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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7화 (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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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점을 끝마친 정호준은 전혀 일어날 기색이 없어 보이는 박기태를 그냥 자게 놔둔 채 장갑을 끼고 집 밖을 나섰다. 자전거를 묶어둔 곳으로 이동해 자전거를 타고 에이마트로 향했다.

얼굴을 할퀴는 것 같은 차가운 초겨울 특유의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나아갔다.

차가운 공기를 정면으로 받으며 이동하는 정호준은 속이 조금이나마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장국은 뭘 끓일까?'

정호준은 자전거를 타고 마트로 향하는 내내 고민했다.

북엇국을 끓일지, 소고기뭇국을 끓일지, 그도 아니면 어묵탕을 끓일지를 말이다.

고민 끝에 나온 정호준의 선택은 소고기 뭇국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어려도 속에는 30대 아저씨가 들어가 있는 정호준이야 3개 중 무엇을 먹어도 해장하는 맛이 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박기태가 먹기엔 아무래도 고기가 들어간 뭇국이 나았다.

'파랑 다진 마늘은 집에 남은 게 있었지?'

정육 코너에서 양지와 사태를 각각 200g씩 구매하고 무를 하나 구매해 집으로 돌아왔다.

사각! 사각! 사각!

서걱!! 콱!

탈피칼로 껍질을 벗긴 무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정호준은 가로 방향으로 무를 반으로 쪼갰다. 반으로 나뉜 2개 무 중 하나를 비닐 렙에 씌워 냉장고에 넣은 정호준은 도마에 남아 있는 무들을 사각형 모양에 가깝게 두껍게 편 썰었다.

정호준은 어슷썰기처럼 확실한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나름 정돈된 크기로 무를 모두 썰고 파도 송송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딱딱딱딱딱!

야채 썰기를 끝마친 정호준은 국 끓일 때 사용하는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 가열시켰다. 약불로 천천히 냄비를 가열을 마친 뒤 정육코너에서 구매했던 사태 200g과 양지 200g를 투하했다.

치이이익!!

고기가 익을 때 나는 맛있는 소리가 냄비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맛술 2숟갈, 어제 먹다 남은 소주 반 숟갈, 그리고 조리용 간장 네 숟갈을 넣고 약불에서 고기를 볶았다. 사실 뭇국을 끓일 때 가장 맛있게 먹으려면 고기를 양념하고 냉장고에 넣어 재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호기를 못 이기고 자신의 주량을 오버해서 마시고 뻗어있는 녀석이 뭐가 이쁘다고 고기까지 재워가며 국을 끓여주겠는가. 박기태는 그의 해장을 위해 이렇게 자신이 국을 끓여주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맞았다.

고기의 양념이 고기의 겉면이 붉은빛이 아닌 소고기가 익었을 때 보이는 특유의 빛깔로 변했을 때 조금 전 미리 잘라놓았던 무를 투하는 걸로 충분했다.

이번에는 약불이 아닌 중불로 고기와 무를 잘 섞어주었다. 한 3분 정도 무와 고기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잘 섞인 것은 확인한 정호준은 가스레인지의 화력을 최고로 높이고 정수기에서 미리 따라 놓은 물을 부었다.

조리용 간장을 네 숟가락 넣었던 것처럼 국거리용 간장을 똑같이 숟가락으로 네 번 맞춰 넣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자 고기에서 나오는 핏물과 기름이 섞여 거품을 만들어내며 크기를 부풀렸다. 커질 대로 커진 거품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요리를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 거품을 두고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하나는 이 거품이야말로 엑키스라 생각하고 음식의 맛을 위해 그냥 두는 이들.' 그리고 또 하나는. '거품을 기름이라 판단해 건강을 위해 모일 만큼 모였을 때마다 한 번씩 제거해주는 이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취 경력이 오래된 탓에 요리 실력이 는 거지 어디 학원 가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거나 한 건 아닌지라 정호준은 둘 중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몰랐다. 어쩌면 둘 다 정답일 수도 있었고 말이다.

정호준은 소고기 뭇국이나 여타 고깃국을 끓일 때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처럼 계속해서 기름을 빼내진 않지만 처음 뭉친 거품과 그 위에 떠다니는 기름을 한 번은 확실히 걷어낸다.

나름 두 의견을 모두 받아들인 절충안이라고나 할까.

스윽!!

크게 거품 진 곳과 국의 가장 윗 표면에 둥둥 떠올라 있는 기름을 국자로 훑어 깔끔하게 걷어낸 후 국자를 뜨거운 물로 한 번 헹궜다. 한국인이 먹는 음식에 마늘이 빠진다는 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있을 수 없는 일, 마지막으로 팔팔 끓고 있는 국에 가장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인 다진 마늘 한 숟갈 반을 투하했다.

보글보글!

정호준은 충분히 국물이 우러나게 화력을 줄이지 않고 팔팔 끓게 놔두곤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뻗어있는 박기태를 깨우기 위해 다가갔다.

