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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16화 (11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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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숨기는 데 서투른 마이클 스팬서는 정호준의 제안을 듣고는 구미가 당기다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나 보네.'

존버. 훗날 코인 열풍이 불어닥쳤을 때부터 한국에 확실하게 뿌리를 잡은 신조어로 정호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마이클 스팬서 또한 2년이란 세월을 존버한 끝에 결실을 본 남자였다.

하지만 말이다. 존버로 결국에는 큰돈을 땄고 제 이야기를 담은 영화까지 세상에 나와 투자자로서의 명성과 존경을 받게 되지만.

과연 그 과정이 수월했을까?

자기 돈도 아니고 남의 돈을 가져다가 존버해 놓고선?

모기지 붕괴 사태와 그 위기 속에서 돈을 번 펀드매니저들을 다룬 영화 '빅숏!'이란 영화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로 잠깐 나오고 말았지만 정호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매일 시달렸을 거란 거에 재산 전부를 걸 수도 있다.'

정호준은 돈을 잃는 것, 더 정확히는 나와 내 가족이 돈을 잃는 것에 둔하고 대범할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렇잖은가? 주식으로 10만 원만 까먹어도 그날 밥맛이 떨어지는 게 사람이었다. 100만 원 이상을 잃게 되면 밥 먹을 자격도 없다 말하며 강제 금식하는 걸 정호준은 종종 주변에서 봐왔다.

평범한 대중도 그럴진 데 돈 많은 이들이 오죽하겠는가? 있는 놈들이 더 하다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사모펀드에 최소 수십만 달러는 투자했을 이들이다. 평범한 대중들이 10만 원만 잃어버려도 속앓이를 하는 판국에 작게는 천만 원 단위 크게는 억 단위의 손해를 보는 것을 그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흔들리고 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는 마이클 스팬서을 보고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정호준은 꼬드김을 이어갔다.

"우리 JHJ Capital은 다른 투자자들처럼 소송을 걸거나 독촉하지 않을 겁니다. 부동산의 거품이 터질 거란 당신의 판단과 JHJ의 생각은 일치하니까요. 오히려 우리 JHJ는 스팬서씨가 우리의 투자금을 받아 다른 은행들에도 CDS 계약을 체결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은 거품이 붕괴하기 직전, 최절정기다. 내년이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꺼지며 폭락을 경험하게 될 테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거품이 언제 꺼질지는 시장이 결정하는 거였기 때문이다.

'모기지에 거품이 낀 것쯤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우리를 바보 멍청이로 아나?'

'지가 신이야? 거품 붕괴 타이밍이 꼭 집게?'

'수개월 안에 거품이 터질 거라고? 벌써 1년이 다 됐는데 거품이 터질 기미는 없잖아?'

이제 곧 거품이 꺼질 거란 말을 해대는데, 월가 트레이더들이 보기엔 그저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변명, 아니 그를 넘어 현실기피로 보였다. 시장이 붕괴할 거라 말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부동산은 붕괴하기는커녕 지금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1년 가까이 존버를 이어가고 있는 마이클 스팬서는 현재 월가에서 호구라고 불렸다. 제 손으로 상품까지 새롭게 만들어 매달 막대한 상품료를 지불하고 있는 친절한 호구 말이다.

"우리 JHJ는 부동산에 낀 거품이 최소 내년은 되어야 터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터진다고요? 미국 부동산 시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하는 말입니까?"

무덤덤하지만 흥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톤이 조금 높았다.

"시장만 보면 그렇죠. 그런데 세상이 시스템대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돈과 권력이 얽힌 곳은 인간의 욕망과 광기 또한 계산해야합니다. 막말로 모기지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모기지에 거품이 낀 걸 몰라서 투자하겠습니까?"

돈을 벌 수 있다는 욕망이 언제 거품이 터질지 모른다는 리스크가 주는 부담보다 더 컸기에 이성을 가렸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투자를 안 하기엔 주변 사람들은 돈을 벌고 있고 이미 큰돈을 벌었다.

그렇다고 보니 '나는 아니겠지.', '나만 아니면 돼.', '괜찮을 거야.'와 같은 심정으로 사람들은 투자를 이어간다. 2005년, 2006년에 모기지에 투자한 이들은 특히나 그랬다.

정호준의 말에 마이클 스팬서는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안색이 굳었다. 아니 굳어지는 걸 넘어 새하얗게 변했다.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호준의 말대로 2007년에 거품이 터진다면 1년은 더 독촉과 소송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앞으로도 이런 생활을 1년이나 더 해야 한다고?'

특유의 무신경함으로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으나 대인관계조차 서투른 그에게 비난이 섞인 독촉이 가득한 하루하루는 지옥과도 같았다.

JHJ의 판단이 들어맞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마이클 스팬서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투자자들에게 JHJ Capital이 당신들 대신 CDS를 쥐고 있을 생각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면 되는 겁니까?"

"JHJ Capital의 이름은 거기서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생각보다 유명하거든요."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창업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JHJ Capital은 지금껏 꽃길만 걸어왔다. 월가에 소식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JHJ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인수자가 JHJ임을 알게 되면 자신들의 돈을 가져다가 엄한데 투자해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펀드 투자자들에게 생각을 고쳐먹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죠. 단 CDS를 JHJ에 그냥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조건을 말씀하시죠."

