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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50화 (5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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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브라더스 계좌로 작업을 마친 날 정호준은 지금까지와 달리 일을 벌이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다.

정호준에게 개인 과외를 해주고 있던 자넷은 정호준에게 공부를 가르치다 말고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 정, 오늘은 대출받으러 안 나가나요?

- 꼬리가 길면 잡힌다잖아요. 세 군데 다녀왔으면 소문이 다 퍼지지 않았을까요?

자넷은 자신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호준을 보며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걸 고려하면 조심스럽긴 한데, 아직은 괜찮을 거예요. 은행끼리 같은 시스템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자넷은 혹시 몰랐기에 아예 그럴 일이 없다는 단언은 하지 않았다.

정호준이 그런 낌새를 느끼지 않도록 곧바로 말을 덧붙이기도 했고.

- 그리고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데요?

- 그럴까요?

- 그럼요, 게다가 우리가 시간을 들여가며 다른 주에 방문한 것도 분명 효과가 있을 거예요. 애플이나 구골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승부수를 던진 거면, 은행에서 브레이크를 걸 때까지 해봐요.

자넷의 격려 섞인 조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자넷의 말처럼 안 될 때까지 해보죠.

정호준은 자넷의 차를 얻어 타고 유타주를 향해 움직였다.

*****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정호준은 씨티은행(CityBank)과 월스&파고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정호준은 자넷의 인도에 따라 월스&파고 은행에 가장 먼저 들렀다.

이전에 시도했던 것처럼 월스&파고의 계좌를 통해 거래하고 주식을 담보로 잡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월스&파고에선 VIP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전날 124.28불로 장을 마감했던 구골 주식 가치에 75%나 인정받았다. 이자율은 4%. 처음 거래했던 골드만식스와 똑같은 조건이었다.

'첫 거래를 이쪽으로 틀 걸 그랬나?'

대체 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거래를 틀 때 이곳과 거래했으면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했을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월스&파고로부터 대출받은 91,141,297달러로 평균 매수가 126.01불에 구골 주식 723,287주를 매입했다.

씨티은행을 방문해 723,287주를 담보로 이자율 5%로 대출받았다.

전날 종가 128.22달러의 72%에 해당하는 66,772,698달러를 대출받았다.

띠리리리~!

정호준과 자넷이 대출을 받고 호텔에 당도했을 때 자넷의 핸드폰으로 한통의 연락이 왔고, 통화를 마친 뒤 자넷이 말했다.

- 여기까지네요.

- 여기까지요?

- 네, 정에 대한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데요. JP에 가봐야 대출을 승인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단언하는 자넷의 발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럼 오늘은 유타 관광이나 즐기도록 할까요?

마지막이라 생각해 다른 주로 넘어가지 않고 유타주 은행에서 돈을 빌렸기에 아직도 그들은 유타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관광이라고 했지만 업무 이외의 것으로 자넷을 부려 먹기 그래서 그저 도보로 돌아다니며 도시를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 정,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 네, 말해 봐요.

- 이제 와 말해 봤자 소용없는 거긴 한데, 네바다주에서도 인터넷을 활용했으면 굳이 다른 주까지 넘어갈 필요가 없었고, 그랬다면 JP한테도 대출받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직접 발로 뛴 거예요?

- 음, 일단 아무렇지 않게 빌리긴 했지만... 큰돈이 오갔잖아요?

- 그렇긴 하죠.

-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닌 빌리는 입장이어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도, 돈의 단위가 크다 보니까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하고 싶었어요.

전부를 거는 모험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소시민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은 상류층에서 교육받으면서 자란 게 아니라 일확천금한 사례니까.'

게다가 나이도 이제 19이지 않던가.

'사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맞는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처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맞았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 이번에 경험해봤으니,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벌이게 되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자넷이 말했던 것처럼 대출받을 수 있겠죠.

- 다음이요? 이번 도박도 성공할 거라 믿나 봐요?

- 당연하죠. 내가 실패할 곳에 모든 것을 베팅하는 멍청이로 보이나요?

자신감 가득한 정호준의 대답에 자넷은 대꾸 없이 와인을 따라 마셨다.

*****

사람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문이란 특성이 그렇듯 자넷이 이야기한 JHJ Capital에 대한 찌라시는 미국 금융계 전반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찌라시가 돌기 전 월가나 미국 금융가에 돌던 JHJ Capital에 대한 평가는 운이 좋은 회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배당률 높은 이길 확률 낮은 스포츠 베팅에 재미 삼아 적은 돈(?)을 투자했다가 돈벼락을 맞은 회사 딱 이 정도 평가였다.

물론 월가는 운이 좋은 것 또한 그 회사나 투자자의 실력으로 여기며, 일확천금했다는 것 자체를 무시하진 않지만.

