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
펜션, 콘도, 리조트, 게스트하우스란 용어는 간간이 들어봤어도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호스텔이란 용어는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호준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는 한 번도 호스텔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저렴하게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알아보다 처음 호스텔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Boutique Hostel'
정호준이 운전하는 차는 내비의 안내대로 호스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선 정호준은 자동차 유리 너머로 비치는 주차 공간을 보며 말했다.
"하아~, 주차 공간이 넓지 않네."
당장에야 구직 활동을 하건 관광 중이건 활동을 하는 중이라 주차 공간이 많이 남았지만 밤에도 주차 공간이 넉넉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정호준은 좋은 자리를 찾아 주차를 시작했다.
협소해도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이제 와 다른 곳으로 갈 것도 아닌데.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지만 복잡해지는 거 딱 질색이야.'
"아, 기태야!"
"응?"
당장에야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었기에 주차하는 게 어렵지 않았고, 깔끔하게 주차를 마친 정호준은 트렁크를 열었다가 옆자리에서 내리려는 박기태를 붙잡았다.
"방은 미리 잡아 놓더라도 짐은 이따 밤에 가져다 놓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과 함께 방을 쓰게 된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껄끄러움은 정호준이라도 없을 수 없었다.
"나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럼 내가 가서 트렁크 문 닫고 올게."
"그려, 부탁해."
쾅!
박기태가 먼저 내려 트렁크를 닫았고 트렁크를 닫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정호준은 박기태와 함께 호스텔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서 있는 직원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 실례합니다. 방 좀 알아보러 왔는데요.
- 우리 호스텔은 4인실, 6인실, 8인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어떤 방을 원하시나요?
방을 같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엌과 식사 공간, 화장실, 욕실까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모두 공용으로 사용하는 저가 숙박시설이어서 그런지 예약 없이 방문했음에도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넘쳤다.
- 방마다 가격 차가 얼마나 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 1박당 8인실은 25불, 6인실은 28불, 4인실은 32불입니다.
- 셋 다 2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거죠?
- 예, 물론입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저 친구와 상의 좀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박기태를 가리킨 정호준은 손짓에 프론트 직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준은 직원에게 들은 정보를 박기태에게 공유했다.
"8인실은 좀 껄끄럽고, 4인실이나 6인실에 머물렀으면 좋겠는데."
"그럼 6인실로 할게."
말로는 6인실까지 이야기했지만 4인실을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차피 4명이 자나 6명이 자나 거기서 거기였기에 정호준은 6인실을 선택했다.
- 6인실로, 22일까지 머무르겠습니다.
- 4박이군요? 일행 분 것까지 함께 계산하실 건가요? 아니면 각자 하실 건가요?
- 함께 계산하겠습니다.
- 텍스 포함 240불(276,000원)입니다.
정호준은 미리 달러로 환전해두었던 돈에서 250불을 꺼내 내밀며 직원이 건네는 키와 10달러의 거스름돈을 넘겨받았다.
"일단 키는 받았으니까, 방 한 번 구경하고 나가자."
키에 적힌 방을 찾아 이동한 정호준과 박기태는 받은 키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깔끔하네?"
정호준과 박기태가 방 정리 후 최초로 사용하는 손님인지 침구가 정돈되어 있었고 다른 손님의 짐은 전혀 없었다. 그 탓에 방도 어지럽혀진 것 없이 깔끔했다.
박기태의 혼잣말에 침상에 걸터앉아 쿠션을 확인하던 정호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이 좁긴 좁은데, 잠만 자는 건데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뭐."
"지선이가 말한 기숙학원의 숙소가 이럴까 싶다."
"이지선? 걔 재수학원 갔어?"
"몰랐어? 수능 망쳐서 바로 기숙학원 들어갔어. 그래서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잖아."
남녀 할 것 없이 두루두루 친분을 쌓고 다니는 박기태와 달리 정호준은 별로 여자들과 친하지 않았다. 학교에선 공학으로 분류돼도 남자와 여자를 나눠 다른 학급으로 운영했기에 진짜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여자를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수능 끝난 뒤로 내가 학원에 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냐? 그리고 난 너처럼 걔랑 친하지도 않아."
