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70화 (7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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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산호세를 지나 로스 가토스란 도시로 이동한 정호준은 미리 준비해둔 와인을 챙겨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과연 이 집을 가정집이라고 봐도 될까 싶지만.'

돌 테라스로 둘러싸인 잉어를 키우는 연못. 석회화 벽 위로 폭포를 재연해둔 수영장, 잘 꾸며 놓은 정원. 그리고 이 세 요소와 집, 담들이 잘 어우러져 하나의 멋진 풍경으로 어울리게끔 꾸민 센스가 돋보이는 건축양식까지.

'한국에서 몇 번 들렀던 고급 리조트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정호준이 1회차 때 간혹 참석했던 단합회 단골 장소인 경기도 양평의 리조트보다 훨씬 잘해놨다. 고급 리조트보다 좋아 보이는 집에 속으로 감탄하며 천천히 구경하고 있을 때 동네 아저씨, 서양버전쯤 되는 풍채를 지닌 이가 웃으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 요즘 핫하다지? 좋은 일도 했더만. 금융계의 스타를 만나서 영광이네. 스티븐 위즈니악일세.

정호준이 약속을 잡은 두 번째 인물은 바로 스티븐 위즈니악. 스티븐 잡스함께 애플을 창업한 남자였다. 80년대 중반쯤 잡스와 싸운 뒤 지분을 팔고 떠난 남자기도 했고 말이다.

- 호준 정입니다. 영광은요. 워즈니악씨는 이제 시작한 저랑 달리 이미 업계의 전설이잖습니까? 제가 더 영광이죠.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챙겨온 겁니다.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정호준은 미리 챙겨왔던 와인을 건네며 말했다.

- 집이 정말 멋집니다. 풍문에는 원즈니악이 설계한 집이라던데, 맞나요?

- 85년에 설계해서 86년에 완공했지. 벌써 20년이 다 됐구먼.

'와 이 집이 80년대에 디자인해서 지어진 집이라니.'

컴퓨터 관련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쪽에도 재능이 있었나 보다. 최근 건축했다 말해도 믿을 정도로 현대적인 곡선이 설계에 포함되어 있으니.

대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걸까?

- 80년대에 지은 집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인테리어랑 건축양식이 정말 세련됐어요.

-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닌가?

- 아뇨,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위즈니악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이 사람은 참 유쾌한 사람이란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엄청난 친화력을 가졌다. 첫인상인 동네 아저씨 같다는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 사람이 정말 본격적인 PC(Personal Computer)의 시대를 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꽤 수다적이기까지 했다. 식사하는 동안에도 궁금한 것을 계속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위즈니악은 정호준이 구글의 IPO 성공을 확신한 근거가 무엇인지, 앞으로 IT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등 정호준의 안목과 생각을 끊임없이 물었다.

'면접 자리도 이보다는 편하겠다.'

대답하느라 바빠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흡입한 건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것저것 대답하느라 바빴다.

- 궁금했던 건 다 물어봤으니 이제 찾아온 용건을 물어볼 차례지?

보통 용건부터 묻고 자잘한 건 나중에 친해진 뒤에 묻기 마련인데, 뭔가 반대로 됐다.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기에 정호준은 위즈니악을 보며 용건을 꺼내들었다.

- 위즈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요.

- 내 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지. 너무 두루뭉술한 거 아닌가?

웃으면서 되묻는 위즈니악의 질문에 정호준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온 용건을 이야기했다.

*****

처음 정호준이 투자를 감행할 때는 그냥 대박날 곳에 투자해 돈을 버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반복된 투자로 돈을 벌다 보니 어느 순간 돈을 버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쉽게 돈을 벌어서 그런가?'

100불에 벌벌 떨었던 작년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은 큰 돈을 굴리고 있다. 수중에 큰돈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호준은 뭔가 자기 주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게 사업병인가?'

최대한 자기를 객관적으로 진단한 정호준은 이삭줍기를 위해 움직였다.

'내가 주도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말이,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몇 번을 말아먹어도 감당이 될 만큼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됐지만 실패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괜찮다고?

배우는 게 있고 좋은 경험을 했으면 된 거라고?

세상 그 어느 누가 실패하겠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품고 사업에 임할까?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은 욕구는 정호준도 똑같았다.

위즈니악의 영입은 정호준이 계획한 사업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퍼즐이었다.

스티븐 잡스가 트렌드를 읽는 사업가 기질과 창의력을 가진 천재라면 스티븐 위즈니악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공돌이다. 위즈니악은 애플을 창업했을 초창기 기술을 홀로 담당했다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기술은 전무하고 상상과 구도만 가득한 정호준의 계획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해줄 그런 능력자였다. 그렇기에 뉴욕으로는 사람을 보냈으면서 이곳에는 직접 왔다.

*****

창업을 한다면 과연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 정호준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업한다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해낼 아이디어는 없었다.

'안드로이드를 놓친 게 너무 아쉽다.'

이쪽 업계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은 구글이 처음부터 안드로이드를 개발했다고 알고 있기도 하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뼈대가 되는 것은 구글이 인수한 뒤 살을 붙였을 뿐이다.

