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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 시베리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광을 발견하다!
조단위에 공이 하나 더 붙은 금액은 앞으로 15년이 더 지난 정호준이 죽기 직전의 세상에서도 거금으로 취급된다. 2020년과 비교해 경제 규모가 작은 2005년 현재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광이 된 수호이 로그 금광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광산업계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이들에게 알려졌다. 6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명성을 쌓으며 이름을 날렸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빛을 잃었던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이라는 회사가 다시 한번 광산 업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사실은 금광이 발견된 러시아 수호이 로그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국에도 잠깐이지만 이목이 집중되는 뉴스가 되었다.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요소들이 필요하다. 안정된 정치는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더라도 '영토가 얼마나 넓은지', '내수시장으로 국가를 지탱하는 역할을 수행해 줄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등. 인구와 영토 모두를 갖춘 잠재력이 뛰어난 개발도상국들을 2000년대엔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라 따로 분류했다.
BRICs로 분류되는 나라 중 가장 인구가 적은 러시아조차 한국의 인구보다 2.5배는 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 덩어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2005년은 수년 전 IMF를 졸업하고 다시 한번 성장세를 이어가며 좁은 땅 덩어리에서 GDP 순위 10권에 들어본 해였다. BRICs 국가들에게 하나둘 자리를 내주며 해마다 뒤로 밀려나긴 하지만 말이다.
37조라는 액수는 세계에서 당시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GDP 지수를 기록한 한국 정부의 1년 예산 중 10분의 1에 이르는 돈이었다. 단번에 뽑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매장되어 있는 금이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닌 이상 종국에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주머니에 들어갈 게 뻔했다.
덕분에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지분을 정호준이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평범한 호주 국민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2005년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전무할 때라 지상파 방송국 9시 뉴스에도 나고 경제 신문에는 몇 날 며칠 동안 다뤄졌다.
⌎ 이걸로 내년에는 러시아가 치고 올라오겠네.
모라토리움 선언 이후 나락까지 갔던 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회복 중인 러시아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2006년에는 러시아에게 자리를 빼앗길 거 같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금광이 발견되지 않은 역사에서도 2006년에는 10위를 내주었었지만 말이다.
⌎ 기사 똑바로 안 보냐? 호주 국적의 기업이 탐사에 성공했다잖냐?
⌎ re: 아무것도 모르면 너야말로 입 좀 다물어라. 탐사에 성공한 게 호주 기업이어도 러시아 땅에 있는 광산인데 당연히 러시아에게도 지분이 있을 거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새겨들어라. 어디 가서 무식한 거 티 내지 말고.
한국 포함 경제에 관심 있는 이들은 갑작스레 발견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광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남의 수확을 그냥 눈 뜨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은 새로운 금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이 상황에 한 발 걸친 당사자인 호주와 러시아.
정확히는 러시아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폴류스 회의실.
몇 주 전에 성공적인 매각으로 칭찬받고 작게나마 성과금도 받았던 세르게이는 폴류스 정기 회의에서 솔레이먼 케리프 회장에 의해 추궁을 받았다.
- 세르게이 이사. 분명 금맥이 없을 거라 하지 않았나? 발견됐으면 이미 예전에 발견됐을 거라고.
내 것이었던,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300억 이상의 가치를 지닌 넘는 광산을 겨우 1억 5천만 달러에 넘겨준 꼴이 된 폴류스의 회장 솔레이먼 케리프는 진심으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말 분노하면 말이 없고, 표정이 없어진다 했다.
아마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세르게이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죽음을 맞이해 갈갈이 찢겼으리라.
- 그래서 그때 분명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금광의 습성이 어떤지. 그때 뭐라 하셨죠?
케리프 회장의 추궁에 세르게이의 정적 안토니오가 양념을 덧칠했다.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데 말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부채질을 하는 안토니오는 얼마나 얄밉게 다가오겠는가?
세르게이는 안토니오에게 증오심을 품었다.
물론 증오는 증오고 당장은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없을 거라던 금맥이 발견됐네. 그것도 매장량이 무려 1,780톤이나 된다네. 1,780톤이 우습나?
'폐광 매각에 회장님께서도 동의하셨잖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목숨이 아까우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잘한 건 자기 덕분, 망했을 때는 남 탓하는 권력자들, 그리고 비겁한 이들의 습성상 그리 말해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 죄. 죄.. 죄송합니다.
그저 죽을 죄를 졌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사죄를 청하는 것.
그게 세르게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전부였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마피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은 러시아에서는 권력자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정말 내일 뜨는 아침 해를 못 볼 수도 있다. 중국인들이 인체의 신비를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르게이의 사죄에도 케리프 회장의 심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 나는 자네가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에 돈을 받아 처먹고 우리 광산을 넘겨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드는군.
- 그.. 그럴리 없지 않습니까?! 회장님 젊음과 일생을 폴류스에 다 받친 접니다.
