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05화 (10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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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사 문제는 조금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일단 본론으로 넘어가지."

이야기가 나온 맥락을 살펴보면 농담 삼아 한 말 같았지만 찰스 로슬러는 장난이 아니라는 듯 뒤로 미룰 뿐 끝까지 논할 거란 의사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분명하게 밝혔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리만을 어느 쪽에 매각하는 게 좋겠나? 일본, 중국, 화교자본? 아니면 요즘 세를 확장하는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중동의 왕족들도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군."

찰스 로슬러는 다른 후보군까지 추가해 정호준에게 물었다.

"중국입니다."

찰스 로슬러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민하는 기색 없이 곧장 대답했다, '답정너'라는 기색이 뚜렷하게 드러난 정호준의 대답에 찰스 로슬러는 다시금 질문했다.

"이유는?"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의 영향력, 더 정확히는 미국 금융가의 입김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곳이니까요. 폭탄으로 치면 핵폭탄급 위력을 가진 게 리만 브라더스란 폭탄일 텐데, 그런 폭탄을 미국의 말을 잘 듣는 나라에 투하할 이유는 없죠."

2006년. 아직까지는 중국에 자리를 내어 주지 않고 미국에 뒤이어 GDP 세계 2위를 차지 중인 일본이지만, 일본은 중국과 달리 미국 금융계의 입김이 통하는 나라였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제 불황을 해결하기 가장 좋은 수라는 이유로 한반도에서 다시금 전쟁이 나길 기원하는 일본이란 나라에 한때나마 한국 국적을 가졌던 이로써 또 다른 의미의 핵폭탄을 투여하는 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긴 했다.

그러나.

'일본에 넘기는 건 너무 과한 투자지.'

정호준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일본이란 나라는 어차피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나라였다. 리만 브라더스라는 핵폭탄을 일본에 넘겨 침몰에 가속도를 붙일 필요는 없었다.

굳이 리만을 넘기지 않아도 서브 프라임 사태를 활용해 일본에서 돈 벌 방법은 많았다.

경제 대국이라 불리며 GDP 2위 자리를 유지 중인 일본은 미국의 말을 잘 듣는다. 일본이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건 민족성과 연관이 있었으나 이유야 어쨌든 일본은 미국의 말을 잘 들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중국은 일당 독재 국가로 공산당의 영향력이 너무 강했다.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글로벌화가 추세인 세상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들끼리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음을 인지했기에 문호를 개방하며 체제의 변화를 꾀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그들의 본질(특색)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정치근간으로 삼는 국가의 국민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언제든 맘대로 벌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중국이란 나라에 있어 해가 되고 인간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에도 공산당에 위협이 되거나 공산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란 나라였다.

'미국은 중국이 억지를 부리는 대상에서 제외될 테지만.'

미국은 중국이 억지를 부리고 배를 째도 자국 기업의 몫을 챙길 힘이 있었다. 중국이 계속 못 주겠다고 잡아떼면 연준과 월가의 도움을 받아 중국이 사 간 미국 국채에서 강제로 제하는 방법도 있었다.

'G2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인 지금은 배 째라고 나올 가능성도 희박하긴 하지만 말이지.'

2006년 현재는 G2는 고사하고 아직 일본의 경제 규모를 따라잡지도 못한 상태다. 앞으로 최소 10년 후까지는 미국의 말이 먹히리라 판단한 정호준은 중국이 회귀 전처럼 걸림돌 없이 성장하는 것을 두고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좀 밟아 놓을 필요가 있어. 1회차 때 미국은 중국이 크는 걸 너무 손 놓고 지켜봤다.'

이런저런 걸림돌들을 준비해 줄 생각이다. 정호준의 이러한 계획 또한 미국 국적을 갖게 된 덕에 할 수 있는 조치였다.

* * *

미국이 중국이 급부상한 후에야 뒤늦게 움직이며 뒷북을 친 데는 사실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 불리는 수천만 명의 인명이 죽은 대전쟁이 끝난 뒤에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세계는 이념을 가지고 다시 한번 분쟁을 이어 가게 됐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그 시절을 세상은 냉전이라 불렀다. 1991년 12월 26일. 수십 년간 이어졌던 냉전은 공산주의 총본산으로 취급받는 소련이란 나라가 붕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미국은 소련의 붕괴를 두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정치이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 여겼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부정하는 생각 없이 이상향만 꿈꾸는 멍청이들의 이념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당의 주도로 계획되는 공동부유였다. 사회주의자들이 외치는 공동부유는 멍하니 들으면 참 좋아 보이는 이념이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보기 포장만 좋을 뿐이었다.

공산당과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공동부유는 남보다 더 갖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고픈 인간의 욕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념이었다. 매일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과까지 만들어 내는 이와 게으름 피우며 시간만 때워 성과가 전무한 이. 이들이 과실을 똑같이 나누면 세상에 그 누가 열심히 일하고 싶겠는가? 생산력 저하가 일어나는 건 필연이었다.