정호준이 입시와 유가 선물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인 2005년 7월. iOS와 함께 양대 운영체제로 성장할 안드로이드사의 안드로이드가 구글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놓쳤으면 잊어버려야 하는데, 놓친 떡이 너무 크네.'

이제 와 애플과 구글에 맞서는 운영체제를 만들기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애플은 이미 진행 중일 거고 구글도 운영체제의 뼈대를 매수한지 오래였다. 만약 핸드폰 운영체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거였으면 좀 더 빨리 준비했어야 했다.

'코코아톡 같은 메시지 앱을 만드는 게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겠네.'

훗날의 미래에 한국은 '코코아톡'을 사용하고 일본은 한국 N사와 일본의 IT기업이 합작해서 만든 '레몬'이란 앱이 시장을 점유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RD(Red Berry)'라는 앱을 사용했다.

남미대륙, 아프리카, 서유럽, 인도는 주로 '왓츠업'이란 어플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북미대륙이나 오세아니아는 'The Facebook Messenger'를 사용했고 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처럼 찢어져 있는 메신저 사용률을 하나로 묶는다면 '뷔튜브'나 'The Facebook'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성을 일궈낼 수 있으리라.

'중국은 위챗을 사용하지만 검열에 협조할 생각은 없으니 중국시장은 포기해야지.'

검열에 협조하는 순간 다른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에 마음만 먹으면 불합리하게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시장을 갖겠다고 다른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아예 쿨하게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자금은 충분하다. 시간도 충분하고.'

메신저 사업에서 선점 효과가 얼마나 큰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 정호준은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다른 창업자들은 제대로 사업을 구상하지 못한 이 시기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서 밀어붙이면 충분히 가능성이 보이는 사업이었다.

정호준에게 필요한 건 오직 상상을 구현해줄 인재뿐이다.

그러나 정호준은 뛰어난 개발자들을 끌어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별다른 명성이 없는 지금 높은 연봉을 약속해도 끌어올 수 있는 인력은 한계가 있지.'

정호준이 영화투자와 주식투자, 그리고 1억 달러 기부로 어느 정도 명성을 획득하긴 했지만 그러한 명성은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을 스카우트하는데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사람들이 대기업에 목을 매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위즈니악이 필요했다.

20년대에도 애플의 창업자 중 한 명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존경받던 그라면 정호준이 돈으로 스카웃하지 못했던 인력들을 끌어오는 게 가능하리라.

- …… 결제 시스템과 은행의 시스템까지 저희가 만든 채팅 앱과 묶어 하나의 거대한 성을 만들어낼 겁니다.

정호준은 WIFI기술의 발달과 기술의 발달로 핸드폰이 점차 컴퓨터처럼 사용될 것임을 예측하며 지금은 돈을 내고 사용하는 메시지가 메신저앱으로 대체되는 미래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점유율을 가지고 이룩할 것들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 전화 통화 없이 핸드폰 하나로 어디서든 결제, 계좌이체가 가능한 세상이라. 정은 정말 커다란 꿈을 꾸고 있군. 정말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위즈니악은 웃음기나 장난기를 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위즈니악과 몇 시간 함께 보내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다.

- 지금은 그저 꿈이고 이상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죠. 정말 그게 가능할지도.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건 나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목표한 것을 달성해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그 근처에는 이를 수 있겠죠.

잠깐 말을 멈춘 정호준은 진지한 표정의 위즈니악을 보며 씨익 웃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위즈니악이 도와준다면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제가 이곳까지 날아와, 위즈니악 당신을 만나고 있는 거고요.

서브 프라임 사태로 파산할 위기에 놓일 은행 중 부채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은행을 인수해 금융까지 엮는 것에 성공한다면 정말 해낼 수 있으리라.

미래에서 전부 이룩된 사실들을 근거로 세운 계획이지만 당장에는 정호준이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정호준이 마음에 들었는지 위즈니악은 안 어울리던 진지한 표정을 풀고 웃으면서 말했다.

- 위즈니악은 너무 딱딱하니 지금부터는 그냥 위즈라고 불러.

웃으면서 말을 놓으라는 위즈니악의 말에 정호준도 웃으면서 말했다.

- 잘 부탁합니다. 위즈

위즈니악을 위즈라고 편하게 부르기는 했지만 위즈니악 섭외에 성공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위즈니악에게 지분을 얼마나 줄 것인지.'였다.

자본과 아이디어는 정호준에게서 나왔지만 기술과 인력은 위즈니악이 담당하는 상황이라 지분을 얼마나 챙겨줘야 할지 제대로 감이 오지 않았다.

정호준이 갈등하고 있는 것을 아는 건지 위즈니악이 먼저 선수를 쳤다.

- 자금은 JHJ Capital에서 댄다고 했으니, 20%만 챙겨줘도 충분해. 아, 물론 연봉은 잘 챙겨줘야 하는 거 알지? 나 비싼 몸이라고?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는 미래의 평가가 정말 맞나 보네.'

이렇게 쿨하게 지분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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