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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34화 (1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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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전 서울시장은 왜소한 체구와 달리 먹성이 좋았다. 남자 둘이 먹기 충분한 오리탕의 3분의 2를 먹은 걸로 모자라 별도로 개고기 수육도 따로 1인분을 시켜 먹었다. 수육을 시키기 전에 정호준에게 함께 먹겠냐고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 자리가 달가운 건 아닌지라 거절했다.

'아마도 돈 내는 건 날 텐데, 자기 맘대로 시키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틀린 말이란 걸 눈앞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김명호를 통해 느꼈다.

생각해 보면 미운 놈한테 굳이 왜 떡을 주겠는가?

예쁜 놈한테 더 챙겨 줘도 모자랄 텐데 말이다.

"어떻게 음식은 입에 좀 맞나?"

김명호는 존중이 섞이긴 했으나 어쨌건 자신이 위라는 듯 반말을 내뱉었다. 허락도 없이 반말을 찍 뱉는 무례함을 지적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접었다. 아시아에서 나이가 많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우위에 서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것도 입장(수준)의 차이가 크면 의미가 없었지만. 김명호 전 서울시장은 진심으로 자신을 정호준과 같은 반열로 보았다. 아니 자신이 정호준보다 여러모로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에서 열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가의 수반이 될 내가 꿀릴 게 뭐 있어?'

당내 경선만 이겨 내면 대선은 어렵지 않게 이겨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망상이었다.

"맛있군요."

확실히 맛은 있었기에 김명호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저 같이 온 사람이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김명호가 아니었다면 더 맛있었으리라.

"위치가 시내와 멀어서 자주 찾아오진 못하지만 내 비장의 맛집일세. 길을 찾는 게 어려워서 평일 밤에는 손님도 몇 없지."

"손님이 별로 없는데도 망하지 않고 운영이 가능한가 보군요."

"나처럼 지인을 데려오는 단골들이 꽤 있는 데다, 아무래도 임대료가 싸니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겠지. 임대가 아니라 아예 자기 건물인 사장들도 꽤 있고."

아마 전자보단 후자의 이유가 더 크리라. 잠깐 오면서 훑어본 건데, 김포공항이나 구로동으로 향하는 대로만 떡하니 있을 뿐 대로를 벗어나면 비포장도로만 보였다. 시골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오지나 마찬가지인 곳이니 임대료로 나가는 돈이 클 리 없다.

'나가는 돈이 적으니, 장사가 잘 안 되도 먹고 살 만은 하겠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가게에 대한 평가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뒤에야 시작됐다.

"그래, 미국 국적을 갖고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말고는 연락을 넣어도 의례상의 답신조차 하지 않던 분이, 무슨 변덕으로 연락을 주셨나?"

보유 자금만 놓고 보면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줄곧 재계 서열 1위를 유지 중인 오성그룹의 회장보다도 많은 현금을 쥐고 있는 정호준이다. 돈 좋아하는 김명호가 정호준이 보유한 돈에 욕심을 품지 않을 리 없다. 정호준이 미국 국적을 선택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정호준이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호준을 지켜 줄 정치적 기반이 마땅치 않고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애국심을 부채질하고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걸로 정호준을 꼬셔 보려 했었다.

자신의 자금을 굴리도록 구슬림과 동시에 정치 자금을 받아 내고, 일이 잘 풀리면 대통령이 된 뒤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자금을 정호준에게 맡겨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 했고 더 잘 풀리면 서울시의 자금을 정호준에게 맡겨 대통령 자리를 위한 포트폴리오로 써먹으려는 망상을 품었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대통령님으로부터 한국에 투자해 달라는 제안과 국민연금의 일부를 맡아 운용해 달라는 제안까지 거절하고 온 저입니다. 5천만 국민의 돈도 운용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겨우 1천만 서울시민의 돈을 불려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본인이 직접 찾아갔음에도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단칼에 거절당하는 최악의 결과로 끝난 탓에 지금까지도 정호준의 대답이 토씨 하나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셀러리맨 신화를 이룩하신 분이니 잘 아실 거 아닙니까? 거래란 주고받는 게 확실해야 한단 걸. 당시 후보님께서는 제게 주실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이래 봬도 한 회사의 CEO입니다.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거래를 제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죠."

'자신과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니냐'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길게 이야기를 나눈 게 아니었음에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호준이 단순히 돈복을 타고나 돈을 불리는 재주만 뛰어난 꼬마가 아니란 것을. 아직 대학조차 졸업하지 못했을 눈앞의 청년은 심계 또한 뛰어났다. 재계를 주름잡는 창업자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은 즉슨 지금은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게 생겼다는 말이군. 내 말이 맞나?"

능력은 물론이고 치열하디 치열한 사내 정치마저 모두 이겨 내며 회장직에 앉은 경험이 있는 이답게 정호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해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긴 해.'

