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22화 (12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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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협상이 끝나지 않아서 아쉽네.'

협상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리버풀의 보드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번 미팅에서 곧바로 협상이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팬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리버풀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전달한 건 정호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쿠데타 때문에 태국에서 쫓겨났으나 사업가로서 유능하고 해외에 비자금을 빼 둔 탁신 친나왓과 산유국 왕자님의 뜻을 받든 두바이 인터네셔널 에셋이 리버풀을 인수하고 싶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 벌어진 힐스버러 참사 때문에 내적 외적으로 분위기가 많이 안 좋고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우승을 쟁취해 내지 못해 팀의 기세와 인기가 많이 죽었음에도 명문은 명문이었다.

맨날 꼴찌나 최하위권만 맴도는 결과만 내는데도 행복하다며 매년 열띤 응원을 이어 가는 대전과 부산의 야구팬들도 있는데 리버풀은 우승은 못 해도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않던가? 한국 지방 야구팬팀들을 생각하면 리버풀은 양반이었다.

물론 스포츠의 열기를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해외팬덤에는 매년 확인이 될 정도로 매출에서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인수와 관련해서 팬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우리도 기름 맛 좀 보자.'

더군다나 러시아 신흥 부호를 일컫는 올리가르히의 대표적인 인사로 세계 4대 정유 기업이었던 '시브레네프티'의 회장인 레만 아브라히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뒤 아스날 맨유와 함께 우승 경쟁을 다투는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레만 아브라히모비치 덕분에 4위를 겨우 다투는 팀에서 우승 경쟁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한 첼시처럼 리버풀에게도 그럴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하는 부류와.

'우리는 리버풀이야. 1부리그와 역사를 함께해 온 우리마저 외국인 구단주를 받아들일 거야?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맨유 놈들처럼 자존심을 내려놓지는 말자.'

축구 종가라는 자존심에 프리미어리그 이전부터 영국 축구 1부리그와 줄곧 함께해 온 리버풀이 저들처럼 외국계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일부 극단주의파로 나뉘었다. 축구가 그냥 축구에서 끝나는 게 아닌 거대한 산업이 되어 버린 영국이라 아예 침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극단주의파 중에는 '첼시의 아브라히모비치랑 맨유의 글레이저 가문은 그나마 백인이기라도 하지. 우리 인수 대상자는 왕자라지만 중동 출신과 축구 못하는 아시아의 부호가 전부잖아'라고 말하고 다니는 인종 차별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극단주의파보다는 리버풀이 더 강해질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 더 많았지만 리버풀 보드진들은 극단주의자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두바이 인터네셔널 에셋의 제안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레만 아브라히모비치도 폭군처럼 제 맘대로 구단을 운영하는데, 아랍 왕자라고 다를까?'

첼시를 인수한 레만 아브라히모비치는 돈을 쏟아부어 팀을 강하게는 만들기는 했으나 구단을 완전히 소유화해 제멋대로 운영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보드진들의 의사)을 무시한 건 기본이고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가차 없이 쳐 냈다.

'상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구단 운영도 사람이 하는 일. 본인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독불장군보다는 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해도 합리적인 이를 원했다.

회귀 전 1회차 때 아랍 왕자가 인수 대상자로 끝까지 남지 못한 데는 그런 속사정이 존재했다.

정호준은 다급한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으며 실무자들끼리 협상을 이어 가는 것을 지켜봤다.

'급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호구를 잡힐 필요도 없다.'

리버풀 인수를 위해 본래보다 더 많은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본래보다 배 이상 많은 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았다.

서로가 생각하는 가격을 어느 정도 맞춰 보는 선에서 미팅이 마무리되었다.

"꼭 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리버풀을 응원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이번 여름 이적시장이 끝나기 전에, 좀 더 구체화하면 적어도 7월 중에는 인수가 마무리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뒤늦게라도 여름 이적시장에 뛰어들거나, 후반기 영입을 위해 겨울 이적시장에 자금을 풀 수 있을 테니까요."

정호준은 마지막까지 리버풀을 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보드진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 * *

리버풀 인수를 위한 미팅을 이어 가면서도 JHJ Capital의 엔플 주식 매입은 계속되었다. JHJ Capital의 주식 매입은 정호준이 처음 목표 언급했던 10%를 채운 순간이 돼서야 멈췄다.

"더 많은 주식을 원하시면 이제는 시장에서 매입하기보다 주주들에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별 볼 일 없던 일개 트레이너에서 정호준의 심복이자 JHJ Capital의 컨트롤타워가 된 조나단은 직접 찾아와 그 사실을 보고했다.

'조나단이 참 한결같은 사람이라 좋다.'

환경이 변하고 본인의 형편이 나아지면 변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조나단은 처음과 똑같은 행보를 이어 갔다.

"아뇨, 그거면 됐어요. 10% 확보했으면 이만 멈추죠. 당장은 이거면 충분합니다."

대주주로서 무언가 요구하는 데 10%면 충분했다. 실제로 이미 스티븐 존스의 양보를 받아 내지 않았던가. 이 이상 매수를 이어 가면 스티븐 존스에게 위임장을 대가로 받았던 양보들을 모두 토해내야(가독성을 위해 붙이는 거로) 할지도 몰랐다.

