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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라 봐도 무방할 야구에서조차 모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구단 운영이 어려운 대한민국 스포츠계와 달리 미국은 스포츠의 상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NFL, MLB, NBA, NHL(National Hockey League)
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소위 4대 리그라고 분류된 스포츠 리그는 스몰마켓이라 불리는 구단들마저 매년 중견기업 이상의 순수익을 올린다.
상업화의 성공으로 돈이 집약된 만큼 스포츠 과학, 의학 등도 덩달아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돈이 되는 스포츠 분야에서만큼은 다른 국가에서 열리는 리그보다 몇 차원 높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구단들은 승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해외에서 또 다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외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세계의 뛰어난 선수들은 그렇게 하나둘 미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진호도 사실 그런 케이스에 속한 이였다.
"MLB는 못 봐도 NBA는 볼 수 있잖아."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 NFL이나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진호 때문에 한국에서 유명해진 MLB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 직관이 불가능했지만 겨울 스포츠로 분류되는 NBA와 NHL은 성황리에 진행 중이었다.
하키야 장비도 필요하고 장소 섭외도 어려워 한국에선 인기 없는 비주류 스포츠로 전락했지만 농구는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도 한때 농구가 큰 유명세를 얻기도 했거니와 공원이나 학교 등에 농구 골대가 없는 곳은 드물다.
이런 환경 덕분에 농구는 공만 있으면 누구와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고 혼자서도 골대에 슛을 쏘며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박기태가 농구에 빠져 열정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다. 키가 조금 일찍 큰 편에 속한 그가 박기태의 손에 이끌려 어울려줬어야 할 정도로.
"진짜 NBA는 꼭 직관 하자. 농구의 고장 미국에 가서 경기를 안 본다는 건 말이 안 돼. 너도 농구 좋아하잖아? LA에는 경기장도 있고 경기도 열릴 예정이라고!!"
박기태가 괜히 여행 날짜를 18일부터 23일까지로 잡은 게 아니었다. 20일에 LA에서 열리는 LA레이커스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경기를 직관하는 것. 박기태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최상위에 위치해도 무방하다 볼 정도였다.
농구의 고장, 농구의 성지로 유명한 미국에 왔잖은가. 나름 자신이 농구인이라 자부하는 박기태로선 NBA를 직관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그들의 일정에 의외로 마리아와 브론시아도 별 말 없이 따라와 주었다. 갑자기 생긴 궁금증을 통해 새로운 사실도 배웠고 말이다.
- 브라질에서도 농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였나요? 난 브라질은 축구에만 열광하는 줄 알았어요?
- 뭐 우린 축구만 보고 즐기나요. 농구도 브라질에서 인기가 많은 스포츠에요. 물론 축구의 인기에는 범접할 수 없지만.
두 여자의 쏘아붙임에 정호준은 대답할 틈을 못 찾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마리아가 중간에 끊었던 이야기를 덧붙였다.
- 확신을 갖고 이렇다 말하기엔 근거가 좀 부족하지만 축구, 배구 다음으로 농구가 브라질에서 인기가 높은 스포츠일 거예요. 프로리그도 활성화되었고 NBA로 나간 선수도 있고요.
- 네네 일라리우, 아니 네네를 말하는 거지?
브론시아의 물음에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 응 콜로라도 덴버에서 뛰는. 그리고 애리조나 피닉스 선즈에 입단한 레안드로도 있잖아. 둘 다 상파울루 출신이죠.
- 우리 상파울루가 참 살기도 좋고, 뛰어난 사람도 많이 배출되는 좋은 동네에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종종 느낀 적이 있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 주에 대한 자부심은 회귀 전의 인생을 합쳐 이번이 처음이었다.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여서 그런 건가?'
그게 저들만의 특색이라면 존중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이른 정호준은 조용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1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그들은 스타레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라 스타디움은 형광등을 킨 상태였다.
연보라색을 띤 형광빛에 둘러쌓인 스타레스 스타디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경관을 자랑했다. 들어가기 전에 사진 촬영을 진행할 정도로.
경기가 열리기까지 하루만 남겨둔 상태인데도 다행히 그들이 관람할 좌석은 남아 있었다.