"이번 투자를 주도한 것도 CDS를 매도하는 것도 저희 'MathScience Asset'이어야 합니다……."

2007년에 있을 폭락으로 얻게 될 수익을 그대로 받아가겠다는 말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회사의 이익에만 신경 쓰는구나.'

헤지펀드 자금을 운영하는 이답게 고객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챙기는 모습에 소시민(?)이었던 1회차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러려니 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조차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 수두룩한 게 바로 이곳 월가였으니까.

"물론입니다. 저희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추가로 투자를 할 테니 다른 은행에도 CDS 계약을 체결해 달라고."

"다른 은행이라면 특별히 생각해둔 곳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정호준은 CDS 계약을 체결할 은행의 명단을 마이클 스팬서에게 넘겨주었다. 명단에는 정호준이 메릴리치의 대체품으로 결정한 와코르비아 은행 포함해 미국 국적을 가진 은행 3개와 중국 6대 은행, 일본 은행 두 곳, 그리고 러시아 은행 1곳, 스위스 은행 1곳의 사명이 적혀 있었다.

- 와코르비아 은행: 25억 달러.

- 인데믹 은행: 20억 달러.

- 워싱턴 레시프로 은행(Washington Recipro): 20억 달러.

- 중국 상업은행(CCB(China Commerence Bank): 18억 달러

- 중화 커뮤니티 은행(CCB(China Community Bank): 18억 달러

- 중국 농업은행(CAB(China Agriculture Bank): 18억 달러

- 중국 건설은행(CCB(China Construction Bank): 18억 달러

- 중국 공상은행(ICBC(Industrial and Commercial Bank of China): 18억 달러

- 중국은행(Bank of China): 18억 달러

- 미츠바시 은행: 21억 달러.

- 미츠이나 은행: 21억 달러.

- 스비르 은행: 15억 달러.

- 크레던스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Credence Suisse First Boston): 15억 달러.

"중국국적을 가진 은행의 수가 유독 많은 거 같은데,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명단을 확인을 마친 마이클 스팬서가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상품으로 수익을 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미국이 망한다는 것에 베팅한 거죠."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분명 적지 않은 혼란이 있을 겁니다. 미국이 세계에 중심인 만큼 미국이 흔들리면 전 세계 또한 같이 흔들릴 거고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게 미국일 거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연준의 지원을 받아 사세를 이어가는 은행도 있겠지만 반대로 선택받지 못해 망하는 은행도 다수 생길 테죠."

연준이 빚을 떠안은 은행은 살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은행은 죽을 것이다.

"미국 은행들이 망해 비어버린 빈자리를 중국 국적을 가진 은행들이 차지하게 될 겁니다."

정호준은 한템포 쉬며 마이클 스팬서를 정면으로 쳐다본 정호준은 시선을 한번 마주치곤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마디 한마디 힘을 줘가며 말이다.

"이민자지만 저 또한 미국인입니다. 미국의 것을 패국의 패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걸 원치 않습니다. 빼앗는 당사자가 훗날 미국의 경쟁자가 될 확률이 높은 나라라면 더더욱."

얼마간 보험료를 지불해야하긴 하겠지만 CDS를 체결한 돈은 최소 5배 이상은 덩치를 키워 다시 돌아오게 될 거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미국에게도, 한국인으로서도, 그의 목숨을 앗아갈 바이러스를 원산지란 것에 대한 복수심을 충족하기에도 좋았다.

중국 6대 은행의 돈을 빼먹고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또 한 번 부담을 주면. 중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흔들리리라.

'서브 프라임 사태를 위한 CDS계약 체결은 일석이조(一石二鳥)도 아니고 일석삼조의 효과일 거다.'

돈도 벌고 복수도 하고, 성장 동력의 일부도 앗아갈 수도 있다.

'중국을 엿 먹일 좋은 기회는 앞으로 한 번 남았다고 보는 게 맞지.'

나비효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만큼 리만 브라더스라는 폭탄의 크기를 더 키워 떠넘긴 일로 인해 정호준이 기억하는 금융 사건이 제때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상당히 높았다.

"이를 위해선 우리 JHJ의 자금이 당신과 당신 펀드의 거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JHJ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마이클 스팬서씨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위기에 베팅해 돈을 벌긴 했으나 마이클 스팬서는 미국인으로써 자국에 분명한 애국심을 갖고 있었다. 서브 프라임 사태가 벌어진 뒤 CDS 청산으로 큰돈을 만진 뒤에 연준과 미연방에 자신이 어떻게 부동산 부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는지 방법을 알려주고자 정부에 연락을 몇 번이나 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연락이 닿아 방법을 일러주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

선의를 선의로 받지 못하는 이들과 희생양이 필요했던 상황 때문에 네 차례의 회계감사와 FBI의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닥! 다닥! 닥! 다다닥!

잠깐 테이블을 양손 손가락으로 드럼을 치듯 두드리며 숙고를 이어간 마이클 스팬서는 결국 정호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함께 가게 돼서 기쁩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과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은 편이 스팬서씨가 움직이기도 편할 겁니다."

보안 유지를 지켜 달라는 충고를 끝으로 모기지 부실을 가장 먼저 알아챘던 남자와의 만남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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