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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금요일. 오후 1시 30분. 정호준은 강의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 박기태의 집을 방문해 자신이 메가밀리언복권에 당첨됐음을 알렸다.
"뭐라고? 장난치는 거지?"
박기태는 자신이 들은 게 맞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박기태의 되물음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걸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 무슨 득을 보겠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
표정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대답하는 정호준의 모습에 박기태는 정호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축하한다! 축하해!"
생각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넋을 놓은 채 멍청하게 서 있었던 박기태는 이내 이성을 회복하고는 활짝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아닌 정호준이 당첨됐다는 것에 질시가 묻어 나올 법도 했건만 박기태의 표정에는 그런 기색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돈 욕심이 없는 건가?'
"아, 근데 내 비행기 티켓은 왜 끊은 거야?"
정호준에게 갑작스레 성큼 다가온 행운을 축하해주면서도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우리 약속했잖아. 당첨되면 당첨금의 20%는 나눠주기로. 세금 문제를 처리하려면 같이 가는 게 빨라."
"그때 했던 말이야 농담처럼 한 말이잖아. 진짜 주려고?"
녹음을 한 것도 아닌 이상 본인 빼고 누구도 들은 적 없는 구두 약속은 별다른 강제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상대방의 감정이 상해 관계가 훼손되는 것에 그칠 뿐이다.
"네가 당첨됐으면 20% 안 줬을 거 같아?"
"그거야 모르지,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는데. 그때 가서 내가 욕심을 부렸을지 어떻게 알아?"
유산이 생겼을 때 수천만 원 더 갖겠다고 가족끼리도 싸우는 마당에 수억도 아니고 수십억의 돈을 인간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줄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박기태의 말처럼 그 상황이 닥쳐 봐야 알 수 있는 거였다.
"진짜 욕심 많은 놈은.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선 그런 말 안 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모를 거라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는 녀석이다. 박기태가 돈에 대한 욕심이 컸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기도 줬을 거라 말하는 게 옳았다.
'회귀 전 아는 사람과는 사업을 함께 하는 게 아니라는 격언과 달리 같이 회사를 운영했음에도 돈과 관련해선 전혀 잡음이 전혀 없었기도 했고.'
*****
회귀 전 합의금을 받고 세금 처리를 마친 뒤 정호준은 현실을 극복하기보단 곧장 군대로 도망쳐 비극적인 현실로부터 도망쳤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군에서 당장 몸이 힘들고 지치자 부모님 생각이 덜 났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관심 병사일 줄은 몰랐지.'
휴가도 몇 개 타낼 정도로 일을 빠릿하게 잘하고 눈치, 센스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관심 병사로 취급되어 특별 관리를 받았다는 것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전역할 때 대대장이 알려줬다. 군생활 초기까지만 해도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는 걸.
어쨌건 그렇게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친 정호준은 대학교에 복학했고 학창 생활을 시작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도중 샛길로 빠져 현금을 그대로 은행에 넣고 있는 것은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교수들 때문에 정호준은 주식 투자에 주목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땐 귀가 참 얇았어.'
그런데 어렸던 자신에 대해 합리화를 좀 하자면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한 명만 그런 소리를 내뱉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전공과목 교수 2명, 교양과목 교수 3명. 배웠다는 이들이 다섯이나 강의 도중 한 번 이상 주식 이야기를 하며 투자를 재촉(?)하니 어린 나이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정호준에게 그들의 말은 호준 본인이 부모님의 목숨값을 휴지통에 넣어두고 있단 말처럼 들렸다.
혼자 끙끙 앓으며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고 2006년 5월부터 증권사를 이곳저곳 둘러보며 장기투자 할 거리를 찾았다.
기업가치, 미래 전망 등을 설명받은 뒤 나름대로 선택한 기업은 둘.
대기업 아니 대한민국 최고기업이라 불리는 오성 전자에 투자하면 최소한 돈을 까먹지는 않을 거란 말에 투자 리스트에 올렸다.
