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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40화 (4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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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들렀다 유럽을 거의 일주하고 돌아온 자넷은 귀국하자마자 정호준이 머무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을 방문해 호준이 시킨 일을 모두 마쳤음을 보고했다.

- 정, 그거 알아요? 당신 때문에 내가 미친 여자가 됐어요.

- 예?

정호준이 멍청하게 되묻자 자넷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 잘나가는 로펌 때려치우고 하는 게 고작 도박 베팅이라고, 동기들이랑 법조계에 소문이 쫙 퍼졌네요.

미국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국토 면적이 넓었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는 했는지 기득권들의 커뮤니티나 그들 간의 밀집성은 한국 못지않았나 보다. 유럽 베팅회사까지 날아가 돈을 건 것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땅 내에서 베팅했던 것들은 모두 알려진 걸 보면.

'미국에서 업계가 좁다는 말과 비슷한 말을 들어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대회 개최를 앞두고 우승국을 맞추는 도박판에 우승 가능성이 희박한 그리스에 돈을 건 행동 때문에 비웃음을 샀단다. 그도 그럴 게 축구를 조금만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의 베팅은 그냥 쓰레기통에 돈을 처박는 베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러시아, 포르투갈과 같은 A조에 속하게 된 그리스는 우승은커녕 본선 진출 가능성도 희박한 나라였다.

어느 업종이든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자넷을 위로했다.

- 미안합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그리스가 우승하면 그 조롱들은 전부 부러움으로 바뀔 테니까요.

-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 잘 될 겁니다. 잘 될 거예요.

정호준의 내뱉은 긍정성 발언은 자넷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흔들리는 본인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

자넷 변호사가 장담했던 대로 5월 31일에 영주권 발급이 완료되었다.

중간에 정호준에게 미국의 영주권을 발급해도 좋을지 확인하는 인터뷰 자리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은 지식인(의사)이나 자산가의 이민을 언제나 환영했고 수백억의 자산을 가진(?) 정호준은 미국 이민국에서 결격 사유로 내보일만 한 것이 전무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정호준은 정말 간단하게 마쳤다.

'영주권을 땄으니까, 이젠 시민권을 기다려야겠네.'

범죄에 연루되지 않고 투자 활동을 이어가며 미국에서 5년 정도 지내면 시민권 획득 자격도 얻을 수 있으리라.

- 자꾸 부려 먹는 것 같아 미안하긴 한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 필요하신 게 뭐죠?

- SAT 시험을 보려 합니다.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 SAT이요? 제가 잘못 들었나요? Mr. Jung이 SAT를 볼 이유가 있나요?

- 필요 없다고 느껴 중간에 자퇴하면 모를까, 학교는 들어가야죠.

미국도 한국처럼 학벌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나라다.

백인은 말할 것도 없고 흑인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게 미국 사회에서 황인종이 가진 입지다. 황인종인 정호준이 학력마저 떨어지면 정말 주류사회와 접점이 전무하게 된다.

'돈이 많으면 결국 따라오는 거 아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니 설령 해결해주더라도 학벌이란 공통점을 갖고 다가갈 때와 비교해 훨씬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리라.

- 수학 같은 이공계 과목은 자넷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겠지만 독해나 작문 및 언어, SAT 에세이, 영어(문학(Literature)). 이 네 과목은 자넷이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수학(Math Test)와 역사(History)를 가르쳐줄 과외선생(Private Teacher)도 필요해요.

- 정말 SAT을 치를 생각이군요?

- 이런 걸로 자넷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로스쿨까지 졸업한 자넷만큼 똑똑하진 않고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도 South Korea(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입학한 인재에요. 공부하는 것을 즐기진 않아도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

진심으로 SAT 시험을 보겠다는 정호준의 의지에 자넷의 머릿속에서 정호준에 대한 평가가 조금이나마 수정됐다.

여행 중에 운 좋게 Jackpot에 당첨된 철없고 무모한 새내기에서.

최소한의 인생 설계는 하며 살아가는 남자로 말이다.

*****

2004년 6월 1일 화요일. 영주권 발급이 완료된 바로 다음 날.

정호준은 캘리포니아에 본사, 지사를 둔 신문사들을 불러 모아 영주권이 발급됐고, 추후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길 바란다는 인터뷰를 했다.

- 5월 31일부로 저 정호준에게 영주권이 발급되었습니다. ………당첨금을 미국에 다시 재투자하는 건, 저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미국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준은 미리 외워둔 대본을 그대로 낭독했다.

- 그 말씀은 즉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 중엔 한국 공중파 뉴스채널에서 파견 나온 기자도 있었다. 미국 기자들을 의식한 덕분인지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한국 기자는 영어로 질문했다.

- 예.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인으로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겁니다. 하지만 노력해볼 생각입니다.

- 혹시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아닙니까?

한국 방송사에서 파견 나온 다른 기자, 여성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고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이나 토론에 나온 정치인마냥 질문의 논제나 회피하며 답변했다.

- 역지사지라고 했습니다. 한국 로또의 당첨금은 미국만큼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정했을 때. 외국인이 한국에서 수백억을 수령 받아 그 돈을 갖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이를 지켜본 대중들은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태연히 넘어갈까요? 아니면 화를 낼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분노뿐이 아니라 허탈감도 들 거다. 외국인을 타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걸 어떤 국민이 달갑게 여기겠는가?

