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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화 (1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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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월요일. 정호준이 투자했던 영화 '태극기 흩날리며'가 개봉했다.

정호준은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나비효과를 체험했다.

'뭐지? 월요일 개봉은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정확한 개봉 날짜까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화요일에 개봉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태극기 흩날리며'는 화요일 개봉이 아닌 2월 9일 월요일에 '태극기 흩날리며'가 개봉했다.

하루 차이가 아니라 본래 개봉했던 것보다 6일 뒤로 밀렸다. 그 사실을 몰랐지만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던 기억과 비교해도 이미 틀어진 건 맞았기에 정호준은 다시 한번 공포감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박제균 감독이 VIP 시사회 초청권 2장을 건네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정호준은 거절했다.

'내가 투자한 영화니 하나라도 더 팔아줘야지. 그리고 내가 거기 가서 뭘 하겠어?'

물론 홀로 영화관을 찾아 청승맞게 혼자 관람하지는 않았고 돈 줄 거 다 주고 관람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정호준은 절친인 박기태 끌고 영화관을 방문해 개봉 당일 조조로 영화를 관람했다. 조조로 관람해도 관람객 수에 집계되긴 마찬가지다.

아, 끌고 갔다는 말은 조금 사리에 맞지 않은 표현이리라. 박기태야 원체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으니까. '같이 보러 갈래?'란 한 마디에 좋다고 가자고 반응했던 녀석을 끌고 갔다 말하는 건 상황에 맞지 않은 표현이다.

팝콘을 사 들고 들어가 영화를 감상한 정호준은 다 먹고 남은 팝콘 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영화의 내용은 다행히 정호준이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결과도 같겠지?'

연 단위로 개봉일이 달라진 게 아닌 이상 내용이 같으면 큰 문제 없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 정호준은 박기태와 점심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근데 그 자리에서 박기태는 정호준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어딜 가자고?"

"미국, LA로 여행 가자고."

잘못 들었나 싶어 짧게 되물은 호준의 반응에 박기태는 잘못 듣지 않았다고 확인시켜주었다. '됐어 안 가.'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정호준은 많은 것을 경험해보자 결심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말을 끝까지 내뱉지 않고 삼켰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해외로 못 나가봤네. 나는 참 어떤 삶을 살았던 거냐?'

박기태와 함께 못 간 것을 떠나 정호준은 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해외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출장이란 명목으로조차 못 나가봤다.

'해외는 무슨. 제주도도 가본 적 없잖아?'

칼같이 단호하게 싫다고 거절할 줄 알았던 정호준이 거절을 입에 담지 않자 박기태는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같이 가자~. 우리가 앞으로 언제 또 마음 편히 해외로 여행을 나가보겠냐? 지금이니까 가능한 거지."

절친이어도 남자의 앙탈은 듣기 거북했지만 정호준은 박기태의 말에 설득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기태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회귀 전의 삶에서 정호준과 박기태는 타이밍이 잘 안 맞았었다. 정호준이 군대를 다녀오니 박기태가 군대에 입대했고 박기태가 전역을 하니 그 무렵엔 또 정호준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막 사회생활 초년생으로 바쁘게 살아갔었다.

정호준이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해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땐 박기태가 다시 초년생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매주 아니 바빠도 2주에 한 번쯤 만남을 가질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동네 절친이었지만 함께 나흘 이상으로 길게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특히 마음이 동했다.

"언제 가자고?"

"18일부터 23일까지 5박 6일로 다녀오자. 비행기 시간까지 계산하면 6박 7일이 될 수도 있겠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미국 땅이 그렇게 넓대. 그 정도 시간은 들여야 그래도 좀 제대로 보고 올 수 있지 않겠어?"

'맞는 말이긴 한데.'

2박 3일 여행을 갈 거면 그냥 안 가는 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은 모든 게 컸다.

'해외여행을 갈 거면 좀 일찍 말했어야지. 얘도 참 대책 없다니까. 회귀 전에도 원래 이랬었나?'

"갈 거면 일단 비행기표부터 구하자, 갈 땐 조금 비싸더라도 직항으로 가는 걸로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땐 경유해서 오는 저가 항공사로 티켓팅하자. 아니 그보다도 여권부터 구해야지. 서둘러서 찍으면 늦지 않을 수도 있어. 여권은 빠르면 사흘, 늦어도 일주일이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여권 신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충동적으로 지르고 보는 듯한 박기태의 말에 정호준은 짜증 서린 답을 뱉었다.

"그냥 빨리 따라와!"

조조로 영화를 본 덕분에 해외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오늘 안에 알아볼 시간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빠르게 계획을 구체화시킨 정호준은 박기태를 데리고 곧장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곳으로 이동했다.

해외에선 신분증 대용으로 사용하는 만큼 깔끔하게 차려 입은 상태에서 찍는 게 좋긴 했다. 하지만 출장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만큼 그렇게까지 격식 갖춘 복장이 필요치는 않았다.

"카메라 보세요, 턱 좀 들고."

정호준과 박기태가 여권에 붙일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 뒤론 사진사가 알아서 다 해주었다. 그들은 사진사의 지시에 맞춰 카메라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4시 30분쯤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가게 문 닫는 시간이 7시니까, 오늘 내로 찾고 싶으시면 그 전에 오셔야 합니다."

