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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91화 (9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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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해 펀드 자금을 소집하겠다는 발표를 마친 뒤 가장 먼저 준비한 건 컴퓨터 구입과 통신사를 통한 인터넷망 업그레이드이었다.

'1분, 1초를 단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나 빠르게 작업을 이행하냐가 그 무엇보다 중시될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과정이 이행되는 속도를 단축시킬 요소라면 손을 써두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고 그래서 작업에 가장 중요시될 컴퓨터와 통신망을 손봤다.

입력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작업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조금 더 수월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한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5초만 단축해도 단축한 시간이 모이고 모이면 작업을 한 번 이상은 더 수행할 수 있으리라.'

위와 같은 생각으로 정호준은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무려 억을 상회하는 돈을 이 사전 작업을 위해 사용했지만 정호준은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작업을 마치고 미국 들어갈 때 개조를 마친 것들을 챙겨가면 되니까.'

설령 못 챙겨가 한국에 놔두고 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수천억 이상을 벌어들일 작업을 위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면 아까울 이유가 없었다. 정호준이 신경이 쓰였던 건 다른 쪽이었다.

컴퓨터의 경우 전문가를 불러 설계하고 그대로 이행하는 수고를 들여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지만 인터넷 통신망은 종종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KS그룹의 장녀 정윤정의 힘을 빌려야 해서 껄끄러움이 생겼다.

LS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점유율 1위 자리를 굳힌 KS 텔레콤의 도움을 받았다. 인터넷 통신망 개선이라는 도움을 받기 위해 정윤정의 부친이자 KS그룹의 회장으로 활동 중인 정태원 회장과 만남의 자리를 가져야만 했다.

'밥 먹다 체하는 줄 알았지.'

아이티뱅크의 회장 성 미사요시가 BNO라는 뛰어난 투자자를 만났을 때 자산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정태원 회장 또한 정호준과 만나 자산운용을 요청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이다. 밥 먹기 전에 한번, 밥 먹으면서 한번, 식후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또 한 번.

낯짝이 두껍다고 말하고 싶지만 돈이 걸렸는데 뻔뻔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자산 증식에 대한 욕심에 재벌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다른 이들도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 그 점은 사실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정호준이 신경 쓰게 된 문제는 다른 부분이었다.'

"우리 윤정이와는 어떤 관계인가? 내 딸이라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네.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윤정이 정말 미인이지 않나? 남자라면 눈이 갈 수밖에 없을 텐데?"

자기 딸과 나를 엮어 보려고 식사 시간과 커피 타임 동안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밑밥을 까는 게 가장 불편했다.

정략이란 것 자체에 불쾌감을 느낀 건 아니다. 재벌이고 아니고를 떠나 결혼은 보통 비슷한 수준끼리 했으니까.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하기에는 내 나이가 좀 많지.'

죽이네 살리네, 너 죽고 나 죽자 등등의 추태를 사회생활을 하며 봐왔다. 외모만 보고 사랑을 느끼기엔 그가 경험해온 세상은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았다.

'예쁜 여자를 취하고 싶은 욕망은 될 수 있어도, 그게 사랑이 되긴 어렵지.'

정호준이 예쁜 여배우와 만남을 가진 건 김은주가 끝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투자하며 그 유명한 졸리도 봤고, 그녀 외에도 0.1%의 미인들이 모인다는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을 몇 봐왔다.

예쁘다는 느낌은 종종 받았지만 그게 스폰이나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뭐 만남을 계속하다 보면 감정이 커져서 그게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여자에 미친 것도 아닌데 굳이 손가락질 받을 스폰과 같은 행위를 할 필요는 없었다.

정략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정태원 회장의 들이댐을 거북스러워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략을 한다면 그 대상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가문일 테니까.'

돈으로 그만의 성체를 쌓는 건 분명 정호준의 안전을 보장해주겠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시간을 두고 쌓아 온 그들만의 네트워크에 끼어들기 위해선 돈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정호준은 그 무언가를 얻을 방법이 바로 정략이라 판단했다.

'라디아 히스트나 아리아 록펠러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관심이 호감으로 이어질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지만. 어쨌건 자선행사나 자선 파티장에 한 번씩 얼굴을 비치면서 인연을 쌓고 있다.

얼굴상이나 매력 포인트가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시선을 확 잡아당기기 충분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었기에 '정략이라 생각하고 참고 만나야 한다,'와 같은 불편함은 없었다.

앞으로도 만날 기회는 많을 테니 천천히 어떤 이가 더 자신의 성격과 잘 맞을지를 조금씩 알아가면 될 문제였다.

*****

이틀 일당으로 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이 너무 후했는지 일본어를 수월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자만 구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는 많았다.

'30대 여성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네.'

여성 인권, 생활 수준, 기본생활 수준, 복지 등에 신경을 쓰며 계속 성장한 2020년대에도 미흡했던 게 육아휴직과 관련된 복지다. 2005년은 굳이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도 학생이지만 30대 여성들이 꽤 많이 지원했다. 일급 25만원은 복직을 못 했거나 복직을 준비하는 워킹 맘들에게 눈길이 가는 조건이었으니까.

