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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형편이 허락하는데도 최소한의 의무교육을 실행하지 않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의 국력을 발전시키려면 기술자와 지식인들이 필요하니까.'
그렇기에 권력자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을 교육시키지 않고 바보천치로 둔 채 권력을 탐할 건지, 아니면 국민을 교육시켜 국가를 발전시킬 건지를 말이다.
국민을 교육시키지 않아 국민 수준이 낮으면 권력자(독재자)들이 정권을 이어 가기 수월해지긴 한다. 하지만 통치가 편해지는 것과 반비례해 국력의 성장이 느려진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대양에 떡하니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섬나라라면 독재국가의 국민들이 차이를 느낄 일이 드물어 권력자가 받게 될 위험부담이 적지만 이웃 국가가 주변에 존재한다면 이는 권력자들에게 이런저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국내로는 아무리 철저한 통제를 한다 해도 결국 자신들이 뒤처진 상태임을 들키게 돼 권력을 이어 가는데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국외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더 심각하다. 주변 국가들이 국력이 약하다는 것을 빌미로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21세기가 아무리 정보화, 문명화 시대로 인권 등을 챙긴다지만, 약자가 뜯어먹히는 구조임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
반대로 국력 신장을 위해 국민에게 교육을 제공하면 그 또한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자충수나 마찬가지였다. 배울 만큼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차를 알게 된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 테니까.
한국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서로의 동향, 가족 이야기, 애인, 자식 이야기 등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다 보면 종국에는 정치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만연한 사회에서 독재를 당연시 여길 리 없다. 권력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을 납득시킬 합당한 명분이 필요했다.
"중국인들이라고 공산당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걸 당연하게만 여길 리는 없죠. 우리는 그 점을 파고들면 됩니다."
중국은 정부(공산당)의 힘이 무척 강력한 나라다. 굳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공산당의 말이 곧 법이 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중국 공산당이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15억이 넘는 인구, 그리고 15억이라는 인구가 단일 민족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인구가 많다는 건 내수시장을 포함 중국으로 하여금 여러 이점을 갖게 만들었지만 장점만큼이나 확실한 단점 또한 존재했다.
관리가 힘들다는 것.
'불만이 쌓이고 누군가 주도하는 순간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혁명의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한순간에 거대하게 피어올랐던 것처럼 그들 또한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었기에 중국 공산당은 항상 그 점을 염두에 두었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민인 15억 인민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중국을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은 항상 업적에 목말라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는 업적에 목말라 있는 중국 공산당에게 좋은 미끼가 될 겁니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 규모가 커지는 중국이지만 그런 모습이 중국인들의 눈높이에 맞냐 물으면 정호준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중국의 전신들은 여러 갈래로 찢겨 싸우는 역사를 반복하긴 했어도 종국에는 하나로 합쳐졌고 하나의 나라로 합쳐졌을 때는 언제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편으로 청나라가 완전히 망가지고 아편전쟁에 패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세계의 중심이었다. 항상 최고이기만 했던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는데 바닥을 기다 이제 좀 형편이 피고 살만해진 정도로 낮은 콧대와 어울리지 않고 자존심 센 중국인들이 만족할 리 없었다.
"공산당의 영도 아래 중국의 국력이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의 4대 투자은행 하나를 인수할 정도로 올라왔다. 국민에게 중국의 잘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중국 공산당에게 정말 딱 좋은 먹잇감 아닐까요?"
그 나라의 역사와 중국인들의 자존감, 그리고 정치구조까지 살피며 매각 가능하다 말하는 정호준의 말은 물밑에서 지금껏 세계 경제를 주물러 온 찰스 로슬러마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집요함이 느껴졌다.
"아, 맞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더 있습니다."
"말하게."
정호준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한 말투로 다시 한번 입을 열자 로슬러란 성씨를 가진 3인은 다시 귀를 기울였다.
"혹시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의 메이도프 투자증권에 돈 맡기신 게 있으십니까?"
정호준의 질문에 찰스 로슬러는 고민하는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금의 10%를 투자 수익으로 보장해 주는 훌륭한 투자자지 않나. 개인자금과 은행 자산의 일부를 투자했네만."
찰스 로슬러는 뭐가 문제냐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참 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바리바리 달고 계시네. 뭔가 내가 정말 많이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인데?'
찰스 로슬러의 대답에 정호준은 속마음을 숨긴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원금을 돌려받으십시오. 리만 매각도 그렇고 정말 서두르셔야 합니다."
*****
2006년 현재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투자해 자수성가한 인물로 알려진 상태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증권 거래인이자 유대계 대학 이사장을 역임한 유대계 미국인으로 능력과 인격 모두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였다.
유대계 미국인들에게는 하나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거짓된 가면이 벗겨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
1회차를 살다 온 정호준은 알고 있었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 찰스 폰지와 함께 미국 금융가의 흑역사로 기록될 사기꾼임을.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는 역사상 최대규모의 폰지사기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누가 천조국 출신 아니랄까 봐 피해 금액마저 상상을 초월한다. 사기로 벌어들인 돈을 포함해 고객 계좌의 손실 총액은 약 650억 달러(72조)에 달했고, 법정 관리 이사회는 투자자들의 실제 손실액을 180억 달러(21조)로 추산했다.
전자와 후자 중 무엇이 정답이든 간에 막대한 금액임은 분명했다.
'참, 대단한 인간이지.'
대단하다는 말을 이런 사기꾼한테 사용하는 게 조금 그렇긴 한데 정호준이 이런 생각을 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가슴 아프긴 하지만 보통 폰지사기(다단계)에 연루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이나 평범보다 못한 형편이 조금 어려운 이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야 나중에 붙잡히더라도 이후의 과정이 편하기 때문이다.