- 예, 있습니다.
직원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가능한 좌석을 보여주었다. 코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2층 좌석은 프리미어석으로 분류되었고 이미 만석이었다.
'1층으로 가거나 3층으로 가야겠네.'
2층 사이드나 3층 사이드도 좌석 구매가 가능했지만 정호준은 이를 선택지 선상에서 지워버렸다. 아예 안 볼 거면 모르되 여기까지 와서 돈 내고 보는데 제대로 직관해 기억에 남기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101쪽에서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좋은 생각이에요 마리아, 여기까지 와서 직관 하는데 나도 좋은 곳에서 봤음 싶었어요.
마리아나 박기태의 생각 또한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 브론시아는 어디서 보고 싶어요?
- 저도 마리아랑 같은 생각이에요. 경기가 잘 보이는 곳에서 봤음 싶은데.
일행의 의견은 '기왕 보는 거 좋은 곳에서 보자.'로 모였다.
- 101이나 111, 318, 301에 남은 좌석 좀 보여주시겠어요?
정호준의 요청에 따라 직원은 정호준이 부른 곳의 좌석들을 보여주었다.
'1층에서 보는 건 좀 많이 비싼데?'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눈을 의심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3층의 티켓값은 자리당 120불(138,000원) 선에서 그쳤는데, 1층은 최소 280불(322,000원)은 지불해야했다.
가격 차가 2배 이상 나자 경기 한 번 관람하기 위해 3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싶어 말문이 막힌 정호준과 달리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박기태와 마리아들이 직원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 세금 포함 1,230불(1,414,500원)입니다.
4명분이라지만 경기 한번 보는데 150만원이 날아가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단위가 천 단위를 넘어서일까? 이번 만큼은 머릿속으로 환율 계산을 했는지 박기태의 얼굴도 조금 찌푸려졌다.
돈 앞에서 뭔가 찌질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두 남자와 달리 마리아와 브론시아는 쿨했다.
- 나랑 브론시아가 반씩 나눠서 카드로 결제할 테니 기태와 호준이 우리한테 현금으로 줄래? 300불씩만 줘.
지금껏 정호준이 계산하고 현금을 마리아와 브론시아들이 건네주며 여행을 했었는데 현금이 얼마 안 남았는지 마리아와 브론시아가 아예 자신들이 카드로 계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 지금 바로 줄게.
정호준이 뭐라고 의견을 표시하기도 전에 박기태가 300불을 꺼내 마리아에게 건넸고 그 때문에 정호준도 브론시아에게 300불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중국만큼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가 브라질이었는데.'
'지니계수'는 부의 분배의 불평등을 수치화한 것이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크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정호준이 기억하기론 중국과 브라질이 언제나 최상위권에서 다퉜었다.
돈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시원시원한 게 실비아와 브론시아는 브라질에서 꽤 사는 가정의 자녀임이 분명해 보였다.
'별 달린 호텔에서 머무르지 굳이 호스텔까지 기어들어 왔는지는 의문이지만.'
새롭게 생긴 의문은 속으로만 생각할 뿐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
6시 30분을 넘겨 이미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진 뒤였기에 둘째 날의 여행은 이걸로 끝마치기로 했다.
별 탈 없이 호스텔로 돌아온 그들의 방엔 새로운 룸메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 만나서 반가워. 난 브랜든 스미스야. 오리건주 로즈버그에서 왔지.
자신을 소개한 브랜든 스미스라 소개한 그는 LA로 온 이유가 구직을 위해서임을 알려주었다. 서울에 위치한 동 하나만도 못한 인구를 지녔으면서 더글러스란 군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갖는 게 좀 웃겼지만 나쁜 이로 보이진 않았다.
브랜든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흑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라틴계와 동양인인 그들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물론 남자에게 미녀는 인종차별 위에 존재하는 불가해의 존재지만.'
- 사실 난 8인실을 쓰려고 했는데, 거긴 사람이 꽉 찼더라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이나 모래쯤 8인실로 옮길 거야.
- 구직 활동을 얼마나 이어갈 건데?
- 일단 여기서 한 2개월 머물러 봐야지. 2개월 동안 자리 잡지 못하면 실리콘 밸리나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가 보려고.
