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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던 가정이 사실로 변한 것만으로도 폴류스사에 먼저 매각 의사를 밝히며 호의를 베푼 값은 했다. 어차피 가격 조정이 잘 안 되면 다른 쪽에 매각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제국주의 방사능 홍차 아저씨의 관심은 받고 싶지 않았는데.'
크렘린에서 관심을 가졌다. 세상에 그 말만큼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에게 받는 관심이 달가울 리 없다.
그렇기에 정호준의 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찌푸려졌고 얼굴에 조급함이 서렸다.
맷 메이슨과 톰 캐터스에게 통화를 걸었다.
-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 그런가요?
- 예, 제 인맥 선에서 만남을 요청했는데, 녀석이 상부에 보고를 올린 모양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상부에서도 오너를 주시하고 있었나 봅니다. 저희가 친분을 쌓고 싶어도 만남을 갖는 것조차 어려웠던 거물급 인사들이 오너와 만남을 갖고 싶다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
'거물급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왜?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
충분히 세간의 주목을 끌만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정호준은 자신이 주목을 끌 행보를 이어갔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려 노력한다 해도 실제 타인의 시선만큼 객관화되기는 어려운 게 사람이었다.
- 거물급 인사?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 CIA(중앙정보국) 국장 포터 E. 고든과 FBI(연방수사국) 국장 로메로 밀러 그리고 DNI 국장 존 M. 폰트입니다.
잠깐 생각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정적이 흘렀다.
- 뭐라고요? 국장들이 저를 보자고 했다고요? 제가 들은 게 맞습니까?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질문해 보지만 정호준이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 잘못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잘못 듣지 않았다는 확답만이 이어질 뿐.
- 국장급들이 대체 저를 왜?
- 글쎄요. 다만 확실한 것은 오너께서 정보기관에 중요 인물로 기록되어 계신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4대 정보기관이라 불리는 정보기관 중 NSA 국장을 제외한 모든 기관의 국장이 자신과 만남을 청했다는 것에 괜스레 껄끄러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야겠지.'
평소라면 꺼림칙함을 넘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큰 사안이었지만 관심이 달갑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하나인 블리디르 푸틴이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 최소한 FSB 아니 그 이상의 실력과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4대 정보기관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푸틴이 아무리 용을 쓰며 노력해도 세계 최강국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국력의 차이도 차이지만 친구의 차이도 존재했다.
GDP 순위 10위건 안에 들어가는 나라 중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편은 전무했으니까. 인도의 포지션이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중국과 손을 잡은 이상 인도가 러시아의 편에 설 수는 없다.
중국이 파키스탄과의 전쟁에 끼어든 이래로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언제 전쟁이 나도 날 그런 관계였으니까.
*****
자국의 상황과 맞물려 있어 FSB가 먼저 정호준에 대한 정보를 캐치하긴 했지만 전 세계 어디에나 첩자를 파견해둔 미국의 정보통들에 의해 정호준에 대한 정보가 미국 정보기관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이 전달 받은 보고서를 읽고 느낀 감정은 주로 놀라움과 두려움이었다.
'2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무려 10조를 벌었다라. 아니지 이번에 터진 금광까지 재산에 포함시키면 2년 만에 40조를 번 거다.'
수면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은 전혀 모른 채 정호준이 밝힌 드러난 부분 만으로도 한국의 언론이나 정재계, 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거늘, 수면 밑에 숨겨진 부분까지 확인한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이 느낄 감정은 감히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20세기 미국의 유전을 독점했던 록펠러 가문이나 금융 황제 로건을 떠오르게 만드는 성과였으니까. 오죽 심각했으면 혹시 자신이 전달 받지 못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 다른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기까지 했다.
미국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터라 사이가 안 좋은 것을 생각하면 정말 보기 드문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실력으로 봐도 무방하다. 돈 버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네.'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알아서 미국의 품에 안겨 온 셈이군.'
'미국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가게 두어선 안 된다.'
- 만나서 확실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군.
개중 CIA 국장 고든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 다 같이 함께 보는 게 어떻겠나?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서 보고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같이 만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경쟁 관계에 있다지만 조국인 미국을 위하는 마음 만큼은 모두 같았기에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만나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을 찰나에 정호준의 법인에 인수된 민간 보안업체의 지인이 만남을 청해왔다는 보고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미국 정보기관의 수장 셋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는 기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이와 같았다.
*****
정호준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국장들과의 약속을 잡는 동안 폴류스사에서 전문가를 몇 명 파견해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가 제시한 추정매장량에 대한 확인을 마쳤다.
- 정말 6,780만 캐럿이 매장되어 있다고?
- 예. 탐사팀의 의견은 모두 일치했습니다.
