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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109화 (109/110)

#109화 고기 반찬 도시락 (3)

김민철은 자기가 내뱉은 말에 자기가 흠칫 놀랐다.

“헉……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제가 괜한 소리를 내뱉었네요.”

“…….”

괜한 소리?

아닐 거다.

어느 누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고통 없이 죽는 법’을 괜히 물어본다는 말인가.

겨우 두 잔에 술이 취한 거든 맨정신에 말한 거든, 이 남자의 마음속에 분명히 오랫동안 존재해 온 말일 거다.

-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사람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사실 별일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걸 생각한다.

가령 사람이 많은 지하철역에서 발을 잘못 디뎌 넘어졌을 때도 우리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조금 창피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재의 끝인 죽음을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니, 깊은 외로움을 품고 있는 저 눈을 하고서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다만 궁금한 건, 그의 이야기였다.

왜 그는 죽음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낸 걸까.

서로 이름도 모르는 백반집 사장인 내 앞에서.

그것도 맛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난 후에.

“마침 잘 갈아 둔 칼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급소를 찌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네?”

내 말에 적지 않게 놀라는 남자.

“하하하. 농담입니다.”

“아…….”

침음성을 뱉은 남자는 이내 큰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내게는 깊은 안도감처럼 느껴진다.

그런 거다.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죽음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면 엄두가 안 나는 거다.

고통 없는 죽음?

그런 건 없다.

이미 죽음을 예비하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어마어마한 공포와 그에 따른 고통이 밀려든다.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고통이라는 건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니까.

내가 한 번 죽어 봐서 안다.

기장의 안내 방송까지 끊기고 비행기가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순간부터 느낀 공포.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들.

아비규환이던 비행기 내부.

지옥에 가기 전에 이미 지옥을 맛본 듯한 기분이었다.

짠-

다시 한번 술잔을 부딪힌 후, 남자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시게 된…….”

쓴 소주를 넘기며 다시 한번 오만상을 찌푸린 남자가 급하게 물을 한 모금 넘긴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의 남자가 입을 연다.

“사실은…… 회사 생활이 너무나 힘듭니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 김민철.

그는 내부고발자였다.

교통시설물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안전 진단은 그가 소속된 기업이 아닌 입찰을 통해 들어온 협력 업체에 의해 진행됐다.

하지만, 협력 업체의 안전 진단은 형편없었다.

매뉴얼을 지키지도 않았고, 김민철에 대한 담당자의 태도도 안하무인이었다.

호가호위하는 여우처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 믿는 구석은 바로 김민철이 속한 부서의 본부장이었다.

김민철은 다른 팀의 선배로부터 본부장과 협력 업체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해 듣게 되었다.

협력 업체는 본부장에게 금품, 뇌물 등의 향응을 제공하고 본부장은 매년 해당 협력 업체를 입찰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 본부장에게 들어간 돈은 부실한 안전 진단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안전 진단의 결과를 최종 승인하는 본부장은 당연히 그 모든 부실을 눈감아 주었고.

고민하던 김민철은 이 사실을 내부 감사팀에 제보했다.

안전에 관한 문제였다.

부실한 안전 진단은 자칫 대형 사고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회사의 존폐가 달린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다.

김민철은 자신했다.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사내 감사팀에서도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용기있게 내부 문제를 고발한 김민철에게 사람들은 찬사를 보낼 거라고.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었다.

김민철은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직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제대로 되길 원했다.

하지만…… 감사팀의 반응은 김민철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 내부 조사 결과, OOO본부장은 사규를 비롯해 사회 통념적인 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는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렇게 결론이 난 이후, 김민철에 대한 ‘왕따’가 시작되었다.

그가 사랑하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 것이다.

그가 사랑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얘기를 끝마친 김민철.

사실 이 얘기는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께는 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친구들에게 얘기하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과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왠지 친구들에게 회사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싫었으니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털어놓으니 후련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했나 싶었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가게 주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아니 가게 주인의 아들이라고 해야 하나?

선한 인상에 말끔하게 생긴 얼굴.

세상 어려운 일이라고는 겪어 보지 못한 것만 같은 순한 눈매.

가끔씩 보이는 환한 미소는 그가 아직 이 세상의 복잡함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그런 ‘애송이’일 뿐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지만…….

게다가 매일 아침의 도시락만으로도 그에게 큰 힘을 주는 가게 아닌가.

이 선우네 백반은.

한편, 김민철의 얘기를 다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김민철이라는 남자에 대해 일종의 호감 같은 걸 느끼게 됐다.

지금 저 남자는 나를 세상을 잘 모르는 애송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김민철 쪽이 더 그랬다.

아직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그는 몰랐던 거다.

가끔씩, 아니 자주…… 세상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지 않지만 ‘편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는 걸.

