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고기 반찬 도시락 (1)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 가게에 와서 ‘도시락’을 찾았다.
뭐,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선우네 백반의 반찬이 워낙 맛있으니, 그걸 도시락으로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을 테니까.
선우네 백반 식구들은 언제나처럼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도시락까지 하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 근데 뭐 별것 없지 않나? 그냥 우리 기본 반찬에 밥만 담아 주면 되잖아.
- 그래도 한두 개 정도 특별한 반찬은 있어야죠. 명색이 도시락인데…….
- 매일 반찬을 하나씩 추가한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고, 그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우리는 결국 도시락을 판매하기로 했다.
단, 몇 가지 조건을 달았다.
첫째, 하루에 삼십 개만 판매한다.
둘째, 단체 주문은 받지 않는다.
셋째, 국 하나와 반찬 하나만 도시락용으로 만든다. 나머지는 기본 반찬을 활용한다.
넷째, 아침 시간에만 판매한다.
매일 밖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희선이가 ‘선우네 도시락’의 단골 손님이 될 수밖에 없음은 당연했다.
* * *
새벽 네 시.
집에서 내려와 졸린 눈을 비비며 장사 준비를 시작한다.
도시락 메뉴가 생긴 후부터는 먼저 도시락부터 준비하는 게 선우네 백반의 일과가 되었다.
거의 바뀌지 않는 기본 반찬은 매일 먹어도 웬만해서는 질리지 않는 것들로 준비한다.
김치, 진미채 볶음, 오뎅볶음, 두 가지의 나물, 계란 장조림.
여기에 매일 한 가지씩의 메인 반찬과 국을 추가하는 거다.
- 고기!!!!
먹고 싶은 걸 물어본 어제 희선이의 대답이었다.
- 고기는 고기인데…… 무슨 고기?
- 몰라. 고기면 다 좋아!
흠…… 고기라…….
제육볶음은 너무 자주 나가서 질릴 수 있다.
불고기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삼겹살을 하자니, 그건 도시락으로 먹기엔 적절하지 않다.
식어서 하얗게 변질된 삼겹살의 식은 기름은 자칫 식욕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오른 고기 반찬.
그래, 바로 이거다.
먼저, 양파를 잘게 다져 믹싱볼에 담는다.
대파, 당근, 마늘도 잘게 다져서 역시 볼에 담는다.
두부는 물기를 꾹 짜서 도마 위에 올려 칼등으로 으깬다.
다음 간 돼지고기를 넣고, 소금, 후추, 간장을 넣은 후 손으로 치대 준다.
반죽에 찰기가 생기도록 충분히 치대 주는 것이 포인트.
계란물은 잘 풀어서 한쪽에 두고, 넓은 쟁반에 부침가루를 펼쳐 놓는다.
믹싱볼에 다져 놓은 반죽을 500원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로 동그랗게 빚는다.
빚은 반죽을 부침가루에 묻히고, 계란물을 입힌다.
약불에 잘 달궈진 기름에 반죽을 하나씩 하나씩 올린다.
고기가 충분히 익을 정도로 노릇노릇하게 지져 주면 오늘의 고기 반찬 완성.
바로 동그랑땡이다.
어린 시절 동그랑땡은 단골 도시락 반찬 중 하나였다.
물론, 수제 동그랑땡을 매일 아침 이렇게 싸 오는 친구들은 없었다.
대부분은 시중에 파는 냉동식품 동그랑땡이었을 테지.
비록 냉동식품이지만, 고기 반찬이라는 이유로 동그랑땡의 인기는 높았다.
동그랑땡은 반찬통을 여는 순간, 아이들의 젓가락이 가장 먼저 노리는 목표물 중 하나였으니까.
“오,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를 맡은 아귀가 어느새 가게에 들어와 있었다.
얘는 참 신기하다.
평소라면 선우네 백반 식구들 중 가장 늦게 오는 녀석이 오늘 같은 날에는 이렇게 일찍 나온다.