'우리의 목적이 유니버셜 히치의 기본 어플리케이션화가 아닌 엔플 인수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10%의 지분 가지고 뭘 어떻게 하겠냐만은 이미 한번 쫓겨난 경험이 있는 스티븐 존스라면 오판할 가능성이 있었다. 'Care Killed a cat(근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나 'A Burnt child dreads the fire(불에 댄 아이는 불을 무서워한다)'와 같은 미국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추후 손해 볼 게 뻔히 보이는데, 주식 매입을 이어 갈 필요가 있을까?.'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후로 주가가 푹 꺼지는 구골과 달리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때도 잠깐 주춤했다가 줄곧 상승세를 이어 가는 엔플 주식이지만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으로 부동산이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인지한 후에는 엔플 주식 또한 하락을 이어 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까먹은 것 이상으로 주가가 오를 테지만 주가가 회복할 때까지 큰 손실을 입은 채로 존버를 이어 가야 한다는 자체만으로 큰 기회비용을 지출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락장 이전 혹은 하락 직후에 주식을 던지면, 그땐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손실을 막고자 주식이 하락하기 전 혹은 하락장이 시작된 후에 주식을 던지면 급격한 하락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회사의 주가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는 수 있다. 주가 하락의 원인이 부동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라 할지라도 인간은 책임을 전가하기 쉬운 생물인 까닭이다.

물론 정호준 정보준이 지분을 추가로 매수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유니버셜 히치가 기본어플리케이션에서 제외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주식의 추가 매입은 필수야.'

정호준이 주식 인수를 경계하는 경영진과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엔플의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타이밍 있다면 그건 리만 브라더스 혹은 다른 은행의 파산으로 대중들이 더 이상 부동산담보 대출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가 유일했다.

더 정확히는 나락한 모기지로 인해 엔플의 주가가 어느 정도 폭락했을 시점이었다.

'그때 살며시 엔플 대주주들에게 손을 내밀면 아마 열에 일곱은 주식을 매각하지 않을까?'

주식을 매입한 후에도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경기가 부양되기 전까지 손실을 감당해야 하겠으나 그럼에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당장 대주주들의 주식을 매입해서 추후 입게 될 훨씬 적을 거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정호준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 도착한 정호준은 곧장 유니버셜 히치가 자리를 잡은 실리콘밸리의 어느 한 빌딩으로 향했다.

"왔나? 너무 오랜만이지 않나? 회사 오너가 얼굴을 안 보여 주는 거 섭섭해."

동료들이랑 식사를 피자로 때우는 중이었는지 스티븐 위즈니악 손에 피자를 하나 든 채로 말했다. 후덕한 체구에 친근한 인상을 가진 그가 피자를 든 채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은 참 뭐랄까 특이했다.

그리고 위즈니악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직원들이 위즈니악처럼 손에 피자를 들고 있었다.

"미한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학업하랴 금융 회사 컨트롤하랴, 연애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맞다, 그러고 보니 로슬러 가문의 영애랑 연애를 시작했다지? 축하하네."

미국 상류층에는 이미 소문이 다 퍼졌는지 위즈니악은 기름이 묻지 않은 손으로 정호준의 등을 두드렸다. 남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 정호준을 호기심과 어려움 두 가지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직원들이 눈빛을 빛냈다.

"자네도 한 조각 먹지 그러나?"

"고맙지만 사양하죠. 오랜만에 왔는데, 제가 사 줘도 모자랄 판에 뺏어 먹기는 좀 그렇거든요."

"먹고 더 시키면 되잖아?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치킨 튀기는 할아버지의 피자 버전인가요?"

"잘 어울리나? 내가 피자 굽는 기술만 있어도 시도해 봤을 텐데 말야."

오랜만에 만난 위즈니악은 여전히 유쾌하고 쾌활한 남자였다.

"스타박스 가서 커피나 좀 사 올 테니 식사 마저 하시죠."

"우리 것도 사 주는 거지?"

"뭐 드실 건데요."

대표가 커피 주문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직원들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빠져 주려던 게 커피 심부름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여긴 어쩐 일로 찾아왔나?"

정호준이 오더 메이드를 한 커피에 빨대를 꽂아 한 번 쪽 빨아 마신 위즈니악은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드릴 이야기도 있고 해서 중간 점검차 왔습니다."

정호준은 자신이 사 온 커피를 손에 쥔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위즈니악을 보며 스티븐 존스와 엔플이 현재 추구하는 것, 합의 내용 등을 이야기했다.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더니, 그런 물건을 준비 중이었나?"

정호준으로부터 엔플폰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은 위즈니악은 대체 어떤 물건이 나오게 될지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아저씨는 엔플이나 오성전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마다 구매해서 써 보고 후기를 남기는 인간이었지.'

눈앞의 남자는 새로운 전자 제품에 거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였다. 때로는 날카로운 혹평도 하지만.

"우리가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엔플폰을 통해 전 세계를 누비게 될 겁니다. AOS 체계와 앱스토어 관련 코드들을 공유받으러 갈 인원이 필요합니다."

"으음, 나는 빼 주게. 나는 되도록 존스 그 친구와 만나고 싶지 않거든."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고 그들의 동행이 좋지 않게 끝났다는 소문은 자주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정호준은 위즈니악이 뽑아 준 인원들을 대동하고 엔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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