- 행운을 빌어.
- 고마워, 너희도 여행 즐겁게 해.
정호준과 박기태가 브론시아들이랑 소개를 나눴던 것처럼 되감기를 하듯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줘서 나름 참고가 되었다.
- 우린 근처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갈 생각인데 브랜든은 어떻게 할래?
- 나는 조금 전에 저녁 먹었어. 조금만 참았다 먹었으면 같이 먹었을 텐데 아쉽네. 잘 다녀와.
'얘도 인싸인가 보네.'
만난 당일 금방 친분을 가졌던 마리아와 브론시아처럼 브랜든과도 친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박기태, 마리아, 브론시아,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브랜든이란 인싸들과 어울리는 정호준은 조금 많이 피곤함을 느꼈다.
그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긴 한데, 언제나 정도가 있는 법이니까.
마켓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맥주 한 캔으로 가볍게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씻자마자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차에 오래 타고 오래 움직인 것에서 비롯된 피로는 한참 때인 남자들과 정열적인 브라질 여성들도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
정호군과 박기태가 LA로 놀러 온 지 셋째 날이 밝았다.
- 서두르죠. 조금이라도 일찍 가야 더 많이 탈 수 있어요.
오후까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머무르기로 계획을 잡아뒀기에 마리아와 브론시아는 정호준과 박기태를 재촉했다.
- 일찍 가도 문은 10시부터 열어서 의미가 없어요.
- 그래도 일찍 가서 가이드 팜플렛이라도 받고 코스를 짜야죠!
- 근처에서 식사도 미리 해서 밥 먹는 시간도 아끼고!
마리아와 브론시아는 놀이공원에 놀러 가 전략적으로 놀이기구를 타는 여고생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촉하는 그녀들 때문에 정호준과 박기태는 8시 30분에 숙소를 나서게 되었다.
그냥 평범한 입장권으로도 정호준은 충분히 즐길 요량이 있었지만 마리아와 브론시아의 강요 아닌 강요에 의해 'Front of line Ticket'이라고 놀이기구마다 한 번씩 우선적으로 탈 수 있게 해주는 입장권을 구매했다.
사실 이것도 정호준이 한 번 태클을 걸어 얻어낸 결과였다. 마리아와 브론시아는 VIP 티켓으로 구매하자고 밀어붙였다. 농구 경기를 보려면 6시 이전에는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고 합리적인 이유를 들며 설득해서 겨우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정호준과 박기태는 1인당 Tax 포함 256불(294,400)을 지출해야만 했다.
'여긴 진짜 뭐만 하면 수십만원이 그냥 깨지네.'
LA 여행은 미국을 왜 자본주의의 왕국이라 부르는지 사흘 만에 깨닫게 만들어줬다.
돈 낸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브론시아들과 함께 뛰어다니고 사진을 많이 찍으며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
We built this city
우리는 이 도시를 지었다
We built this city on rock and roll
우리는 이 도시를 로큰롤에지었습니다.
Built this city
이 도시를 지었다
We built this city on rock and roll
우리는 이 도시를 로큰롤에지었습니다.
경기중에 한 번씩 LA 레이커스의 응원가 울려 퍼졌고, 두 쿼터가 끝나고 10분의 휴식시간과 작전 타임 같은 시간에는 코트 중앙에서 다수의 치어리더들이 나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작전 타임이 아닌 휴식 시간 때 벌여진 공연에선 중간중간 선수들까지 끼어들어 흥을 돋구기도 했다.
'NBA가 상업화에 성공한 이유엔 이런 점도 존재하겠지?'
정호준과 박기태는 물론이고 마리아와 브론시아까지. 그들 일행은 두 팀 중 어느쪽 팬도 아니었지만 기왕 LA에 놀러 왔고 Away석이 아닌 Home팀 좌석에 앉아 구경했기에 LA 레이커스를 응원했다.
로스엔젤로스 레이커스 116 – 88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석스
2월 20일에 펼쳐진 경기는 LA 레이커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응원한 팀이 승리해 기분 좋은 경기를 보는 것을 끝으로 3일 차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