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23화 (12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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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라는 업계는 타고난 재능으로 봐야 하는 재능이라 볼 수 있는 창의력과 프로그래밍을 이해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 노가다 작업인 코딩을 할 인력 또한 필요하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다.

창업 초창기 스티븐 위즈니악이 불러 모은 지미 클리트, 잭 매그너, 개리 마틴, 리오 밀러와 같은 인사들은 팀장급 인력인 만큼 어디다 지원서를 내도 합격할 그런 인재들이지만 인력이 필요해서 구인한 이들까지 다 그렇다는 보장은 없었다.

새롭게 뽑은 54명 중에는 엔플이나 세미크로소프트, AMZ와 같은 IT분야 대기업에 입사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도 많을 거라 예상했다.

미국 사람이라고 모두 당당한 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정호준은 혹시나 해서 말했다.

"혹시 엔플에 가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다 지원해요. 함께 데려가 줄 테니까."

제대로 얼굴 한번 비추지 않은 오너의 면을 세우기에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당당하게 손을 들었던 여섯 명 외에도 여덟 명이 추가로 손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직원 15명을 대동한 채 엔플로 이동했다.

엔플이 2007년 애플폰을 출시하며 소스를 오픈했던 엔플이다. 오늘 엔플 방문을 통해 AOS 운영체제와 앱스토어 관련 사안들을 공유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엔플에서 소스를 공개한 덕분에 또 한 번 벤처 붐이 일어나지.'

IT업계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들의 몸값이 또 한 번 뛰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아직은 나중 일이었다.

'오늘 설명회라도 한 번 해 주면 좋을 텐데, 그것까지는 기대하기 어렵겠지?'

아무리 설명회를 해 준다 해도 함께 온 직원들이 단번에 모든 것을 AOS 운영체제를 파악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못 들은 채 공부를 시작하는 것보다 설명회식으로라도 이론을 듣고 가는 게 깨우치는 데 더 편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호준은 엔플에서 설명회를 개최해 줄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괜히 김칫국을 사서 마실 필요는 없지.'

이미 몇 차례 스티븐 존스를 만나 본 터라 1회차 때 그에게 가졌었던 환상 같은 건 다 깨진 지 오래로 그가 만나 본 스티븐 존스의 성격상 UH(유니버셜 히치) 직원들에게 설명회까지 해 줄 일은 결단코 없었다.

절대로 말이다.

* * *

정호준이 예상했던 것처럼 스티븐 존스나 프로젝트에 참여한 엔플의 직원이 따로 AOS 운영체제와 앱스토어에 관해 설명해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전에 고지한 것보다 인원을 더 데려왔음에도 미리 전달하지 않은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그런 무례를 저질렀음에도 이해해 주시고 배려까지 해 주신 귀사의 호의. 기억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정호준은 감사 인사를 입에 담았다. 그도 그럴 게 설명회는 개최되지 않았지만 짐 쿡이 미리 빼 둔 엔플의 직원이 정호준과 함께 온 15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내를 구경시켜 줬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월가 역사상 가장 빠르게 몸집을 불린 투자회사의 대표님을 모셨는데, 이 정도 배려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정호준의 감사 인사에 짐 쿡은 웃는 얼굴로 정호준과 JHJ Capital을 띄워 주었다.

엔플쯤 되는 회사는 저만의 신뢰도 높은 정보라인이 존재한다. 짐 쿡은 엔플의 정보통은 물론이고 본인의 인맥까지 총동원해 정호준과 JHJ Capital을 조사했다. 정보가 중요한 21세기였기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의 사자성어는 미국에서도 종종 쓰였다.

정보통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는 짐 쿡을 경악케 하기 충분했다.

'JHJ가 모두를 속였어.'

짐 쿡은 원유 선물 이전의 신상, 러시아에 수호이 로그라는 거대 금광을 발견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폴류스에 매각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정호준의 JHJ Capital은 금년 원유 선물로 또 한 번 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아직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보기관들도 알아내지 못했기에 딱히 정보통의 역량이 부족하다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원유 선물로 수익을 내기 전의 JHJ Capital의 자산 규모만으로도 짐 쿡이 정호준을 적대하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제 성질대로 밀고 가는 존스보다 눈앞의 남자, 짐 쿡이 더 까다롭게 여겨졌다.

"저야말로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망할 날을 받아 놀 일만 남았다던 엔플을 되살려 낸 1등 공신이시지 않습니까?"

스티븐 존스가 엔플에 복귀한 뒤로 엔플이 다시금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간 건 틀림없는 진실이지만 존스가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 가는 동안 조용히 그 뒤에서 존스가 제 맘대로 날뛸 수 있게 도운 건 팀 쿡이었다.

윌리엄 게이츠와의 악감정은 존스가 직접 정리했지만 그 외에 경영 정상화에는 짐 쿡의 손길이 안 들어간 게 없다 봐도 무방했다.

'일단 스티븐 존스와 함께 일하면서도 쭉 관계를 이어 갔다는 거. 이거 하나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기에 차고 넘치지.'

뛰어난 CEO는 찬란한 비전을 제시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지만 리더가 뛰어나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리더의 성격과 성향이 숨 막히기 그지없다면 더더욱.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티븐 존스와 함께하며 잦은 다툼으로 감정이 상한 위즈니악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던가?

'위즈니악 같이 사람 좋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가, 사람을 저렇게까지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스티븐 존스를 통해 배웠다.'

