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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43화 (4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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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이 매수 지시를 내린 건 6월 28일 오후 5시쯤. 자넷으로부터 매수가 모두 끝났다는 보고를 들은 건 7월 2일 금요일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 평균 매수가 36.5달러에 246,575주 구매 완료했습니다.

아무리 증권사의 도움을 받아 기술적으로 매입해도 900만 달러는 시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돈이었다. 평균 매수가는 오를 수밖에 없었다. 33달러, 32달러를 오고 가던 애플 주식의 값이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4~5달러가 뛰었다.

2004년 당시 애플 주식의 일일 평균 거래량이 200만 주가 조금 못 되는데, 5일 동안 246,575주를 구매했으니 주식의 값이 오르는 건 당연했다.

-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예의 상 한 인사에 자넷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고생했음을 어필했다. 누가 미국인 아니라고 자기 어필은 참 시시때때로 해댄다.

어필을 마친 자넷은 정호준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 그리스가 또 이겼던데, 경기 봤나요?

- 물론이죠.

8강전과 4강전은 자넷이 정호준이 지시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예선전처럼 함께 보지는 못했다. 4강, 준결승(SemiFinal)이라 불리는 경기에서 그리스는 연장전에 골을 넣으며 체코를 상대로 1 대 0 승리를 거두었다.

- 이제 그리스가 한 번만 이기면 당신의 도박이 성공한 게 되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 마지막이라 떨리긴 하네요.

강한 척 허세를 부릴까 하다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

- 그리스가 우승할 걸 확신한다 했으면서 떨리나요?

- 사람이잖아요. 심장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큰 돈이 걸렸으면 떨리는 건 당연한 거죠.

예선 때는 안 그랬는데 경기가 얼마 안 남으면 안 남을수록 압박감이 심해졌다. 한 경기 한 경기 끝날수록 정말 실감이 돼서 그런가 보다.

- 그런가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자넷의 물음에 정호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는 메이저 신문사부터 찌라시 전문이나 잡지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언론사가 존재한다. 혼자 운영하는 1인 언론사조차 수없이 많은 게 바로 미국이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집단도 마찬가지였기에 정호준이 당첨된 것을 끝으로 시선을 거둔 언론사가 있으면 정호준에게 계속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언론사도 있었다.

[픽사가 제작 중인 영화에 3,100만 달러를 투자한 메가밀리언 당첨자.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다.]

[900만 달러를 주식 시장에 투자한 SSL Capital.]

자신이 뱉은 말을 그대로 지키는 정호준의 행보가 정호준을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에 의해 알려지며 다시 한번 세간에 조명을 받게 되었다. 간간이 기사를 확인한 미국인들은 약속을 지키는 정호준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다만 주정부는 조금 보는 시각이 달랐다. 사실 워싱턴주나 네바다주 정부는 정호준이 당첨금으로 사업을 벌여 고용이 늘어나길 원했다.

'뭐 당첨금이 미국 국토 바깥으로 나가진 않았으니, 됐네.'

바라는 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 주정부 관계자들도 정호준에 대해 좋은 인상을 품었다. 물론 그들이 신경 쓸 정도로 자금의 크기가 큰 건 아니었기에 신문을 보며 잠깐 흐뭇해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말이다.

오히려 정호준의 행보에 열을 내는 건 조회수를 노리는 한국의 인터넷 신문사들이었다.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영주권을 선택한 정씨,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뛰어들다.]

[영화제작에 한화 340억을 투자하다.]

한국 인터넷 언론사에서 업로드하는 기사들은 제목이 하나 같이 자극적이었다. 기사 내용도 자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정호준이 어리석다는 뉘앙스로 기사를 적기도 했고 본인들의 돈이 아님에도 그 돈이 한국 경제에 투자됐을 때 얻을 수 있었던 고용효과를 분석해서 적기도 했다.

⌎ 나 같았으면 그냥 은행에 넣어두겠다. 500억 은행에 묶어 놓고, 1% 이자만 받아도 년에 5억잖아. 이자만 받으면서 살아도 떵떵거리면서 먹고살 텐데, 왜 저런 무리수를 두지?

⌎ re: 한국에서 영화에 투자한 것 잘됐었잖아. 사업병 걸린 거지.

⌎ re: 또 모르지, 저 영화도 성공할지도. 일단 니 말대로 한국에서 투자한 영화는 2개 다 잘됐잖아.

⌎ 어린 게 돈 맛보더니 돈 무서운 줄 모르네. 조만간 폭싹 망할 듯.

⌎ re: 망하는 것까진 모르겠는데, 돈 무서운 줄 모르는 건 맞는 것 같다.

⌎ 얘 이야기는 왜 계속하는 거냐? 어차피 한국 떠나 자기 살길 찾아간 애잖아. 얘 신경 쓸 시간에 다른 기사를 써라.

⌎ re: 조회수가 잘 나오니까 쓰겠지.

한국의 넷상에서 본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든 말든 관계없다는 듯 정호준은 볼 일을 보기 위해 자넷과 함께 대만으로 출장 나와 있었다.

- 푸본금융그룹과 잡은 약속 시간이 언제였죠?

- 내일 오후 3시입니다.

- 딱 일 잘 마치고 식사하면서 결과를 확인하면 되겠네요. 좋게 좋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정호준의 발언에 자넷 또한 웃으면서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국과 대만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역사적으로는 중국에 괴롭힘을 받아왔던 것과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부분부터 근현대 들어서도 경제적으로 함께 묶여 아시아의 4룡이라 불리며 경쟁했던 적이 있다는 것도 닮았다.

한국과 달리 IMF로 주춤한 적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나아가는 방향도 비슷하지.'

