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9화 (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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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태 변호사가 인연을 만들라고 애쓰는 김창호의 부친 김철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판교 그린벨트에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을 가진, 자기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개 농부에 불과했다.

그것도 뚝심 있게 쌀 농사와 같은 종류의 과일 농사만 20년 넘게 고집해 온 천생 농부.

"모르는 거 심어봐야 농사만 망칠 뿐이여."

사철 내내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도 빚만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걸 고려하면 김철수는 먹고 살 만할 정도의 수익은 냈다.

농사를 짓는 땅의 지력이 좋아서일까? 김철수가 성실한 덕분일까?

그도 아니면 운이 따라준 덕일까?

큰 돈을 저축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흉년인 해를 제외하면 매년 생활비와 농사짓는 데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작게나마 저축이 가능할 정도의 수익은 냈다. 그렇게 저축한 돈이 목돈이 될 때쯤 자꾸만 그의 통장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생겼을 뿐이다.

80년대 90년대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이 실제로 적용되던 시기였고 그린벨트로 묶인 판교 깡촌에서도 의사나 판검사는 종종 나왔다.

다만 미래에도 그랬지만 8, 90년대도 의대 등록금은 대학에 존재하는 모든 학부를 통틀어 가장 비쌌다. 그런데 등록금이 아무리 비싸도 자식이 의대 갈 성적이 되는데 의대에 안 보낼 부모가 얼마나 얼마나 되겠는가?

의사를 직업 중 가장 높게 쳐주는 경향이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빚을 안 지면 다행이지만 빚을 내서라도 자식의 등록금을 납부하는 게 부모마음이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

"왜, 아쉬운 소리는 하고 그러는가? 의대 갔다고 업고 다녔잖여."

"레지던트인지 뭔지 올해 마치는디, 병원을 개업한다네. 근디 병원 개업하는데 돈이 모자라데."

1981년 8월,

김철수의 친지 강태철의 아들은 높은 의대 등록금을 감당하며 힘들게 키워 놨더니 병원을 개업해야 한다고 손을 벌렸다.

"내 동상에게 이런 부탁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죄스럽긴한디, 내 땅 좀 사주지 않겠는가?"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는 건설업만큼 좋은 것이 없다. 판교신도시는 과열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그리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계획한 2기 신도시 사업 중 하나였고 2기 신도시 사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혔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판교에 들어선 아파트의 집값이 서울 강북지역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강북보다 배는 비싼 지역도 존재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찬란한 미래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신도시 사업이 거론되기 전의 판교는 그린벨트로 묶인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농지에 불과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 뿐인데 어떻게 농사를 안 짓겠어. 반 정도 팔아서 부족한 돈 보태주고, 은행에 졌던 빚도 이참에 다 갚아버릴까 하네."

그린벨트로 개발이 제한되어있는 판교 땅을 굳이 살 바보 천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땅을 팔고 싶어도 사줄 수 있는 건 결국 주변에서 같이 농사를 짓는 친지들 뿐이었다.

"내 이야기가 갑작스럽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네. 하지만 기왕이면 동상이 내 땅을 사줬으면 좋겠어. 대신 땅값에 8할만 받을게."

"200만원은 이번 추수를 마치면 줘도 되겠습니까? 조금 모자랍니다."

"물론이지, 고맙네 동상. 정말 고마워."

빚을 져서까지 땅을 살 생각은 없었기에 김철수는 값을 깎아줬음에도 조건을 하나 달았으나 고맙다며 인사까지 받았다.

'김씨가 강씨네 땅을 샀다는데?'

나가는 사람은 간혹 생겨도 유입은 지극히 드문 게 판교 촌구석이다. 폐쇄성이 짙은 만큼 김철수가 땅을 샀다는 소식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퍼졌다.

세상일이라는 게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내 땅도 좋은디 어찌 강씨 땅을 샀을까?"

김철수의 땅과 가까운 땅을 지닌 이들은 김철수에게 찾아와 아쉬운 소리를 하며 땅을 팔고자 빌드업을 깔았다.

농사짓는 땅의 규모가 커진 만큼 흉작일 때를 제하면 벌어 들이는 수익이 늘어났다. 10년을 모아 만들었던 목돈을 6년 조금 넘겨 모았을 정도로.

돈이 없을 때는 솔직하게 돈이 없어서 못 산다고 이야기하고 거절했지만, 거짓말을 못 하고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정 많은 성격 탓에 김철수는 그의 땅과 붙어 있는 땅들을 사주고 말았다.