그리고 달걀은 절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격언을 귀담아들어 한곳에 몰빵하지 않고 투자를 감행할 또 다른 기업을 물색했다. 물색을 끝에 결정한 곳은 바로 은성그룹의 LS생활건강이었다.
결정하기까진 시간을 소요할지 몰라도 결정한 뒤에는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정호준은 2006년 5월 15일에 주식을 구매했다.
15억을 쏟아부어 평균 매입가 74,300원에 오성 전자 주식 2,297주를 구매했고 LS생활건강에 9억을 투자해 평균 매입가 74,300원으로 12,113주를 사들였다.
장기투자로 고른 종목들로 10년 이상을 가져가겠다고 결심했기에 주식 구매를 마치자마자 주식 시장에는 아예 관심을 떼고 본인의 미래를 위한 준비에 힘썼다.
재학 중에 7급 공채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정호준처럼 박기태도 군 복무를 마치고 그의 학교 경원대(지금의 가천대) 신문방송학과에 복학해 학업을 이어가며 이윽고 취업 준비를 했다.
정호준처럼 졸업하자기 전에 취직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졸업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메이저 언론사는 아니지만 언론사에 턱 하니 붙었다.
'그쪽도 경쟁률이 심하다는 걸 녀석을 통해 들었지.'
사람들에게 친숙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의 언론사들의 경쟁률은 정호준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학벌이 좋은 건 물론이고 유학 경험 또한 필수로 필요했다. 게다가 언론사의 꽃이라 불리는 뉴스 아나운서의 경우 학벌들에 더해 미스코리아 수상 경력까지 적어 넣어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메이저 언론사의 자리는 몇 없는데 졸업생은 1년마다 수백이 쏟아지니 SKY라 불리는 학교에서 졸업한 졸업생이라도 모두 메이저 언론사에 취직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박기태가 취직한 언론사에도 SKY출신은 존재했다.
당연히 박기태보다 상급자였고 말이다.
"박사원이 어느 학교 출신이랬지?"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운이 나빴는지 박기태는 거들먹대며 심심할 때마다 학력을 가지고 무시를 주는 인격 수양이 덜 된 상사를 윗사람으로 만났다. 만날 때마다 학력 가지고 갈구는데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성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계속 버텨내겠는가?
입사한 지 1년이 지나 1년의 경력을 채우자마자 박기태는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박기태가 사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올 당시 인터넷 방송이 한국 사회에서 유행 중이었고 박기태는 다른 회사로 재취업을 준비하다 개인방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거다."
말을 유쾌하게 잘하고 반듯하게 잘생긴 본인의 장점을 살려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연예계가 영화업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탓에 연예인 섭외도 가능했지.'
박남정이 영화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연예인들과 안면을 트기도 했고 이제 막 이름을 알린 배우들은 힘을 써 달라고 잘 보이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딱히 접대 같은 것을 즐겨 받은 건 아니지만 식사 자리는 몇 번 가졌고 박남정은 갑의 위치를 즐기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처신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쌓은 친분이 자식인 박기태에게 힘이 되었다.
박남정을 찾아온 이 중에는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버린 배우도 있었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성장한 이도 있었고. 스타가 된 이 중에 한둘은 박기태에게 삼촌이라 불릴 정도로 박기태 부자와 친분을 쌓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박기태는 그들의 힘을 빌렸다. 조카를 도와준단 마음으로 그들은 흔쾌히 요청에 응해주었다.
박기태가 새내기라 시청자 수가 얼마 안 되도 스타의 출현은 알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들이 박기태의 방송에 한 번 출연해줄 때마다 시청자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치트키를 쓴 거긴 한데, 원래 세상이 다 그렇지 뭐.'