어쨌건 JHJ에 대한 평가는 그저 잠깐 이야기하고 말 가십거리, 쉬는 시간에 잠깐 '회사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가 돈 좀 벌었네.'라고 한 번 말하고 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호준이 은행 자금을 죄다 끌어다가 벌인 투자(도박?)를 벌이자 JHJ Capital의 이름은 월가나 미국 금융계 인사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 자본 규모도 별로 안 큰 회사가 참 겁도 없다. 대체 빚을 얼마나 낸 거야?

- 6억 6,400만 달러 정도 대출받았다더라.

- 정확히는 664,229,117달러야. 간도 커.

- 5%라 쳐도 연에 33,211,455(3,321만)달러를 이자로 내야 하는데, 자신 있는 건가?

- 애플이나 구골이나 주주에게 배당도 안 하는데, 그 이자를 감당하면서까지 가지고 있을 가치가 있나? 미친 건가?

- 결과가 어떻게 나오려나? 실리콘밸리에선 IPO 성공을 확인하고도 오래 못 갈 거라고 평가하던데?

미국 금융계에서 최소 1주 이상 JHJ Capital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무관심보단 악플이나 관심이 낫다는 말처럼 찌라시가 퍼지며 JHJ의 이름값이 올라가자 혜택을 보기 시작한 곳이 있었다.

*****

정호준에게 투자받은 마이클 저커버그는 투자를 받자마자 학교를 자퇴하고,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회사를 이전했다. 다만 창업자 모두가 저커버그를 따라 팔로 알토로 향한 건 아니었다.

개중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이도 있었고 다른 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을 벌이고 싶은 이도 있었다. 팔로 알토까지 따라가지 않았던 이들은 창업 공신으로서 지분을 나눠 받는 선에서 그쳤다.

저커버그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언해주던 선 파커가 'The Facebook'의 사장이 되어 함께 논의하고 방향성을 잡으며 각자 맡은 바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본인들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인데 저커버그들을 바라보는 실리콘밸리의 시선은 조금씩 변해갔다.

- 쟤네가 그 'JHJ Capiatal'에게 돈을 투자받았다던데? 'JHJ'가 이번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쟤들한테도 그만한 비전이 있어서 투자했다는 거 아냐?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스타트업의 투자는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누구에게 투자를 받았는지 또한 굉장히 중요한 게 여긴다.

누구에게 투자를 받았냐에 따라 다른 투자자들이나 업계 관계자들이 신생 벤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무명인 JHJ Capital에게 투자를 받았다는 것과 주로 가십거리 언급되더라도 어쨌건 월가나 미국 금융가에서 계속 오르내리는 JHJ Capital에게 투자를 받았다는 건 명백히 다르다.

정호준의 JHJ Capital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들에게 실리콘밸리의 관계자들과 실리콘밸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금융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

찌라시가 금융가에 퍼진 덕에 'The Facebook'이 혜택을 받았다면 반대로 찌라시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 기업도 존재했다.

바로 애플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마따나 소문과 가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펴진다. 그리고 긍정적인 소문보단 부정적인 소문이 특히 빠르게 퍼지는 습성이 있었다.

본인이 직접 주식분할을 취소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분할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채고 있던 임원들에게 분할취소 사실을 알리고 입막음을 했지만.

긍정적인 소식일 때는 통제가 가능했던 소문이 이번에는 찌라시로나마 퍼져나갔다.

'애플이 내년 2월 주식분할을 계획했었는데, 취소했다.', '애플이 내년 2월 주식분할을 계획했었는데, 잡스가 취소했다.', '아니다 주주들이 취소시킨 거다.' 등 누가 취소를 결정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주식분할이란 행위는 회사의 크기를 키우기 위한 시도라 봐도 무방하다. 그런 행위가 '취소되었다.'란 소문은 소액주주부터 대주주에 이르기까지 애플 주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Cancel'이 주는 부정적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8월에 애플의 CEO인 스티븐 잡스의 췌장암 수술이 예약되어 있었다.

회귀 전 역사에서도 이 당시 잡스가 수술을 진행했지만 당시 애플은 잘 나가고 있었고, 수술에 실패할 일은 없을 거라며 언론을 통해 선전을 했기에 주가에는 크게 타격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잡스의 췌장암 수술 일정을 발표하자마자 애플의 주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잡스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도 하락세는 정도가 완화되었을 뿐 멈추지 않았다.

애플 '최고 경영자의 건강 악화'와 '주식분할 취소'라는 소스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애플의 주가 폭락에는 시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주가가 오른 탓도 있었다.

회귀 전 2004년 8월 애플의 주가는 34~37불을 오가는 정도였던 것에 반해 이번 생에는 정호준의 계속된 매수 때문에 값이 78에서 81불까지 오르내리던 애플의 주가는 이윽고 67.74불까지 하락했다.

'이제는 매수를 시작해야 한다.'

애플의 하락세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호준은 씨티은행에게 빌린 66,772,698달러로 애플 주식 매수를 시작했다.

개미나 중소 주주들이 던지는 주식을 정호준은 맛있게 받아먹었다.

정호준은 평균 매수가 68.12달러에 980,222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본인이 만들어낸 파장으로 본인이 이득을 본 행운 가득한 하루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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