"야, 빅기태! 그만 일어나라."

흔들!

말로 깨워봐야 일어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소파에 누워있는 박기태를 흔들어 깨웠다.

술병이 나거나 멀미가 나면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 가뜩이나 아픈데 누가 다가와 흔들면 그 고통은 배가 된다. 박기태도 그랬다.

"아악! 머리 아파!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이거 마시고, 씻어. 씻고 밥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머리 아프고 어지럽다고 그냥 누워있으면 더 오래 가. 힘들어도 활동해주는 게 좋아."

확실한 리엑션을 보여주며 고통스러워하는 박기태에게 정호준은 자신이 마셨던 것보단 미지근한 따듯 미지근한 꿀물이 담긴 유리컵을 건넸다.

"뜨겁진 않은데 그래도 급하게 들이키진 마. 그리고 너 술 냄새 많이 나니까 다 마시고 나면 들어가서 씻고."

"지..지금 몇 시야?! 오늘 학교 쉬는 날 아니지 않아?"

그래도 꼴에 고등학생이란 자각은 있는지 사고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박기태는 휴일 유무부터 물었다. 소주 반병 정도에서 끝냈으면 제 삼자가 봤을 때 그들이 술을 마셨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깔끔하게 끝났을 거다.

할 거 다 해놓고 이제 와 걱정해 봐야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게 걱정됐으면 애초에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지 말았어야지.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에 빨리 씻고 와."

정호준의 재촉에 박기태는 머리를 긁적이며 현관문 쪽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건 놓는 곳에 팬티도 걸어놨으니까 그거 입어. 새것이니까 입고 네가 써."

아무리 불알친구여도 속옷 공유는 되도록 안 했으면 했기에 정호준은 박기태에게 사다 놓고 아직 뜯지 않은 팬티를 찾아 수건걸이에 걸어놓았다.

고기와 무가 한몫 톡톡히 하며 국물을 우려냈을 때쯤 더 정확히는 박기태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쯤 어슷썰기로 잘라놨던 대파 1개를 냄비에 넣었다.

파향은 국물에 우러나되 식감은 살아 있을 그 절묘한 타이밍을 맞춰 냄비를 옆으로 빼내고 프라이팬을 올렸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른 뒤 팬을 돌려 기름이 골고루 퍼지게 조절했다.

딱!딱!! 차르르르!!

딱!딱!! 차르르르!!

골고루 퍼진 기름이 아니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졌음을 인지한 정호준은 달걀 두 개를 깨트려 팬 위에 올렸다. 달궈진 팬에 떨어진 계란은 맛있는 소리를 내며 투명했던 흰자가 하얗게 변했다.

정호준은 계란이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다 평평한 접시를 두 개 꺼냈다. 꺼낸 접시 중 하나를 식탁에 올리곤 냉장고에 넣어둔 어제 먹다 남은 보쌈김치와 깍두기를 접시에 양념이 섞이지 않도록 양쪽에 가지런히 덜었다.

양념이 다르다고 그릇을 두 개나 사용해 설거짓거리를 늘릴 이유는 없다.

'설거지하는 건 나니까.'

다른 접시엔 노른자가 반은 익고 반은 익지 않은 절묘한 반숙 계란을 올렸다.

소고기 뭇국과 김치, 계란후라이와 김. 이 정도면 해장을 위한 상차림으론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머리를 말린 박기태가 식탁으로 다가와 의자를 빼고 앉았다.

후루룩!!

"하아"

국물을 떠먹으며 속이 풀리는지 박기태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갑자기 요리해서 좀 불안했는데, 맛있는데? 진짜 정말 맛있어."

그냥 맛있다고 잘 먹겠다고 말하면 되지  밉상처럼 꼭 사족을 붙인다.

어쨌건 맛있게 먹어주니 요리한 입장에서 기분은 좋았다.

"후추 갖다줄까?"

"아냐 그냥 이렇게 먹어도 충분해."

정호준은 그렇게 아침겸 점심인 아점을 박기태와 함께하곤 그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박기태를 보낸 정호준은 어제오늘 나온 설거짓거리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박기태보다 상태가 나을 뿐 정호준도 빈말로도 컨디션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속이 풀리도록 해장국도 끓여 먹었겠다 다시금 휴식이 필요했다.

*****

11월 7일. 금요일.

뭇국으로 해장하고 온종일 따듯한 것을 마시며 푹 쉰 덕분에 다음날인 금요일에는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했다.

강서고등학교는 정호준의 집인 목동 7단지 701동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지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느지막이 7시 40분쯤 일어난 정호준은 머리만 감고 학교에 등교했다

교실로 들어오는 정호준에게 다가온 동급생 남근현이 그를 보며 말했다.

"정호준, 담임이 너 오면 바로 교무실로 오라더라."

"장난 아니고 진짜로?"