정호준에게 역으로 질문을 받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기자는 정호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거라고 거짓말하기엔 치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저는 막대한 복권 당첨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 뿐입니다.

*****

한국 기자들이 방송국에서 가져온 녹화용 카메라는 기자회견을, 정호준의 발언을 모두 담아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기자회견 영상은 약간의 편집을 거쳐 공중파 뉴스를 통해 방송되었다.

공중파 기자와 친분이나 일종의 커넥션이 있는 인터넷 언론 기사들은 영상이 방영되기 직전에 소스를 받아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업로드했다.

[메가밀리언 당첨자 정모씨, 미국인으로 살겠다?!]

[제2의 마이클 유?!]

[메가밀리언 당첨자 정모씨, 미국에서 받은 돈은 미국에 투자하는 게 도리라 일갈하다.]

인터넷 댓글란은 누리꾼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 제2의 마이클 유라 부르기는 좀 그렇지 않냐? 쟤 말이 틀린 건 없잖아? 나 같아도 로또 몇 번 이월 된 걸 외국인이 수령해 돈 갖고 한국 뜨면 기분 나쁠 거 같은데?

⌎ re: 한국남자로 태어나서 당연히 짊어져야 할 병역을 기피하고 튀었는데, 왜 제2의 마이클 유가 아닌데?

⌎ re: 이거 완전 또라이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마이클 유는 자기 입으로 군대 가겠다고, 한국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대중들 앞에서 이야기했고, 그 덕에 국방부 홍보 대사도 하면서 인기를 높이고 단물 빨았잖아. 방송에 나와 군대 가겠다고 몇 번이나 공인해 개념 연예인 타이틀까지 챙기며 인기를 끌어 돈 벌어 미국으로 튄 놈이랑, 미국에서 거금을 돈 받았으니까 미국인이 되겠다는 애를 어떻게 똑같이 볼 수 있지?

⌎ 동기야 어쨌든 쟤가 군대 안 가는 건 사실인데? 투자는 미국에 하더라도 한국인으로 살 수도 있잖아.

⌎ re: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인 국적을 지닌 채로 투자하는 것과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이 투자하는 건 차이가 있지 않겠냐?

⌎ re: 아직 미국 국적인 건 아냐. 국적을 따려면 시민권을 받아야 해. 똑바로 알고 말해라.

그렇지 않아도 도박 같은 것에 빠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3대는 먹고살 돈을 일확천금한 정호준이 부러웠는데, 대한민국 남자들의 아킬레스건인 군대 문제까지 껴 있자 정말 활활 타올랐다.

*****

- Mr. Jung이 과외받기엔 한국인이 편할 것 같아서, 과외선생은 모두 한국인으로 골랐어요. 수학 선생은 스탠퍼드 출신이고 역사를 가르칠 선생은 우리 UCLA 출신이에요. 둘 다 집안 사정(학비) 때문에 아직 졸업을 못 한 재학생이에요.

자넷이 개인적으로 수배해 온 과외선생들과 자넷에게 과외를 받았다. 자넷이 구해온 과외선생은 둘 다 남자로 이민자 출신이었다. 미국에서 오래 산 덕분인지 둘 다 유쾌했다.

정호준은 자넷과 다른 두 명의 과외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냈고 중간에 한 번씩 코피를 보기도 했다. 어쨌건 열심히 공부한 덕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유로 2004가 시작되는 6월 12일이 날이 밝았다. 유로 2004의 개막 전날인 6월 11일. 우승국을 맞추는 베팅이 끝났다.

개최국인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경기가 개막 경기로 열렸다.

JHJ LLC 자금 300만 달러(33억)가 베팅된 경기였기에 자넷과 정호준 그리고 학생의 신분이면서 커리어 우먼인 자넷에게 흑심을 품은 두 늑대는 정호준의 호텔방에서 유로 2004를 함께 시청했다.

- 자넷 그리스의 우승 배당률이 얼마라고 그랬죠?

- 68배, 70배, 71배, 72배 등 다양해요. 평균 내면 70배 정도 될 거에요.

'나는 80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조금 베팅했다고 배당률이 10배나 준 거야?'

요리구스 카리구니스가 시원한 중거리 슛을 때려 경기 시작 7분 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 꺄아아악!!

골은 넣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넷이 비명을 내지른다.

그리스가 득점에 성공하며 개최국을 상대로 1점 리드했고 1점을 리드를 전반 끝까지 지켜내며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후반전. 그리스의 킥오프로 시작된 후반전. 후반 6(51)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포르투갈 선수가 반칙을 시도해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경험이 많은 노장 앙겔로 바시나스는 떨지 않고 페널티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2 대 0으로 2점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우우우!!

실망스런 경기력에 관중들이 야유하고 있음이 확연하게 들린다.

후반 45(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 3분이 흘렀을쯤 훗날 한국에서 날강두라 불릴 전설적인 축구선수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골을 끝으로 게임이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다.

'정말 우승하는 거 아냐?'

미국인답게 Soccer는 챙겨 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자넷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인 그리스가 승리하자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 게임 이겼을 뿐이지만 어쨌건 그리스가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며 승리를 따내자 '설마'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호준도 자넷도 설마가 사람을 잡아주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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