업종의 차(메모리, 비메모리)가 조금 있을 뿐이지 반도체 산업이 핵심 산업으로 떠오른 것도 똑같다. 국방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비슷했고 말이다. 1인당 GDP는 2003년부터 한국이 대만을 앞지르며 앞서가기 시작했지만 인구를 고려한 GNI(1인당 국민소득)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했다.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나라였지만 한국과 대만인의 정서는 많이 달랐다.

'똑같이 식민 지배를 받은 처지면서도 대만인들은 일본에 호의적이지.'

대만은 한국과는 다르게 정말 유화적으로 식민 지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1872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속령이라 선언했지만 사실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은 오래전부터 싸쓰마 번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해왔다. 1872년 일본 정부가 속령이라 선언하기 이전에도 오키나와는 일본 정부나 일본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것이란 사고가 깊게 박혀 있었다.

일본이 얻게 된 최초의 식민지가 대만이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산업화를 이룩하며 지역 강국 급으로 취급 받던 일본이 자신들이 식민 지배를 해도 될 역량이 있는지를 증명하는 시험대가 바로 대만이었다.

그런 이유로 대만은 일본의 우익들이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 자기 돈 들여 도로 닦고 철도를 내주며 발전시켜줬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되었다. 이후 뽑아 먹긴 했으나 열강들의 눈치 때문에 한국만큼 강하게 수탈하진 않았다.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한국과 대만의 국민 정서가 다른 이유였다.

어쨌건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대만에서 먼저 시작했건 한국에서 먼저 시작했던 한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다른 쪽에서도 그 산업이 각광 받기 시작한다.

홈쇼핑 산업 또한 그런 경우에 속했다.

한국에서 홈쇼핑 사업은 1995년 시작됐지만 정작 홈쇼핑 산업이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한 건 IMF 사태가 벌어진 이후였다. 1997년 IMF가 터진 뒤 홈쇼핑 시장은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연평균 성장률이 87%에 달했다.

3년 동안 매년 거의 2배씩 사업 규모가 커진 거다.

한국에서 홈쇼핑 사업이 매년 엄청난 성장을 기록하자 대만 기업들은 '대만에서 먹힐지는 모르겠는데, 한국과 똑같이 진행된다면 저것도 탐나는 사업인데?'란 생각으로 홈쇼핑 사업에 욕심을 내며 준비를 시작했다.

푸본금융그룹은 대만 홈쇼핑 산업에서 1위를 차지하는 모모홈쇼핑의 대주주다.

정호준이 7월 초 대만을 방문한 이유는 홈쇼핑 사업의 시작을 앞두고 초기 투자자를 모집하는 모모홈쇼핑의 지분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회귀 전 모모홈쇼핑의 대주주 푸본금융그룹은 홈쇼핑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한국 홈쇼핑 기업들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자본과 지분을 대가로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업을 키우려는 노림수였다.

회귀 전에는 2007년 샤를롯데에 인수되는 누리홈쇼핑만이 이 기업의 요청을 받고 10억을 투자해 지분 10%를 받았다. 10억을 투자해 받은 지분 10%의 가치는 2020년대에 이르러선 무려 1조원이 넘는 가치를 띠게 되었다.

'누리홈쇼핑의 지분을 빼앗은 거여도 괜찮고, 그게 아니어도 투자로 지분을 얻었으면 좋겠다.'

*****

7월 4일. 점심을 먹은 뒤 복장의 갈무리를 마친 정호준과 자넷은 푸본금융그룹 본사 빌딩에서 담당자들과 미팅을 갖게 되었다.

한국 출신 교포를 통역사로 고용해 만남 장소에 데려갔지만.

다행히 대화는 영어로 나누게 되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푸본금융그룹 이사 첸입니다.

-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이쪽은 자넷 고문변호사입니다. 이쪽은 통역으로 데려온 김광철입니다.

'뭐지? 투자를 받고 싶은 모양인데?'

스타트업은 대게 투자자가 갑일 때가 많지만 모모홈쇼핑처럼 든든한 물주가 뒤에 버티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반드시 투자자가 갑의 위치에 있는 건 아니었다.

푸본금융그룹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통역사를 대동했음을 저들이 자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해 대화하는 성의를 보이는 게, 푸본금융그룹에서 홈쇼핑 사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웃긴 이야기네.'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고 본사에서 달가워하지 않은 사업이 우량 캐시 카우가 된 셈이다.

- 저희 푸본금융그룹의 홈쇼핑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미국에까지 흘러갔나요?

- 친한 대만계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만도 한국처럼 홈쇼핑 사업에 시작한다면서요? 혹시 한국 홈쇼핑 회사들은 다녀갔습니까?

- 누리홈쇼핑과의 미팅이 저번 주 수요일에 있었습니다.

- 결론은 나왔나요?

- 예, 정확한 조건은 말씀드릴 수 없고 투자와 노하우 전수를 대가로 지분 10%를 가져갔습니다.

첸 이사의 대답에 정호준의 표정이 잠깐이지만 찡그려졌다.

'늦었네.'

아예 큰 차이로 놓쳤다면 모를까, 우위를 점할 고지를 며칠 차로 놓쳤다는 것에 정호준은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다, 많이 늦었으면 아예 기회가 없었을 거다. 얘들이 이렇게 호의적이지도 않을 거고.'

- 저희도 모모홈쇼핑에 투자하겠습니다. 당연히 지분을 대가로 한 지분투자입니다.

빠르게 감정을 정리하고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정호준의 발언에 첸은 웃으면서 물었다.

- 얼마나 투자하시겠습니까?

- 500만 달러를 투자하면 어느 정도의 지분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지분을 더 받고자 하는 이와 덜 주고자 하는 이의 줄다리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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