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
'SKY를 몇 명 보냈냐.' '서울에 위치한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가.' '의대에 합격한 이는 있는가.'와 같은 결과들은 그 학교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좋은 결과를 이룩한 학교들은 명성을 쌓게 되고 그렇게 수년 간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낸 학교는 이윽고 명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외고와 과학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 짧게 줄여 '특목고'라 불리는 학교들 때문에 명성이 바래긴 했지만, 2000년대에도 '강서고등학교'는 명문고라 불리는 학교였다.
정호준은 그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박덕호는 물론이고 고3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로부터 좋은 성적을 낼 거라 기대 받는 이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도 정호준은 서울대와 연세대에 지원했던 수시에 합격한 상태였었고.
멘탈이 무너져 대학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능성적을 못 맞춰 수시에 붙은 게 헛수고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수리영역에서 조금 미끄러지긴 했는데, 다른 과목은 모두 잘 봤습니다……."
정호준은 자신이 집에서 가채점했던 결과를 박덕호에게 알렸다. 정호준으로부터 예상 성적을 전해 들은 박덕호는 목소리를 높이며 정호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잘했어. 정말 잘 됐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거다."
박덕호가 기쁨과 기특함, 축하가 섞인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넸다. 이를 듣고 있던 주변의 교사들도 하나같이 정호준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렇게 한동안 축하 인사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회귀하기 전 '괜찮다'를 연발하며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며 애써 정호준을 위로했던 박덕호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는 호준은 자신이 정말 미래를 바꿨음이 다시 한번 실감했다.
*****
수능을 치른 고3들에겐 기말고사라는 시험이 남아 있다.
그러나 시험 성적과 관계없이 전국의 수험생 중 그 누구도 기말고사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이는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내신이나 대학입시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의 고3들은 걸린 것 하나 없이 기껏 노력해봐야 자기 만족이 전부인 시험에 신경을 쏟기보단 저마다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바빴다.
시험 성적이 어느 정도 잘 나온 우등생들은 2차 수시를 지원하러 다니느라 바빴고, 수능 성적이 본디 학교에서 받아온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보다 잘 나온 이들은 정시를 위한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죽기 살기로 하자.'
공부를 잘했는데 수능을 망친 이들이나 공부를 안 하다 수능을 보고 남들 열심히 수험칠 때 그냥 자리에만 앉아 있던 이들 중 지금까지의 인생을 후회한 이들은 이때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재수 학원에 들어가 다음 수능을 준비했다.
그리고 원래부터 공부에 관심 없고 수능을 치렀음에도 심경의 변화가 없는 이들은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돈을 벌었다.
마지막으로 1차 수시에 합격해 수능성적만 잘 나오면 입시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고 본래 실력대로 수능을 성공리에 치른 이들은 근 십수 년 만에 맛보는 부담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 자유 시간을 즐기느라 바빴다.
수능을 무사히 끝마친 정호준은 이 마지막 부류에 속했다.
등교한 뒤 수업에 집중하기보단 책을 펴놓고 기억을 더듬으며 회귀 전 사건 사고들을 두서 없이 적어두었던 노트를 차곡차곡 정리하며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렇게 훗날을 준비하고 있던 정호준에게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손님이 찾아왔다.
"정호준 학생,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봐도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 양복을 입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꺾이고 있는 인상의 남성이 교문 밖을 나서는 정호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누구신지부터 밝히는 게 순서 아닐까요?"
경계심 가득한 태도를 보이는 정호준의 모습에 남자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정호준에게 건넸다.
"하하, 이거 제가 너무 마음이 앞섰나 보군요. '이&박'로펌의 강현태 변호사입니다. 김창호씨의 변호를 맡게 되게 됐습니다."
회귀 전 강현태가 그를 찾아왔을 때는 이&박로펌의 변호사라 적힌 이 명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몰랐었다. 이 당시 정호준에게 강현태는 그저 그냥 들어본 적 있는 로펌에서 나온 변호사.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겪을 만큼 겪었던 중년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지금은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선한 인상의,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중년 남성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강현태는 법조계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전관예우 대우를 활용하기 위해 대한민국 최대 로펌인 이&박로펌이 고액연봉을 약속하고 스카우트한 인물이었다.
강현태는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정호준보다 아득히 윗줄에 있는 사람이었고 계통은 다르지만 강현태처럼 공직 생활을 해왔던 정호준이 죽기 직전까지도 그가 은퇴할 당시의 직급보다 한참 못한 위치에 있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정호준이 정년 퇴직을 할 나이까지 열심히 사회생활을 이어가도 강현태의 직급과 동등한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눈앞의 중년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출신이었지 아마?'
나중에 정치판에까지 진출했었다. 중요한 순간에 엮였던 기억이 있던 터라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덕에 이력까지 알게 되었다.
굳이 정치를 하는 미래까지 고려대상에 넣지 않고 정년퇴직해 로펌으로 스카우트 된 이 시점만 해도 강현태는 충분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상류층 인사라 불릴 만했다.
회귀 전의 그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말해도 딱히 틀리지 않았다.
미래와 당장의 현실 모두를 냉정하게 꿰뚫고 있는 정호준은 회귀 전에 했던 그대로의 까칠한 반응을 내보였다.