게다가 배급을 맡은 공산당 간부가 언제나 공정할 거라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을 우습게 여기는 전제였다.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본인과 본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친지를 챙겨 주고 싶어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갖게 되는 마음이었다.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을 개방해 한번 돈맛을 보기 시작하면, 소련처럼 알아서 무너질 거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이 갖는 치명적인 오류 때문에 미국과 날을 세우던 공산주의의 총본산 소련이 무너졌던 것처럼 중국 또한 그렇게 될 거라고 힐링턴 대통령과 힐링턴 정부는 기대했다.

그렇기에 윌리엄 제스퍼 힐링턴 대통령은 중국의 시장 개방을 최대한 늦추거나 제약을 잔뜩 다는 대신 중국의 WTO 가입을 허가하며 중국의 개방을 도왔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건 2001년 11월로 힐링턴 대통령의 임기가 아닌 2001년 1월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지 W 헤인즈 임기 때였으나 사실상 중국의 WTO 가입은 힐링턴 대통령의 업적으로 봐야 맞았다.

'힐링턴 대통령이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하며 질질 끌어 줬으면 중국의 WTO 가입은 좀 더 뒤로 미뤄졌을 테니까.'

전임자가 이미 포석을 다 깔아 놓아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았던 데다가 조지 W 헤인즈 대통령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는 것을 막을 정신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헤인즈 대통령이 백악관의 주인이 된 날로부터 수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IT버블이 터졌기 때문이다.

거품이 있다는 말은 많이 돌았으나 임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IT버블이란 대형 폭탄이 터졌다. 조지 W 헤인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버블이 터진 여파를 수습하는 것만으로 벅찼다.

중국이 WTO란 집단에 가입한 후로 몇 년째 성장률의 하락세를 이어 간 경제성장률이 다시금 상승세로 변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해 적응을 마친 2년 뒤부터는 성장률 다시금 10%를 넘기며 급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물론 성장률이 다시금 상승세를 이어 간 건 WTO 가입 말고도 분명 다른 여러 이유가 섞여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겠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통계를 봤을 때 WTO 가입이 중국에 많은 이점을 가져다준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생각해 보면 힐링턴 대통령은 참 미국이 좋을 시기에 대통령이 돼서, 꿀이란 꿀을 다 빨면서 똥이란 똥은 잔뜩 싼 대통령이네.'

미국의 역사와 경제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IT버블, 중국의 급성장 그리고 서브 프라임 사태 모두 힐링턴 정권이 만들어 낸 재앙이었다.

미국의 행동이 늦고 중국이 급부상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중국은 소련처럼 다른 공산 국가들에 지원을 해 줄 의무가 없다는 데 있었다.

공산주의의 총본산이 된 소련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에 맞서기 위해 동유럽을 포함해 세계에 퍼진 공산주의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시장을 확대했다. 자신들이 공산주의라는 이념과 소련이란 테두리에 묶어 뒀기에 소련은 공산 국가들에 지원을 해 줄 의무가 있었지만 중국은 그럴 의무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인구가 워낙 많아 시장 내수시장 자체가 거대했기 때문이다. 굳이 밖으로 수출하지 않더라도 내수시장만으로 성장세를 이어 가는 게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시장 형성을 위해 제 살을 깎아서 남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 1회차 때 중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애초에 소련이 무너진 시체 위에 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택한 국가들이 하나둘 들어서 세계에 공산주의 국가가 몇 남지 않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 다 떠나서 사실 중국의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공산주의라 부르기도 애매했지.'

중국 공산당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기득권이 되고자 공산주의라는 탈을 썼을 뿐이다. 중국에 맞게 이념을 수정한다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맞춰 이념이 수정되었다.

중국은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소련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며 세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외도(外道) 취급을 받곤 했다.

세 번째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덕을 많이 봤다. 북한의 김씨 일가가 체제 유지를 위해 대를 이어 핵개발을 이어 간 덕에 중국 쪽으로 돌려졌어야 할 미국의 염려 가득한 시선을 계속 붙잡아 주었다.

북한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북한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이런 미국 수뇌부들의 사고 덕에 중국이 견제를 받기 시작한 때가 상당히 뒤로 늦춰졌다.

'핵이 위협적인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확실하게 누르고 싶었다면 북한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세계에는 북한 말고도 미국에 적대감을 갖고 문제를 일으키는 국가가 존재했다. 소련이 망하고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자가 권력을 잡은 러시아였다. 2008년, 2014년 연이어 사고를 쳐 대니 중국을 향한 미국의 시선은 그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국가들이 미국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난리를 쳐도 중국은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며 웅크렸으니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늦추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호준으로부터 중국에 리만 브라더스를 매각해야 하는 이유를 들은 찰스 로슬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중국이 리만 브라더스를 매입하려 할까?"

중국에 리만 브라더스를 매각하는 게 본인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일지라도 중국이 리만을 매입해 줄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매입할 겁니다. 아니라도 되게 만들어야죠. 100%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주면 매각하는 데는 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정호준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확신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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