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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5화 (3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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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대로 회귀한 현상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봐도 무방할 테니 100억분의 1 이상의 확률로 봐도 무방하리라.

'아니면 이런 현상을 경험한 이들이 숨겼을 수도 있지만. 남한테 알려봐야 정신 이상자 소리를 듣거나 아예 붙잡혀갈 테니까.'

100억분의 1에 비하면 복권 당첨, 3억분의 1로 얻게 된 행운은 그 빛이 조금 퇴색된다.  다섯 게임을 구매해 6천만 분의 1의 확률로 확률을 줄여도 평생을 구매해도 당첨이 될 확률보단 안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미국인들은 메가밀리언과 파워볼 복권의 당첨을 두 번째 인생을 살게 해주는 기적이라 부르곤 한다.

정호준이 겪은 회귀처럼 정말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해주는 건 확실하니 이해 못 할 부분은 없었다.

그저 정호준이 두려워 하는 건 그런 기적이, 아니 기적들이 자신에게 집중됐다는 거다.

'이제 어쩌지?'

당첨됐다고 마냥 행복해하기엔 그의 손에 쥐여진 행운들이 가진 무게가 너무 막중했다.

*****

몇 번이나 번호와 용지를 다시 확인하며 당첨됐음을 확인한 정호준은 망부석처럼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런저런 생각이 정호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라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 생각 탓에 머릿속의 복잡함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계획이 많이 바뀌겠네.'

계획에 없던 행운은 계획에 투자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에 투자를 하고 어떤 식으로 돈을 운용할지 궁리한 게 계획의 정리가 첫 번째 고민이었다.

두 번째 고민은 바로 '박기태에게 얼마나 나눠 줘야 하나?'였다.

'당첨되면 20%는 너 줄게. 너도 당첨되면 20%는 주는 거다?'

박기태와 복권을 구매할 때 박기태가 우스갯소리 삼아 한 말이다.

'만약 기태 녀석이 당첨됐어도 본인에게 돈을 줬을까?'

회귀 전의 박기태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녀석은 줬을 것 같다.'란 답이 나왔다. 물론 진짜 돈을 수령했을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정호준 본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구두로 약속을 했으니 20%를 주겠다는 약속은 지킬 생각이었다.

정호준이 고민하는 건 박기태에게 '돈을 주냐 안 주냐,'가 아닌 '얼마나 줘야 하는지.'였다.

"20%만 주기엔 걸리는 게 많은데."

미국에 가자는 여행 계획을 이야기한 것도 박기태고 재미 삼아 복권을 구매하자고 정호준을 꼬신 것도 박기태다. 그리고 박기태가 아니었다면 아예 모르고 넘어가 1년이란 지급기한이 지날 때까지 모를 수도 있었다.

정보를 알려줘 정호준이 복권번호를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또한 그의 절친 박기태다. 미국에 가게 된 계기부터 복권 구매하게 된 계기, 당첨 확인 계기까지 모든 과정에 얽혀있는 박기태에게 20%만 주는 건 뭔가 양심상 걸렸다.

그런데 더 20% 이상을 주자니.

마음속 어딘가에서 생겨난 욕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 돈으로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으니까.

마음속에서 갈등은 계속 이어졌고 종국엔 자기비하로 이어졌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친이고 당첨된 게 박기태 덕이 크다고 생각하면서 %를 더 주지 못하는 본인을 비하했다.

'난 정말 못 된 놈인가 봐. 왜 이렇게 속물이지?.'

돈 앞에 초연하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의 정리를 마친 정호준은 박기태에게 문자를 넣었다.

- 다음주 토요일, 일요일 시간 좀 비워줘.

- 시간을 비우는 거야 괜찮지만, 어딜 가길래 이틀이나 시간을 비우래?

- 그건, 그때 가서 알려줄게. 지금 말하긴 곤란해서.

어딜 가는지, 무엇을 하기에 시간을 비우라는 건지 묻는 박기태의 물음에 정호준은 대답을 미뤘다. 지금 알려주면 축제 때 술 마시고 미주알고주알 다 내뱉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 알려줘도 충분하겠지. 지금 알려줘 봐야 리스크만 커진다.'

비밀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는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행했겠는가. 아는 사람이 없을수록 말할 입이 적을수록 비밀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대답을 피하는 정호준의 답장에도 박기태는 별다른 군말 없이 수긍하는 문자를 보내줬다. 박기태의 답장을 받은 정호준은 곧바로 타코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

예약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축제를 무사히 마쳤고 끝나고 비행기표 예약을 마쳤다.

5월 17일 월요일. 정호준은 경영학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호준아, 뭐 필요한 거 있니?"

한 번도 사무실에 찾아온 적 없던 정호준이 과사를 방문하자 박나연 조교가 정호준을 보며 물었다. 학과 주점을 하면서 안면을 텃고 정호준보다 나이도 많고 학번도 높았기에 반말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휴학계를 내려고요."

"휴학계? 지금? 학기 끝나고 내는 거 아니고?"

잘못 들은 건지 확인하고자 다시 한번 묻는 박나연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 있는 거니? 지금 휴학계 쓰면 기말고사와 관련해서 평균점도 못 받을 거야. 중간고사도 잘 봐 놓고, 왜 학기 중에 휴학계를 써? 기말고사까지만 다 보고 나서 휴학계를 쓰면 안 되는 거야?"

친분이 조금 생겨서일까? 박나연은 정호준의 학점을 걱정해주었다.

그녀의 염려와 걱정이 섞인 질문에 정호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집안일이 좀 생겨서요. 한동안 학교에 못나올 것 같아요."