"웃긴다, 너. 같이 웃으면서 대화하고 밥 먹고 하면 친한 거지, 뭐 얼마나 해야 친한 건데?"
"너 정도 관계여야 친한 거지."
"맙소사! 나 정도가 친한 거면, 허들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정호준에게 핀잔을 주는 듯하면서도 스스로를 높이는 박기태에 모습에 기가 찬 정호준은 손짓하며 말했다.
"시끄럽고 나가자. 돌아다녀 봐야지."
*****
키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온 정호준과 박기태는 차에 탔다. 차에 탑승한 두 사람은 자동차에 부착된 시계를 통해 5시가 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 5시가 넘었네."
"코리아타운 구경하다 점심 겸 저녁으로 거기서 밥 먹자. 여기까지 와서 한식 먹는 것도 웃기긴 한데, 첫날이니까."
시차 적응도 안 됐고, 여독이 덜 풀린 상태다. 시간이 금인 건 맞지만 이 상태로 이곳저곳 싸돌아다니긴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익숙하고 친숙한 곳부터 들르기로 했다.
정호준은 내비게이션에 코리아타운을 입력하고 안내에 따라 악셀을 밟았다. 20분쯤 운전하자 코리아타운임을 알리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잔뜩 영어만 보다가 한국어를 발견하니 참 반갑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자 이제껏 영어로만 적혀 있던 간판들에 한글도 섞여 있기 시작했다.
미국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한국어가 반갑다는 박기태의 발언에 정호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피식 웃는 호준을 보며 할 말이 없어진 박기태는 주제를 돌렸다.
"여기 6가(6th Street) 한인 상가에 맛집이 많다네. 일단 그쪽으로 가보자."
6번가로 이동해 주변을 방황하던 그들은 이윽고 '한국 닭갈비'란 집에 들어갔다.
"음식 값이 비싸도 너무 비싼데?"
한국에서 먹을 때 2인분은 먹을 수 있을 가격이 1인분 값이었고 술값은 음식에서 느끼는 갭보다 더 컸다. 맥주 가격은 그나마 이해라도 하지 소주 값은 특히 상상을 초월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면 평소 가격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란 주의였던 박기태가 먼저 가격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
"그래도 이미 앉았는데 나가기 좀 그렇잖아. 2인분만 시키자. 어차피 난 운전해야 해서 술도 못하니까. 술값은 안 나올 거 아냐."
비싸다고 불평했던 음식들은 다행스럽게도 맛은 있었다. 비싼데 맛도 없었으면 정말 화가 났을 거다.
- 여기 볶음밥 2개만 해주세요.
2인분을 후딱 해치운 정호준과 박기태는 볶음밥도 2인분 주문했다.
비싸다면서 볶음밥까지 시켜 먹냐 물어볼 수 있으나 이렇게 말하리라. '닭갈비나 감자탕, 곱창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밥을 볶아 먹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아예 안 먹었으면 모르되 볶음밥을 안 먹는 건 사도, 팥 없는 찐빵을 먹는 행위나 별반 다르지 않다.
"팁 포함 36불(41,400원)입니다."
물론 배불리 먹은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
캐셔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었지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던 정호준은 계산하는 김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이런 질문 실례일 수도 있지만, 1992년 흑인 폭동 당시 한국 자경단이 활동했던 곳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사자들에겐 아픔이고 고통이겠지만 기왕 LA에 온 거 뉴스, 다큐멘터리, 그리고 여러 인터넷 영상들에서 몇 번이고 봤던 LA 한인 자경단이 활동했던 장소에 가보고 싶었던 정호준은 질문했다.
어린 나이라 잘 모를 법도 하건만 LA 한인타운에선 유명한 것이었는지 캐셔는 정호준에게 그 장소를 알려주었고, 정호준은 답변에 대한 대가로 40불을 건네고 가게에서 나왔다.
계산을 마친 정호준은 박기태와 함께 도보로 라디오 코리아 광장을 방문했다.
"여기가 흑인 폭동 당시 바리케이드를 치고 흑인들이 더 이상 약탈하지 못하게 막았던 곳이야."
재산 피해는 있었지만 오인 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1명의 사망자를 제외하면 한국인과 한국 교포를 모두 지켜낸 자경단이 활동한 곳을 쭉 둘러보았다. 개중에는 눈에 익숙한 건물도 보였다.
