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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박기태를 응원했으나 그렇다고 직접 나서서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의 사적인 도움은 일절 제공하지 않았다.
'외박 나왔을 때 번호 교환했으니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
김은주가 박기태를 고백을 받든 거절하든 간에 결과와 과정 모두 박기태가 감당할 몫이란 것쯤 40년을 산 정호준이 모를 리 없잖은가?
더군다나 애초에 박기태는 다가가도 될지 정호준에게 허락을 구할 뿐,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괜히 먼저 나서서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지.'
만약 박기태가 간곡하게 부탁했다면 정호준은 분명 어쩔 수 없이 나서긴 했을 거다. 김은주가 그에게 호감을 가졌고 정호준도 김은주에게 호감 비스름한 감정을 가졌지만, 정호준에겐 김은주보다 박기태가 더 소중한 인연이었으니까.
박기태가 정호준이 곤란하지 않도록 알아서 선을 지켜 주고 있는데 괜시리 먼저 선을 넘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김은주와의 썸을 이유로 정호준은 박기태와 함께 보내려 계획해 놓은 시간이 줄어들었다.
최소 닷새는 함께할 거라 계획했는데, 부친과도 시간을 보내고 대학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김은주도 따로 만나고 이래저래 바쁜 박기태의 일정 탓에 함께 보낸 시간은 첫날 포함 사흘이 전부였다.
뭔가 박기태에게 놀아 주길 갈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외롭긴 하다.'
한국에 있던 1회 차 때도 박기태 이외엔 만나는 사람이 몇 안 되었고 그마저도 박기태처럼 2주에 한 번꼴로 만나는 게 아닌 분기에 한번 볼까 말까 했지만. 그마저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걸 미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다.
기본적으로 경계심이 많은 성격에 쥔 것도 많은지라 그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란 생각을 하며 멀리한 탓에 친구가 없었다. 아리아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 덕분에 그 외로움이 조금 가시긴 했지만.
연인이 주는 충족감과 친구가 주는 충족감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박기태를 마중하며 강원도행을 선택했다.
"……."
"……."
경호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며 박기태와 대화를 이어 갔다. 휴가 나온 뒤로 핸드폰을 쥐고 살며 문자를 이어 간 덕분에 김은주를 만나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큰 진전은 없단다.
'뭐 어쩌겠어? 지 복이지.'
"몸조심하고. 좀 있으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병장이니까, 혹시 화나는 일 있더라도 한 번쯤 참아라."
선진병영을 이유로 '마음의 편지'가 생활화된 2010년대 중반과 달리 2006년은 한국 사회와 기업들이 그러하듯 마음의 편지를 쓴 당사자를 더 혐오하고 깎아내리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마음의 편지에 신고당해 군 생활이 늘 거라는 걱정은 별로 없었지만 혹시 몰라 조언하기는 했다.
"근데, 가기 전이니까 하는 말인데, 돈도 돈이지만 너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별로야?"
"아니, 나는 바뀐 지금 모습이 더 좋네.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대하는 거지?"
곧바로 대답이 이어지지 않자 박기태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다가 문을 열고 나섰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왔어. 결혼 준비 잘하고. 청첩장 보내면 아버지랑 같이 꼭 찾아갈게."
"그 전에 전역하면 미국으로 날아와."
"시간 되면. 조심해서 들어가라."
비싼 척하는 박기태의 능청을 끝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갖게 된 만남은 끝이 났다.
* * *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박기태를 만나기까지 1주 이상의 시간을 기다렸었다. 그 시간 동안 아리아는 개인 운동은 하되 그 외의 시간을 집에서 뒹굴며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지만 정호준은 아리아와 달리 취미 생활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태양과 반딧불이가 내는 밝기를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중국이 중국의 손형민이라며 밀어주는 축구 스타 유레이가 실력 차를 합리화하기 위해 습관처럼 뱉은 말이 있다.
'조금이라도 일찍 유럽에 나갔어야 했다', '본인이 10대 때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큰 차이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과 같은 말들이었다.
유레이가 10대 때 유럽에 나가 도전했다고 그가 손형민처럼 성장했을 거란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유럽에 나가서 축구를 배우는 게 좋다는 말만큼은 정호준도 동감하는 사안이었다.
