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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37화 (13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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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의 지시로 폴류스 때처럼 단기간에 대금 지불해 준다면 값을 깎아 주겠다는 제안을 건넸지만 페레즈는 폴류스의 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일로샤 측에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제안을 위에 전달하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사라진 알렉세이 오를로프가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으나 알렉세이 오를로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페레즈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귀사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받아들일 거란 생각을 안 한 터라 잠깐 멍청하게 눈을 껌뻑인 페레즈는 이윽고 표정과 정신을 수습하며 물었다.

"말씀하시죠. 제 선에서 해결이 가능한 부탁이면, 이 자리에서 바로 수락하겠습니다."

페레즈는 보험을 깔면서도 되도록이면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계약서는 350억 달러에 광산을 매각하는 걸로 작성하고, 저희 쪽에서 알려 드릴 스위스 계좌로 20억 달러를 따로 송금해 주시지요."

'뇌물을 달라는 건가?'

당당하게 커미션을 챙겨 달라는 말에 페레즈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러시아답다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게 커미션도 정도란 게 있잖은가. 천만 달러 단위로 받아도 뇌물로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무려 2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뇌물로 달라고 말했다.

통이 커도 너무 크다.

대체 이렇게 간덩이가 부을 대로 부은 인간이 누굴까 궁금해 질문을 하고 말았다.

호기심이 제 명대로 못 살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란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혹시 스위스 계좌의 주인이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계좌에 주인은 크렘린입니다. 장난치거나 이 이면 거래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이 발생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이건 협박이 아닙니다. 귀하와 귀사를 위해 하는 충고입니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새어 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비밀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는 게 비밀을 지키기 용의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빨간 물이 빠진 러시아지만 그럼에도 크렘린은 여전히 세계에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아직 방사능 홍차 사건이 벌어지기 전임에도 말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페레즈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

크렘린이 엮였다는 말에 급속도로 표정이 변하며 긴장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페레즈의 행동 하나하나가 오를로프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 주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페레즈는 자신이 괜한 것을 물어봤다며 속으로 후회한 페레즈는 자신의 권한으로는 약속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간을 벌고는 정호준에게 연락해 위와 같은 내용을 모두 이야기했다.

- 대표님, 크렘린이 엮여 있답니다. 이 거래 계속해야 합니까?

"두려우신 겁니까?"

러시아 국민들이 서유럽 세력들을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듯 서유럽 국가들 또한 러시아란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호주가 아시아에 위치해 있긴 하나 주류 세력은 어디까지나 영국 이민자들이었다.

그리고 페레즈 또한 영국 이민자 출신이었다.

- 그게…….

다만 아무리 정호준이 자신보다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라지만 본인보다 한참 어린 정호준에게 겁을 먹었다는 말은 할 수 없어 말꼬리를 끌었다.

"어차피 일로샤는 공기업입니다. 크든 작든 크렘린과 관련이 있죠. 우리의 제안을 받아 줬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 …….

"저와 페로즈 사장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큰일 없이 지나갈 일입니다. 정 부담되시면 따로 경호팀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부담이시라면 수호이 로그 금광 작업을 통제해 줄 COO(Chief Operating Officer)를 고용하세요. 허락하겠습니다."

메이슨 페레즈는 COO 없이도 잡음 하나 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 왔다. COO를 고용하는 건 제 손으로 고연봉자를 하나 만들어 내는 꼴이었지만 그 정도의 돈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 그럼 그렇게 해 주십시오. 러시아의 어두운 면과 관련되게 됐는데, 다시 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계약서 작성을 마치고 COO 후보군을 추려 메일로 보내 주세요. 검토하겠습니다."

페레즈가 공포감에 젖었지만 정호준이 생각하기에 일로샤의 제안은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먼저 폴류스는 거절했는데 일로샤는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간단했다. 회삿돈 = 내 돈이 성립되지 않는 건 폴류스와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공기업은 성과를 필요로 했다. 정확히는 크렘린에서 성과를 필요로 했다.

몇 번 이야기하지 않았나. 독재자는 항상 명분과 치적을 갈구한다고.

공기업이 이루어 낸 성과는 정부가 이룩해 낸 성과라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공기업은 정부의 밀접한 연관을 가진 기업이었다.

투자 유치를 위해 관동지방과 시베리아 지역에 탐사권을 주는 건 러시아 정부가 승인한 일이었기에 발견한 것을 빼앗을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를 절약하며 광산을 되찾은 일은 국민들에게 크렘린의 성과라고 알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빨간 맛에 한번 물들었었고 한국과 다른 문화권에 지금도 독재국가로 분류되는 러시아지만, 러시아 국민들이 그렇게 특이한 사고 관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도 사람 사는 곳이잖은가? 자세한 건 모르더라도 정부가 외국 기업을 상대로 수조 원을 절약했다 발표하면 누구나 정부의 행보를 칭찬할 거다.

'기사는 당연히 캐럿당 550불로 계산된 거 대신 570불로 계산해서 발표하겠지.'

다이아몬드를 캐럿당 570불로 계산하면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지분 가치는 약 408억 달러에 이른다. 정호준이 먼저 제안했지만 협상을 통해 정부가 58억 달러를 절약했다고 홍보하리라.

