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21화 (12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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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구단주 조나단 무리스가 적을 둔 무리스 가문은 대대로 리버풀이라는 축구 구단을 운영해 온 집안이다. 무리스 가문이 리버풀을 경영한 세월이 50년이 넘었으니 '대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틀린 표현이 아니었다.

프리미어리그가 전,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출범한 후에도 무리스 가문은 2006년까지 리버풀이라는 축구 구단을 운영했다. 정확히는 숙부로부터 리버풀 지분을 상속받은 조나단 무리스가 1991년부터 2006년까지 리버풀의 구단주로서 활동했다.

조나단 무리스가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리버풀 구단을 운영했음에도 그의 취임 이후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나는 구단 운영에 소질이 없는 건가?'

무려 100년 넘게 계속되었던 영국의 풋볼 리그 1부에서 밥 먹듯이 우승을 경험했던 리버풀이 10년이 넘도록 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사실은 조나단 무리스로 하여금 구단주로서 본인의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컵대회나 유럽대항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찬란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반딧불로 별빛을 대적하는 꼴이었다.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쟁취하고자 나름 투자를 한다고 했는데 성적이 안 나왔으니 구단 부채가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부채는 점점 늘어나는데 우승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암울한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조나단 무리스는 05-06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났을 무렵 구단 매각을 결심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그런 장면 있잖은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 자신이 부족하다 여겨 본인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인을 떠나보내는.

상황과 장르가 다르긴 하나 조나단 무리스도 이와 엇비슷했다.

'정말 리버풀을 위해서 내린 선택이었지.'

리버풀은 4,000만 파운드(5~700억 원) 정도의 부채를 쌓아 둔 상태였지만 그 부채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리그 우승은 못 해도 '빅클럽' 혹은 '빅4'라고 불려 온 리버풀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나단 무리스의 구단 매각은 정말 애정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는 거다.

구단이 못난 자신보다 더 나은 구단주를 만나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06년 리버풀 매각 의사를 밝혔고 회귀 전에는 2007년 2월 조지 힉스와 토미 갈랫에게 구단을 매각했다.

2004년 인수 제안을 던진 적 있었던 태국의 전총리 탁신 친나왓과 두바이 인터내셔널 에셋이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돈보다는 리버풀을 잘 이끌어 가 줄 사람을 원했던 조나단 무리스는 조지 힉스와 토미 갈랫에게 매각했다.

조지 힉스는 MLB 구단인 텍사스 레인저스를 소유하고 있었고 토미 갈랫은 NHL 구단 몬트리올 캐나디엔스의 구단주였기에 구단을 운영한 경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게 긴 암흑기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겠지.'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구단을 사랑했던 무리스와 달리 두 공동 구단주들은 조나단 무리스와 콥들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07년 2월 리버풀을 조나단 무리스에게 지급한 인수대금 2억 1,900만 파운드는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닌 은행의 돈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던 글레이저 가문이 그랬던 것처럼 은행에서 빌렸던 돈을 구단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받아 갚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구단주가 리버풀을 인수하려고 은행에서 빌린 돈은 2억 1,900만 파운드가 아닌 3억 파운드였다.

'8,100만 파운드는 두 사람이 꿀꺽한 거지.'

리버풀 팬들은 8,100만 파운드라는 자신들이 쓰지도 않은 돈까지 추가로 짊어지게 되었다. 3년 후 리버풀을 인수한 FSG과 언급했다. 4,000만 파운드에 불과했던 빚이 3년 만에 3억 파운드까지 늘어났다고.

두 구단주가 얼마나 많이 해 먹고 개판을 쳤는지 재정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선수단을 망친 것을 따지면 더 최악이었다.

게다가 두 공동 구단주는 끝까지 추했다. 깔끔하게 물러나는 게 아닌 법정공방을 통해 쫓겨났을 정도로 말이다.

구단주라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욕망에 충실한 거긴 하지만 어쨌건 암울할 그들의 미래를 구원해 주기 위해 인수를 제안했는데, 막상 그를 만나러 온 보드진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자기소개를 마친 정호준은 대놓고 표정을 찡그리지는 않았지만 보드진들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서 또 동양인 디메리트가 발동하는 건가?'

아니 인종차별보다는 중동 포함 아시안들이 축구를 못한다고 편견이 발동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일단 오랜 시간 비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음료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영국 신사분들이라 밀크티까지 준비해 뒀습니다."

상대가 결례를 저지른다고 정호준까지 무례함을 보일 필요는 없었기에 정호준은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정말 기분 나쁘면 나중에 인수한 뒤에 날리면 됐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자신들을 신경 써 줬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보드진의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 * *

티타임을 동안 숙소는 어디로 예약했는지, 식사는 입에 맞는지 등을 물으며 사적인 대화를 이어 갔다. 인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티타임을 마친 후에야 시작되었는데 보드진들은 티타임을 갖는 동안 공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정호준에게 작게나마 호감을 품었다.