유학을 가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는 게 좋다는 건 굳이 스포츠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잖나?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러 유학을 가든 어학을 목적으로 가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는 게 더 효과적이란 건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용되는 진리였다.
어쨌든 대한민국 FC가 1회 차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고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돈과 환경을 가졌기에 정호준은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그냥 놔둬도 알아서 세계 제일을 다투는 윙어로 성장할 손형민이나 이미 K리그 구단에 합류해 선수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의 쌍호(雙虎) 이청호와 기준호를 제외한 유럽파들을 찾아다녔다.
윤석훈(90년생), 지동훈(91년생), 권창현(94년생), 황형찬(96년생)
위 네 명은 분데스리가나 프리미어리그(챔피언십)에서 1년 이상 버티며 선수 생활을 이어 간 재능 있는 선수들이었다. 제일 어린 황형찬은 이제 막 초등학교 저학년 끝자락이었고 나이가 많은 윤석훈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정호준은 위의 다섯 명을 찾아가 리버풀 유소년팀으로 축구 유학을 올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더 정확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선해 주겠다는 의사를 부모에게 전달하게 함으로써 선수와 선수의 보호자(부모)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피파 규정상 보호자가 함께 따라가야 합니다. 최소 6년간은 구단 차원에서 일자리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주급은 사치를 부리기는 불충분하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수준은 될 겁니다."
피파는 유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자(부모)가 한 명은 함께 거주하며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도록 권고한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따로 일자리를 만들어서라도 8년 동안은 일을 제공해 주겠다는 조건을 계약서 조항에 적어 주었다.
계약서를 빠르게 훑어본 지동훈의 부친 지정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대표님. 그 계약서에 보면 시험을 보게 하겠다는 조항과 결과물에 따라 성과금을 지급하겠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정확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계약서에 적혀 있는 성과금은 2개월 동안 받을 주급 모두 더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적혀 있는 그대로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하는 게 영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빠른 적응을 위해 통역사 역할을 겸할 개인 교사를 개개인별로 붙여 줄 겁니다. 제가 따로 고용한 영어 강사들의 상의해서 낸 리스닝, 스피킹시험에서 선수들이 합격점을 받으면,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성과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축구를 하는 건 선수 본인이라 따로 도움을 주기 어렵지만 공부는 부모가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학습력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부모가 직접 관여해 영어 공부에 힘쓰도록 함으로써 적응을 돕는 일종의 미끼였다.
"부모님들께서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재능이 부족해 방출당하거나, 오퍼를 받아 다른 리그나 2부리그 팀으로 이적해도 약속했던 기간은 고용을 유지해 드릴 겁니다."
예외인 이들을 제외하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 할 게 없는 게 바로 부모라는 존재다. 자식이 재능을 개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모자라 거주지 제공은 물론이고 부모의 직장까지 신경 써 주는 정호준의 호구 같은 제안을 거절하는 이는 없었다.
의심이 많은 이는 자리에서 사인하는 대신 변호사를 따로 만나서 계약서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호준은 전원으로부터 사인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출국 날짜는 8월 16일입니다. 그때까지 주변 정리를 끝마쳐 주십시오."
* * *
함께 떠날 사람의 수가 많을 걸 예상한 정호준은 항공사에 연락해 전세기를 미리 빌려 뒀다. 부모들에게 고지했던 8월 16일 전세기를 타고 존 레논으로 향했다.
전세기에는 당연히 아리아와 경호팀, 그리고 유망주와 그들의 부모들과 동승한 상태로 정호준과 아리아가 오롯이 일등석을 사용했고 경호팀과 선수 및 가족들이 비즈니스석을 사용했다.
정호준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궤도에 오른 것을 확인한 뒤 비즈니스석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해 선수 부모들에게 표를 건넸다.
"8월 19일 프리미어리그 개막전과 2라운드 티켓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목표하는 무대가 어떤 곳인지, 팬들이 얼마나 거대한 열광을 보내는지 알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 또한 동기부여의 일환이었다.
한국 K리그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월드컵 당시 한국의 열기를 경기마다 동원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직관하며 아이들이 저 무대를 꿈꾸길 바랐다. 리버풀이 개막전을 그들의 홈구장인 안필드가 아닌 원정경기로 치르게 돼서 정호준은 2라운드 티켓까지 선물로 주었다.
