던 세 사람은 한껏 후련해진 표정을 지었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고 재미있게 만드는 건 수익성을 고려하는 것만큼 어려운 사안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
“중간중간 연락드릴 테니, 평가에 참여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래도 괜찮습니까? 경영에 참견하는 것 같아 조금 꺼림칙한데요.”
“괜찮습니다. 게이머로서의 안목도 뛰어나시고, 사업가적인 식견은 저희보다도 뛰어나시잖습니까? 쓴소리라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시간 내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탄생 과정과 발전 과정을 전부 지켜볼 수 있는 건 나름 특권이란 생각이 들어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요청을 받아들였다.
Rio Games에서 볼일을 마친 뒤 산타모니카 비치 해변을 구경하며 아리아와 시간을 보냈다.
* * *
“……에서 저희의 투자를 거절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절이 워낙 많이 와서일까?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작게나마 고개를 숙였다.
“하아~ 저들이 우리의 투자를 안 받는다는 건데, 찰스가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여섯 번째 거절에 정호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파이를 빼앗아 가려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건 한국이 아니라 세상 어딜 가도 똑같다는 걸 정호준은 미국에서 또 한 번 느끼고 있었다.
JHJ Capital과 SSL Capital은 창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와 다르게 영화 업계에서도 거물급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물 투자 제의는 칼같이 거절당했다.
‘북해의 해적 Ⅲ’, ‘해스 포터 Ⅴ’, ‘거미인간 Ⅲ’, ‘슈X Ⅲ:왕위 쟁탈전’.
최소로 잡아도 7억 달러 매출을 기록할 시리즈물 다섯 개와 성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 세계에 걸쳐 큰 팬덤을 보유해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만화)의 영화화 작품까지.
관람객 입장에서 볼 게 많겠다 싶었으나 이 중 어느 곳 하나 정호준의 투자 제안을 놓고 고민하지 않았다.
“다른 제안서들 이메일로 보내 줄래요? 검토하겠습니다.”
절이 싫다는데 사공이 어쩌겠는가? 다른 데로 가야지.
정호준은 찰스가 이메일로 보낸 시놉시스들을 인쇄해 하나하나 확인하며 최대한 익숙한 내용을 찾아 나섰다. 한참 훑어보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결국 하나 찾아내긴 했다.
‘Prepare For Glory, Sparta!!’
황혼의 저주라는 영화로 주가를 높인 ‘덴 스나이더’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테르모필레 전투를 묘사한 영화였다.
“예상 제작비 6,500만 달러라,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예산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이네.”
사용한 소재가 각광받는 소재도 아닌 데다 예산도 적지 않게 잡아먹는다. 황혼의 저주로 주목을 받긴 했으나 메가폰을 잡은 덴 스나이더 감독의 경력이 미천한 것 또한 불안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관계자들로부터 B급 영화로 전락할 것 같다는 염려를 많이 받은 작품이었다.
물론 개봉한 후에는 ‘This is Sparta!!’란 대사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패러디로 자주 애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말이다.
창업자들을 만나 깊은 인상을 줄 생각이 아니라면 직접 움직일 레벨은 지난 지 오래였기에 정호준은 영화 투자를 담당하는 직원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영화사들의 거절을 보고했던 찰스가 정호준의 연락을 받고 정호준의 사무실로 올라왔다.
“이 영화에 자금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정호준은 인쇄해 두었던 ‘Prepare For Glory, Sparta!!’의 시놉시스를 찰스에게 건네주었다.
“얼마나 투자하실 계획이십니까?”
“이 영화를 찍는 데 필요한 제작비 전부를 우리가 투자할 생각입니다.”
“6,500만 달러 전부 말이죠?”
JHJ Capital이 다루는 자금의 규모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6,500만 달러를 전부 투자하겠다는 발언에도 찰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예, 그나저나 바로 움직여 줘요. 다른 곳에 투자받기 전에 우리가 전액 투자하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미팅 잡아 보겠습니다.”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서를 들고 나갔고, 며칠 후 6,500만 달러의 제작비 중 6,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보고했다.
