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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07화 (10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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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슬러 가문과 만남을 가졌던 날 후로 정호준은 로슬러 가문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던 대로 서브 프라임 사태를 활용하기 위해 움직였다.

21일 월요일 아침. 정호준은 모닝커피를 한잔하며 여유롭게 컴퓨터를 보고 있는 조나단을 보며 말했다.

"'JHJ Capital'과 'SSL Capital'이 쥐고 있는 구골 주식, 전부 처분합시다."

정호준이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루카스 조나단은 정호준에게 질문했다.

"대표님, 구골 주식만 처분합니까? 베팅금은 한 푼이라도 더 많은 게 좋은 거잖습니까?"

조나단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엔플은 쥐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요. 근데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우리가 쥐고 있는 주식을 시장에 털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JHJ Capital과 SSL Capital이 쥐고 있는 구골 주식은 총 5,296,508주. 정호준은 2004년 상장된 구골의 주식 발행수는 330,485,660주, 정호준의 보유 주식은 발행주식 전체를 놓고 보면 약 1.6%에 달했다.

보유 주식 전부를 단번에 매도하기보단 천천히 시간을 드려 매각하긴 하겠지만 발행주식의 1.6%나 되는 주식이 시장으로 나오는데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을 리 없다.

'주가에 영향을 끼치는 선에서 끝나면 다행이지.'

문제가 생긴 거 아니냐는 둥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말이 나오고 매각의 주체가 어딘지 확인 작업에 들어가 종국에 정호준이 매도한 것을 알게 되면 의혹은 증폭되리라.

JHJ와 SSL은 2년 전처럼 무명이 아니었다, 회사 규모 자체는 거물급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영향력만큼은 이미 거물급에 해당했다.

정호준이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주식을 판다고 솔직하게 이유를 밝혀도 세상에는 A라고 말해도 'A'로 듣지 않는 사람이 많다. 특히 남이 실수하기를 기다렸다가 실수를 아프게 파고들어 큰돈을 버는 경우가 종종 있는 금융업계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심했다.

개중 몇몇이 뭔가 있다 생각해 정호준을 따라 주식을 던진다면 이건 정말 의도치 않게 공매도를 한 꼴이 된다. 그것도 구골을 상대로 말이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마따나 세상을 선도할 기업에게 괜한 오해를 사 원한 관계가 될 이유는 없다.

"그럼 시장에 풀지 말고 따로 매각 대상을 알아볼까요?"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정호준이랑 함께 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조나단은 정호준의 한 마디에 정호준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을 희망하는지를 곧장 알아차렸다.

"예,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이참에 구골에게도 매입 의사가 있는지 물어봐 주시죠."

* * *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조나단은 나름의 인맥을 동원해 구골 CEO 에릭 에치슨 슈미트에게 매각 의사를 전달했다.

"대표님, 구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틀 후 구골 CEO로부터 정식으로 답이 왔고, 조나단은 정호준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뭐라고요?"

"구골에서 전량 매입하겠답니다."

"그래요? 좋은 소식이네요."

일이 수월하게 풀린 것 같아 아침부터 기분이 들뜨려는 순간 조나단이 붙이는 사족이 귀에 들려왔다.

"그런데, 저쪽에서 조건을 달았습니다."

"조건이라. 무슨 조건을 달았죠?"

"지분을 인수와는 별개로 구골의 대주주들이 대표님을 한번 뵙고 싶답니다."

"대주주라 하면?"

"구골의 창업자 래니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론이 대표님께 관심을 보인다는군요. 약속 시간은 대표님의 시간에 맞추겠답니다."

'구골'

뛰어난 검색엔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이름이다.

두 천재에 의해 창조된 이 포털 사이트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야후를 물리치고 당당히 세계 최대의 포털 사이트가 되었다. 구골이 세계 최대, 최고가 되기까지 10년도 채 안 걸렸으니 얼마나 뛰어난지는 굳이 더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 'Do the right thing(옳은 일을 하자)'를 슬로건으로 삼고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이기에 정호준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었다.

정호준도 꼭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쇠가 뜨겁게 달았을 때 두드리랬잖아요(Strike While The Iron is Hot). 나도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일주일 뒤인 다음 주 수요일에 만나기로 하죠."

* * *

약속 장소는 켄자스주 남동쪽에 위치한 최대도시 위치타로 결정됐다.

구골을 경영하는 그들도 바쁜 몸이지만 정호준이나 조나단들도 바쁘긴 매한가지였기에 중간에서 보기로 한 것.

정호준은 약속 장소에 조나단, 자넷을 대동한 채 나갔다. 만약 아리아가 시카고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그녀 또한 무리에 추가되었겠지만 학기가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와 동부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올해가 졸업이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했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구골에서 나온 이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JHJ의 정호준입니다."

정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늦은 모양이네요. 래니 페이지입니다. 이쪽은 세르게이 브론."

"래니, 우리가 늦은 건 아니야. 아직 3분 남았다고."

"구골 CEO를 역임 중인 에릭 에치슨 슈미트입니다."

