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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다.
강도, 강도살인,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이 웬만해서 경험할 일이 없는 일들이 미국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돈이 많다면 한국 만큼이나 안전할 수 있지만 돈 없는 이들은 안전조차 위협 받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폭동도 심심하면 한 번씩 일어나지.'
평화 시위임에도 시국이 좋지 않아 허가를 내리지 않았고, 허가 받지 않았음에도 시위를 이어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탄, 물대포 등을 사용하는 건 한국에 살면서 간혹 한 번씩 뉴스를 통해 보고 들은 적이 있다. 시위를 탄압하는 이들이 무력을 사용하는 건 종종 들어봤어도 시위하는 쪽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건 21세기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력 시위는 꿈도 꿀 수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폭력을 동반한 시위도 종종 발생했다. 미국의 시위는 위험도 면에서 한국과 차원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게 중범죄 전과, 가정폭력 전과, 심신 미약, 접금금지 명령, 정신치료시설 입원 기록, 불명예제대, 불법체류와 같은 기록만 없다는 가정 하에 시민권이나 영주권과 돈만 있으면 총기를 소지하는 게 가능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란 나라였기 때문이다.
총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만큼 폭동이 일어날 때마다 무장한 폭동 세력 때문에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피해가 생겨나곤 했다.
'내 몸을 지키려면 경호업체는 필수다.'
정호준은 자넷이 추려준 명단 중 'Triople Canopu'란 회사에 관심을 가졌다. 자넷을 통해 인수 의향을 전했다.
9‧11테러 이후 테러에 경각심을 품은 육군 특수부대 베테랑 '맷 메이슨'과 '톰 캐터스'가 2003년에 창업한 회사로 테러에 대비에 전문으로 내세우며 이라크 전쟁일 발발된 이후 연합군 임시 당국 본부를 보호하고 장비를 갖추는 것을 돕는 계약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Blackwater'를 합병한 Acadamy와 합병해 덩치를 키워 경호업계 시장에서 30위 안팎을 맴돈다.
아카데미에 인수되기 전까지 정확히는 2010년쯤까지 성장을 이어가며 규모를 키워나가겠지만 그거야 이쪽 업계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정호준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정호준이 아는 거라곤 자넷이 이야기해준 회사의 규모와 현재 매출 수준, 그게 전부였다.
- 3억 달러는 너무 적습니다.
당장에는 1천 명을 겨우 넘기는 규모에 매출도 6천만 달러도 채 안 된다. 매출이 6천만 달러도 채 안 되니 월급 줄 거 다 주고 남은 순수익은 훨씬 적으리라.
- 지분을 모두 넘겨 받는 것도 아니고 60%의 지분을 인수하는데 5억 달러면 충분히 쓴 것 아닙니까? 귀사의 매출액을 생각하십시오.
지분을 모두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과반을 조금 넘기는 60%의 지분과 맷과 톰을 CEO로 임명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도 3억 달러는 적다고 고개를 저었다.
- 지금껏 들인 투자와 인프라, 그리고 이라크전을 통해 성장한 인지도를 활용하면 이제 돈 벌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트라이오플 간절히 원하는 건 Mr. Jung이지 저희가 인수해 달라고 매달린 게 아닙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란 용어, 이럴 때 사용하는 단어 아닙니까?
주식이 상장되지 않은 회사인 만큼 돈이 있다고 무작정 인수가 가능한 게 아니다. 성장이 멈췄거나 사세가 기울어진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아직 인지도에서는 한참 뒤처지는 JHJ Capital이다. Triople은 정호준이 조금 욕심부렸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경호회사였다.
- 원하는 액수를 말씀하시죠.
단도직입적으로 액수를 묻는 질문에 우락부락한, 험상궂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멧 메이슨이 처음으로 정호준의 눈치를 봤다.
'눈치 보는 게 참 안 어울리네.'
- 지분 인수 대금은 말씀하신 대로 3억 달러, 아니 2억 달러면 충분합니다. 대신 인수 후 2년 내로 회사에 6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해주십시오.
'돈보다는 회사를 중시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보네.'
회사를 성장시키는 게 개인의 영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 애정을 갖고 회사를 우선시하는 이들은 종종 있다. 멧과 톰, 그리고 다른 이사진들이 딱 그런 유형의 인간이었다.
- 요청하신 6억 달러에 4억 달러를 더한 10억 달러를 3개월 안에 투자하겠습니다. 컴퓨터 보안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을 모아보시죠. 2010년대에는 그쪽 방면도 큰 시장이 돼 줄 겁니다.
이제는 그의 회사가 될 회사를 키우기 위해 자금을 투자해달라는데 투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정호준은 자넷을 불러 계약서 작성을 완료했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서 작성을 마친 뒤 정호준은 자신의 경호를 맡겼고 멧과 톰은 처음으로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걱정하지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로 오너는 안전하십니다.
자신들이 가장 두렵게 여겨진다는 건 알고 하는 말인지 의문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체구가 185를 상회하는 흉터도 존재하는 이들이 웃자 정호준은 그게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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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도 시애틀에 적을 두는 경호회사에 경호를 맡겼었지만 그 회사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까지 하나하나 다 신경 썼다. 전쟁터까지 전전하는 민간 보안 회사(PSC)는 다르긴 달랐다.
- '쉐보레'와 'BMW', '벤틀리'에 협조 요청을 구했습니다. 3개월 내로 오너께서 사용하실 방탄 차량(슈퍼카)이 입고될 겁니다.
