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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36화 (13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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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관광명소인 만큼 볼 것도 많았고 가이드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반도 반 바퀴를 도는 동안 개인적으로 계획을 짜서 이동해 왔던 지금까지의 여행과 달리 제주도에서는 가이드까지 따로 고용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관광을 즐겼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동선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지만 잡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손님, 혹시 그 머시기냐, 험한 생활하시는 분들 아니시죠?"

정호준이 가이드로 고용한 중년 남성은 정호준이 대동한 경호팀을 보며 정호준을 마피아 두목이라 의심했다. 보통 이런 질문은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언이었으나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가이드는 어렵게나마 질문을 던졌다.

"예? 하하하, 아닙니다. 저분들은 저희가 고용한 경호원이에요. 만약 가이드님께서 방금 하신 말을 저분들이 알아들었으면 화를 냈을걸요."

어렵사리 질문을 던진 가이드의 물음에 정호준과 아리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정호준을 경호하는 경호팀은 트리오플에서도 손에 꼽히는 능력자들만 모아 놓은 집단. 흑인, 백인, 라틴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출신과 인종이 다양했고, 덩치도 다들 한 덩치 한다는 말로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다들 실전형 근육이 가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들 얼굴이나 신체에 큼지막한 흉터를 하나씩은 달고 있으니 가이드가 경호팀을 해외에서 건너온 마피아로 의심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해하는 것과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웃음이 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뭐가 그렇게 웃기십니까?"

전문적인 대화는 어렵지만 일상 대화는 어느 정도 알아듣고 말하는 레벨이 당도한 아리아와 달리 경호팀은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눈치란 것은 모두 탑재되어 있었다. 특히나 경호원이라는 직업은 눈썰미와 눈치를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종이었기에 정호준과 아리아가 웃는 이유가 자신들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가이드분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웃었어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기분 상하지 않게 대충 둘러대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첫 대면에서 잠깐 큰 웃음을 주는 해프닝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여행은 별일 없이 평탄하게 이어졌다.

제주도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전신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빼면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다.

'삭신이 쑤시고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오랜만의 등산도 주요인 중 하나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승마였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 때문일까? 제주도에는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많았다. 개중에 하나 선택해서 다녀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문제는 아리아가 승마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일출봉과 해안가의 경치를 즐기며 승마를 즐길 수 있는 쇠와 꽃 승마장, 해발 530m에 위치한 10만여 평의 대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게 가능한 어스생 승마장. 이틀 간격으로 이 두 승마장에서 2시간 넘게 말을 탔다.

게다가 이틀 쉬는 동안 중간에 한라산 등반까지 하며 몸을 굴렸으니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호준도 승마를 배우긴 했지만 교감을 나누던 말이 아니고 경력도 그리 길지 않은 터라 말을 다루는 데 조심스러웠으나 아리아는 달랐다. 금방 교감을 나누더니 말과 거의 한 몸이 된 것 같은 뛰어난 승마술을 보여 주었다.

'멋지긴 하네.'

말을 제 몸처럼 다루면서 승마를 즐기는 아리아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멋졌다.

아리아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승마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한 정호준은 속으로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생각했으나 쓸데없는 노력이란 걸 알지 못했다. 아리아는 어렸을 적부터 승마를 배웠고 1회차 때는 아예 승마 선수로 활동하기까지 했을 만큼 승마에 진심이었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부관계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터이니 아주 쓸데없지는 않을 테지만 승마에 한해 정호준이 아리아에게 면을 세울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물론 정호준이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 *

고용주가 한국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동안 정호준으로부터 광산을 매각하라는 지시를 받은 메이슨 페레즈는 일로샤 담당자와 만남을 가졌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빅토라이 라이온 마인'의 CEO. 메이슨 페레즈입니다."

일로샤 측에서 나온 무리가 다가오자 페레즈는 명함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에게 명함을 건네며 본인을 소개했다.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 알렉세이 오를로프입니다."

의례적으로 뱉은 말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알렉세이 오를로프 이사가 건넨 사과에는 미안하다는 감정이 일절 실려 있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온 타국의 정상이나 장관급 인사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대통령을 닮았는지,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메이슨 페레즈가 자신을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누가 러시아 놈들 아니랄까 봐.'

알렉세이 오를로프가 보이는 태도가 일로샤의 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만 욕할 뿐 흥분하거나 분노를 보이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으로 거래를 망치는 건 삼류나 할 법한 짓 아니던가.

"괜찮습니다. 차가 막혔으면 그럴 수도 있죠."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들이 급부상하며 러시아 내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지만 올리가르히들이 아무리 사세를 키웠어도 정부 소유의 공기업만큼 힘이 세진 않았다. 특히 일로샤는 러시아 내에서 다이아몬드와 연관된 모든 사업을 독점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이다.