"동양인이 돈 좀 벌었다고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구단을 소유하려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JHJ Capital이 이렇게 급속도로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축구가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정호준은 보드진들이 갖고 있는 편견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정호준의 기습 공격에 정곡이 찔렸는지 보드진 중 표정 관리를 잘 못 하는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무슨 헛소리냐는 시선 또한 있었다.

"우리 JHJ Capital은 2004년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유로의 우승자를 맞추는 베팅에서 큰돈을 벌었었습니다."

정호준은 우승자를 예측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제야 보드진 중 하나가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2004년 유로 우승자를 맞추는 베팅에서 미국계 투자회사가 잭팟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것 같습니다. 배당률과 배당금이 정말 무시무시했다던데, 맞습니까?"

"배당 비율이나 정확한 액수까지 이야기해 드릴 순 없습니다. 인수대금 협상도 이어 가야 하잖아요?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는 것 정도만 말씀드겠습니다."

상대의 주머니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무엇이 협상에 유리할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한 푼이 소중할, 사업 초창기 때 유로 우승팀을 맞추는 베팅에 큰돈을 베팅해 수익을 냈습니다. 축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승팀을 맞출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정호준은 리버풀 보드진들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이 결코 재미 삼아 베팅한 것이 아니란 걸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하나 약속하겠습니다. 계약서에 명시해도 좋습니다. 인수대금은 글레이저 가문처럼 은행 대출로 해결하는 게 아닌, 제 주머니에서 나올 겁니다. 당연히 리버풀의 부채도 떠안을 생각이고요."

리버풀은 억지로 넘겨야 할 매물이 아닌 구매하고자 하는 경쟁자가 많은 매물이다. 부채를 떠안지 않은 채 인수가 가능할 리 없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으나 정호준은 생색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은행에게 대출을 받지 않고 구단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음을 알리는 거였으니까.

"여러분께서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은행 대출로 리버풀을 인수하고 리버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은행 빚을 갚는 조항은 제게 구단을 매각하는 게 아니더라도 꼭 넣어두셨으면 합니다."

이어 정호준은 보드진들에게 리버풀을 염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제가 리버풀을 인수하는 게 구단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겁니다."

"너무 자신만만하시군요. 매출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나중에 까 본 뒤에야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는 굳이 까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죠. 미국 시장이나 한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제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시장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순위 경쟁이 치열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어 큰 인기를 갖게 돼 슈퍼 리치들의 현실 FM의 장으로 변모하게 되는 프리미어리그다. 팬데믹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 출신 구단주의 출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 덕에 맨유가 한국인들에게 국민 클럽이 된 것처럼 맨유에 쏠린 인기를 어느 정도나마 가져올 수 있게 해 주리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는 한국 시장이 탐나지 않습니까? 전부는 무리더라도 제가 구단주가 되면 최소한 25%쯤은 빼앗아 올 수 있을 겁니다."

순간 같은 아시안이라 중국인들나 일본인들도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거짓말을 양념으로 칠까 했지만 참았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2010년대 후반처럼 나쁠 시기도 아니고 중국인들의 축구 사랑도 상당히 유명하지만. 국뽕이 정도를 넘어 민폐수준에 이른 중국인들이 정호준이 중국 선물시장에서 큰돈을 벌었고 추후 2007년에도 중국계 자금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리버풀을 좋아해 줄 거라는 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구단 인수에 성공한다면 대표님께선 어떻게 팀을 이끌어 나가실지, 비전을 제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일단 리파엘 베네테즈 감독은 유임될 겁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좋은 성적을 내는 감독을 자를 이유는 없죠. 리파엘 베네테즈의 전술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를 영입할 생각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에 알린 게 현재 리버풀의 감독 자리를 역임 중인 리파엘 베네테즈다. 스페셜원, 교수님, 헤드 드라이어 등의 별명을 가진 전설적인 명장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2000년대에서 리파엘 베네테즈 정도면 명장이었다.

'처음 말했던 대로 정말 축구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감독의 전술 철학까지 확실하게 꿰고 있는 정호준을 보며 보드진들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첫 미팅이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실무자들끼리의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본격적인 가격 협상이 시작되었을 무렵 시간을 달라던 스티븐 존스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 의결권 위임을 대가로 상부상조하자는 제안, 받아들이지.

부동산 CDS만큼이나 중요한 협상이 긍정적인 결과로 막을 내리자 또 한 번의 성공 예감에 기분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어플리케이션만 제대로 만들어서 출시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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