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41화 (141/335)

14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41)

보인사로부터 인계받은 보인 777-300ER의 내부는 정호준이 주문한 대로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조종석에 바로 뒤편에 마련한 스튜어디스를 위한 공간을 제외하고 반절 이상이 정호준의 공간이었다. 정호준 개인 공간 뒤에는 정호준과 동행하는 경호팀들을 위한 고급 시트와 즐길 거리를 배치해 놓았다.

전용기 내부 개인 공간을 아랍의 왕자처럼 황금으로 도배하거나 욕탕을 만들진 않았지만 주문 제작한 침대부터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과 의자, 긴 비행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당구대와 프로젝터까지 없는 게 없었다.

고용한 정비사들을 통해 몇 차례나 안전 점검을 받은 뒤 정호준은 ‘Rio Games’의 창업자들을 만나러 가는 LA행을 처음 뽑은 전용기의 시승식으로 삼았다.

“내부 인테리어도 그렇고 깔끔하게 잘해 놨네요. 보인사가 신경 좀 썼나 본데요?”

비서로서 정호준과 함께 전용기에 탑승한 아리아는 전용기 내부를 보며 평가를 내렸다.

명품에 익숙지 않은 정호준은 잘 모르겠지만 아리아가 보기에 배치된 가구들은 모두 메이커가 아닌 게 없었다.

“그러게요. 깔끔하니 보기 좋네요. 보인사에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어요.”

침대에 거치된 메트릭스는 라지킹 사이즈라 아리아와 함께 누워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넓었다. 실제로 아리아와 함께 누워 잠을 잤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잠만 잤지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하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긴 한데. 오늘은 아니야.’

사실 하늘 위에서 하는 성관계는 밑에서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으나 후방에는 경호원들이, 전방에는 스튜어디스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에서 성관계를 할 정도로 개방적이고 얼굴이 두껍지 않았다.

스튜어디스들이나 경호원들은 정호준이 부르기 전까지는 결코 정호준의 공간에 침입하지 않을 테지만.

이건 그들이 그의 개인 공간에 침범하니 안 하니를 따지기 이전 개인 성향 문제였다.

LAX 공항까지 약 4시간 좀 넘게 비행이 이어졌다.

‘시승식해서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비행으로 인한 피로가 좀 덜한 것 같은데?’

비행시간이 두 자릿수로 넘어가지 않아 확실한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체감상 피로감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 * *

Rio Games는 2006년 9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창업되었다. 회사를 창업한 브레드 벡과 지크 메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트라이브 워 III : 더 프로즌 쓰론’의 커스텀 제작맵 ‘DonTa:All Star’의 개발자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파커(주인수)를 영입하는 일이었다.

중간 과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Rio Games는 스티븐 파커의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한 후 인턴들을 다수 고용해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 그렇게 레전드 리그라는 게임의 기본적인 틀 제작을 완료했다.

인턴을 고용해서 써먹은 덕에 경력자들을 데려다가 쓰는 것보다는 임금이 적게 들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인건비가 원체 비싼 나라다. 인턴으로 고용했다고 우습게 볼 수 없었다. 150만 달러, 한화 20억에 달했던 초기 자본금은 금방 메말라 버렸다.

결국 창업자들은 완성된 아이템을 견본으로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투자자는 쉽사리 구하지 못했다. 레전드 리그는 ‘싱글 플레이어 모드’와 ‘플레이 모드’로만 나뉘어 있을 뿐, 달리 뚜렷한 수익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선사업도 아니고 수익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어떤 투자자가 달갑게 여길까? 땅을 판다고 돈이 나오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다.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졌음에도 두 창업자는 어찌어찌 투자금을 끌어오긴 했다.

‘Rio Games’를 창업하기 전 브레드 벡은 거대 컨설팅 회사인 ‘Bain&Corporation’에서 근무했고 지크 메릴은 ‘America Bank’에서 근무했다. 금융권이나 투자업계에서 근무했던 만큼 나름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둘 다 이 바닥에서 일한 시간이 길지 않았던 터라 인맥이 튼튼하지는 못했다는 거였다.

2000년대 중반은 급부상한 중국이 미국 국채를 비롯해 전도유망한 미국의 스타트업에 일명 차이나 머니라 불리는 돈을 쏟아붓던 시기였다. 당장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을 제시할 수 없었던 Rio Games는 그런 이유로 중국 자본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브레드 벡과 지크 메릴이 붙잡은 줄은 ‘틴트(Tint)’라는 기업으로, 중국에서 게임을 유통하고 채팅 프로그램 ‘위톡’을 서비스하는 기업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틴트의 자금을 포함해 총 8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 냈고 레전드 리그가 발전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틴트가 지분투자를 넘어 Rio Games란 기업에 욕심을 내게 되지.’

성공한 것을 지켜보고 더 크게 성공할 것을 확신한 틴트는 자금을 쏟아부어 다른 투자자들이나 창업자들로부터 Rio Games의 지분을 인수했다.

2011년 2월까지 틴트가 인수한 지분 총합은 93%. 93%를 확보하는 데 총 4억 달러를 사용했다 알려졌고, 이후 2015년 12월 16일에 남은 7%의 지분도 마저 흡수해 틴트가 Rio Games를 완전히 사유화하기에 이르렀다.

‘틴트가 참 좋은 시점에 승부수를 던진 거지.’

