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7화 (6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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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이 한국 정계의 중진들과 딸을 가진 유수의 재벌가들 사이에서 1등 신랑감으로 등극하는 사이 중국의 여섯 개의 증권사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리 만들어둔 수십 개의 유령회사들이 증권사 여섯 곳의 홍콩지점에서  선물 매수를 한 터라 자금의 추적은 쉽지 않았다.

세상 어느 나라든 개인이 책임질 영역을 넘어섰어도 문제가 생겼으면 책임질 사람은 필요했다.

"당장 책임자 불러와!!"

홍콩지점에서 각각 약 1조 997억원의 손실이 났는데 경영자가 이를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 1조원을 손해 봤다는 보고를 받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회장은 사장과 임원들에게 책임 소재를 물었다.

"미안하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자네밖에 없네."

"선물 상품을 담당했는데 선물이 손해를 봤으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사내 정치에서 패했거나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이들 그리고 선물 상품 관계자 중 중책을 맡고 있는 이 중 일부가 증권사와 상품 거래소에서 잘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날 잘린 이들 중 몇몇은 추후 중국이 일대일로를 사업을 진행하며 아시아 금융을 묶기 위한 수단으로 창설된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에 적을 두고 중진으로 활약할 사람도 있었다.

찬란한 미래가 기다렸던, 10년 간 승승장구했을 몇몇이 그렇게 정호준도 모르는 사이 정호준의 행보에 파장으로 바닥까지 끌어 내려졌다.

뭐 워낙 사람이 많은 중국이니 그들의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메꾸게 될 테지만 말이다.

*****

괜한 오지랖을 부려 서울대 축제 때 고생했던 것처럼 정호준은 좋은 일을 하고도 또 한 번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다.

'기부금을 좀 덜 낼 걸 그랬네.'

정호준은 선물로 번 수익 65억 9,850만 달러의 65분의 1이 채 안 되는 돈을 기부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상대적이라는 법칙은 여기서도 적용됐다.

한 번에 1억 달러를 기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기에 정호준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연방정부에서 그들이 손길이 닿는 언론사들에 정호준의 미담이 퍼지도록 부탁해 일이 커졌다.

[카트리나는 예견된 재앙이었다?!]

[작년 10월 카르티나 피해를 예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부쉬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한 건가?]

작년 겨울인 2004년 10월 카트리나가 올해 미국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을 예측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자료가 업로드되며 비난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킬 소재가 필요했던 연방정부에게 이민자 출신의 거금 기부는 잠깐이나마 대중의 시선을 돌릴 소재가 되어주었다.

- 정이라고 했지? 자네가 한번 맞춰 보게.

- 정,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게.

이미 유명 인사가 돼버린 터라 전공 수업이건 교양 수업이건 관계없이 정호준이 듣는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들은 학생에게 답을 듣고 싶거나 뭔가 생각을 묻고 싶을 때 정호준을 콕 집어 물었다.

- 시장의 원리에 따르면…….

어디선가 한 번 경험해 본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은 데쟈뷰에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불편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 정 오늘 뭐 해? 같이 클럽에 안 갈래?

- 제이슨의 집에서 홈파티 연다는데 안 갈래?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그와 친분을 쌓기 위해 다가왔다.

그나마 남자들의 접근은 그냥 장난치며 넘어갈 수 있는 애교에 불과했다. 실제로 그들의 초대에 응해 잠깐 파티에 참석해 술을 한잔하기도 했고. 정호준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여성들의 어프로치였다.

백, 흑, 황. 라틴 특유의 구리빛까지. 피부색을 떠나 소위 다이나마이트 한 몸매를 지닌 시카고 대학의 퀸카들은 정호준에게 노골적인 육탄 공세를 퍼부었다.

안면을 튼 정도에 불과하면서 웃으면서 다가와 가슴에 닿게끔 팔짱을 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꼭 결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자 남자 친구는 있어서 나쁠 건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외모, 스펙과 함께 남자 친구 또한 여성들이 은근히 비교하는 대상이었기에 여성들의 과시욕을 채워주기에 정호준은 부족함이 없는 대상이었다.

이런 노골적인 접근과 추파를 좋다고 받아들이며 헬렐레하기에 정호준은 정신적 연령대는 이미 마흔을 넘었고 풋풋했던 연애부터 나이 먹고 하는 중년의 연애까지 다양하게 경험해 본 터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상태였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커트해 냈지만. 한 번씩 정말 참기 힘들 때가 있곤 했다.

'얘네는 안 받으면 그만 포기하지, 대체 왜 자꾸 연락하는 거지?'

학창 생활이 시작부터 꼬여 그렇지 않아도 성질나는데 자꾸 연락해오니 성질이 뻗쳤다.

하나는 자신들을 시카고 한인학생회라 불리는 단체에서 오는 연락이었고 또 하나는 정호준이 정체를 밝혔음에도 무시로 일관해 오기가 생긴 해리스 헬튼과 티마라 에클리스톤의 연락이었다.

