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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8화 (3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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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시는 게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그저 낭설에 불과했다.

개개인의 인간성이 어떻게 국민 전체를 대표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호준이 네가 약속을 지켜주는 건 좋은데, 그래도 20%를 다 받는 건 좀 많은 거 같아."

회귀 전에도 박기태는 공짜보단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을 선호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구독자 수 100만을 넘겨 옛날 파워블로거들처럼 갑질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알아서 지급해주는 추가 서비스를 받았을지언정 진상처럼 공짜로 먹겠다고 설치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앞으로 배달 온 수많은 할인 쿠폰들은 잘 활용해가며 계산했지만 말이다.

'할인받을 수 있는 걸 챙기는 건 나쁜 게 아니지.'

똑똑한 소비자라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한 푼이라도 덜 쓰고 더 저축하려는 이 중엔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권 자체를 '중고나라'에서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까지 와 놓고 왜 그래?"

"네가 끌고 왔잖아!"

박기태의 말마따나 정호준은 줄 필요 없다고 거절하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왔다.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 박기태와의 유대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고, 다 떠나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안 왔으면 모르되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눈 딱 감고 받으란 말이야."

전에도 한번 말한 적 있지만 정호준은 성공이란 게 갑자기 팍 생겨나는 게 아닌 지금까지 겪어온 발자취에 기회와 행운이 잘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회귀 전보다 더 나은 학벌을 가지고 그를 토대로 더 좋은 인맥을 만들었다고 회귀 전처럼 성공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20%나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냥 20%다 생각하고 받기엔 단위가 너무 커."

1억의 20%와 10억의 20%, 100억의 20%는 같은 20%여도 단위 자체가 다르다. 박기태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20%의 배분 비율이 아닌 5,186만 달러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5,186만 달러의 20%는 10,372,000달러. 현재 환율인 1,100원을 적용해 한화로 바꾸면 114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정호준이 20%를 주기로 구두로 약속했고 호준이 약속한 걸 지킨다고 좋아하며 받기엔 100억이란 단위가 주는 무게감은 육중했다.

박기태는 그 돈을 받고 나서도 정호준을 지금처럼 똑같이 대할 자신이 없었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박기태의 부담 가득한 심정을 알아챈 정호준은 박기태의 의사를 존중해 비율을 조정했다.

"10%, 여기가 내 마지노선이야."

"10%도 많아. 내가 뭘 했다고 너한테 50억이나 받겠어? 5%로 하자."

"하아~. 정말 부담스러우면, 나한테 다시 4년 정도 빌려주는 걸로 해. 1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오면 이자까지 쳐서 줄게."

스스로 비율까지 줄이는 박기태의 모습에 정호준은 반대로 더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살다 보면 한 번씩 그런 상황이 있지 않던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챙겨줄 텐데 괜히 부산스럽게 설쳐서 주고 싶은 맘이 사라지는 거.

정호준의 상황은 딱 그 반대에 해당했다.

다만 자신의 호의가 남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음을 알 만큼은 나이(?)를 먹었기에 정호준은 본인 나름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돈으로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비율을 줄이고 지분으로 주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직접 계좌로 갖고 있는 것과 지분으로 쥐고 있는 건 체감되는 정도가 다를 테니까. 게다가 비율을 줄이고 줄여 5%나 3%만 주더라도 정호준이 키워나갈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편이 박기태에게도 더 이득이었다.

그러나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박기태에게 잠깐 타임을 요청해 변호사와 통화한 뒤 생각을 바꿨다.

'뭐만 하면 세금이 붙네. 한국도 그럴까?'

수령 받은 당첨금으로 LLC를 만들고 만들 때 삼자인 박기태에게 지분을 나눠줘도 증여세는 지불해야 한단다. 게다가 이 경우 증여세는 정호준이 아닌 박기태가 부담하는 거였다. 세금 낼 돈이 없는 박기태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건 선물이랍시고 자리 많이 차지하고 무겁고 쓸모도 없는 물건을 주는 거보다 더 나쁜 일이었다.

5월 22일 토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자넷 변호사를 불러 계약서를 작성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1. 갑(정호준)은 을(박기태)에게 510만 달러를 지급한다.

2. 을은 갑에게 지급받은 510만 달러를 연 20% 금리로 다시 갑에게 빌려준다.

아직 통장으로 들어오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쓴 계약서지만 그 신뢰성은 돈을 빌려주는 쪽인 박기태조차 크게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안 줄 거였으면 이렇게 복잡하게 진행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위험할 수도 있기에 관광은 즐기지 않았다.

휴학계를 낸 정호준과 달리 박기태는 학교에 계속 다녀야 했기에 경호원과 함께 이동해 공항까지 배웅을 나갔다.

"이제 못 보겠네."

일주일, 길어도 2주에 한 번씩은 만남을 가졌던 동네 부랄친구를 이제는 쉽사리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에 박기태는 감상에 빠졌다.

"못 보긴 왜 못 봐. 네가 날 보러 오면 되잖아? 여름 방학, 겨울방학마다 한 번씩 놀러 와. 어차피 한국에 있었어도 한 달 뒤에 볼 기말고사 대비 때문에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 만났을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박기태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정호준은 그렇게 우울해하는 박기태를 달래서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귀국하고 지금은 없는 박기태에게 미국으로의 귀화 사실을 밝혔지만 당장 그 사실을 밖에 알리지는 않았다.

알리는 건 영주권이 나올 시점에 알려도 충분했다.