폰지사기도 사기꾼들이 잘 먹고 잘살려고 벌이는 짓이다. 권력자나 재벌들의 돈을 빼먹고서 한낱 사기꾼이 뒤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경찰이나 검찰 같은 공권력에 잡히기도 전에 잡혀서 바다에 매장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라는 이 희대의 사기꾼은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폰지사기를 치는 게 아닌 돈이 많은 부자들의 등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었다. 그것도 70년대부터 말이다.
'참 깡도 좋아.'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배경은 간단했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 상류층으로 꼽히는 유대계 미국인이었으니까.'
부친도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나름 알아주는 주식 브로커인데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 또한 유대인 공동체의 신용을 사 폰지사기를 치기 전에는 증권사를 설립해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제 막 대학에서 졸업할 나이인 22세에 증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데 망하지 않고 잘 굴려 나가는 메이도프의 행보는 유대인 커뮤니티의 신용을 사기 충분했다.
'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 민족연인 셈이지.'
능력 있는 사람을 끌어 주고 싶어 하는 건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다.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가 능력 있는 이라 판단한 유대계 커뮤니티는 메이도프에게 자금을 맡겼다.
"매년 투자 원금의 10%를 수익으로 보장해 주겠소."
유대계 자금을 투자받자마자 메이도프는 유대계 자금을 포트폴리오 삼아 상류층 파티를 돌며 투자를 권했다. 유대인들이 돈에 집착하고 남들보다 부유하게 사는 건 20세기, 21세기에도 마찬가지였기에 상류층 인사들은 메이도프에게 돈을 맡겼다.
유대인 커뮤니티의 자금과 별개로 유대인들 또한 메이도프 증권에 자금을 투자했고 말이다.
수익률 10%를 보장해 주니 은행들도 그의 증권사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메이도프 투자증권은 급격하게 성장해 거대한 금융 그룹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판 장희팔이라 봐도 되겠네.'
훗날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메이도프 투자증권은 투자금을 받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이도프 투자증권이 한 거라고는 여러 투자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받고 원금의 10%만 꼬박꼬박 돌려줬을 뿐이다.
메이도프의 명성을 믿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투자를 했으며 투자한 이들 모두가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갑자기 돈을 다시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희대의 사기꾼인 장희팔이 그랬던 것처럼 매년 원금의 10%를 꼬박꼬박 입금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버논 로렌스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은 수십 년간 이어질 수 있었다.
'만약 서브 프라임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덜미를 잡히는 시기가 늦춰졌을지도.'
서민이고 부자고 은행이고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돈이 필요해진 서브 프라임 사태가 아니었다면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은 계속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제 말 허투루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생명이니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리아 로슬러의 가족과의 만남이 끝이 났다.
*****
아리아의 가족들에게 숙제를 여럿 남긴 만남을 끝으로 정호준은 경호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정호준이 몸을 일으키자 아리아도 따라 나오려고 했지만 정호준이 그런 아리아의 행보를 제지했다.
"오랜만에 가족들 보는 거잖아요. 아리아는 좀 더 시간을 보내다 와요."
또 한 번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1층으로 내려온 정호준은 경호원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사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게 맞는 건데."
리만 브라더스, 메릴리치, 다운타운뱅크 모두 절제 없이 서브 프라임 상품으로 단물을 쪽쪽 빨아먹은 은행들이다. 서브 프라임 사태도 사실 그렇게까지 일이 커질 건 아니었다.
은행들이 수천억에 달하는 돈을 퍼부으며 로비를 감행해 법을 바꾸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권선징악이라는 너무 당연한 이치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트려 버린 것 같아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없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니까."
꽃놀이패인 줄 알고 뽑았던 카드가 개패임을 확인했는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만 볼까?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행보였다.
* * *
한편 정호준이 폭탄을 떨구고 나간 회의실에는 정적만 가득했다.
"어디서 저런 물건이 나온 건지."
끝내 속에 담아 뒀던 말을 입 밖으로 뱉은 찰스 로슬러는 이내 손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리아. 히스트 가문의 여식과 저 녀석을 놓고 경쟁했다 했었지?"
"예. 가주님."
"정말 잘했다. 그리고 가주로서, 할애비로서 말한다, 저놈 절대 놓치지 마라."
부친인 찰스 로슬러가 자리의 주역이었던지라 조용히 듣고만 있었던 찰스 로슬러 주니어는 딸의 사윗감으로 확정 짓는 듯한 말에 물었다.
"그럼 아버님 정말 정대표가 말한 대로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미국 부동산에 거품이 껴 있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냐. 녀석처럼 CDS(신용부도스와프)에 투자하진 않더라도 배탈 나지 않게 이쯤에서 빠지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호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름이 돋고 끔찍해서 혼났다.
"그럼 메이도프 투자증권에서도 돈을 뺍니까?"
"그러자꾸나. 녀석 덕분에 꽤 재미있는 핑계가 생각나기도 했거든. 그리고 만약 이번 사태가 녀석이 말한 대로 흘러가면 아리아를 바로 결혼시키도록 하지. 우리가 쥐고 있는 메릴리치의 지분 반절은 아리아에게 상속하고 나머지 반절은 지참금 삼아 녀석에게 주겠다."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배웠다. 모든 것을 빼앗길 위기에서 구원해 줬는데 이 정도 자문료는 줘야 계산이 맞았다.
'아까는 메릴리치를 최선으로 꼽았다지만 최선은 둘 다 먹는 거였겠지. 녀석이 쥐고 있는 자산을 전부 투자한 CDS(신용부도스와프)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늙은 생각이 맵다는 것을 증명하듯 찰스 로슬러는 정호준이 말하지 않고 숨긴 계획을 정확하게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