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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가 실수를 저지른 뒤 미즈에 증권에서 실수를 알아차리기까지 걸린 시각은 약 2분.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된 뒤에야 알아차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주문 실수를 2분 만에 알아차리고 조치하기 위해 움직였으니 미즈에 증권은 나름 선방하는 모습은 보인 거다.
큰 실태를 저질렀다는 건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했으나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도 허둥지둥하지 않고 수습하려 애쓴 건 그래도 칭찬받아 마땅한 움직임이었다.
만약 도쿄증권거래소의 전산망 오류로 주문 취소가 불가능하지만 않았어도 대서특필되며 주목이란 주목은 다 받으며 '일본 증시 사상 최대규모의 손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목에 걸지 않아도 됐을 거다.
그렇기에 1회차 때 미즈에 증권은 도쿄증권거래소에게 자신들이 입은 손실 407억 엔(4,600억 원) 중 404(4,400억 원)억 엔을 보상해달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들이 처음부터 주문을 실수하지 않았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 아냐. 염치없기는."
도쿄증권거래소 측은 본인들이 실수해 놓고 괜한 트집을 잡는다며 배상을 거절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당연히 법으로 결판을 내는 법.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해!!"
도쿄증권거래소의 단호한 거절에 미즈에 증권은 2006년 도쿄증권거래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손해배상 소송은 진흙탕 싸움처럼 질질 끌리는 특징을 갖고 있었고 미즈에 증권이 시작한 소송 또한 그러한 특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송은 질질 끌리며 무려 십 년 가까이 이어졌고 2015년에 들어서야 겨우 결판이 났다.
2015년 9월 3일 최고재판소에서 미즈에 증권이 승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도쿄고등법원이 미즈호증권에 약 107억 엔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던 판결을 확정지었다.
처음 요구했던 404억 엔을 다 받지는 못했지만 소송을 시작한 미즈에 증권도 이를 다 받고자 소송을 건 게 아닌 만큼 선방한 셈이지만 손해를 봤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들이 손해를 본 건 10년 전인 2005년. 10년 후에 1,070억을 보상받아 봐야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돈이란 건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새끼를 친다. 제트컴 사태가 아니었다면 그 4,000억이란 금액은 새끼를 쳐 더 큰돈이 됐을 거다.
하다못해 2015년에 배상받은 107억 엔을 5년만 일찍 받아냈어도 조금은 사정이 나았으리라. 소송에서 패배해 정말 한 푼도 못 받아내는 것보다야 나은 결과였지만 잃어버린 돈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사실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정말 손실을 조금 메꿨다. 딱 그 표현이 적당하리라.
그리고 정호준이 끼어든 현재 상황은 는 미즈에 증권에 있어 1회차 때와는 비교가 불허할 정도의 최악에 치달았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전산망 오류로 주문 취소가 불가능해진 순간부터 미즈에 증권은 두 가지 대처를 동시에 진행했다. 하나는 도쿄증권거래소와 연락해 취소가 불가능한 상황을 수습하기.
그리고 두 번째 대처가 바로.
"우리도 매입해!!"
시장에 나온 주식들을 미즈에 증권의 계좌로 매입하는 방법이었다. 그것도 미즈에 증권이란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 제트컴 주식을 매수했다. 그런 조치를 취하고도 발행된 주식이 1만 4천주 남짓에 불과한 제트컴의 유령주식 9만 6,000주가 타인의 손에 쥐어졌었지만.
지금은 정호준만 해도 홀로 13만 5천 주를 쥐고 있었다.
역대 최악의 참사라 불렸던 1회차 때와는 아예 비교 자체가 불허한 사태가 벌어졌다.
*****
BNO가 제트컴 사태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제트컴 사태로 돈을 번 건 달리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일본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은 물론이고 일본 시장에 투자 중인 외국인들(큰손)이나 외국계 자금들도 알게 모르게 이득을 챙겼다.
생각해 봐라. 피도 눈물도 없는 타인이 실수하기만을 눈 크게 뜨고 기다리는 냉혹한 금융계 회사들이 타사의 실수(큰돈 벌 기회)를 그냥 두고만 볼 리 없잖은가?
'하이에나나 피라냐보다 무서운 게 바로 금융업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이지.'
BNO가 제트컴남이라 불리며 유명해진 건 어디까지나 일개 개인이 그런 거대 금융 그룹이 낼 법한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제트컴 사태로 이익을 본 이들을 꼽자면 일본 금융 그룹 중 명성 높은 네무라 증권, 미국계 금융회사인 리만 브라더스, JP스탠리. 그리고 스위스계 자금인 CSFB와 USB 금융 그룹이었다.
네무라 증권, 리만 브라더스, JP스탠리. CSF를 포함 총 6개의 금융회사는 제이컴 쇼크로 170억엔이라는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1회차 때 제이컴 쇼크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USB 금융 그룹의 경우 홀로 120억 엔이란 수익을 냈다.
