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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1회차 때와 달리 정호준은 운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영양사와 트레이너, 쉐프를 고용해 자기 관리에 힘썼다.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체질 개선이다.'
돈을 왕창 쌓아 놓고 1회차 때처럼 일찍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체질이란 건 바꾸고 싶다고 쉽사리 개선되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어느 정도 품질의 식자재를 사용한 음식을 먹었는지, 끼니마다 영양은 알맞게 배분했는지. 하루하루 운동은 꼬박꼬박 성실하게 했는지와 같은 것들이 수 년, 길면 십수 년 누적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게 바로 체질 개선이란 행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호준은 다시 골프와 승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골프는 사업상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배우는 것이었고, 승마의 경우 아리아가 대회에 나갈 정도로 승마를 좋아하는 탓에 관계가 진전된 후부터 승마를 다시 시작했다.
운동하랴 공부하랴 바쁘게 지낸 덕분인지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중간고사 시즌이 다가올 정도로 말이다.
"요즘 일하느라 바빴잖아요. 시험은 잘 치를 수 있겠어요?"
"틈틈이 공부했으니 점수가 잘 나왔기를 기대해 봐야죠. 그래도 저번에 본 기말고사보다는 점수가 훨씬 잘 나올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아리아도 시험 잘 봐요."
"나는 몇 개 안 되는데요 뭐. 호준이나 잘 보고 와요."
선물계약이 모두 체결된 뒤로 정호준은 유가 변동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다. 유가의 변동이야 굳이 본인이 아니더라도 확인해 줄 사람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삐끗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선물이란 불확실한 도박에 막대한 거금을 투자해 놓고 마음 편히 지내는 정호준과 달리 밑에 직원들은 부담감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자신들의 돈이 아닌 남의 돈을 갖고 선물에 투자했음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역스러워 죽겠는데 정작 돈의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일을 이어 간다.
'선물로 돈을 벌려면 대표님처럼 강심장을 타고나야 하나 보네.'
'사자의 심장이란 게 저런 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직원들이 정호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감탄을 넘어 존경의 감정이 추가되었다.
* * *
별다른 징조 하나 없이 갑작스레 이뤄진 리만 브라더스 인수는 후민티오 주석과 당의 고위급 의원들이 의도했던 대로 당 의원들과 중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준 까닭에 인수 발표가 난 3월부터 4월까지 중국인들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항상 최고였던 중화문명이 서구에 부당하게 핍박받았던 세월이 얼마란 말인가?
중국대륙에 세워진 어떤 나라든 간에 온갖 이유로 욕은 먹어도 근 100년처럼 약자의 입장이 되어 누군가를 위로 올려다보거나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 받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나의 통일 국가가 들어섰을 때는 특히 그랬다.
'참으로 길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그래도 다시금 그들의 나라가 세계의 주류에 들어섰음을 기뻐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대중들은 그러한 기분을 4월에도 계속 이어 갔지만 공산당의 고위 간부들의 성취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법이라 했던가?
4월이 되기 무섭게 커다란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다시, 다시 말해 보게."
"선물시장에서 막대한 피해를 볼 것 같습니다."
"막대하다면 얼마나?"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는 보고 받은 당일 급하게 밤에 담당자들을 부를 정도로 심각했다.
덕분에 당 고위 의원들은 물론이고 경제 정책 책임자라 불리는 이들, 홍콩에서 활동하는 선물계약을 체결한 증권사 대표 및 이사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좋았지만 모두 모였다고 좋은 해결 방법이나 뚜렷한 대책이 나올 리는 없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질책하기 바빴다.
"대체 상무부, 재정부, 중국인민은행, 중국 은행보험감독 관리위원회는 뭣 하던 거요?! 증권사가 폭주하면 나서서 말렸어야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자리는 책임질 자가 누구인지 선별하는 일종의 청문회장으로 변모했다.
"죄송합니다."
사실 추궁받는 이들에게도 할 말은 많았다. 선물시장의 변동을 빠르게 알아채지 못한 데는 경제담당 부서들의 주목과 역량이 리만 브라더스 인수에 쏠려서라는 이유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당 고위직의 추궁에 그들은 사죄를 내뱉었다.
"죄송! 죄송! 그놈의 죄송하다 소리 말고 해결책을 가져오란 말이오!!"
가격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쳐 성과금과 당의 칭찬을 받았던 3월이 꿈처럼 여겨질 정도로 질책성 가득한 호통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 줄은 알고 쉽사리 선물계약을 체결한 거요?! 이 책임을 어떻게 질 생각이오?!"
"리만 브라더스 인수로 한껏 들뜬 인민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한답니까?!"
은근슬쩍 증권사 대표나 이사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 또한 진행되었다. 공산당 의원들의 책잡기에도 자리에 모인 증권사 관계자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당이 가진 권력이나 힘을 떠나 사실 선물계약과 관련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증권사들의 몫이었기 때문.
증권사를 제외한 재무부, 상무부, 중국 은행보험감독 관리위원회 등에서 나온 경제 전문가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투자되는 자금을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든 제도적 책임이 전부였다.