설마 진짜 ‘먹 레이더’ 같은 걸 장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날만 쏙쏙 골라서 일찍 나온단 말인가.
동그랑땡을 포함한 모든 ‘전’은 갓 부쳤을 때 최고의 맛을 낸다.
그건 뭐, 말할 필요도 없는 진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노릇노릇하게 부쳐진 동그랑땡을 막 접시에 옮겨 담으려던 순간이다.
동그랑땡으로 향하는 아귀의 손을 뒤집개로 저지했다.
“야, 그건 놔둬.”
“일할 때 일하더라도 이거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요.”
마치 유명한 영화의 한 대사 같다.
-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녀석…… 꼴에 또 배우라고…….
아귀의 눈빛은 간절했다.
“안 돼. 그건 오늘 도시락 반찬 나갈 거야.”
“에이, 하나쯤은…….”
아귀의 손이 미꾸라지처럼 움직여 동그랑땡을 노렸다.
“후훗. 걱정하지 마라. 뒤집개는 손보다 빠르니까.”
나도 영화 대사 좀 한번 따라해 봤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아귀의 시도는 손보다 빠른 내 뒤집개에 막혀 저지되었다.
아귀의 얼굴에 실망감이 잔뜩 피어올랐다.
“야, 울지마. 네 건 따로 있으니까.”
“오, 정말요?!”
거짓말처럼 아귀의 표정이 밝아졌다.
따로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고, 충분히 반죽을 해 두기도 했고…… 혜승이을 위해 미리 구상해 둔 동그랑땡이 있으니까.
“그래. 대신, 이 동그랑땡 건드리면, 국물도 없어.”
“네, 멋쟁이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개뿔…… 하여간 맛있는 것만 준다고 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애라니까…….
프라이팬에 기름을 충분히 둘러 달군 후, 혜승이를 위한 특별 동그랑땡을 준비한다.
뭐, 별다른 건 아니다.
동그랑땡인데, ‘동그랑땡’이 아니라, ‘도오오옹그랑땡’인 거다.
오백 원짜리가 아니라, 넓은 쟁반만 한 사이즈인 거다.
어차피 한두 개 먹어 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갈 녀석이니, 굳이 작게 만들어봐야 손만 많이 간다.
애초에 그냥 크게 부쳐 주는 게 낫지.
커다란 프라이팬이 꽉 차게 반죽을 올린다.
반죽이 잘 펴지도록 뒤집개로 살살 눌러 준다.
밑면이 지글지글 익어 갈 때 즈음 휙- 하고 뒤집어 준다.
아래쪽이었던 면이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있었다.
이대로 몇 분만 더 구워 주면, 유혜승을 위한 특별한 ‘도오오옹그랑땡’ 완성이다.
“오오오오오오.”
역시 왕동그랑땡을 본 유혜승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혜승이의 눈에서는 하트가 뚝뚝 떨어졌다.
물론, 그건 왕동그랑땡을 만들어 준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저 왕동그랑땡을 향한 순수한 마음이었다.
“역시…… 아침에는 고기지.”
젓가락을 든 유혜승은 동그랑땡 한 조각을 커다랗게 떼어 냈다.
그녀의 젓가락질 한 번에 그 큰 동그랑땡이 사분의 일 정도 사라졌다.
거의 자신의 얼굴 크기만 한 그것을 접고 또 접은 유혜승은 큼지막한 그것을 그대로 입으로 밀어 넣었다.
와구와구.
유혜승의 입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과 기름이 만나 벌어지는 고소함의 향연.
입안에서 감칠맛이라는 것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고, 기름에는 뭘 구워도 맛있다.
근데 그 맛있는 고기를 기름에 구웠으니…… 그저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환상적인 맛이었다.