고용했던 알바 한 명 한 명에게 돈이 든 봉투를 쥐여 주며 경고한 것을 끝으로 정호준은 성공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를 갖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 16분이 지난 뒤에야 주문을 취소했습니다. 미즈에 증권은 23만 주에 달하는 유령주식이 시장에 발급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770,000엔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에서 터진 금융사고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으며 정호준은 청담동의 유명 일식집에서 시킨 오마카세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전에 선물 받았던 한 병에 1,400만원을 호가하는 '달모어 디켄더'란 스카치 위스키를 개봉했다.
정태원 회장을 만났을 때 정호준은 달모어 디켄더 2병을 선물로 받았었고, 박기태 면회 갔을 때 한 병 챙겨가 박기태와 함께 마셨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박기태야 좋다고 그냥 넙죽 받아먹었지만. 김은주는 좀 어려워하긴 했다. 김은주가 정호준에게 감사의 표시로 시계를 선물하긴 했지만 선물 리스트에는 술 또한 고려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싼 술이라 마시는 것을 조금 껄끄러워했던 김은주의 얼굴 다음으로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자넷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넷도 이 술 되게 마시고 싶어 했었는데.'
대박을 친 날인데 기념할 필요가 있어서 술을 따고 보니까 애주가인 자넷이 생각났다.
'뭐 이미 땄는데 어떡하겠어?'
실수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고가의 술 또한 개봉했을 때 다 마시는 게 맞았다.
박기태와 마실 때도 그랬지만 와인보다는 위스키가 본인의 입맛에 맞는 걸 느끼며 그렇게 초밥을 안주 삼아 한잔 한잔 들이켰다.
일본 증시 역사상 최악의 손실이 난 날 정호준을 포함한 누군가들은 기대치 않았던 막대한 수익에 축배를 들었다.
*****
분에 넘치는(?) 고가의 술을 마시고 푹 잠든 다음날 정호준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호준은 조나단을 통해 USB 일본지점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다는 미팅 요청을 전달했다. 정호준은 미국 월가의 관심을 잔뜩 받는 이로 성장한 상태였기에 일본지부 지점장 베젤은 흔쾌히 만남 요청을 수락한 걸 넘어 직접 한국으로 넘어오는 수고까지 들였다.
정호준은 청담동의 한식집을 예약해두었고, 약속한 시간에 만남을 가졌다.
-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정호준은 베젤이 방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 USB 일본지점 지점장 베젤입니다.
정호준의 JHJ Capital이 한국에서 펀드를 설립해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모은 사실은 이미 전 세계 금융가로 널리 퍼진 상태다.
'돈 버는데 재주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도 한발 올라타 보자.'
- 일본 투자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협조하겠습니다.
자금 모집을 마친 날 정호준은 한국 언론사들을 불러 모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정호준이 일본 증시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거였다.
'밑밥을 깔아둔 거지.'
팻 핑거 사태가 일본에서 벌어질 걸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일본 투자를 위해 계속 일본 증시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운 좋게 실수를 포착한 것으로 상황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었다.
베젤 지사장의 말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답했다.
- 도와주신다니,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청하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본인이 도울 게 있으면 돕겠다고 말했지만 빈말에 불과했기에 정호준이 정말 부탁을 한다고 하자 잠깐이지만 베젤의 안색이 나빠졌다.
베젤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정호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 도움이라면 어떤 것을?
조심스럽게 묻는 베젤의 물음에 정호준은 입가에 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 제트컴 사태로 발급된 유령 주식 중 귀사의 지분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귀사가 한 3만주쯤 들고 계신 걸로 파악 중인데, 맞습니까?
- 정체가 뭡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근사치에 달하는 주식 보유량이 정호준의 입에서 나오자 베젤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
- 특별할 거 없습니다. 당신과 같이 이번 제트컴 사태로 큰 이득을 본 사람이랄까요?
능청스럽게 말하는 정호준의 말에 베젤은 말없이 조용히 정호준을 바라봤다.
- 리만 브라더스, JP스탠리. CSF와도 이미 접견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USB와 만나는 자리에 오너인 제가 직접 나온 건 저희 다음으로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게 USB이기 때문입니다.
나름 월가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취급되는 JHJ Capital이지만 19세기 중순 혹은 20세기 초부터 이어져 온 역사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리만 브라더스가 2008년에 그 긴긴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운명일지라도 말이다.
- 일본 증권결제기구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모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1회차 때 일본 증권결제기구(일본 증권클리어링기구)는 미즈에 증권으로 하여금 8일 종가를 기준으로 14만엔 더 많은 91만 2,000엔에 회수하지 못한 유령주식들을 결제하도록 특별 조치를 내렸다.
일본 시장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정호준은 회수하지 못한 유령주식 수가 1회차 때보다 무려 13만 5천 주 이상 많은 상황에서 회귀 전과 똑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제값을 받으려면 움직여야지.'
- 우리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합니다. 하지만 힘을 모으자는 이야기는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입니다.
자신들의 정보를 꿰고 있는 정호준이 수상했지만 좀 더 큰 이익을 보기 위해서라면 수상한 자와 손을 잡는 것쯤은 언제든 할 수 있었다.
돈이 된다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는 게 바로 금융가에 종사하는 이들의 특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