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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9화 (6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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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많다는 건 돈 없이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돈이 많다는 게 꼭 장점만 가지고 오는 건 아니었다.

돈을 갖고 있는 만큼 돈이 없을 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것들을 걱정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경쟁을 통해 승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로 이뤄진 만큼 그가 재산을 불리면 불릴수록 누군가는 잃었다는 소리가 된다. 부자라는 이유로 부러움과 질시에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도 동양인이 말이지.'

본인도 동양인이면서 자꾸만 동양인을 깎아내리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게 기분 나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개선될 인식이긴 하지만 동양인을 무시하는 풍조가 뿌리 깊이 박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미국 포함 서양에는 동양인, 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가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그냥 평범하게 길을 걸어가다가 인종차별자들에게 험한 말을 듣는 경험을 한 황인들은 종종 있었다.

경호회사를 인수하기 전에도 경호원을 고용해 다닌 만큼 정호준은 그런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백인한테 똑같이 무시 받는 처지인 흑인 중에도 인종차별자가 있다는 게 참 웃기지만.'

어쨌든 그들이 자신보다 못하다 여기는 동양인이 자신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사람들이 미국에는 쌔고 쌨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종차별이 범죄로 인식되는 추세라 대중이 뜻을 모을 계기로 떠오르진 않을 테니 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상류층이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경우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진 것도 많은 이들이 그런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을 가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경험하고 난 뒤에는 너무 늦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마따나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 다 뺏기거나 억울하게 당한 뒤에 복수를 꿈꿔 봐야 뭐하겠는가.

적당히 규모가 있는, 창업자들의 말마따나 앞으로 사세를 확장할 여지가 확실하게 보이는 회사를 인수한 건 바로 그래서였다, 안전을 책임지는 민간 보안회사를 가장 먼저 인수하긴 했지만 경호회사를 인수한 걸로 만족하고 인수를 멈출 생각은 없다.

회계회사, 보험회사, 영화 제작사 등 인수를 하며 몸집을 불릴 생각이다.

돈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지만 돈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힘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을 자신과 재산을 지킬 힘으로 변환시키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건 필요한 작업이었다.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이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뚜렷하게 드러나는 인종의 차가 존재하는 미국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나씩 하나씩 기반을 만들어나간다.'

정호준이 세운 법인의 관리하에 움직이는 회사가 늘어나면 고용된 직원의 수도 증가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고용을 가지고 정부와 딜을 하고 아쉬운 게 있으면 회사 밑에서 일하는 이들을 담보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듯 정호준의 법인에서 돈을 받아 가는 이들이 자본주의 논리가 아닌 어처구니없는 횡포로부터 정호준을 지켜주게 될 것이다.

*****

- 다음주쯤 홈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아마 30명은 넘게 방문할듯싶으니 넓은 집으로 좀 알아봐 주십시오.

강진영과 만남을 가진 뒤 정호준은 자신의 경호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집을 수배해줄 것을 요청했다.

- 알겠습니다.

한국, 중국에서 부업으로 라이더(배달)를 뛰는 것처럼 미국, 캐나다 등은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홈파티로 명목으로 대여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결혼휴가가 아닌 이상 주말을 끼지 않고 평일 5일을 연장, 그 이상으로 휴가를 붙여서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과 달리 북미대륙이나 서유럽 국가에서는 휴가를 붙여 사용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휴가를 그렇게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회사 법규나 헌법 등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을만한 구석(배경) 없이 쉬고 싶다고 그렇게 휴가를 질러버리면 그건 곧 '나 회사 그만 다니고 싶으니 잘라주십시오'를 돌려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자잘자잘하게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아시아의 기업들과 달리 서유럽이나 미대륙의 기업들은 본인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휴가를 붙여 쓰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서유럽이나 캐나다, 미국, 멕시코 같은 북미권 국가의 국민들은 휴가를 붙여 써 자국이 아닌 해외로 놀러 가는 일이 잦았다.

최소 2주는 본인이 집에 없기에 '집을 그냥 빈 채로 놔두는 것보다 빌려줘서 돈이라도 벌자'라는 생각이었다.

집이 그냥 집에서 끝나는 게 아닌 삶에 크게 기여하는 동양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 좀 있었지만 홈파티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꽤 흔했다.

'자기가 찝찝하지만 않으면야 자기 재산으로 뭘 하든 자유니까.'

홈파티를 개최할 장소를 물색하는 것을 트리오플에 맡긴 정호준은 경호원을 대동한 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린 정호준은 곧장 샌 브루노(샨 브루노)로 이동했다.

샌 브루노는 샌프란시스에서 남쪽으로 2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 구글과 함께 전 세계가 애용하게 될 온라인 비디오 공유 플랫폼 뷔튜브의 회사가 있는 곳이었다.