*****

유학생들의 커뮤니티인 한인학생회 같은 단체에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누군가로부터 소개받으며 그룹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름 인싸의 모임이라 봐도 되리라.

정호준은 한인학생회에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기에 그들과 연루되지 않았는데 저들이 정호준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한인학생회는 영리단체가 아닌 일종의 친목 모임이다. 가입을 강요하거나 먼저 나서서 연략을 하는 경우는 없다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정호준의 경우는 좀 많이 특별했다. 한국계 이민자 출신으로 요즘 급격하게 주목을 받는 데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진영 오빠, 아직이야?"

"문자도 날려보고 전화도 걸어보고 있는데, 다 무시하네."

바로 정윤정의 지시 때문이었다. 올해 한인학생회 회장을 맡은 강진영의 부친은 KS 화학그룹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오빠라는 호칭을 붙여줬지만 그 이상의 존중은 없는, 편하게 남자를 대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름은 정윤정. 강진영의 부친이 근무하는 경선그룹. 지금은 'KS'라는 기업명으로 더 잘 알려진 대기업 회장의 장녀였다.

"전화나 문자를 안 받으면 끝나는 거야? 이거 아버지가 지시한 사안인 거 말해줬잖아."

아버지인 정태원 회장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정호준과 접점을 만들어보라는 뜻을 전달받았던 터라 정윤정은 강진영을 보챘다.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외모도 아름다워 재벌가 자녀라는 타이틀로 받는 떠받듦 이전에 남자들에게 무한한 관심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 정윤정의 자존심에 자신이 먼저 찾아가는 건 용납하기 어려웠다.

'너무 싸 보이잖아.'

정호준은 경제학부, 그녀는 생명공학과라 학교에 등하교하며 자연스럽게 만나기는 어려웠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지만 접점이 전혀 없음에도 친한척하며 정호준에게 달려드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렇게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윤정은 유학생 한인회를 통한 우회 만남을 시도했다. 하지만 박수도 손뼉이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고 어렵게 학부를 통해 알아낸 정호준의 연락처로 전화를 건 한인회의 연락을 정호준이 무시하니까 따로 만날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들이대는데도 냉철하게 잘라내는 건, 마음에 드네.'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절제력 있는 모습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 여자가 바로 해리스 헬튼이다.

'헬튼 호텔의 상속녀란 타이틀은 사실 그녀가 마케팅으로 활용한 거지.'란 말이 자주 나왔다.

그도 그럴 게 해리스 헬튼은 본래 상속받을 지분 자체가 얼마 안 되는 흔히 말하는 오너 직계의 사촌 정도의 관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헬튼 호텔의 상속녀란 타이틀을 통해 기반을 쌓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할리우드에 데뷔한 걸로 모자라 2006년에는 가수 활동까지 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평범한 대중은 즐기지 못하는 화려한 파티들을 쉬지 않고 다니며 상류층의 파티를 보여주고 사고를 치거나 파격적인 말을 대중에게 내뱉으며 인플루언서(셀럽)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쌓은 인기를 활용해 돈을 벌었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런칭한 향수 등을 팬들에게 판매하며 돈을 벌었다. 순수익은 그녀와 사업 관계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누적 매출이 25억불을 넘겼고 12년 기준 자산이 1억 달러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1회차 때와 달리 아직 그녀는 가수로 데뷔하지 않은 상태였다.

'저 남자를 활용하면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겠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그녀에게 현재 미국인들의 관심을 받는 중인 'JHJ Capital'의 오너 정호준은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 우리 누가 먼저 저 남자를 꼬시는지 내기할까?

해리스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다닐 티마라 에클리스톤 또한 이번에는 동양인과 연애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헬튼과 누가 먼저 꼬시나 내기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러나 모르는 번호로 재미가 자존심이 걸린 진심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자선 파티에서 봤었는데, 잘 들어갔나요? 나 해리스 헬튼이에요.

- 나 티마라 에클리스톤이예요. 정이랑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파티가 끝물이라 이야기를 얼마 못 나눴네요. 언제 한번 시간 내줄래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 정호준의 성향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 두 여자는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며 정체를 밝혔지만 정호준은 답장은커녕 연락도 받지 않았다.

- 저 새끼 고자 새끼 아냐?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지?

그녀들과 친분은 있지만 거리를 두는 편인 라디아 히스트는 사실 정호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객관적으로 봐도 미녀라고 할 만한 해리스 헬튼과 티마라 에클리스톤이 퇴짜 맞는 모습을 보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흔히들 흑막으로 불리곤 하는 록펠러 가문의 증손녀 아리아 록펠러는 정호준이 수천억의 가치가 있는 경호회사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까지는 가문의 정보통을 통해 전해 들어 관심이 생겼다.

1천억을 기부할 때도, 경호회사를 인수하려 하는 지금도 정호준의 보유 주식은 크게 변동이 없었으니까.

'기부금이랑 인수 자금은 대체 어디서 번 걸까?'

상속녀라는 타이틀을 가진 네 여자와 한국 대기업의 상속녀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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