'스위스 계좌로 20억 달러를 넘기라는 것도, 전형적인 독재자의 행보잖아?'

당장은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쫓겨날지 모른다. 쫓겨난 뒤 비참한 삶을 살지 않도록 자산을 적당히 해외로 빼돌리는 건 왕정, 공산당,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 등 체제 구분할 것 없이 만국 공통으로 독재자라면 누구나 보이는 행보였다.

"페레즈 씨. 깨끗하게 세탁 마친 돈으로 20억 달러 보내 주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러시아에 사는 것도 아니고 크렘린 독재자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정호준은 거리낌 없이 협조하겠다는 전언을 보냈다.

기관에서 추적하지 못하도록 깨끗한 돈을 보내 주겠다는 정호준의 말에 호의를 가져서일까?

계약금조로 200억 달러를 입금하고 2007년 1월에 80억 달러, 5월에 70억 달러를 지급하는 걸로 계약서 작성을 완료했다.

[일로샤,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로부터 350억 달러에 다이아몬드 광산을 인수. 매장량은 9,300만 캐럿으로 추정!]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협상으로 58억 달러를 절약하다!]

러시아 정부는 계약을 체결한 다음 날 광산 매입과 관련해서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사의 내용은 당연히 크렘린에 유리한 방향으로 쓰여 있었다.

* * *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는 호주에 설립된 법인이지만 마인사를 JHJ Capital이 인수했다는 정보는 월가에 적을 둔 투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아리아 로슬러 또한 JHJ Capital이 빅토리아 마인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 인수 기사를 보자마자 인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너무 손해 보고 판 거 아니에요? 혹시 러시아 은행하고도 CDS 계약을 체결한 건가요?"

정호준으로부터 미국 부동산과 관련한 사안을 모두 들었던 터라 아리아는 정호준이 무엇을 염두하는지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네 맞아요. 러시아 은행과 CDS 계약 체결한 게 있어서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호이 로그 금광을 빼고 다 정리하려고요. 내년 5월 이전까지 대금 지불을 완료하는 조건을 제안했어요."

"수호이 로그 금광은 왜 놔두는 거예요?"

"서브 프라임 사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 달러의 가치가 낮아질 거예요. 달러가 안정세를 되찾기 전까지 금값은 계속 상승할 테니까요. 지금 팔기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정호준의 설명에 궁금했던 의문을 해결한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바꿨다.

"오늘 저도 함께 가도 되는 거죠? 호준의 하나뿐이라는 절친인데 친해지고 싶어요."

정호준의 절친이라던 박기태의 휴가 첫날이다. 휴가 나온 첫날부터 약속을 잡은 것을 확인했기에 아리아는 자신도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남자들만의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한데, 데려가야 하나?'

남자만 자리한 술자리와 여자가 낀 술자리는 속성이 달라진다. 둘이서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약혼녀인 아리아를 소개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 녀석이 8박 9일 동안 휴가를 나온 만큼, 둘이서 술 마실 기회는 이후에도 있을 거다.'

"그렇게 해요. 약속 시간은 오후 6시로 잡았으니까, 5시 45분까지는 준비를 끝내 줘요."

여자의 준비 시간과 남자의 준비 시간이 다르기에 정호준은 주의를 주었다.

"제가 약속 시간을 어긴 적이 있나요?"

"없죠, 그래도 혹시나 하고요. 남자들이야 시간이 얼마 필요치 않지만, 여자들은 다르잖아요? 게다가 오늘 샵까지 잡았잖아요. 그럴 필요 없다니깐."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정호준의 하나뿐인 절친을 만나는 자리인 만큼 힘을 주고 나갈 계획을 짠 아리아는 한국 연예인들이 자주 애용한다는 샵을 방문하기 위해 경호원들과 함께 문을 나섰다.

* * *

아리아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강하고 짙은 화장을 아름답다 생각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과 달리 2000년대 중반부터는 조금 자연스러운 화장이 유행했고, 그 모습을 더 아름답게 생각했던 정호준은 샵에 다녀온 아리아의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 너무 예쁜데요?"

역시 비싼 건 비싼 값을 한다는 걸 증명하듯 정호준이 잠깐이지만 넋을 놓고 볼 정도로 아리아는 아름다웠다.

"내 친구한테 잘 보이는 게 아니라 꼬시려는 거 아니에요?"

아리아는 정호준이 본인도 모르게 헛소리를 할 정도로 예뻤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그나저나 음식은 다 시켰어요?"

"이제 시켜야죠. 30분이면 충분히 오고도 남을 시간이니까요."

"그럼 얼른 시키죠."

아리아가 한국에 와서 편리하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배달이었다. 피자집을 제외하면 배달 서비스를 진행하는 음식이 없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웬만한 음식은 전부 배달이 가능했다.

"저는 보쌈 주문할게요. 호준은 다른 거 주문해요."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는 김치는 그녀의 취향과 안 맞았지만 보쌈을 시켰을 때 함께 나오는 보쌈김치는 달달해서 그런지 미국인인 그녀의 입맛에서도 잘 맞았다.

완전하진 않지만 입맛이 한국화된 거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음식을 시키면서도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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