모든 것이 자신의 손을 거쳐야 하는 깐깐하고 자존심 센 리더인 스티븐 존스는 사실 누구라도 같이 일하는 게 싫을(피곤할) 유형의 인간이었다. 과거에나 2000년대에나 IT업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해 업계 꿈나무들에게 존경을 받지 않았다면 정말 그의 밑에서 버티는 이가 많지 않았으리라.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다고들 말하는 그 존스가 직원들을 달달 볶으며 채찍질하는 데도 직원들을 다독이고 케어해 끝까지 존스가 추구하는 것을 끝까지 이룩할 수 있게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짐 쿡은 스티븐 존스와 함께 엔플을 전성기로 되돌린 일등공신이었다.

'어차피 애플폰을 발표할 때, AOS 운영체제와 앱스토어를 개방할 계획이었잖나? 대주주에게 조금 일찍 개방했다고 좋게 좋게 생각하면 안 될까?'

사실 짐 쿡은 정호준의 자산을 인지한 뒤 자신이 받아든 정보를 존스에게 보여 주며 호감을 사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했으면 한다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존스의 자존심에 적의를 갖고 있는 정호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용납될 리가 없었기에 단번에 기각되었다.

'절대로 안 돼!'

어떻게 설득해 볼 레벨을 넘어선 잡스의 거부에 포기했을 뿐이다.

"저희 엔플은 빠르면 2007년 1월 말, 늦어도 2월에는 애플폰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귀사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 그때까지 마무리되겠습니까?"

"저는 개발자가 아니라서 AOS운영체제와 앱스토어에 맞춰 프로그래밍을 수정하는 작업이 얼마나 시간을 잡아 먹을지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AOS 운영체제를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고요."

정호준의 말에 짐 쿡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정호준은 곧장 말을 이어 갔다. 정호준은 '안 되는 건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말을 신조로 삼는 불가능을 모르는 대한민국 육군 만기 전역자였다.

"하지만 인력을 충원해서라도 기일을 맞출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인력을 충원하고 충원한 인력 포함 직원들을 야근을 시키면 결과를 내지 않겠는가? 공돌이들을 갈릴 정도로 달달 볶으면 결과물이 생기는 걸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번 듣고 본 바 있다.

'노고는 야근수당과 성과금을 지급해 주면 되겠지?'

유니버셜 히치 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오너에 의해 수개월 간의 고생길이 열렀다.

* * *

JHJ Capital에 이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던 두바이 인터네셔널 에셋과 탁신 친나윗 전 총리를 모두 만나 본 리버풀의 보드진의 마음은 정호준에게 쏠렸다.

리버풀의 단장직을 역임 중인 에이든 무어는 인수협상의 진행 정도와 인수자들을 만나 내린 평가를 조나단 무리스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인수제안서를 건넨 세 곳 중 어느 곳이 좋을 것 같나?"

"저희 보드진은 만장일치로 JHJ Capital을 꼽았습니다."

"허~ 만장일치라고? 만장일치로 정대표를 고른 이유가 뭔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조나단 무리스의 질문에 에이든 무어는 재빨리 답했다.

"JHJ Capital이 저희 보드진에게 가장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리버풀이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돈을 풀겠다는 공수표를 난발하는 탁신 친나윗, 두바이 인터네셔널 에셋과 달리 JHJ Capital은 그들이 여름 이적시장에 리버풀을 인수하게 되면 어떻게 움직일지 명확한 플랜을 제시했다.

"비전은 물론이고 정보력과 축구에 대한 식견 모두 JHJ Capital의 정대표가 다른 인수자들보다 우월했습니다."

정호준과 마찬가지로 아시안 리스크를 가진 데다 자산 규모나 비전 면에서 가장 쳐지는 탁신 친나윗은 아예 고려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다.

"첼시의 레만 아브라히모비치처럼 산유국의 왕자로서 리버풀을 위해 큰돈을 써 줄 수 있다는 건 기쁘지만 아브라히모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독선을 부릴 리스크 또한 존재합니다."

자금만 놓고 보면 산유국의 왕자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정호준은 자산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게다가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니까 상대가 산유국의 왕자라 그렇지 JHJ Capital이 자금력으로 크게 꿀리는 회사도 아니더군요."

"그건 그렇지. JHJ Capital이라는 이름 나도 종종 들어 봤으니까. 내가 궁금한 건 JHJ가 무슨 비전을 제시해 줬길래 자네들이 만장일치로 JHJ Capital을 미는지야."

조나단 무리스의 질문에 에이든 무어는 정호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공감하는 축구 격언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공격이 강하면 이길 수 있지만 수비가 강하면 리그를 우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리버풀을 인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아스날의 애슐리 콜을 영입할 생각입니다."

"애슐리 콜이라니, 아스널에서 그를 쉽게 놔줄 리 없습니다."

"저는 구단주로서 자금을 대고 비전을 제시할 뿐 협상은 제가 아닌 보드진의 몫입니다. 다만 이미 첼시에서 애슐리 콜에게 불법 접촉했다는 걸 정보통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어떨까요?"

라이벌팀. 그것도 런던에 연고를 둔 원수나 다름없는 팀으로 이적한다는 건. 선수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솔 캠벨이 토트넘 팬들에게 미움받는 것처럼 아스널 팬들에게 평생 욕을 먹게 될지도 몰랐다.

그 부담보다 첼시에서 줄 주급이 컸기에 감당할 뿐.

"잉글랜드 홈그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추후 10년은 써먹을 수 있는 정상급 윙어입니다. 첼시에서 주겠다는 연봉을 지급해서라도 데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크레이그 벨라미를 영입하는 건 멈췄으면 합니다."

공격진 보강을 위해 보드진들이 추린 후보군에 크레이그 벨라미가 있다는 것이 정호준의 입에서 나오자 협상장에 있던 보드진들은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벨라미보다는 프랭크 리베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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