오자마자 담임이 교무실로 오라 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수능도 끝났겠다 어제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겠다 재미 삼아 자신을 골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학창 생활을 겪으며 한 번씩 그런 장난을 치는 것을 지켜본 바 있던 정호준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남근현을 바라봤다.

정호준의 의심 가득한 시선과 반응에 남근현이 대답했다.

"이런 장난을 칠 정도로 내가 너랑 친했었나?"

남근현은 정호준에게 펙트 폭행을 가했다. 그의 말에 정호준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의심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전해줘서 고맙다."

'선의의 경쟁'이란 소재는 만화나 드라마,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판타지적인 소재다.

한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고 우위에 있는 이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이상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쟁 관계에서조차 좋은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남근현와 정호준은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 반 1등을 놓고 경쟁했고, 1학년, 2학년 때는 전교 등수를 놓고 경쟁해 온 관계다. 1등을 빼앗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등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이어온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반 1등 그리고 전교 등수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인 만큼 서로의 공부 실력은 인정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감정은 그게 전부였다.

다른 감정은 일절 없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그런 사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사실은 이번 생에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저놈은 참 여전하구나.'

정호준이 회귀 전 이맘때의 그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라지만 성숙하단 말이 벨이 없단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좁고 어디서 어떻게 다시 재회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란 걸 알지만. '우리가 친한 사이였냐'. 라 말하는 놈을 상대로 정호준이 뭘 더 어떻게 노력하겠는가.

남근현가 미래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인맥 관리 차원에서라도 관계를 개선해보려 했겠지만 한 번씩 동창회에 참석했을 때 들었던 녀석의 소식은 크게 특별할 게 없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사원 중 일하면서 두각을 드러내 근속연수가 차기 전에 승진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남근현은 해당사항 없었다.

'남들보다 특출나지 못한 승진 연수가 찬 대기업 대리.'

남근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대기업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중소기업, 중견기업과 비교해 높은 연봉을 지급하고 남들에게 어디서 일한다고 자랑할 수 있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은행 입사에 성공하는 건 동년배들과 비교해 앞서 나간다 말해도 모자람이 없는 결과였으니까.

고연봉을 주는 만큼 업무 강도가 강하기로 악명 높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튕겨 나지 않고 계속 다녔고 기어코 과장 승진 대상자가 되었다는 건 높이 평가할만했다. 단언컨대 성공한 인생임은 분명했다.

그저 저렇게 싹수없이 대하는데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먼저 숙여야 할 정도로 성공하진 않았다는 거다.

어쨌건 정호준은 남근현에게 전해 받은 대로 교무실로 이동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왔구나. 여기 앉아라."

아직 출근을 안 했는지 아니면 벌써 교실로 들어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박덕호는 정호준이 당도하자 주인이 자리를 비운 책상의 의자를 빼서 자신의 옆으로 당겨주었다.

박덕호가 빼준 의자에 앉은 정호준은 조용히 박덕호를 바라봤다.

박덕호와 정호준은 띠동갑을 두 번 돌린 것보다도 많은 나이 차가 났다. 어른 공경이 사회 전반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게 한국 사회였고 사회적인 직위도 박덕호는 정호준의 담임 선생님이고 말이다.

게다가 2000년대 초중반은 2010년 중후반만큼 교권이 약해지기 전의 강력했던 시기였다.

정호준이 먼저 왜 부르셨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정호준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박덕호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하는 불안한 심정을 속으로 하면서.

"어제 학교에 나오지 않았더구나."

"아, 예. 수능 끝났다고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기가 심하게 났었습니다. 그래도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고 푹 자서 오늘은 괜찮아졌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도 거짓말은 나쁜 거라 듣고 자랐지만 결석한 이유를 묻는 박덕호의 추궁 섞인 물음에 정호준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고 담임 앞에서 성인도 되지 못한 놈이 술 먹고 뻗어 술병 나서 못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하게 말해봐야 미쳤냐 소리를 듣거나 사랑의 매랑 명칭의 싸대기밖에 더 맞겠는가?

"그래? 괜찮아졌다니 다행이구나."

정호준의 연기가 탁월했던 덕분인지 박덕호는 정호준의 거짓말을 의심 없이 믿어주었다.

모범생으로 살아온 정호준의 3년의 학창 생활은 거짓말을 해도 의심조차 받지 않게 그를 지켜주었다.

정호준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니었기에 잘 모르겠지만 정호준을 지켜주는 건 사실 그의 학창 생활만이 아니었다.

'호준이 녀석은 뭘 해도 대성할 놈이다.'

박덕호에게 정호준은 부모를 한날한시에 잃었는데도 좌절하고 무너지는 게 아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감정을 수습하고 시험을 치른, 제자임에도 배울 게 많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학생이었다.

자신보다 어리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시켜 준 제자였다.

"너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수능은 잘 치렀는지 물어보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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