훈남이라 불러도 무방할 남자 둘과 범생이 이미지에서 나이가 든 듯한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고 소개를 마친 구골의 CEO 슈미트는 정호준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일단 먼저 감사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에 공학도인 창업자들과 달리 정치와 계산에 밝았기에 정호준이 구골을 배려해 준 것을 눈치채고 감사를 전한 것.

"구골의 비전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걸요. 배은망덕하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래니와 세르게이를 한 번쯤 보고 싶어 자리에 나오긴 했는데, 어쩐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 질문은 제가 아닌 래니와 세르게이가 대답해 줄 겁니다."

대답을 미루는 슈미트의 말에 정호준은 래니와 세르게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큼! 큼!

정호준의 시선을 받은 래니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IT업계 쪽으로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으신 것 같아서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업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신 분들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좀 부끄럽네요."

다만 진짜 용건은 칭찬 다음에 나왔다.

"정대표님께서 뷔튜브(V-Tube)란 회사에 지분투자를 하신 걸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회사 지분을 저희 구골에 매각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IPO의 성공으로 거금을 끌어모은 구골은 성공에 만족하기보단 다음을 추구했다. 지분을 상장해 번 돈으로 IT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뷔튜브 또한 구골의 창업자들과 슈미트 CEO의 눈에 띈 잠재력 높은 IT회사였다.

'원래 이맘때 뷔튜브가 구골에 인수됐었나?'

지금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1회차 때의 이야기로 정호준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뷔튜브는 2006년 10월 9일 주식교환을 통해 16억 5천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구골에 인수되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호준이 끼어들지 않은 1회차 때의 이야기. 현재 뷔튜브는 자금을 투자받는 것도 모자라 나아 가야 할 방향까지 조언받아 1회차 때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돈이 모자라 추가 투자를 받기도 했고 말이다.

돈을 물 쓰듯이 쓰는 만큼 성장은 가팔랐다.

그렇다 보니 1회차 때보다 더 빨리 구골의 레이더망에 잡혔다.

"……뷔튜브를 우리가 인수하고 싶습니다."

새롭게 키울 만한 사업이라 검토를 마친 슈미트와 창업자들은 사람을 보내 인수의사를 타진했다. 그런데, 이미 창업자들이 쥐고 있는 지분은 많지 않았다.

"좋게 평가해 주신 건 감사한데,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뷔튜브의 소유권 65%가 JHJ Capital에 넘어간 상태거든요. 인수를 요청하시려면 저희가 아닌 JHJ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정호준이 이미 지분을 다수 챙겨 간 까닭에서였다.

'JHJ가 여기서 나오다니,'

JHJ Capital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금융회사들만큼 규모가 크진 않지만 월가의 떠오르는 샛별로 통하며 나름 알짜배기란 것을 확인했기에 인수 의사를 타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JHJ의 행보는 구골에게 있어 기회였다.

세르게이 브론보다는 훨씬 사교적이고 사업에 걸맞는 성격을 지녔으나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었기에 한계가 존재했다. 래니의 말은 CEO들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그렇기에 래니 페이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슈미트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JHJ와 SSL이 보유 중인 구골 주식을 정리하는 것도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라 들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서운해하시지 않을 정도로 가치를 챙겨 드릴 테니, 뷔튜브 저희 구골에 매각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를 만나자고 했던 게 이래서였구나.'

팔 생각이 없었지만 그냥 단칼에 거절하면 저들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을 것 같아 정호준은 가격을 물었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겠다라. 얼마를 부르실지 가격이나 먼저 들어 보죠."

'가격이 맞지 않아 협상에 결렬 난 게 제대로 찔러보지도 못하는 것보다 낫겠지?'

"25억 달러 맞춰 드리겠습니다."

투자금 유치를 대가로 지분을 넘겨받은 것 외에도 정호준은 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추가로 투자했다. 4,000만 달러를 투자해 처음 받아 냈던 지분과 1억 5천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한 덕에 얻어 낸 65% 지분을 25억 달러에 매각하는 건 얼핏 보이게는 굉장한 이득처럼 보인다.

2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무려 12배 이상의 이득을 본 셈이 되니까. 하지만 정호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림도 없지.'

"죄송하지만 가격이 안 맞네요. 뷔튜브가 지닌 비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5억 달러를 훨씬 상회한다 믿거든요.

추가 투자를 한 만큼 지분으로 받아왔다. 흑자가 나기까지 앞으로 십수 억 달러가 더 사용되겠지만, 돈을 써서 규모를 키우고 제대로 선점만 한다면 사용한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그런데 뷔튜브를 달라니, 더 들을 필요 없는 헛소리였다.

정호준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듯 잘라 말하자 따로 말이 더 나오지는 않았다. 정호준의 지분을 래니와 세르게이가 반씩 나눠 가져가는 걸로 협상은 빠르게 체결됐다.

3월 1일 열린 시장 종가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창업자들이 사이가 나빴다면 좋았을 텐데.'

1주당 412.8불에 정호준은 보유 중인 주식 5,296,508주를 전부 매각했다. 경영권을 두고 다투기엔 창업자들의 사이가 워낙 좋았던 터라 주가에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하지 못했다.

2,186,398,502달러. 1,150원의 환율로 계산하면 2조 5,143억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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