한국항공에서 빌린 전세기는 별 탈 없이 존 레논 공항에 착륙했다. 정호준에게 미리 연락받았던 리버풀 관계자는 선수와 선수의 가족들의 픽업해서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그들의 가족을 붙잡고 정호준은 한 가지 충고를 남겼다.
"제가 이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도와주는 건 한국 국적을 가진 재능 있는 선수가 성공하길 바라서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격 없는 선수의 콜업을 지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때문에 생긴 사고를 제외하면 사고 쳐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매일 일로정진하고 겸손하십시오."
정호준이 푸시해 준다고 들떠서 갑질하고 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확실한 경고를 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수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하겠습니다."
훈련장 가까이 위치한 2층짜리 저택 두 채에 네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걸로 결정 났으니 알아서 갈라서 살리라.
"개막전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돈 쓴 값은 해야 할 텐데요."
구단주가 보고 있는 경기에서 경기력이 나빠 패배하면 감독도 감독이지만 보드진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정호준과 달리 에이든 무어 단장은 베네테즈 감독에게 호의적이기도 한 만큼 감독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승리하기를 주문했다.
8월 19일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아리아와 경호원들을 동반한 채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브레이몰 레인 VIP실에서 경기를 직관했다.
"축구가 이렇게 인기 있고 열기 넘치는 스포츠였나요?"
경기가 시작하기 전임에도 구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축구보다 다른 스포츠를 좋아하는 미국에서 살아온 아리아와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럽에서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종교 같은 느낌이라서요."
You fill up my senses.
Like a Gallon of Magnet.
Like a packet of Woodbines.
Like a good pinch of snuff.
홈팀인 셰필드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고. 원정이어서 팬의 수가 적음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리버풀 원정팬들 또한 응원가를 목청 터져라 불러 댔다.
Walk on, walk on.
With hope in your heart.
And you'll never walk alone.
You'll never walk alone.
양팀 팬들의 응원가들이 울려 퍼지는 것을 배경음 삼아 에스코트 키즈들과 함께 선수들이 입장했고 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막전이어서 그런지 경기 초반에는 서로 주고받으며 팽팽하게 공격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이루었다. 균형이 깨진 것은 전반 24분 리버풀의 첫 골이 나온 뒤부터였다.
'사실 좀 걱정했는데, 잘하네. 역시 빨강 토레스란 건가?'
토레스가 리버풀 입단을 1년 앞으로 댕겼음에도 빨강 토레스는 전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제라드의 스루패스를 받은 토레스가 가볍게 밀어 넣으며 첫 번째 골을 터트렸다.
만회골을 넣으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막아 내다 역습 중에 두 번째 골이 터졌다.
"골~! 리버풀의 추가골입니다."
수비수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알론소는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대지를 가르는 패스로 공을 전방으로 전달했고 패스를 받은 마이크 오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을 터트려 발롱도르 위너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리버풀 잔인합니다. 결코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줍니다."
후반전 들어선 뒤로 추격골을 하나 먹히긴 했지만 골을 먹힌 뒤 5분도 채 되지 않아 프랑크 리베리의 센터링을 이어받은 제라드가 원터치 발리슛으로 추가골을 넣으며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추격 의지를 뿌리쳤다.
정호준의 주도하에 영입한 선수들은 모두 뛰어난 활약상을 보이며 리버풀은 개막전을 3:1 승리로 이끌었다.
"NFL만큼 터프하진 않은데, 재밌긴 하네요."
정호준이 리버풀 구단을 소유했기에 아리아와 경호원들은 리버풀을 응원했고 응원한 팀이 시원한 경기력을 보여 주며 승리하니 축구라는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다.
"재밌었다니 다행이네요. 경기력을 보니 돈 쓴 가치가 충분하네요,"
정호준은 06-07시즌 리버풀이 개막전에서 어떤 성적을 냈는지 알지 못하나 영입한 선수들이 모두 활약해 만족했다.
회귀 전 리버풀은 1:1로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비겼다. 비긴 것도 페널티킥으로 겨우 동점골을 넣었었다는 1회차 때를 고려하면 정호준의 투자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