금수저는 못 돼도 은 함유량이 높은 상급 은수저쯤은 되는 박기태가 부친이 쌓은 인맥을 활용하는 걸 욕할 이유가 있을까? 가슴 아픈 말일 수도 있지만 학벌만큼이나 인맥 또한 운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인맥도 실력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인터넷 방송이란 게 한 번 시선을 끌어드리는 게 어렵지 관심을 끌은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입담 좋고, 얼굴 반반하고, 색다른 세계(영화 촬영현장)을 가르쳐줄 경험담 또한 있었으니까. 뉴스 시사를 다루기도 하고, 게임 방송을 하기도 했고, 영화 촬영 이슈를 알려주며 경험담을 풀기도 했다.
2011년 방송을 시작했고 방송을 마치고 일이 없을 때 본인이 직접 영상을 편집해 V-Tube(뷔튜브)란 사이트에 올렸다. 그 결과 2014년부터는 걸어 다니는 인방계의 대기업, 1인 중견기업이라 불릴 정도가 되었다.
'17년에는 뷔튜브 구독자 수가 100만에 달했지?'
박기태가 누구를 괴롭히고 다닌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걸려 넘어질 것도 없었고 박기태의 벌이는 2017년까지 이어졌다.
"야. 호준아! 우리 건물 하나 안 살래? 너랑 나랑 돈 모으면 강남에 큰 건물 하나 살 수 있는데. 우리도 건물주로 살아보자. 응? 응?"
흥청망청 과소비하지 않고 재테크를 이어간 박기태는 기어코 정호준에게 돈을 모아 건물을 사자고 꼬실 정도가 되었다. 박기태는 별 생각 없다는 정호준을 끈질기게 꼬셨고 이윽고 승낙을 받아냈다.
2017년 11월 8일 정호준은 쥐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평균 매도가 2,837,200원에 오성전자 주식 2,297주를 매도해 6,517,048,400원(65억)을 벌었고 LS전자 주식 12,113주를 평균 매도가 1,245,500원에 매도해 15,086,741,500(15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세금을 제하고 간간이 받았던 배당금을 합치고 빚을 조금 내서 정호준이 200억을 채웠고 박기태가 100억을 채웠다. 총 300억짜리 유한책임회사 LLC를 설립했고 지분은 정호준이 66%, 박기태가 34%로 나눠 가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LLC 명의로 빚을 끼고 압구정의 13층짜리 건물을 구매했다.
2018년에도 19년에도 박기태는 해마다 큰 돈을 벌었음에도 LLC지분을 바꾸기 위한 그 어떤 제의도 하지 않았고, 빚 변제와 수익 배분을 충실히 따랐다.
정호준이 죽기 전까지 건물과 관련해 그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박기태가 돈 때문에 배신할 인간은 아니라고 믿었다.
*****
정호준이 박기태와 함께 타코마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대를 나왔을 때는 이미 금요일 오후. 점심시간이 지난 후였다. 정호준은 곧장 시애틀의 중심가로 이동해 한인을 통해 변호사와 회계사를 소개 받았다.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경호원 2명을 고용해 워싱턴주 복권국으로 이동했다.
워싱턴주는 파워볼. 메가밀리언 당첨자에게 세금을 걷지 않는 지역이다. 그 덕에 정호준은 주세를 지불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연방세는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돈이었지만 말이다.
내야 할 세금이 줄었다는 희소식보다 더 나쁜 소식이 정호준에게 남아 있었다.
워싱턴주는 당첨자의 익명을 보장하지 않는 지역 중 하나란 사실이 자넷 변호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워싱턴주는 당첨금의 주세는 면제해주었지만 당첨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주였고 당첨금을 받기 위해선 위너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2월 20일자 남은 당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첨금의 주인은 한국인?]
[미국 관광 중에 구매했던 복권이 당첨되다. 행운의 여신이 함께한 남자의 정체는?]
[119,500,000달러 주인은 이제 막 19세가 된 대학교 새내기?]
당연히 미국 뉴스에 정호준의 사진이 배포되었고, 정호준은 사진은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전파되었다. 남의 소식이 뭐 그리 궁금하다고 한국의 언론사들은 미국의 신문에서 정호준을 다룬 것을 확인하자마자 뉴스를 그대로 베껴다가 업로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