김민철은 그 방향을 역행했던 거다.

그 역행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밀어내게 만들었던 거다.

그들에게 있어서 김민철은 바이러스였고, 그들은 백혈구였다.

바이러스가 침투하자 백혈구들은 힘을 모아 그 바이러스를 단죄하려 한 것이다.

옳고 그른 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은 그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을 고수하느냐 그걸 깨느냐에 관한 문제니까.

본부장과 협력 업체의 관계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그 관행에 따라 다음에 그 자리를 차지할 본부장은 혜택을 받는다.

그 혜택의 검은 사슬은 계속 이어진다.

정년퇴임한 임원은 협력 업체로 이직해서 다시 그 관행의 사슬을 이어 나간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던 거다.

김치찌개는 짜게 식어 갔다.

계란말이는 윤기를 잃고 푸석해져 갔다.

찌개 국물이 말라붙은 밥은 그대로 굳어 가고 있었다.

김민철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은 이후로, 침묵이 지속됐다.

그의 인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였을 거다.

내가 자신의 얘기를 처음 털어놓는 상대였던 거다.

그러니, 어떤 말도 해결책이랍시고 쉽게 내뱉기 힘들었다.

다시 얼마간 이어진 침묵 후에 입을 열었다.

“잘하셨습니다.”

“…….”

김민철의 몸이 움찔- 했다.

고민 끝에 내뱉은 첫마디였다.

이게 그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잘하셨습니다. 민철 씨 같은 분들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겠죠.”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요.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갈 겁니다. 민철 씨가 경종을 울리지 않았다면, 비리를 알고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침묵했다면, 약간의 흔들림마저 없었을 겁니다. 그 견고한 비리의 사슬은 영원히 이어졌겠죠. 그러니…… 정말 잘하신 겁니다. 누구도 못 하는 일을 해내신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김민철의 직장 동료 중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할지 모른다.

거대한 조직의 힘에 눌려 그 말을 하지 못하는 비겁자들이긴 하지만.

나는 그들을 대신해 김민철에게 얘기해 준 거다.

잘했다고.

그게 옳은 길이라고.

너는 해야 할 일을 한 거라고.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네요. 제 우울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아닙니다. 참…….”

“네?”

“내일 아침에도 들르실 거죠?”

“아, 도시락 말씀이신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고개도 위아래로 움직였다.

김민철은 그렇게 열대야의 여름밤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만의 착각일까?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그의 어깨가 아까보다는 많이 가벼워 보였다.

어쨌든 그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나는 ‘잘했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가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동료들로부터 그렇게나 듣고 싶어 했을 그 말로.

물론, 그 모든 일은 한 여름밤의 푹푹 찌는 열기처럼 달아올랐다가 이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저 김치찌개를 먹고, 못 마시는 술을 한잔하고, 무언가를 토해 내듯 자기 안의 이야기를 토해 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단순히 무언가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때가 있다.

어떤 해결책이 없어도, 여전히 앞으로의 갈 길이 막막해도.

그저 마음속의 말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오늘 밤이 그에게 그런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이미 세상을 삼십 년이나 살아간 어른인데도 타협하지 않은 그의 순수한 마음이 앞으로도 지켜졌으면 좋겠다.

* * *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식재료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

좋은 맛을 내는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식재료니까.

아무리 훌륭한 레시피로 양념을 하고, 좋은 도구로 조리를 해도 원료인 식재료가 좋지 않으면 음식 맛은 나지 않는다.

오늘도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나는 요리사가 식재료와 타협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김민철 씨가 회사에서 한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민철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위해 회사의 수뇌부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그가 고통받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가 한 일이 잘못된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것이 바로 이익을 덜 남기더라도 좋은 식재료를 쓰는, ‘맛’과는 타협하지 않는 사장의 마음과 같은 거겠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기본 반찬에 제육볶음으로 만드는 도시락이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더 마음을 가다듬는다.

다행히 내 주위에는 타협을 잘 모르는 훌륭한 동료들이 있다.

언제나 최상급의 식재료를 공급해 주는 최덕호 사장님.

최고의 채소를 선별해서 보내 주는 가락시장의 노유림 사장.

조금이라도 재료가 좋지 않으면 김치 담그는 걸 중지하는 어머니와 순미 이모까지.

그런 ‘완고함’이 결국 선우네 백반의 맛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늘도 30인분의 도시락을 만든다.

왠지 평소보다도 더 뿌듯한 느낌이 든다.

희선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도시락을 가져가고, 자주 보이는 얼굴들이 하나씩 하나씩 도시락을 사 간다.

그리고, 마지막 서른 번째 도시락이 남았다.

왠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어 도시락을 주문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 도시락의 마지막 손님은…… 김민철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며칠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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