"일단 먼저 면접 보러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첫 면접을 통해 동일인이 맞는지 인상을 확인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며 대충이나마 인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보 조회 허가를 받은 뒤 KS 그룹의 도움을 받아 지원자들이 범죄 연루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한 차례 걸러진 뒤 두 번째 면접 때 정호준은 보안 유지 사항이 포함한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계약서답게 어려운 법률 용어가 가득했지만 압축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첫째: 일하는 시간 동안은 핸드폰을 이용할 수 없다.

둘째: 핸드폰을 반납할 시간을 준 뒤 소지품 검사(신체검사)를 진행. 성추행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여성은 여성이 검사한다.

셋째: 근무시간은 수요일 오후 8시부터 목요일 오후 1시까지로, 회사가 준비해준 숙소에서 하루 묵는 것에 동의한다.

넷째: 경호원들이 그들의 뒤에 서서 감시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

다섯째, 이틀 동안 갑과 벌인 일들에 대해 보안을 유지할 것. 만약 비밀을 누설한 정황이 확인되는 경우 거액의 피해 보상을 지급해야 함.

잘 모르는 누군가가 일하기 전에 소지품 및 신체검사를 한다고 생각해 봐라. 껄끄럽지 않겠는가? 네 번째 조항도 그런 의미에서 달아 놓은 거다.

상급자 부장이나 차장 직급의 상급자가 내가 일하는지 자꾸만 지켜보고 감시하는 시선을 준다면 기분 나빠 그 회사를 어떻게 다닐까?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명시해두면 얼굴 붉힐 필요가 없지.'

계약서에는 구체적으로 손해배상 액수까지 적혀 있었다. 손해배상금 액수는 당연히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정호준이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본인이 확인하고 설명 받고 지장을 찍고 사인했음을 분명히 하는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

정호준이 섭외한 장소가 CCTV가 많은 강남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계약서의 내용에 또 한 번 걸러졌다. 계약서에 사인한 이들에 한해 정말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31개의 컴퓨터 중 30개의 컴퓨터를 켜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관하는 장을 켜둔 채로 정호준이 요구하는 주식들을 구매하라 시험했고 이를 통해 또 한 번 걸러졌다.

가장 빨리 마친 순으로 순번을 끊어 30명을 결정했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네.'

*****

정호준은 2005년 12월 8일에 제트컴 사태가 벌어진 것까진 기억해 냈지만 사태가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벌어진 일인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침 해가 뜨자마자 세면을 마치고 장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정호준에게 고용된 30명 또한 가볍게 씻은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고 말이다.

알바들의 앞에 놓인 컴퓨터로 로그인된 계좌에는 10만 엔을 넣어둔 계좌가 틀어진 상태였다.

장이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제트컴 주식을 확인하고 있던 정호준은 이변이 생겼음을 확인했다.

그 시각은 바로 9시 27분이었다.

"지금부터 제트컴 주식을 매입합니다. 계좌에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니 주문이 안 될 때까지 제트컴 주식을 매입하십시오."

1주에 61만엔을 받고 매도해달라는 주문을 1엔에 61만 주 매도라는 실수를 범한 순간부터 정호준은 주식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매수 매수 매수 매수 매수.

정호준의 지시에 알바로 고용된 30명의 인원들 또한 황급히 주식 매수를 시작했다.

알바생들은 로그인된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 즉 '자신의 계좌로 주식을 매수해야 하면 어떨까?'란 욕심을 품었지만 그들의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 때문에 차마 시도하진 못했다. 경호원들은 일본어를 할 줄 몰랐지만 어젯밤 정호준이 로그아웃 버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교육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호준을 포함 31명의 트레이더들은 27분부터 43분까지. 무려 16분 동안 오발행된 주식의 매수를 이어갔다.

12만 8,500주.

16분 동안 정호준과 30명의 알바생들이 매수한 주식의 수였다.

미즈에 증권의 실수 때문에 하한가를 거듭 이어가던 제트컴 주식이 하한가를 멈추고 상한가를 띄기 시작했다.

16분이 지난 순간부터 거래되는 물량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즈에 증권에서 매수를 시작했나 보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속으로 혼자 결론을 낸 정호준은 매수를 이어갔고 매수가 불가능하게 된 시점에서 정호준은 일이 끝났다는 선언을 했고, 경호원들을 부려 알바생들을 컴퓨터에서 떨어지게 만들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에 보이는 계좌가 보유한 주식수를 확인하며 정호준은 은행에서 뽑아온 현금 50만 원이 들은 봉투를 주었다. 모니터를 확인하며 한 명 한 명에게 봉투를 건넸고 마지막 사람에게 봉투를 넘기며 지금껏 소유한 주식 수를 확인했다.

"총 13만 5,000주라."

'욕심은 끝이 없다고 좀 더 사람을 고용할 걸 그랬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생각했다.

'욕심부리지 말자. 이미 충분히 털었다.'

하한가를 기록하던 제트컴 주식이 무섭게 변화하며 상한가 곡선을 이어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정호준이 쥔 주식의 태반은 정식으로 발행된 주식이 아닌 유령주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인들의 실수니까. BNO는 주식을 얼마나 주웠으려나?'

본래 역사에서는 이날 BNO가 7,100주에 달하는 주식을 매수했던 걸로 기억하는 정호준은 BNO가 오늘 주식을 얼마나 주웠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속으로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정호준은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여러분이 비밀 유지 각서에 사인하셨다는 사실 잊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세간에 알리시면, 저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소송을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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