혹시 모를 도청 감지를 위한 집안 수색부터 자택 경비를 위해 옆집을 매입하는 것까지. 경호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돈이 깨졌다.
'안전한 것 같아 마음은 놓이는데 뭔가 너무 창피한데?'
VVIP들이 이동할 때 앞뒤로 차가 의전 행위를 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격식을 위한 행위이기도 했지만 VVIP를 지키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학교에 등하교할 때마다 그렇게 의전을 받게 되었고 이는 또 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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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대학 학생회와 시카고 한인학생회 회장을 동시에 역임하고 있는 강진영은 연락이 안 되는 정호준 때문에 요즘 죽을 맛이었다.
'아 씨X, 진짜 X같네. 그렇게 간절하면 지들이 하지.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만만한 게 난가?'
압박을 주는 건 달리 정윤정만이 아니었다. 크게는 부친의 상사라 봐도 무방할 KS 그룹의 장녀 정윤정에게 압박을 받고 있지만 작게는 정치인의 자녀나 시카고로 유학 온 돈 좀 있는 부모를 둔 유학생들에게도 다리를 놔줄 수는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진영과 그의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좀 산다는 중산(상)층에 속했다. 자식을 유학 보내도 몇은 보낼 재력을 지닌.
하지만 그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이들은 모두 자신과 비슷하거나 몇 수 위의 인간들이었다.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고 있는데 너무 비싸게 구네.'란 말로 대꾸하며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강진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똑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고 또 계속해서 들으며 추궁을 받다 보니 이제는 노이로제까지 걸릴 지경이다.
'왜 내가 회장을 하겠다 설쳤을까?'
감투 욕심이 있어 전임 회장에게 회장직을 인수인계 받았던 강진영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그때였다.
우우웅!
호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 East Walton Street의 Donut Plus로 19시까지 오십시오.
정호준으로부터 고대하고 고대하던 답장이 처음 당도했다.
*****
갑작스럽게 시간을 통보했음에도 강진영은 군말 없이 시간을 내서 정호준이 알려준 장소로 이동했다.
'쟤가 정호준이구나.'
똑같은 사람이어도 무엇을 걸치고 있나,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재산은 얼마나 가지고 있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진다.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이룬 재산이고 빚을 좀 지긴 했지만 지금 당장 주식을 판다는 가정 하에 빚을 변제하고도 1조가 넘는 재산을 가졌다는 사실을 정윤정에게 들어 알고 있던 강진영은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험상궂게 생긴 흑인과 백인. 합쳐서 넷이나 되는 경호원이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자 또 한 번 위축되었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냐는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강진영 또한 시카고 대학 경제학부의 학생이다.
어떻게 정호준의 연락처를 얻었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대충 짐작이 갔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 것이지, 뭐 그렇게 중요한 용건이라고 전화와 문자를 연이어 보냅니까? 내가 만만합니까?"
정호준은 그저 평소와 비슷한 뉘앙스에서 조금 가라앉은 말투로 나지막이 말했을 뿐이지만 그 말을 들은 강진영은 두려움을 느꼈다.
덜! 덜!
몸을 덜덜 떠느라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내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똑같아 보입니까?"
설령 진짜 그냥 쉬고 있는 시간일지라도, 번호를 알려준 것도 아닌데 무작정 알아내서 예의 없이 연락을 반복하는 것을 달갑게 여길 이유는 없다.
정호준의 추궁에 강진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강진영이 정치인이나 법조계의 자녀들, 그리고 정윤정에게 압박을 받으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던 이유와 같은 이유였다.
"죄.. 죄송합니다."
자신이 원해서 한 것도 아님에도 강진영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사죄뿐이었다.
"전화기가 뜨거워질 정도로 전화와 문자를 보냈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말해 보시죠."
정호준의 재촉에 덜덜 떨던 강진영은 자신이 정호준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한 이유를 말했다. 다만 공포에 젖었어도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정호준에게 정윤정의 이야기는 은근슬쩍 뺀 채 이야기했다.
'유학생들의 등쌀을 이기지 못했다.'라고.
강진영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그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머릿속에 확실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한 번 선택의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강진영을 용서하고 파티를 주최해 그들과 작게나마 교분을 나눔으로써 한국에 끈을 살려둘 것인가.'
그도 아니면.
'본인이 허락하지 않은 경로로 연락처를 구해 귀찮게 하는 눈앞의 남자를 본보기를 세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할 것인지.'를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사람은 웬만한 일은 다 해낼 수 있다. 털면 먼지 안 묻은 사람은 없다고 누군가의 과거사를 털어 시간의 흐름 속에 묻힌 죄를 파해 치는 것도, 더 나아가 없는 잘못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어쩔까?'
정계와 재계가 혈연으로도 연결된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 한국 정‧재계를 생각하면 후자의 선택은 정말 한국을 포기하는 선택지라 볼 수 있었다.
'하아, 저 사람은 뭔 죄겠냐.'
물론 파보면 일진 활동을 했다든지 하는 과거가 나올 수도 있다. 정호준보다 사회적으로 약자이긴 했지만, 차림새만 봐도 어느 정도 사는 집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미국 국적을 따고 미국인으로 잘 살 고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사서 한국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사적으로 연락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실은 모두에게 분명하게 주지시켜주시죠. 참는 건 이번 뿐입니다. 그리고 파티를 열어주시면 한 번 시간을 내서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