한 차례 고위 의원들의 입에서 화가 섞인 질책이 나온 뒤에야 상황이 조금은 진전되었다.
"예상 피해 금액은 어느 정도지?"
"그게……."
"숨기지 말게. 상황을 제대로 직시해야 해결책이 나와도 나오지 않겠는가?"
망설이는 이들을 향해 부주석은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라 말했다. 그에 보고하는 직원은 눈을 질근 감은 채 말했다.
"원유 선물시장에 뿌려진 돈은 최소 6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선물계약을 체결한 세력이 언제 선물을 매각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로 잡아도 200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됩니다."
중국어는 언어에 높낮이인 성조가 존재하는 탓에 아무래도 성조가 없는 언어와 비교해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는 이들을 만나면 시끌벅적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조 탓에 시끄러운 감이 있는 중국어인데 발언하는 이들이 모두 격정적인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지방방송을 켜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최소로 잡아도 손실이 200억 달러는 될 거라는 말에 긴급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염려스러운 건 유가가 하락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대로 유가 상승이 계속 이어진다면 훨씬 더 큰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당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됐기에 명확하게 그 수치까지 내뱉지 못했지만 자리에 있던 의원들은 모두 눈치챘다. 선물계약 매수자가 계약을 매도하지 않고 버티는 상황에서 유가가 더 오른다면 손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거란 걸.
회의는 몇 날 며칠 이어졌지만, 쓸모 있는 답은 찾지 못했다. 그나마 중국에게 유일한 위안거리가 있다면 선물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게 그들만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증권사 혹은 정부까지 나서서 해결책을 찾느라 바쁜 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물계약을 체결했던 시장들에서 다급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JHJ Capital은 일본에서도 무려 25억 달러에 달하는 선물계약을 체결했고 싱가포르의 화교 자본이 세운 증권사들을 상대로 20억 달러의 선물계약을 체결했다. 남은 20억 달러는 갈가리 찢어 미국 증권사들을 상대로 원유 선물을 매입했다.
일본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한도가 딱 처음 투자할 때의 중국과 같았고 싱가포르나 미국에서 일으킬 수 있는 레버리지는 5~6배에 달했다.
"한국 선물시장은 공격할 필요 없습니다."
한국 선물시장에 투자하고 싶다는 직원이 나오기 전에 선물시장의 규모가 빈약하다는 핑계를 애국심 위에 덧칠함으로써 사전에 방지했다.
* * *
"선물 청산 시작하세요."
이번 선물 투자는 CDS에 투자하기 전 잠깐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정호준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목표가인 70불을 돌파하자마자 정호준은 선물 청산 지시를 내렸다.
JHJ Capital은 선물 청산을 시작한 날은 바로 4월 17일이었다.
"대표님. 유가는 계속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는데, 벌써 빠질 필요가 있을까요?"
자유의 나라답게 몇몇 트레이더들의 정호준의 지시에 사족을 붙였지만 정호준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70불을 돌파한 유가가 다시금 70불 밑으로 내려가는 게 아닌 이상 청산을 멈추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정호준의 말투에서 지시가 철회될 일이 없단 걸 확인한 트레이더들은 지시대로 선물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70.09, 70.40, 70.87, 71.16, 71.35, 72.17, 71.98, 73.83, 74.44, 75.17 등 올라갔다 내려가는 등락의 폭이 존재하긴 했으나 개의치 않다는 듯 선물 청산을 이어 갔다. 어차피 70불을 넘기만 하면 더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정호준의 지시하에 트레이더들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미국 시장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선물을 매각했다.
JHJ Capital은 지금껏 시장에서 매수했던 WTI 원유 선물 물량을 꾸준하게 풀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렀고 선물 매각은 어느덧 끝이 다가왔다.
매각한 선물의 유가 평균은 약 73.22불. 평균 매수가와 차액은 약 10불에 달했다.
매각이 완전히 마무리된 다음 날. 중국, 일본, 싱가포르. 이 세 나라에서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누가 중국을 공격했는가?]
중국은 공산당이 오롯이 존재하는 공산국가였고 일본과 싱가포르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국가였다. 정부의 입맛대로 언론이 기사를 받아 적는다는 사실은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세 나라는 모두 자국의 증권사들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지는 밝히지 않았고 기사에는 책임소재가 증권사에 있다는 뉘앙스가 잔뜩 담겼다.
* * *
보유하고 있던 선물계약을 모조리 털어 낸 JHJ Capital은 결산에 들어갔다.
결산하는 자리에는 조나단이나 지미 딕슨과 같은 고참급 트레이더만 함께했다.
"미…… 미쳤어!"
"Oh my god!"
"What the……."
결산을 통해 유추된 수익은 조나단이나 지미 딕슨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원금을 제하고 홍콩 선물시장에서 번 수익은 약 273억 달러. 일본에선 번 수익은 125억 달러. 싱가포르와 미국 선물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220억 달러.
추후 세금을 제해야겠지만 정호준의 JHJ Capital 계좌에는 원금 포함 748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갖게 되었다.
748억 달러는 올해가 2008년이었고 리만 브라더스가 1회차 때처럼 파산했다면 메릴리치라는 은행을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