6년을 저축해 모았던 목돈이 4년 만에 또 모였고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친지들로부터 땅을 사주다 보니, 1994년의 김철수는 판교에서 손에 꼽히는 농지를 가진 농사꾼이 되었고, 97년 무렵엔 판교에서 농사짓고 있는 농부 중 가장 넓은 땅을 경작하는 이가 되었다.

그것도 2번째로 넓은 땅을 경작하고 있는 농사꾼과 비교해 최소 배에 달하는 땅을 가졌을 정도로.

사고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구의 문민정부가 4년 차를 마무리 짓고 5년 차에 들어설 시기 판교 그린벨트가 해지 될 거란 입소문이 재벌들과 정치권, 그리고 돈 놀이하는 이들 사이에서 종종 돌기 시작했고 판교 땅을 알아보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거나 그린벨트를 해지하겠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던 게 아닌 만큼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찾는 이가 생긴 만큼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 어떤 일이 힘들지 않겠냐만 농사는 그중에서도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게다가 부지런히 노력해도 날씨나 병충해 같은 인간의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는 요인들로 노력의 결실을 얻지 못할 때도 많다.  때문에 농사짓는 것에 질렸거나 도시에 나가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이들은 그렇게 땅을 찾는 이들과 몇 차례 줄다리기를 한 뒤 땅을 팔고 도시로 나갔다.

당장 개발이 된다거나 후보지 선정을 하는 게 아닌 만큼 땅을 판 기업과 협상해 자신이 판 땅에서 소작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김철수에게도 땅을 팔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다른 것에 도전하거나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욕심이 전무한 터라 끝까지 안 팔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0년도 들어서서 정부가 주도하는 신도시 개발 후보 중 판교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판교의 땅값은 미칠 듯한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김철수에게 땅을 팔라고 찾아오는 사람의 수는 땅값이 오르는 것과 비례해 늘어났다. 정치인을 대리하는 이부터 기업에서 나온 이들까지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그를 찾았다.

김철수가 땅을 팔지 않을 거라며 완고하게 나오자 2001년, 2월 말에는 아예 동향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

"글쎄, 안 판다니까. 오랜만에 찾아와서 지석이 너까지 왜 그러는겨. 대통령이랑 같은 편인 여당의 의원들도 판교는 개발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잖여! 그런데 무슨 자꾸만 땅을 팔라고 해."

김철수와 한지석의 부친 한강덕은 친한 사이다. 한지석이 사법고시에 패스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강덕이 마련한 잔치에 놀러 가 술을 얻어 마시고 축하주를 직접 따라줬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으로 수료한 한지석은 곧바로 중우건설 법무팀에 입사했고 김철수의 땅을 중우건설의 이름으로 구매하는 일은 그가 중우건설에 입사한 이래 단독으로 맡는 가장 큰 스케일의 일이었다.

- 한국민주당 의원들은 신도시 개발 계획에 오늘 기자회견에서 판교를 포함시키는 김대준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하는 입장을 이어가겠다고 표명했습니다. 의원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그린벨트 보호구역 해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마침 안방에 켜두었던 TV에서 그와 같은 내용이 들렸다.

"저거 봐라 지석아. 같은 편인 여당 의원들조차 반대하는 개발인데, 개발이 정말 시작되겠나?"

"아저씨, 저 사람들이 카메라까지 불러다가 저렇게 격렬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진짜 환경을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사건을 너무 있는 그대로 보시면 안 돼요."

"그러면?"

"저 사람들은 판교 땅을 매입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저렇게 반대하는 겁니다. 최대한 값싸게 매입하기 위해, 저렇게 강하게 반대해 무산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한지석은 안주인 나혜숙이 타 준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저씨께서 개발 안 될 거라 생각하신 것처럼, 별다른 정보 없이 그냥 땅값이 오를 것 같아 달려든 불나방들은 저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걸로 반절 이상 떨어져 나갈 테니까요. 판교 개발은 시공을 언제 하는지가 결정되지 않았을 뿐, 반드시 시행될 일이에요."

"그 말은 결국은 떠나야 한다는 기네?"

"예. 시간문제일 뿐, 이곳을 떠나셔야 한다는 건 결코 달라지지 않을 사실입니다."

저렇게 격렬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모든 게 한 편의 쇼에 불과하다는 한지석의 설명에 김철수는 당황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한지석은 침묵하는 김철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체감이 안 되실 수도 있는데, 아저씨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예요."

"그건 또 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손에 쥔 건 많으신데, 힘은 없으시니까요. 위쪽에 인맥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억수로 많아 권력이 될 정도로 갖고 계신 건 또 아니니까요."