- 알지, 알어. 자네가 일평생 나와 함께한 것도 알고 나에 대한 충성심도 있음을 모르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지금 이 결과를 보게. 매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놈들이 광산을 발견하냐고?! 저건 처음부터 금광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진행한 게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속도야. 그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행보를 보면 금광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온 듯한 움직임이었다. 자신들에게 폐광을 매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금광을 발견하냔 말이다.
의심은 없던 귀신조차 만들어낸다는 '의심암귀((疑心暗鬼)'라는 사자성어처럼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모든 게 수상했다.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에 광산을 매각하자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세르게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르게이는 곧장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 로비스트를 소개해주는 값으로 돈을 받긴 했지만, 그게 제가 받은 뇌물의 전부입니다. 만약 그 이외에 제가 뭐를 받았다면 그때는 이 목숨 회장님께서 가져가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솔레이먼 케리프가 목숨을 운운하기 전에 세르게이가 무릎을 꿇으며 먼저 자신의 목숨을 베팅하자 그제서야 케리프의 분노가 조금은 가셨다. 케리프 회장이 보기에 저 눈빛은 억울하다는 감정과 결백이 섞인 눈빛이었다.
물론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이렇게 끝내기에는 수호이 로그 새롭게 발견된 금맥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으니까.
- FSB(러시아 연방보안원)에 수사를 요청할 걸세. 자네의 결백이 증명되면 그땐 해고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그런데 만약 자네가 말했던 것 이상으로 라이온 녀석들에게 받아먹은 게 있다면, 그때는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의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거야.
가족까지 거론하는 솔레이먼 케리프 회장의 말에 세르게이는 지금껏 회사와 그를 위해 헌신해온 자신의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마지막 기회인데.
- 예, FSB를 동원해서 저를 뒤지셔도 좋습니다.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솔레이먼 케리프는 정말 FSB에게 세르게이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고 세르게이의 결백이 밝혀져 잘리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세르게이가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아 목숨은 건진 채로 마무리되었다면 목숨을 못 건진 이들도 존재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로비스트가 건네주는 돈을 받고 러시아 정부가 가져갈 지분을 줄인 이르쿠츠크주의 관계자들이었다.
세계 최대의 금광을 러시아 기업이 직접 개발해도 아쉬울 판국에 타국의 개발회사가 광산의 개발권을 가졌고 러시아 정부의 몫까지 줄여진 상태였다.
'감히 누구 맘대로 러시아의 몫을 줄인 거지?'
푸틴은 러시아 곳곳이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는 것을 모르지 않고 부정부패(자신이나 자신의 측근들이 받는 것 제외)를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푸틴은 러시아 정부의 자금이 되어줄 지분(자신의 것)을 주정부 관계자들이 제 마음대로 줄였다는 것에 분노했다.
로비스트에게 받아먹은 돈은 물론이고 FSB에 의해 계좌가 탈탈 털리며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다. 물론 재산을 압류당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가족들을 모두 길바닥에 나앉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당사자는 아침 해를 못 보게 됐다.
'호준 정', 'JHJ Capital', 'SSL Capital', 'Selliban Capital'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들어선 후 여러 개로 갈라졌지만 CIA와 함께 세계를 누빈 KGB의 명성과 정보력은 여전했다. 푸틴에게 올라간 보고서에는 정호준의 사진과 정호준이 만든 법인들이 모조리 적혀 있었다.
'5천만 달러로 2년 만에 63억 달러를 만들었다라. 수호이 로그까지 끼면 400억 달러를 번 셈이군. 녀석이 하는 일이 행운이 따라준 걸까? 아니면 본인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걸까?'
전자든 후자든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정말 재미있는 녀석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도 모른 채 정호준은 파티를 개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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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이란 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민간 보안회사를 인수한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 후에 개최하려 했던 파티는 자꾸만 뒤로 밀려 10월 초나 돼서야 개최가 되었다.
'자꾸만 뒤로 미뤄서 미안하기는 한데, 뭐 아쉬운 건 내가 아니잖아?'
정치인들의 자제나 재력가의 자녀들과의 친분을 쌓는 일보다 사업이 훨씬 중요했기에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밀리고 밀렸던 파티 일정은 Midterm exam을 마친 뒤로까지 밀렸고 이윽고 광산 매입 건 때문에 10월 초까지 밀렸다.
'아무리 잘나간다 그래도 이건 너무 거만한 거 아냐?'
살면서 이런 푸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정재계의 자녀들은 정호준에게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제 맘대로 몇 번을 일정을 바꿨는데 좋다고 참석하는 건 우리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아버지는 자존심도 안 상하세요?'
'시끄럽고 제대로 친분 만들어 놔. 쓸데없는 자존심에 파티 참석 안 했다는 소리 들으면 용돈이 5분의 1로 주는 수가 있어!'
정치인이고 재력가고 할 것 없이 돈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자존심을 부리기에는 정호준이 번 돈의 단위가 너무 컸다.
'자존심 부리는 것도 상대를 가려가면서 하는 거다. 처신 똑바로 해!'
군부 독재 시대를 살아온 정재계 인사들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쳤지만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자식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정호준이 내 비자금을 맡아주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김칫국까지 사발로 드링킹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