미리 알려봐야 먹는 건 욕만 더 먹을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박기태는 다시금 자신의 학창생활을 즐겼고 정호준의 눈과 귀가 돼주었다.

'잠깐 찍먹하고 말면 되지 어디까지 가겠다는 거지? 독하네.'

박기태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가 귀국하고 나흘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정호준을 갖고 기사를 쓰고 있단다.

특종 거리라면 더 나올 것이 없을 정도로 우려먹는 걸 보니 한국 기자들도 외국 기자 못지않게 지독했다.

정호준의 신상정보는 실시간으로 계속 갱신되었다.

[교통사고로 세상에 홀로 남은 아들을 위한 선물일까?]

[메가밀리언 당첨자 정모씨, '태극기 흩날리며'의 투자자였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것을 시작으로 '태극기 흩날리며'와 '내 신부는 여고생'이란 작품에 투자한 것까지 다 알려졌다.

⌎ 신도 참 너무하다. 원래도 어느 정도 사는 놈이었네. 뭘 또 저런 선물까지 주신 거냐? 빌빌거리는 나한테나 좀 행운을 주지.

⌎ re: 기사 똑바로 안 보냐? 지 부모 사망보험금으로 투자한 거라잖아.

⌎ '태극기 흩날리며'는 천만 넘겼고, 태극기만큼은 아니지만 '내 신부는 여고생도' 이제 300만 돌파했는데, 둘 다 성공했네.

⌎ re: 초심자의 행운일까? 아니면 실력일까? 후자라면 쟤는 훨훨 날아다니겠다.

⌎ 짖으라면 짖을 수 있는데, 어떻게 충성심 가득한 비서 안 필요하세요?(남자임)

[메가밀리언 당첨자 정모씨가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

⌎ 미국 복권은 우리나라처럼 바로 지급되는 구조가 아니구나. 잡지식 하나 늘어갑니다.

⌎ 과연 저 이유가 다일까? 계속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도 되는데.

⌎ re: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다 돈인데. 쓸데없는 데 돈을 쓸 이유는 뭐야? 숙박비보다 항공권 값이 더 비쌀걸?

⌎ re: 먹고 자는 문제까지 생각하면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게 이득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 좀 하지 마라.

'참 대단하다 대단해.'

이런 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 안 되지만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담담해지자. 담대해져야 한다.'

개중에는 정호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댓글도 몇 달려 있었다.

⌎ 쟤가 한국으로 돌아올 이유가 있을까? 서울대면 영어도 잘할 거고. 금발 언니야들이랑 노는 게 더 즐거울걸?

⌎ re: 덤으로 군대도 안 가고 그지?

⌎ re: 나 같아도 돈 있으면 군대 가기 싫겠다.

'군대는 부가적인 이유일 뿐인데.'

정호준이 미국인이 되려는 건 사업적인 영향력 때문이지 군대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이었다.

*****

- 부탁하신 일은 모두 깔끔하게 처리를 마쳤습니다.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게 서류작업을 마친 것과 별개로 자넷 변호사는 정호준이 부탁한 또 하나의 일을 처리했다. 뉴욕 법인으로 등록 중인 정호준의 JHJ. LLC(유한책임회사)를 네바다주 법인으로 바꿨다.

그리고 정호준이 들고 있던 마지막 현금 100만 달러를 추가로 LLC에 집어넣음으로 JHJ LLC의 여유자금을 200만 달러까지 높였다.

- 영주권은 5월 31일까지 발급 완료될 겁니다. E-2 비자 덕분에 일 처리가 편했습니다.

- 제가 말씀드린 건 생각해 보셨습니까?

- 전속 변호사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 말이죠?

릴리 자넷 변호사는 UCLA 출신이다. UCLA가 명문임은 분명했지만 법학과의 경쟁력은 10위권 밖이었다. 예일, 스탠퍼드, 하버드, 컬럼비아대학교, 뉴욕대 법학과, 로스쿨만큼 평가가 높진 않았다.

3명만 모여도 편이 갈리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다. 워싱턴주에서 제일 잘 나가는 Perkins Coie로펌에 소속된 릴리 자넷은 가끔씩 그 차이를 느끼긴 했다.

알게 모르게 차별받곤 했기에 정호준의 스카웃 제안 자체는 솔깃했다.

- 35만불(3억 85만원) 주시겠다고 한 연봉을 15만불(1억 5천만원) 올려주시면 전속 변호사로 일하겠습니다.

그저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할 뿐.

- …

정호준이 제안한 연봉은 그녀가 받는 연봉보다 5만불이 높았지만 겨우 연봉 5만불을 더 받겠다고 Perkins Coie를 나가는 건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짧으면 2년 길면 4년만 더 버티면 파트너 변호사로 진급할 기회가 생긴다.

파트너 변호사가 된다는 건 연봉이 최소 배 이상, 많으면 10배가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앞에도 이야기했다시피 스카우트 제의 자체는 솔깃했다.

학벌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생기는 스트레스도 그랬지만, 그보다는 돈을 준 만큼 뽑아 먹기 위해 할당량을 부여하고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Perkins Coie'로펌의 일 처리 방식이 피를 마르게 만들었으니까.

일이 힘든 건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조금은 편해지고 싶어.'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개선시키고 싶은 욕구가 존재했던 터라 거절하기보단 연봉을 높여 달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 그렇게 하죠. 50만불(5억 5천만원) 드리겠습니다.

인맥도 없고 피부색도 다른 이방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했기에 정호준은 자넷 변호사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 딜! 계약서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사장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 호칭 정리는 차차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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