"흑인들이 언제 약탈했는데?"
폭동이 일어났을 당시는 10살도 안 되었을 무렵이니 모를 수도 있었다. 특히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일이니 더더욱. 그래서 핀잔 대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1991년 3월 2일. 로드니 킹이란 흑인이 신호 위반하다 경찰이 그걸 발견했어. 그런데, 사실 이 당시 로드니 킹은 음주운전 중이었거든. 그것도 강도 혐의로 집행유예까지 받은 상황이라 가중처벌 될 수 있었고. 그래서 멈춰 서라는 경찰의 지시를 어기고 도주했지. 추격전이 이어진 끝에 잡혔고 백인 경찰들은 그들의 지시를 어기고 폭주하다 잡힌 로드니 킹을 심하게 구타했어."
"근데?"
"문제는 구타하는 장면이 비디오로 찍혀서 세상에 방송됐다는 거지. 죄를 짓긴 했지만 백인 경찰 다수가 로드니를 구타하는 모습은 흑인들에게 과잉 진압이라 보였나봐. 솔직히 난 잘 모르겠지만."
음주운전으로 부모를 잃은 정호준으로썬 경찰의 지시에 불응하고 도주를 감행한 것 자체에서 고깝게 보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정호준의 시선이었고 미국에 살아가는 흑인들에겐 음주운전과 경찰의 지시에 불이행하며 도주한 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해가 넘어가고 1992년에 흑인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12명의 배심원단이 참여한 재판이 열렸어. 그리고 그 재판에서 백인 경찰들은 무죄 판명이 나버려. 정당방위였다는 거지. 이 판결 때문에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 미쳐 날뛰기 시작해."
불의를 보고 시위하는 것도 좋다 이거다. 정호준은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인정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
정호준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대체 왜 가게를 부수고, 훔치고 약탈하냐는 말이다.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평화롭게 시위할 수 있는 거잖은가. 정호준이 보기엔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이때다 싶어 울화와 악의를 타인에게 발산하고 불로 수입을 얻는 것으로만 보였다.
"날뛰는 흑인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이 움직여 저항하지. 그게 여기야."
문제는 미국의 주류인 백인들이 증오와 원한을 한국교포들에게 향하게 했다는 거도. 게다가 경찰병력이 지킨 곳도 백인 상류층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 한했다는 거고.
정호준은 박기태에게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장소들을 지목하며 알려주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친 두 남자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진호가 처음 소속되었던 팀 LA 다저스의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한 바퀴 크게 돌며 간식집에서 간식도 사 먹었다.
물어물어 스타디움 투어를 구매하는 곳을 찾아가 15불을 내고 경기장 안을 둘러보기도 했다. 경기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정호준과 박기태가 미국을 방문한 시기는 시즌 시작은 고사하고 스프링캠프도 시작하지 않은 시기였다.
경기 관람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치!!"
가져온 사진기로 구장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품 좀 사 가자. 아빠가 박진호 선수 되게 좋아했어. LA다저스도 좋아하고. 모자 사가면 좋아할걸."
유니폼은 비싸서 구매 안 했지만 LA가 정면에 적혀있는 다저스 특유의 푸른 모자를 정호준은 1개, 박기태는 2개를 구매했다.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온 둘은 트렁크에 구매한 짐을 넣고는 도보로 로스앤젤레스 주립역사공원으로 이동해 한 바퀴 쭉 돌았고 로스엔젤레스 강을 건너 링컨 공원까지 들렸다.
"무슨 순 공원만 가냐?"
걷기만 하고 공원에만 가는 경로에 대해 박기태가 불평했지만 정호준은 이 근방에 있는 게 그런 거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박기태를 위로했다.
9시가 되도록 주변을 돌아다녔던 정호준과 박기태는 시간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숙소로 복귀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박기태와 함께 주변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몇 캔 구매했다.
숙소로 복귀한 정호준과 박기태에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마리아 실바아야"
"나는 브론시아 곤잘레스."
캐리어와 짐을 모두 갖고 숙소로 돌아온 그들에게 남미 특유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2명의 라틴계 미녀가 짐을 정리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