눈치 빠르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쓸데없이 재지 않고 실리를 챙긴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정호준에 대한 평가를 빠르게 마친 것부터가 김명호란 인간이 보통이 아니란 걸 증명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김명호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권력을 사욕을 추구하는 데 쓰지 않고 정치인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국민을 위하는 쪽으로 썼다면, 1회차의 한국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와 같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작년에는 후보님께 바라는 게 없었지만. 대선주자, 더 나아가 대통령이 되실 게 유력해진 김명호 후보님께 저도 바라는 게 하나 생겼거든요."

"무엇을 원하나. 일단 조건부터 들어 보지."

정호준의 이야기를 들은 김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제가 지목하는 차장검사를 중앙지검(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승진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과하네. 대통령에게 총장을 지목할 권한은 있어도 검사의 승진에 관여할 힘은 없어."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만."

무늬만 보면 삼권분립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만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사들은 이미 재벌, 혹은 정치권(권력자들)의 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법은 변호사를 구할 형편이 못 되는 서민들에게만 무겁게 적용되었다.

"그리고 힘이 있고 없고는 후보님의 사정입니다. 불가능하다 여기시면 그저 여기서 거래를 멈추면 그만인 일입니다."

"일단 이야기를 계속 진행합시다. 만약 내가 정대표의 제안을 받는다면, 정대표는 내게 무엇을 해 줄 거요."

속 좁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정호준의 말에 빈정이 상할 법도 했건만 김명호는 반박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받을 것을 챙기기 바빴다.

"후보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국민에게 투자금을 모았던 조건으로 후보님의 자금을 불려 드리겠습니다. 단 정치 자금으로 받은 돈이나 횡령으로 번 수익은 투자금으로 받지 않을 겁니다. 불법적으로 획득한 돈을 불려 줬다는 손가락질은 받고 싶지 않거든요."

"그렇게 조건이 바리바리 달렸는데, 100%만 먹고 떨어지라고? 그럴 거면 부탁을 들어주면서까지 자네에게 투자를 부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네만?"

대선 테마주식에 투자해도 2배는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금이 많다는 건 그만큼 투자에 리스크를 불러일으키니까요."

자본주의의 논리상 자본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보유 자금이 많다는 건 그만큼 투자에 실패해 손해를 보게 됐을 때 본인이 입게 될 손실도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남들 천만 원 벌 때 1억, 10억 벌었던 것처럼 남들이 천만 원 손실 볼 때 1억, 10억 손실을 보게 되는 게 바로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였다.

"그리고 제가 불려 주는 투자금은 합법적인 절차로만 벌어들일 수익이라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질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리스크 없는 깨끗한 돈이 갖는 의미를 모르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정호준의 말에 김명호는 생각을 정리한 뒤 흥정을 시작했다.

"3배. 원금의 3배를 보장해 주면 자네의 제안 받아 주겠네."

"원금의 2배 이상을 보장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차장검사 하나를 검사장으로 진급시켜 달라는 부탁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신을 가진 검사가 고위직에 한 명쯤은 있었으면 해서 하는 부탁이지, 제게 직접적으로 득이 되는 부탁은 아니거든요."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다시피 미운 놈에게 떡을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정호준은 2배 이상 불려 주지 않을 거란 뜻을 분명히 했고, 그렇게 수익의 크기를 늘리려는 자와 줄이려는 자의 대치가 한동안 이어졌다.

"30%. 이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이네. 검사장, 그것도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 자리를 약속하는 건 내게도 리스크가 커."

"좋습니다. 30% 받겠습니다."

일관되게 2배를 불렀던 정호준은 더 이상 간격을 줄일 수 없음을 인지해 30%에서 김명호의 제안을 받았다.

결국 김명호와 정호준의 줄다리기는 2배에서 130%의 수익을 보장하는 걸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단 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법적인 루트로 벌어들인 돈은 투자금으로 받지 않을 겁니다. 만약 조건을 어겨 괜한 잡음에 시달리게 만들면, 미국이 왜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호준의 협박에 김명호는 그럴 일은 없다며 정호준을 안심시키는 것을 끝으로 미팅은 끝이 났다.

2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김명호는 JHJ Capital 한국 법인으로 투자금을 입금했는데 그 액수가 상상 이상이었다.

- 32,000,000,000.

김명호는 깨끗한 돈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내역까지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320억 입금 확인했습니다."

'대한민국 대선 후보 역사상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더니 명불허전이네.'

평범한 서민은 꿈도 못 꿀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냈지만 말이다.

과거 2004년에 정호준이 그랬던 것처럼 부동산 담보대출과 관련해서 뭔가 지인 찬스(정치인 찬스)를 사용한 것 같지만 그것까지 책을 잡을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으로 크게 한탕 해 먹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의 돈을 불려 준다는 게 양심에 걸렸지만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정호준은 김명호의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

'강현태를 키우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다시 한번 거금을 번 게 알려져 명성을 키우면. 4대강 사업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도, 4대강 사업이 2대강 사업 정도로 그치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생각처럼 흘러가기를 희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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