뷔튜브는 2005년 9월 엔젤투자자의 자금과 창업자들이 모은 돈으로 개발과 운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Your Digital Video Repository.'를 슬로건 삼아 조금씩 조금씩 사세를 확장하고 있긴 하지만 슬슬 힘에 부쳐오는 것을 창업자들은 느끼고 있었다.

슬슬 투자금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돈을 투자할 곳을 물색 중이던 정호준에게 이는 기회였다.

'창업할 때 발을 담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원유 선물과 입시에 집중하느라 창업할 당시 자금을 투자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만 엔젤투자자 외에 다른 투자자가 참여하지 않은 지금도 그리 늦지 않았다.

- JHJ가 투자해준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뉴욕에서 열린 자선 파티에서 1억 달러를 기부해 미국에 잠깐이지만 이름을 알린 JHJ Capital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투자회사로 명성을 높이는 중이었다. 2004년 JHJ Capital에 투자를 받은 'The Facebook'은 2005년 5월 지분 13%를 대가로 2,800만 달러를 추가로 받아내며 고등학교 버전을 출시해 회원을 끌어모았다.

투자자를 물색 중인 창업자들에게 JHJ Capital의 투자 제안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 꿈 아니니까 준비해. JHJ의 평판이 좋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에서 투자금을 받아내려면 준비해야지.

뷔튜브의 창업자 해리 할리, 라오 첸, 조 키림은 투자금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준비에 나섰다.

- 먼 곳까지 찾아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뷔튜브 창업자 해리 할리입니다.

- 명성이 자자한 JHJ Capital의 오너를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리오 첸입니다.

- 조 키림입니다.

-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그리고 미안해 하실 일이 아닙니다. 투자자로서 우량 기업에 찾아오는 수고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오히려 좋은 투자처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정호준은 창업자 한명 한명 손을 부여잡으며 악수를 나눈 뒤 뒤돌아 손짓하며 자넷과 경호 팀장 브리안을 소개했다.

뷔튜브 창업자들은 소개를 마치자마자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망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세상이기에 타협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마이클 저커버그나 그의 동료들은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해 세상 물정은 모르고 자부심과 자존심만 충만한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2004년에는 정호준이 한발 물러나야 했다.

'이제는 좀 다르지만.'

25% 이상의 지분은 챙겨줄 수 없다면서 날을 세웠던 저커버그지만 회원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자금은 빠르게 말라갔고 정호준에게 추가 투자를 요청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별만큼이나 많은 벤처 회사들이 창업했다가 사라진다. 주변에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이들이 다수 존재했고 그들에게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이것저것 간섭하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망하는 걸 봐왔다.

'The Facebook'이 순조롭게 순항 중이지만 망한 회사 중에는 그들이 생각해도 괜찮은 아이템 같다 싶은 곳도 있었다.

'아이템이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본래 성공할 운명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저커버그들로써는 정호준이 그들에게 날아든 행운처럼 느껴졌다. JHJ Capital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양반이었다. 그래서 'The Facebook'의 창업자들은 다른 회사를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JHJ의 자금을 추가로 투자 받는 것을 선택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은가?

그 덕에 정호준의 지분은 38%까지 늘어났다.

'상장하면 결국 줄어들겠지만.'

반면 뷔튜브 창업자들은 페이팔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기에 대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돼서 기쁘네요.

정호준은 4,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대가로 지분 42%를 받았다. 사회생활 덕분인지, 아니면 정호준이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중이라 정호준의 안목과 생각을 인정하는 건지.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호준의 조언을 듣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 그냥 참고만 하시죠. 저는 뷔튜브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호준은 회귀 전 뷔튜브 플랫폼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었는지, 어떤 형식을 띠었는지를 '뷔튜브가 가야 그려야 할 목적지는 이런 게 아닐까?'라며 어렴풋이나마 알려주었다.

- JHJ Capital이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있네요. 어떻게 이렇게 또렷하게 미래를 그리시는 건지, 존경스럽습니다.

정호준은 그저 그가 미래에 겪은 정답을 일러준 것뿐이지만 뷔튜브 창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 혹시 서버를 확장하느라 자금이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주세요. 뷔튜브의 성공이 곧 저의 성공입니다.

'잘하면 미래가 바뀔 수도 있겠는데?'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창업자들의 태도에 정호준은 뷔튜브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구글이 인수 후로도 몇 년은 큰 돈을 쏟아부은 뒤에야 제대로 된 수익을 낸 뷔튜브지만.

정호준에게는 그 돈을 감당할 자본이 있었다. 뷔튜브가 구글에 인수되는 게 아닌 사세를 확장해 IPO를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야 더 바랄 게 없는데.'

The Facebook과 V-Tube. 두 기업의 상장은 정호준이 지금까지 번 돈의 수십 배를 벌게 해주리라. 그런 상상을 잠깐 하다가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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