일로샤가 공기업의 허울을 뒤집어썼지만 사실상 푸틴 대통령이 주무르는 기업이라 봐도 무방한 곳인 만큼 일로샤의 이사직은 러시아에서 큰 힘을 지닌 사람임을 보증해 주는 명함이나 다름없었다.

"부투오빈스카야(Botuobinskaya)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했다고요?"

"예, 저희가 고용한 전문가들이 도출한 탐사 결과에 따르면 매장량이 약 9,300만 캐럿에 달한다고 합니다."

"귀사측이 제시한 탐사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저희 관계자가 다시 확인할 겁니다."

광산을 매입하는 쪽에서 매장량을 확인하는 건 협상 과정에서 필요한 당연한 절차였지만 말이란 게 항상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은가.

"물론입니다."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아래로 내려다보는 엘렉세이 오를로프 이사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지워질 뻔했다. 페레즈는 인내심을 발휘해 미소를 유지했다.

"일단,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매장량이 9,300만 캐럿이나 된다면 러시아에서 발견된 광산 중 손에 꼽히는 규모인데, 왜 직접 개발하지 않죠?"

그나마 마지막 선은 지켜서 돌려 말했지만. 오를로프의 질문은 우리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를 드러내는 질문에 페레즈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이성의 끈이 끊어질 뻔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장 제값을 주고 가져갈 기업은 일로샤밖에 없습니다.'

정호준이 일로샤에게 매각하는 게 최선이라고 언급하지만 않았어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리라. 테이블 밑에 둔 손을 주먹을 꽉 쥐면서 정말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했다.

"광산을 매각하는 건 저희 회사의 역량을 냉정히 따져 봤을 때 수호이 로그에서 금광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수호이 로그 금광만으로도 앞으로 최소 20년은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사세를 확장했다가 추가로 광산을 발견하지 못한 미래는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치부였지만 페레즈는 협상을 체결하기 위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첫 번째 미팅은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로 끝이 났다.

* * *

메이슨 페레즈는 백인인데다가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치안이 좋았지만 기다리는 시간 동안 관광을 하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헬스장, 수영장, 스파 등을 이용하며 시간을 죽였다.

광산 탐사 작업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다만 부지를 한정한 상태에서 매장량을 확인하는 작업은 정보를 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만큼 큰 시간을 소요치 않았다.

탐사팀을 보내 매장량과 관련된 1차 보고서를 받아 본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메이슨 페레즈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어떻게 확인은 잘 마치셨습니까?"

"귀사 측에서 주장한 것처럼 9,300만 캐럿이 매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더군요."

"그럼 본격적인 가격협상을 시작해 볼까요?"

2006년은 세계 경기가 전체적으로 호황 중이던 시기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만큼 사치품의 소비 또한 증가했다. 다이아몬드의 시세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가 폴류스에 광산을 매각할 때보다 10% 정도 값이 뛴 상태였다.

"캐릿당 500불이라니, 과거에 갇혀 계신 겁니까? 재작년 시세를 왜 지금 들이미는지 모르겠군요. 현재 시세가 캐럿당 570불인 걸 모르시는 겁니까?"

가격협상 과정 중 공격을 감행하는 건 무례로 지적되지 않았기에 첫 번째 미팅에서 받은 모욕감을 쏟아내듯 매섭게 몰아쳤다.

"누가 광산을 매입하는데 시세를 다 주고 삽니까? 당장 내일 가격이 어떻게 변동될지 알 수 없는 게 귀금속 시장입니다. 그리고 우리 러시아에 이런 거대 광산을 매입할 기업이 있을 것 같습니까?"

"러시아에서 발견한 광산이니 러시아 기업에게 매각하는 게 도리라 생각해 일로샤를 찾았을 뿐이지, 선택지가 꼭 러시아 기업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역대급 다이아몬드 광산을 매수하고 싶은 기업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캐나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영국, 호주, 일본 등 광산업이 발달하고 자본과 기술이 충분한 나라는 세상에 꽤 많았다. 알렉세이가 배짱을 부리자 페레즈는 러시아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을 부르면 그만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밀고 당기는 협상은 몇 날 며칠 이어졌고 종국에는 캐럿당 550불을 받는 것으로 결정 났다.

캐럿당 550불의 가치를 매긴 부투오빈스카야 광산의 가치는 51,150,000,000달러. 한화로 64조 원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거금이었다.

51,150,000,000달러에서 러시아 정부 지분은 23%를 제외한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의 지분은 77%이니 실질적으로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가 일로샤에게 받을 돈을 39,385,500,000(393억 8,500만)달러였다.

"저희 오너께서 일로샤가 일시불 혹은 내년 5월까지 대금 지급을 완료하면, 330억 달러만 받을 의향이 있다고 전달해 달라 하셨습니다."

페레즈는 폴류사 때와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대금 지불을 마치면 60억 달러. 한화로 7조 원이 넘는 돈을 디스카운트해 줄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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