레전드 리그는 2018년 기준 연말 기준. 게임 판매량, 로열티, 2차 3차 판권 등 낼 수 있는 모든 수익을 합계해 누적매출 83억 9,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화로 환전하면 10조가 넘는 돈이었다.

게임이 궤도에 오른 후로 매년 최소 10억 달러의 매출은 올려 주고 누적 매출은 84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의 지분 93%를 겨우 4억 달러에 가져왔으니 장사를 참 잘한 거다.

‘미안한데, 이번에는 내가 선수 좀 칠게.’

정호준이 레전드 리그에 선수 쳐 투자해 틴트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 까먹으면 이보다 더 좋은 결과물은 없다.

‘내가 중국에 너무 적대적인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래저래 갚아 줘야 할 게 많은걸?’

정호준은 한국인으로서 인접국이 조금이라도 늦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과 패권국인 미국 시민권자로서 패권을 두고 다투는 상대로 부상하는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어지길 바랐다.

‘진짜 미국이든 한국이든 내가 애국하고 있는 걸 좀 알아줘야 할 텐데.’

돈 번 것을 숨기고 있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정호준의 감정은 그랬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JHJ Capital 호준 정입니다.”

Rio Games의 공동 창업자 브레드 벡과 지크 메릴은 경호원을 바리바리 대동한 채 호텔 카페에 들어와 인사를 건네는 정호준을 보며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너무 어리잖아?’

‘이 꼬마가 그 월가에 명성이 자자한 JHJ Capital의 오너라고?’

동양사람이 서양 사람의 나이를 구분하지 못하듯 서양 사람 또한 아시안의 나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의 나이가 서른이 안 됐다는 것에 두 사람은 전 재산을 걸 용의가 있었다.

“Rio Games 창업자 브레드 벡입니다.”

“브레드 벡과 함께 Rio Games를 창업한 지크 메릴입니다. 이쪽은 스티븐 파커라고 디자인과 개발 부문에서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스티븐 파커입니다.”

Rio Games의 창업자들은 공돌이 기질과 덕후 기질, 금융종사자들이 갖는 성향을 모두 가진 뭔가 상대하기 어렵게 여겨지는 잡종 유형의 인간이었으나, 스티븐 파커는 딱 공돌이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계산적인 모습보다는 진심을 보이며 공감을 살 필요가 있었기에 정호준은 먼저 나서서 게임에 대해 썰을 풀었다.

“돈타 같은 게임을 제작하고자 한다고 들었습니다. 돈타를 즐겨 했던 게이머로서 꼭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대표님도 돈타를 플레이하셨습니까?”

“정확히는 저는 돈타 올스타즈가 아닌 한국버전으로 갈라진 하보크를 즐겨 플레이했습니다. 그냥 인터넷 공방에서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클랜전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번 생애가 아닌 1회차 때의 이야기로 군대를 마치고 복학해 저녁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보크를 플레이했다.

“엘프 진영에서는 크립을 돌았고, 몬스터 진영에서는 탑라인을 섰어요.”

게이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용어들을 나열하는 정호준의 발언에 얼타는 모습을 보이던 스티븐 파커와 달리 긴장을 하되 냉정하게 계산하려 했던 두 창업자는 공감이라는 덫을 밟았다.

“한국에서 유행했다는 하보크 저도 해 본 적 있습니다. 그것도 정말 잘 만들었던데요?”

“원 버전도 따로 시간을 내서 즐겨 보긴 했는데, 저는 한국버전인 하보크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근데, 여러분이 만들려는 게임에서도 안티포션을 사용하나요?”

“아뇨, 이번 게임에 안티포션은 적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타겟팅 스킬과 논타겟팅 스킬을 따로 분류하고, 논타겟팅 스킬을 얼마나 잘 회피하냐에 따라 실력이 나뉘도록 설계 중입니다. 논타겟팅 스킬이 리스크가 있는 만큼 데미지를 높여 주고 쿨타임을 좀 짧게 만들 생각입니다.”

남자는 커도 다 애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남자 넷이 게임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그 때문에 본격적인 사업 이야기로 넘어가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표님, 도대체 언제까지 게임 이야기만 할 건가요?”

네 사람이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기색 없이 게임 이야기만 날을 샐 것 같은 분위기에 더는 지켜보기만 하는 게 어려웠던 아리아가 태클을 걸었다. 아리아에 의해 수다가 진압된 후에야 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좀 많이 샛길로 셋네요. 대표님께서 이렇게 게임에 관심이 많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 사람은 게임으로 어디 가서 꿀리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저야말로 오랜만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 이야기해서 즐거웠습니다.”

지크 메릴은 아리아 몰래 서로 시선을 마저 교환한 후 장난기를 빼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진행하죠. JHJ Capital이 계획한 투자 규모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Rio Games 지분 48%를 대가로 1,500만 달러 투자하겠습니다. JHJ Capital의 투자, 받으시겠습니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는 말마따나 중국 기업 틴트가 그랬던 것처럼 정호준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Rio Games의 창업자들이 돈을 필요로 할 때마다 지분을 대가로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레전드 리그 대회를 개최했으면 좋겠습니다. 상금은 전액 JHJ Capital이 후원하겠습니다.”

레전드 리그가 세계적으로 히트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레전드컵이라는 대회를 통해 존재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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