혹시나 또 호구 잡히는 게 아닐까 싶어 정호준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이중 삼중으로 확인한 솔레이먼 케리프 회장은 임원들에게 협상을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누르빈스카야 광산의 추정매장량은 6,780만 캐럿. 1캐럿당 500불이란 가격으로 단순히 계산하면 광산 가치는 33,900,000,000(339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339억 달러를 전부 받아낼 수는 없다. 일단 광산의 지분의 100%를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광산 지분을 100%로 나눠 정부 지분인 22%를 차감한 78%만이 온전한 라이온 마인사의 몫이었다.
지분 78%는 26,442,000,000달러의 가치를 갖고 있었고 이를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29조 6,150억에 달하는 액수였다.
- 자투리 빼고 250억 달러만 받겠습니다.
수호이 로그 금광 건으로 해고된 세르게이의 정적 안토니오가 협상 담당자로 나왔고 안토니오는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 하, 수호이 로그 금광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거라면서 받을 건 다 받아 가겠다는 건가?
- 우리는 귀사에 호의를 베풀겠다는 거지, 호구가 되겠다는 게 아니오. 받을 건 당연히 받아야지.
뭐 잘못된 게 있냐는 페레즈 사장의 대꾸에 안토니오는 곧바로 반박했다.
- 광산을 개발하는데 비용이 소모되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아, 광산을 개발하는 작업을 치른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시는 건가?
- 그래서 짜투리 비용을 차감해주지 않았소? 개발비용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14억 4,200만 달러나 소모되진 않을 텐데요?
잠깐 말을 끊으며 안토니오를 바라본 페레즈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이 자리에 협상을 하러 나온 거지 호구 잡히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충분히 성의를 보였습니다.
- 하, 성의를 보였다? 광산 채굴은 뭐 자연스럽게 되는 것처럼 여기는군. 200억 달러. 우리도 라이온 마인사의 체면을 충분히 챙겨준 제안이오.
러시아 하면 주로 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호주 사람의 성깔도 만만치 않았다. 싸가지 없게 나오는 안토니오에 맞춰 페레즈 또한 강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수십 번은 더 죽였을 정도의 시선을 교환하며 협상을 이어나갔다.
- 광산업이란 게 수십 년은 광산을 운영하며 수익을 내는 사업인데 그걸 하는데 시간과 인건비를 들이면서 겨우 14억 달러만 주겠다고? 그게 바로 욕심이야. 네놈들이 제시한 250억에 광산을 구매할 이들이 있을 것 같나?
-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다이아몬드의 가치도 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월가의 자금력을 얕보면 곤란합니다.
실제로 15년 뒤인 2020년대에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캐럿당 700불을 호가했다. 339억 달러의 광산이 474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광산으로 변모한다는 거다.
하지만 페레즈의 말은 안토니오의 심경을 바꾸지 못했다.
- 그럼 월가에다 갖다 팔지 왜 우리와 협상하나? 월가에 가서 협상하게. 관계 개선의 의지는 전무했다고 회장님꼐 일러둘 테니.
250억 달러에는 절대 매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며 자리를 파하려는 모습에 페레즈는 이를 악물며 안토니오의 발걸음을 제지했다.
- 당신의 말 또한 충분히 일리가 있지만, 그래도 200억 달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오.
사실 페레즈 부사장은 월가의 기업들에게 파는 안도 염두에 두었었다. 월가의 자금력은 알아주니까 말이다.
'광산은 웬만하면 러시아 기업에 매각했으면 합니다. 정 안 되면 일본이나 중국까지 알아봐도 되지만요.'라는 정호준의 당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2014년 이후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시작해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정호준으로서는 괜히 미국 기업에 광산을 매각해 미국의 상류층에 악감정을 심고 미국의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1경이 넘는 정부 예산을 가진 미국에게 수십조는 작을 수도 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고 그런 손해들이 모여 미국의 힘을 깎아 먹는 거다.
'본래 러시아 기업들이 발견해서 운영했을 광산들이다. 적당한 값을 받고 파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득이 되는 일이다.'
수호이 로그 금광, 그리고 두 개의 다이아몬드 광산의 가치를 합치면 아무리 작게 잡아도 100조는 아득히 상회하는 가치가 있다. 본래 러시아의 것을 가지고 러시아에게 100조 이상을 뜯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러시아의 힘을 줄여 놓은 셈이다.
기선제압을 하려는 거지 정말 협상을 깰 생각은 없었기에 페레즈가 한발 물러나자 안토니오 또한 한발 물러났다.
- 우리와 관계 개선을 하려는 그쪽의 호의도 있고 하니, 10억 달러 더 추가해 210억 달러에 광산을 매입하지.
한발 물러난 안토니오의 협상안에 좀 더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215억 달러까지 매각금을 높이는 선에서 금액 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렇게 금액 협상이 끝났고, 이제는 매각금을 언제까지 납부할지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