작은 사회나 다름없는 학교만 봐도 그렇다. 불량한 일진들에게 괴롭힘의 표적이 되는 대상은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과 같은 예체능 쪽으로 끼가 있는 이들이 아닌 공부를 잘하지도 운동을 잘하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이들이었다.

사회라고 그런 법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하거나 어중간한 이들은 언제나 상대의 표적이 된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돈이 억수로 깨집니다. 기업들이 암암리에 선거비를 지원해주지만,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축재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이렇게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는 부동산 사업에는 웬만해선 발을 걸칩니다. 정치란 게 권력과 명예를 갖기 위해 하는 거라지만, 결국 모든 일엔 언제나 돈이 얽힙니다."

잠깐 말을 끊고 김철수의 눈치를 본 한지석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정부가 직접 토지 보상을 해줄 때까지 별일 없이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최악의 경우 아저씨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일가족 전체가요. 그도 그럴 것이……."

1990년 10월 13일 발표된 특별선언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이라 불린 보통 사람의 사업 덕에 옆 나라 일본과 달리 조직폭력배들이 쉬이 날뛸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문민정부 이후엔 표면적으로나마 군부독재시절처럼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죄 없이 잡혀 들어가는 일도 없어졌고 말이다.

하지만 김철수를 그냥 두기엔 김철수가 쥐고 있는 땅이 커도 너무 컸다.

김철수가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몇몇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 공권력의 시선을 잠깐 멀게 하고 깡패들을 움직여 작업을 칠 수도 있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경우도 많이 존재했기에 불가능하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웠다.

위험부담이 없지는 않으나 별다른 인맥도 없고 연고도 딱히 없는 3인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면 최소 1500억은 넘길 게 확실히 되는 부동산을 챙길 수 있다.

'혼자 먹으면 체하겠지만 몇 명이 힘을 모으면 해봄 직한 도전이다.'라고 생각하는 이가 하나둘 생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품은 이들 중 정말 마음이 급한 이가 총대를 메고 시도하게 되리라.

피를 나눈 친혈육끼리도 유산 갖고 싸우는 세상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의 목숨이 무에 무겁겠는가? 충분히 현실로 벌어질 법한 예측이었다.

한지석은 자신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중간중간 그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아저씨, 판교가 신도시 개발 후보로 거론된다는 말이 돈 뒤로 땅값이 많이 뛰었지만,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앞으로도 더 많이 오를 거라 예측합니다. 최소 20배는 더 오를 거라 기대할 정도로요.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게 안전 아니겠습니까?"

"내보고 어쩌라고? 여기서 쫓겨나면 우리 식구는 갈 때도 없다."

"아저씨, 제가 다니는 중우건설에 땅을 파시죠. 회사에 말해서 지금 시가에 3배까진 어떻게든 맞춰드릴게요. 중우건설에서 사들인 아저씨 땅은 정치인들의 가족 명의로도 조금씩 나눠지게 될 겁니다."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분명 한지석은 있는 그대로 그가 들은 사실만 이야기했고, 그로 인해 벌어진 최악의 상황만 경고했을 뿐이다.

하지만 김철수가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음에도 멈춰 세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때때로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음에도 못 보면 그 또한 손해로 간주하는 습성이 있음을 알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땅을 구매한 것이 자신의 실적으로 남는 것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에 아버지의 친지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죄책감을 품었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 받은 돈으로 강남에 건물을 사세요.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세 받으면서 사는 인생 나쁘지 않을 겁니다."

보답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의 빚을 덜고자 한지석은 그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인생, 비전을 제시했다.

5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남들을 따라잡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이 겪은 대한민국 경제는 간략하게 정리하면 '대마불사(大馬不死)'와 '강남불패(江南不敗)'. 이 두 가지 용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로 인해 대기업이라 불리는 기업들도 몇 개나 파산을 면치 못하며 대마불사라는 말은 무색해졌지만.

대마불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개념 '강남불패'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성공신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면 모를까, 돈이 있다면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지.'

월세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값 상승으로 건물 값이 상승해 재산을 늘릴 훌륭한 선택지였다. 자신에게 돈이 있거나 부모님께서 김철수만큼 큰 돈을 쥐고 계셨다면, 아니 그의 반의반만이라도 가지고 계셨다면 강남에 투자하라고 똑같이 설득했을 것이다.

"똑똑한 놈 말 들어서 나쁠 건 없응께, 지석이 네 말대로 땅은 중우건설에 팔게."