* * *
학교에 다니며 큰 탈 없이 9월을 보냈고 중간고사를 막 끝냈을 무렵, 정호준은 영화 업계 관계자와 미팅을 갖게 되었다.
“이거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야 잘 지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안식일에 선물을 보내 주셔서 놀랐습니다. 정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서프라이즈’로 큰 성공을 거둔 브래드 버트 감독이 신작을 찍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으러 정호준을 찾아왔다.
차기작에도 투자할 의향이 있다며 차기작을 찍을 때 연락 달라 언급하고 꾸준하게 선물을 보낸 게 나름 잘 먹힌 듯했다.
“그나저나 대표님은 그때보다 더 높이 올라가셨더군요.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뭘요, 아직 멀었습니다. 저는 아직 배가 고프거든요.”
“그러십니까?”
히딩크 감독의 말을 잘 모르는지 브래드 버트는 그냥 작게 웃은 후 표정을 굳히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차기작을 찍을 때 투자해 주시겠다는 말씀 유효합니까?”
“물론이죠. 다만 무작정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시놉시스를 확인한 뒤에 나눴으면 합니다.”
자신이 알던 영화가 아닐 수도 있는 데다 친분이 있는 투자자는 또 다른 문제임을 분명히 밝히는 정호준의 발언에 브래드 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지금 드리면 되겠습니까?”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질문에 답했고 그에 브래드 버트는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정호준에게 건네주었다.
“내용은 확실한데, 아직 제목은 미정이라 임시로 적어 놨습니다.”
‘가제: 요리하는 생쥐.’
브래드 버트가 건네준 시놉시스에 담긴 내용은 정호준이 뇌리에 남아 있는 그 내용이 맞았다. 그럼에도 정호준은 꼼꼼하게 시놉시스를 읽었다. 버트 감독에게 친분이 있어서 투자한 게 아님을 확실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시놉시스를 읽는 동안 조용히 기다리던 버트 감독은 정호준이 시놉시스를 책상 위로 내려놓자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버트 감독님. 이 영화, 제작비가 어느 정도 나올까요?”
정호준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았다. 브래드 버트는 정호준의 질문에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못해도 1억 3,500만 달러는 쓸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버트 감독의 대답을 들은 정호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1억 3,500만 달러. 저희 JHJ Capital이 전부 투자하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예산이 필요하시면, 그때도 다른 곳에 문의하시지 말고 제게 연락해 주십시오.”
다른 투자자들과 파이를 나눠 먹고 싶지 않았기에 ‘Sparta’와 마찬가지로 전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전액을 투자한다는 말에 브래드 버트는 눈을 번뜩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의 믿음, 좋은 영화로 보답하겠습니다.”
* * *
10월이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정호준은 아리아에게 한 가지 서류를 건넸다.
정호준이 아리아에게 건넨 서류의 정체는 이혼 시 발생할 재산분할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혼전계약서였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혼을 걱정한다는 게 웃겼지만 결혼은 현실이란 말이 괜히 세상에 나도는 게 아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지 않았어도, 이혼이란 온갖 이유로 발생한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한 아리아의 인상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미안해요. 지금 아리아가 느낄 기분, 충분히 이해해요. 변명을 좀 하자면 아리아가 좋은 여자인 것도 맞고, 같이 지내보니 우리의 성격이 꽤 잘 들어맞는 것도 같지만.”
망설이며 말을 멈춘 정호준은 이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도 결혼생활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아리아가 아니라도 이 계약서를 들이밀면 누구나 기분이 많이 나빠질 거다. 자신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혼을 염려하는 사람을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서류를 건네기 전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호준은 이 계약서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정호준이 번 돈과 투자해 얻은 스타트업의 지분, 그리고 미국 부동산 신용부도스와프(CDS)로 벌어들일 돈은 재산분할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돈만 많을 뿐이지 이 나라에 그 어떤 기반도 없어요. 아리아랑 멀어지게 됐을 때 내 것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법조계, 정치계 구분할 것 없이 돈과 인맥으로 얽혀 있는 로슬러 가문과 달리 정호준은 돈은 벌었다고 하나 일개 개인이다. 그렇기에 아리아가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게 없는 쪽은 사전에 미리 벽을 쳐 둘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