유혜승은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눈 뜨자마자 갓 구운 동그랑땡이라니…… 그것도 왕동그랑땡…….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편, 도오오옹그랑땡으로 아귀의 입을 막은 나는 도시락 준비를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칸칸이 나눠진 반찬 칸에 반찬들을 담고 맨 마지막에 갓 구운 동그랑땡을 담았다.
미리 만들어 둔 오이냉국을 국통에 담고, 갓 지은 밥도 밥 칸에 담았다.
이렇게 30인분의 한정 판매 도시락이 완성됐다.
* * *
김민철은 출근 전에 매일 아침 선우네 백반에 들른다.
그의 목적은 바로 도시락 구입.
선우네 백반 도시락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웬만한 식당에서 사 먹는 점심보다도 그 퀄리티가 훌륭하다.
게다가 선우네 백반에 들르면 늘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부부 내외는 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손님을 맞이한다.
아들로 보이는 젊은 친구는 누가 봐도 선한 인상을 하고, 말끔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대미는…… 바로 딸로 보이는 여학생.
도무지 현실에서 보기 힘들 것 같은 미모로 도시락을 건네는데……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저 학생이 실제로는 무슨 걸신들린 처녀 귀신처럼 잘 먹는다는 얘기가 있던데…….
저렇게 생겨서 대식가라니…… 왠지 더 매력 있게 느껴진다.
하여간…… 일하는 사람들부터 도시락의 맛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가게라는 생각이다.
김민철의 직장은 교통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 공기업이다.
이제 4년차 직원인 그는 ‘안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는 담당하는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교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의 교통 안전에 일조하고 있다는 그의 자부심이 그가 이 일을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의 이런 자부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즐겁게 다니던 직장 생활은 지옥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팀장은 갑자기 달성하기 불가능한 업무를 그에게 배당했다.
- 팀장님, 이건 국토교통부 장관도 못 합니다.
- 그래? 난 김민철 씨라면 다 할 줄 알았지. 그렇게 혼자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왜 이건 못 해?
- 팀장님…….
- 그럼 이거나 정리해.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건 자료 정리나 문서 관리 등의 허드렛일.
어느 순간부터는 동료들의 태도도 백팔십도 바뀌었다.
- 커피나 한잔하러 갈래?
- 음…… 나 팀장님이 지금 일 시킨 거 있어서…….
- OO씨. 오늘 점심 저랑 같이 먹을래요?
- 아…… 저 선약이 있어서…….
선배, 후배, 동기 할 것 없이 자신을 일부러 기피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걸까?
한때는 이 회사의 ‘에이스’ 대접을 받는, 촉망받는 인재였던 내가…….
그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된 걸까?
아니, 그 일이 과연 실수이긴 한 걸까?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허드렛일을 시키는 상사나 은연중에 나를 멀리하는 동료들을 지켜보는 것보다 사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바로…… 점심시간에 철저히 배제되는 그의 존재였다.
이런 걸 ‘점심 왕따’라고 하나?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몰려 나갔다.
약속이 있다던 후배가 다른 동료 직원과 웃으며 나가는 게 보인다.
심지어 팀 전체가 모여 밥을 먹는 시간에도 김민철은 철저히 배제됐다.
서러웠다.
눈물이 났다.
혼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다 먹을 때는 실제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밥을 먹는다는 건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행위.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우리가 서로 같은 배를 탔다는 무언의 증명이었다.
너와 ‘같이’ 밥을 먹기 싫다는 건 너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의사 표시를 명확히 한 거였다.
김민철은 섬 안에 고립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선우네 도시락’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밥은 먹어야 했고, 그리고…… 이 도시락은 그런 상황에서도 맛있었다.
쌀 한 톨 한 톨,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가득 들어가 있었다.
마치 온 마음을 다해 싸 주신 어머니의 도시락 같았다.
선우네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서러움의 눈물은 아니었다.
안도감의 눈물이었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누군가는 이렇게 내가 먹을 밥에 정성을 들이고 있구나.
정말…… 고마운 일이구나.