스스로를 땅 파 먹고 사는 배운 게 없는 이라 낮췄지만 김철수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현 시가에 3배 쳐준다는 한지석의 제안으로 얻게 될 돈만 해도 감당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그치만 농사 짓는 것을 그만두진 않을기다. 송충이가 솔 잎 먹고 살아야지 갈 잎을 욕심 내면 죽는 거 모르나?"

김철수의 대답을 들은 한지석의 시선에 작은 경외감 같은 게 깃들었다.

'아직 돈이 계좌에 안 들어가 실감이 안 나신 건가?'

힘든 농사일을 그만두고 편히 살 수 있음에도 농사를 짓겠다는 한결같음이 한지석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 김철수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가늠이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하나 확실한 게 있다.

농사를 짓더라도 그 돈을 현금으로 그냥 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란 거다. 그렇기에 한지석은 다시 한번 제안했다.

"그래도 강남에 아파트랑 건물은 사두세요. 회사에 땅을 팔고 받은 돈을 전부 농사지을 땅을 사는 데 쓰실 건 아니잖아요. 미국처럼 비행기로 농약 치는 대농장을 경영하실 게 아니면 강남에 건물과 아파트를 사고 남는 돈으로 땅을 사셔도 충분할 겁니다. 아니 아예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서 땅을 사도 되고요."

서울에서 멀면 멀수록, 광역시에서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땅값은 싸진다. 한지석은 잠깐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김철수를 바라보더니 이내 김철수에게 입지선정과 관련된 조언도 함께 남겼다.

"저...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농사를 짓고 싶으시면 최소한 평택까진 내려가셔야 할 겁니다. 아예 충청도나 전라도로 내려가시는 것도 좋고요. 안 그러면 오늘 같은 일은 반복될 겁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시간이 얼마가 흐르든 대한민국이 망하기 전까진 서울로 사람이 쏠리는 현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당연히 주거지는 부족해질 거고, 집값은 오르겠죠. 주거 포화 현상과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에서 손을 쓸 겁니다. 그리고 건설만큼 정부가 편하게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업종은 또 없을 테니까요. 서울 주위에 새로운 위성도시가 건설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란 겁니다."

한지석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방해 받지 않고 농사를 짓고 싶으신 거라면 충청도나 전라도로 내려가시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겁니다."

*****

한지석의 설득 덕에 김철수가 중우건설에 땅을 팔겠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곧장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입금 받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큰 돈이 오고 가는 만큼 절차와 돈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 올해까지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락해 달라.

봄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이상 농부들은 한해 농사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그런데 김철수는 준비는 고사하고 농사를 지을 땅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된 거 1년쯤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김철수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자신이 일 없이 노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위에서 아저씨가 요구한 것을 들어주겠답니다."

어차피 당장 그린벨트가 해지 되는 게 아니었기에 올해까지 김철수가 그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때문에 중우건설은 흔쾌히 김철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꽃피는 춘삼월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중우건설은 계약서에 명시된 돈을 입금했다. 김철수는 한지석이 말해준 대로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이&박로펌을 찾아서 세금 공제를 맡겼다.

내야 할 세금을 모두 내고 남은 돈은 자투리 금액을 제외하면 279억.

김철수가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던 돈이 그의 명의로 된 통장에 입금되었다.

김철수는 한지석이 말했던 대로 강남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한지석에게 건물을 알아봐 주길 부탁했다. 김철수에게 부탁받은 한지석은 상부상조하는 게 좋은 거였기에 한지석은 김철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퇴근 후 건물을 알아보러 다니는 시간을 가졌다.

'이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는 게 나한테도 좋은 거니까.'

천만장자라 불려도 무방할 재산을 지닌 이에게 신뢰 받고 친분을 이어가는 건 한지석에게도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한지석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수철을 한 달 앞둔 2001년 9월 초.

김철수는 서초구 신반포1차아파트를 그의 명의로 구매했고, 반포주공 2단지를 아내인 나혜숙의 명의로 구매했다. 그리고 신사동, 압구정동, 신사동, 논현동. 삼성동, 대치동에 하나씩, 6~12층 크기의 건물 6개의 주인이 되었다.

담보 대출이란 제도를 이용해 빚을 지긴 했지만 그래봐야 세입자들에게 받을 월세만 차곡차곡 모아도 금방 빚을 갚을 정도의 빚에 불과했다.

아파트는 전세로 돌려 3분의 1이 조금 넘는 현금을 다시 손에 쥐었고 말이다.

김철수는 한지석이 충고했던 대로 월세와 건물을 관리를 모두 이&박로펌에 부탁하며 인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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