증명사진이 나오기까지 한 3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말에 정호준과 박기태는 도보로 양천구청으로 이동해 여권신청서를 2부 챙겼고, 박기태의 집에 들러 박기태의 신분증을 챙겨 정호준의 집으로 향했다.

"글씨 깔끔하게 써."

사진만 붙이면 바로 접수할 수 있도록 양식에 맞춰 서류 작성을 모두 끝마쳤다. 정호준은 여권신청서가 구겨지지 않도록 집에 굴러다니는 B4파일에 박기태와 자신의 것을 모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신청서를 끼워 넣은 B4파일을 빈 가방에 넣어 언제든 챙겨 나갈 수 있게 준비했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이 나온다고 말해준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끔 집에서 출발했고, 4시 23분에 사진관에 도착한 정호준 곧장 용건을 이야기했다.

"정호준, 박기태 이름으로 찍은 증명사진 나왔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점원은 4분 정도 흐른 뒤에 정호준과 박기태의 증명사진이 들어간 봉투를 양손에 들고 나왔다.

"좀 있으면 구청 문 닫을 시간이야. 도착하고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고. 택시 타자,"

택시를 타고 양천구청에 도착한 그들은 대기표를 뽑고 곧장 증명사진을 여권신청서에 붙였다.

"일주일 뒤에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뒤로 짧은 시간 동안 들인 노력이지만 그래도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게 여권의 발행날짜는 제한 시간 내로 결정되었다.

비행기 타기 전 출국심사와 비행기에서 내린 뒤 받는 입국심사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여권발급이 제한 시간 내로 나오는 SAFE 판정을 받자 정호준은 박기태와 함께 다음 스텝을 밟았다.

"일단 직항으로 가는 것만 물어봐."

정호준과 박기태는 한국한공 아세아나, 캐나다 에어, 중부항공 등 인천공항에 자리를 잡고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항공사에 연락해 티켓 가격을 물었다.

안타깝게도 LA로 향하는 직항편은 비즈니스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직항이 좋다지만 비즈니스석을 타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다.

'좀만 일찍 이야기하지.'

"갈 때는 시애틀 터코마 국제공항을 경유하는 유나이티드 항공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상해 경유해서 오는 중부항공으로 타자."

1번 경유하는 항공권을 선택한 덕인지 비행기표 값으로 1인당 90만원 조금 안 되는 돈이 소요되었다.

'4월에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오니까, 그쯤엔 입금되겠지?'

대학교 등록금 납부까지 생각이 뻗치자 생활비가 바닥이 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4월에 생활비 모자라면 기태 녀석한테 손을 벌려야겠다.'

정호준은 10, 20만 원 정도는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 믿었다.

여권발급, 티켓팅 등 해외여행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급한 것들을 모두 해결하는 데 성공한 정호준은 관광명소를 찾아보며 관광 코스를 짰다.

*****

우우웅!!

다음 날. 오후 1시 16분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10년대, 20년대 스팸 전화와 보이스피싱 연락이 습관처럼 걸려왔던 회귀 전의 기억이 남아 있던 터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문자로 자기소개를 하기 전까지 절대 받지 않는다.'의 전화 수신 습관을 유지 중이었던 정호준은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했다.

'모르는 번호잖아.'

박남정, 박제균 감독, 컬처캠미디어 사장, 이소영 변호사, 강현태 변호사 등 그에게 필요한 사람들의 번호는 이미 핸드폰에 등록되어 있었다.

우우웅!!

2시 30분까지 약간의 텀을 두고 세 번이나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02로 시작하면 서울인데, 그리고 3번이나 걸려올 정도면 분명 나한테 용건이 있는 것 같고. 받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정호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우웅!!

이윽고 정호준의 핸드폰에 등록된 번호를 통해 연락이 왔다.

- 강현태 변호사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정호준 학생. 강현태 변호사입니다. 저 기억하시죠?"

"아, 예. 기억합니다."

"혹시 지금 전화 통화 어렵나요? 사무실 전화로 몇 번이나 연락을 넣었는데, 연결이 참 어렵네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안 받는 편이라서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 당시는 핸드폰 전화 요금이 비싼 건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통신사끼리조차 전화 통화가 무료가 아니었던 시기다. 수석부장판사 출신으로 변호사로 전직해 로펌으로부터 수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일하면서 그게 그렇게 아깝냐고. 쪼잔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뻔히 요금을 아낄 방법이 있는데  괜히 자기 돈 쓰면서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낄 수 있는 건 아낀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김철수씨께서 3월에는 시간이 안 나고 이번 주는 어떠신지 묻더군요."

"예, 괜찮습니다. 변호사님께서도 함께 나오셨으면 좋겠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저까지 필요한 일입니까?"

"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사실 김철수씨보다 변호사님의 능력이 더 많이 필요할 일입니다. 변호사님의 힘으로 조금 힘들 수도 있는 일을 김철수씨의 돈이 도와주겠죠."

"저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합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자하고 자상한 태도로 정호준을 대했던 강현태가 자신의 득실을 묻는다. 180도 바뀐 강현태의 태도에 정호준은 합의서 작성이 모두 끝났음을 상기하며 강현태가 혹할 만한 미끼를 걸었다.

"정치하시려고 밑그림을 그리시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건 추후 변호사님이 정치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그런 일일 겁니다."

정호준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대답하던 강현태가 처음으로 침묵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강현태가 침음성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흥미롭다는 말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됐다.

"재미있네요. 합의를 권유하러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호준 학생은 참 보통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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