한국 로또는 당첨된 복권 용지를 들고 은행 본점으로 들르면 당일 처리가 되지만, 메가밀리언이나 파워볼처럼 단위가 센 미국 복권은 당첨금을 수령 받는데도 한 세월이 필요했다.

2월 20일자 당첨금은 당첨자가 없어 이월되고 이월됐던 만큼 Winner(당첨자)에게 지급되는 당첨금은 굉장히 컸다.

총상금 239,000,000달러(2억 3900만 달러).

한화로 2748억 5천만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정호준 혼자 독식하는 게 아닌 다른 버지니아 북쪽 끝에 위치한 윈체스터의 당첨자와 나눠 갖게 된 만큼 반으로 줄었지만 2억 3900만 달러는 반으로 나눠 가져도 큰돈이긴 마찬가지였다.

119,500,000달러(1억 1950만달러)

한화로 1374억 2500만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세금을 떼고 떼면 더 작아지긴 하겠지만.'

최소 수백억에 달하는 돈이 오가는데 겨우 한 학기 학점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오긴 당첨금 액수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미국에 쭉 머무르면 출석 미달로 F 처리가 될 거다. 중간고사를 잘 치른 것이라도 인정받으려면 휴학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휴학계를 신청하기 위해선 전담 교수의 사인이 필요했고 정호준은 자신의 담당 교수인 박일환 교수와 면담 시간을 가졌다.

경영학부의 주점이 성황리에 마친 역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교수들에게 덕담과 칭찬을 많이 받으며 눈대중을 제대로 찍었고 중간고사 성적 또한 최상위권에 위치했기에 조교와 했던 대화와 비슷한 레파토리의 대화가 오갔다.

"집안일이라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박일환 교수의 직분이 조교보다 위인지라 조교로선 물어보기 힘든 것도 물어보긴 했지만 말이다.

"6월, 7월. 도저히 학업을 이어갈 환경이 되질 않습니다. 이대로 1년 휴학계를 내고 싶습니다."

직접적인 이유의 언급을 피했다.

"알겠네. 조교한테도 미리 들었겠지만, 이대로 휴학하면 중간고사를 잘 봤어도 B-도 못 나올 수도 있네. 그러니……."

박일환 교수가 정말 정호준을 좋게 봤는지 전공 과목에 한해서지만 리포트 작성이란 과제를 통해 B-까진 보장받았다.

*****

세상 모든 일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도움을 받았으면 갚는 게 당연한 거다. 그래서 정호준도 5월 18일 화요일에 중앙대학교를 방문했다.

정호준처럼 지원해 사서 고생하진 않았지만 박기태도 부려 먹기 좋은 1학년이었던 관계로 굴려지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서로가 서로를 일터에서 빼주는 그런 우정을 과시했다.

다만 박기태가 서울대에 방문했을 때와 다르게 정호준과 박기태는 박기태의 학부인 신문방송학부가 운영 중인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손님이 별로 안 찾아와서 자기라도 팔아줘야 한다나?

정호준은 박기태의 의사를 존중해줬다.

'정말 장사가 잘 안되나 보네?'

주점 위치가 가 쪽에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서울에 위치한 명문대학교의 축제였기에 다른 주점은 평균적으로 서너 테이블은 손님을 받고 있었지만 박기태의 학과가 운영 중인 주점은 손님이 달랑 하나뿐이었다.

- 어서오세요~

메뉴판을 확인한 정호준은 오삼불고기와 파전 그리고 술 한 병을 시켰다.

먼저 내준 김치를 주워 먹으며 한 잔씩 술을 나눠 먹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눴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간을 비워야 한다고?"

"응, 3시쯤에는 시간을 비워줘야 해."

"금요일에 아침 수업 하나밖에 없어서 시간을 괜찮긴 한데."

"그래? 다행이네."

출발을 약 일주일 앞두고 표를 구하는 만큼 미국행 비행기의 자리는 많지 않았다. 22일 자, 토요일 비행기는 비즈니스석만 남아 있었다. 토요일 비행기는 만석이었지만 금요일 오후 6시 13분 출발 비행기가 세 좌석 남아 있었다.

이를 확인한 정호준은 망설이지 않고 21일 금요일 6시 13분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구매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여권번호는 왜 가르쳐 달라 그런 건데, 우리 또 외국 가?"

"뭔지는 나중에, 출발하기 전에 알려줄게. 보안이 생명인 일이라서."

"아니, 우리가 보안을 지킬 만큼 중요하게 여길 일이 뭐가 있어?"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박기태는 정호준을 보며 추궁했다.

"네가 이렇게까지 물어보면 보통 이야기해주잖아. 근데 이번에는 정말 말해줄 수 없어. 이해해달란 말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긴 한데, 기태 네가 좀만 이해해주라.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라."

완강한 정호준의 태도에 박기태는 혀를 차며 속상하단 태도를 보였다. 삐진 박기태를 달래느라 힘들뻔했는데 다행히 박기태가 정호준에게 미안할 순간이 빨리 왔다.

정호준이 주문한 음식이 하나둘 나왔다. 오삼불고기는 그나마 먹을만했지만.

'얘는 정말 너무한데.'

반죽할 때부터 무언가 실수를 한 게 분명해 보이는 파전 맛에 정호준은 물론이고 박기태의 얼굴 또한 일순이지만 일그러졌다.

'미안하다.'

듣는 귀가 있어서 대놓고 따로 평가(욕)를 하진 못했지만 너무한 음식 맛에 박기태가 입 모양으로 미안하다며 사죄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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