"굳이 시간을 내어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전 딱히 할 말이 없는데요."
비협조적인 정호준의 태도에 강현태는 간곡한 표정과 말투로 정호준에게 조금 더 다가서며 말했다.
"정호준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정호준군을 찾아온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찾아온 성의를 생각해서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피의자가 아닌 이미 형이 확정된 피고인의 변호를 맡았기에 강현태는 저자세일 수밖에 없었다.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하는 강현태의 행동을 지켜본 정호준의 시선엔 과거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그땐 그냥 감정에 매몰돼 있던 시기라 눈치 못 챘었는데, 이것도 다 노리고 온 거겠지.'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정호준이 나오길 기다린 건 학생들의 시선을 무기로 삼은 것이 분명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정장이 수 없이 많을 게 분명함에도 강현태는 일부러 오래 입은 후즐근한 정장을 입고 왔다.
만약 정호준이 강현태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강현태가 계속 저자세로 달라붙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의 눈에는 새파랗게 어린 정호준이 나이 든 노인을 상대로 갑질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교하는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면, 그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정호준이 한 번의 응대는 해줄 거다.'와 같은 계산을 품고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과거의 그는 저자세로 매달리는 모양새를 띠는 강현태의 행동 때문에 시간을 내어줬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
2003년은 2010년대, 20년대처럼 블록마다 커피집이 있을 정도로 카페가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피집을 찾기까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홈그라운드이니 정호준이라도 나서서 안내했으면 시간이 단축되었겠지만...
정호준의 기억 속에 있는 남아 있는 지리는 어디까지나 17년 이상 흐른 후의 것이었다. 정호준의 기억은 카페를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도보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중간중간 강현태가 연륜과 특유의 스킬로 냉각된 분위기를 풀고 대화를 나눠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정호준은 단답으로 답해 대화를 이어가려는 강현태의 시도를 끊어냈다.
둘 사이엔 어색함만 자리했고, 그렇게 20분 넘게 찾아 헤맨 뒤에야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카페를 발견했다.
"호준군은 자리를 맡아주시겠습니까? 제가 마실 걸 주문하고 받아가겠습니다. 선호하는 음료가 따로 있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면 충분합니다."
정호준은 강현태의 말대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구석의 빈자리로 이동해 앉았고, 강현태가 주문한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여기 있습니다. 아메리카노 차가운 거."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커피를 건네준 강현태가 정호준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호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이리저리 돌려 말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내내 정호준에게 존대하며 존중을 잃지 않았다.
강현태가 무시하지 않고 존대와 존중을 모두 갖춰 말했다지만 그가 이야기한 내용까지 선한 것은 아니었다.
"합의 좀 해달라."
"부모님의 죽음에 분노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부모님께서 남기고 가신 것들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강현태가 길게 이야기했지만 짧게 정리하자면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것을 길게 풀어 정호준이 정리해야 할 현실과 엮어 친절하지만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정호준이 거주 중인 목동 7단지는 모친의 명의로 되어있던 집이다. 정호준이 이를 자신의 명의로 돌리기 위해선 상속과 관련된 세금을 내야 했다.
시스템은 냉정하다.
국가는 개인이 어리거나 불행한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고 집행하는 데 있어 사정을 봐주거나 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정을 봐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국가가 나서서 보상하거나 힘쓰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해 전국적으로 관심을 쏟게 되었을 때 뿐이었다.
회귀 전 정호준이 이 시기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둘 뿐이었다. 집을 팔아 상속세를 내거나, 그도 아니면 집을 지키기 위해 부친이 들어둔 보험사에서 세금 제하고 지급된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을 사용하거나.
그런데 이 당시의 그는 어리고 미숙했다.
결국 산 사람은 죽음을 딛고 계속 살아가는 거였지만...
어린 정호준에게 부모님의 죽음은 너무 무거웠다.
'나 때문이야.'
수능 대박을 기원하고자 절에 다녀오다 난 사고였기에 일종의 부채 의식마저 갖고 있어서 죽음이 더 무겁게 다가왔었다.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음에도 강현태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버렸다. 더 정확히는 강현태를 만나기 전부터 집과 사망보험금 둘 모두가 부모님이 그에게 남긴 것,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란 생각을 품고 있었다.
판사의 입장에 서서 검사, 변호사와 함께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치른 강현태가 그런 생각을 품은 정호준을 설득하는 게 뭐가 어려웠겠는가?
태도만 냉정하고 쌀쌀할 뿐 어리숙하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정호준을 설득하는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정치인.
국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게 일상이 된 이들이다.
무슨 일만 있으면 국민들로부터 가장 먼저 욕먹고 비난 받는 대상이 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재벌가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행정 관료나 각 계층의 엘리트들이 갈구하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강현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라고 금배지 못 달 거 있나? 이 정면 한번 달아 볼 만하잖아.'
지금은 정호준만 알고 있는 미래의 그가 정치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2000년대 중반쯤부터 강현태가 그러한 미래를 그리고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내 미래를 위해 김철수와는 좋은 관계로 남아야 한다.'
정치인이 될 미래의 자신을 그리며 하나하나 차곡차곡 퍼즐을 맞추듯 움직이는 강현태에게 김철수의 자식인 김창호의 사건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좋은 결과를 내려면 합의는 반드시 도출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